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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존 신학 재고(再考)에 대한 결론
김주범  |  kjbjoh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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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1월 08일 (화) 22:20:27 [조회수 :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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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존 신학 재고(再考)에 대한 결론


앞에서 다룬 두가지 류의 신학에서 보게되는 여러 가지 혼란들은 제가 보기에 한가지 문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창조 목적의 문제입니다. 창조목적을 어떻게 설정하였느냐에 따라 그에 수반되는 문제를 설명할 수밖에 없으므로 혼란한 상태에서 믿음만을 강요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창조 목적의 관점에서 기존신학에 대한 평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수단

전통신학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합니다. 마귀진멸신학에서는 마귀를 진멸하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설명합니다. 이 둘은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에 대하여 분명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그 나름대로 설명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동일한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곧 인간을 하나님의 수단으로 본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나 마귀를 진멸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필요에 의한 수단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하나님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은 하나님을 정당하게 이해할 수 없게 합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키지 못합니다. 인간을 수단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여야만 하는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의 전지전능도 결국 허언(虛言)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을 위한 수단으로 설명하는 것은 하나님을 폭군과 무능력한 존재로 만들뿐 아니라 인간 자신을 비참한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인간은 겨우 하나님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떡이나 주어 먹는 개 같은 존재들입니다. 도둑놈 잘 지켰다고 던져 주는 밥 한 덩이 물고 좋아하며 꼬리치는 개 같은 것입니다. 영광을 돌렸다고, 마귀진멸에 도움을 주었다고 구원의 떡을 받아먹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은혜라고 좋아라 하니 말입니다.

① 소망붕괴

현대의 소망이 붕괴된 것은 인간 창조의 목적이 붕괴되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기독교 신학이 붕괴되면서 인류의 소망이 함께 붕괴된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창조의 목적이 붕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 창조의 목적이 붕괴되면서 인간 존재의 목적, 인간의 의미가 붕괴되었습니다. 그나마 겨우 기독교인들만이라도 붙잡고 있는 것, 곧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마귀를 진멸하기 위한 존재라는 신학입니다. 그러나 이 신학 아래 있는 자들은 마치 벼랑 끝에 매달려 발버둥치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마귀를 진멸하려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소모품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소모품이라는 신앙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인류에게 무슨 증거하여야 할 복음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소모품이 되어야지만 그나마 구원이라도 받는다 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들에게 진정한 복음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울며 겨자 먹기지요. 안 믿자니 지옥이니 이러 지도 못하고 저러 지도 못하고 울며 하수인 노릇을 해야 하는 수 밖에요. 이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소망이 있을까요?

② 하나님은 아버지가 아님

인간을 자신의 수단으로 만드신 하나님은 결코 인간들의 친아버지일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목적을 위하여 일한 자는 구원받고 아닌 자는 영원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니 누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겠습니까? 선악과 한번 따먹은 것으로 가차없이 저주하신 하나님이 진정으로 사랑스러운 아버지일 수 있습니까? 저주하신 목적이 혹 인간들을 위한 것이라면 몰라도 하나님 말씀 안 들었다고 저주하신 하나님이며, 마귀를 진멸하기 위하여 죄에 걸려들도록 의도하신 하나님인데 그러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일 수 있습니까?

③ 진정으로 복된 소식

인류에게 진정으로 복된 소식은 인간 자신이 하나님의 목적 그 자체라고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주와 인생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들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 인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날 때,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자녀로 만날 때 하나님과 인간이 모두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진실로 복된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존 신학에서 극복되어야 할 문제는 인간 창조의 목적에 대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위한 수단과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저는 “인간은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자 애를 쓸 것입니다. 이것이 밝히 드러날 때 인간에게 새로운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가적인 것이지만 모든 신학 체계를 포함할 수 있으며 신학의 전반적인 것들을 재해석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능자 아니면 폭군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마귀를 진멸하기 위해서라면 하나님은 실패자입니다. 일의 성취 여부를 떠나서 하나님의 기본 속성에 대한 실패입니다. 곧 전지전능, 사랑의 속성이 공존하지 못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을 수단으로, 즉 영광을 받기 위하여 또는 마귀를 진멸하기 위하여라면 전지전능은 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날 수 없고, 인간을 사랑하여 에덴 동산에서 영원히 살도록 창조하셨다면 하나님은 전지전능의 하나님은 될 수 없습니다. 전지전능과 사랑의 속성을 함께 가지신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한쪽이 성립이 되지 않으므로 기존 신학은 하나님을 정상적으로 알 수 없게 합니다.


“영광을 받기 위해서”의 해석과 그 결과

① “영광을 받기 위해서”의 두 가지 해석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였다는 것은 두 가지 설명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나는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인간이 타락하여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될 운명에 처하자 그를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푸사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사 피 흘리시고 죽으셨다는 것과, 타락이라는 과정 자체를 영광을 받기 위한 필연적 과정으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때는 다분히 전자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광을 영원히 받기 위해서 에덴 동산을 만들고 축복하여 인간을 거기에 두셨습니다. 영원히 살 존재로 축복하신 것입니다. 적어도 우주 창조의 목적이 인간이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의 유혹이 들어와서 인간이 하나님을 배역하고 타락하였습니다. 이 결과로 인간은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고, 인간 육체와 우주는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범죄함으로 마귀에게 속하여 마귀의 종노릇함으로 영광 받는 것을 상실하셨으며, 인간을 육체를 가지고 영원히 우주에서 살 존재로 만드셨으나 인간이 범죄함으로 육체를 폐하고 우주를 폐하고 영원히 살 곳을 새로이 준비하여야 하였으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하여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하여 애쓰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기존 신학은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설명하지만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이라 해도 인간 창조목적 자체가 이미 자신의 영광을 받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수단이라면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셨지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닐 뿐 아니라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될 수 없습니다. 영원히 에덴 동산에서 영광을 받으실 작정이었다면 인간들에게 함정을 만들지 않으셨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귀로 인간을 유혹하여 범죄하도록 하지 못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라는 것은 인간을 하나님의 수단으로 설정하여야만 합니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또 마귀를 진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계획이라고 하여야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에덴 창조와 인간 창조와 선악과 명령과 마귀의 유혹과 인간 범죄와 구원할 자와 유기(遺棄)할 자와 십자가의 죽음을 치밀하게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정확하게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인간 육체의 소멸과 우주의 소멸까지 모두를 하나님이 계획하신 작정입니다.

이 견해는 전지전능의 하나님께서 모두 계획하신 것이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그분의 뜻대로 한치의 오차 없이 진행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또는 마귀를 진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죄를 범하였다 하여도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원칙대로 한다면 죄를 범한 모든 인간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죄 범한 인간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낼 수 있었고 마귀를 진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즉, 자기가 사랑이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준 인간들 가운데서도 어떤 사람은 영원히 버린다는 것은 하나님은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면서 “사랑의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은 참으로 비열합니다. 자신이 영광을 받기 위하여 인간을 범죄케하고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은 버리고 어떤 사람은 구원하여 사람에 대한 절대 주권의 전지전능이 하나님 자신에게 있음을 나타내고 그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소모품입니다. 영광을 받기 위하여 어떤 사람은 구원하고 어떤 사람은 버리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횡포입니다. 모두가 다 죄인이지만 어떤 사람은 구원하므로 영광을 드러내고, 어떤 사람은 버림으로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는 사람이나 버림받는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 받은 것인데 자기의 작정한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지전능이라는 것은 인간의 형편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다 처리해 버리실 수 있다는 면에서 하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② 두 가지 해석의 결국

앞의 두 가지 가능성에서 하나님은 어차피 사랑의 하나님은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같은 설명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하자면 우리는 후자를 택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을 기뻐하셨다고 설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지는 못하는 난국에서 하나님의 전지전능마저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 자체를 영광을 받기 위한 과정으로 사용하신다는 의미에서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하고 말하기 때문에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까? 그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 그토록 많은 사람들 역시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독약 시험을 하기 위해 약 먹여 놓고 죽으려는 사람에게 해독제를 먹여 살려 주었으니 감사하다고 말하기는 해도 그것이 진정한 감사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진정한 영광 받는 것에 실패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절대 사랑의 하나님일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사랑이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자신의 영광 받으려는 욕심을 위하여 인간을 소모품으로 이용하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하나님의 사랑의 나타남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신의 영광 받으려는 목적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기존 신학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전지전능, 선택, 섭리에 지배당한 나머지 전 피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우주적, 섭리적 의도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전통신학은 하나님을 실패한 분으로 소개합니다. 사랑에서 실패하였고, 전지전능에서 실패하였습니다. 무능하거나 포학한 분으로 우리에게 나타내 줍니다. 이 둘 가운데 어느 한 가지 속성만이라도 손상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정상적인 모습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도 하며 사랑의 하나님이기도 하여야 합니다.


결과론 적인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오해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또는 마귀를 진멸하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인간의 죄와 타락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이 과정을 필수 과정으로 계획하시고서 거기에다 인간을 투입하여 자기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구속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인간을 창조하고 죄를 범하게 하여 죄인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마귀를 진멸하기 위하여 인간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일을 위하여 인간이 필요하였던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우리 어른들이 양말이 크면 양말에다 발을 맞추라는 말했던 것과 같습니다. 발이 커서 큰 양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양말이 크니 발을 거기에다 맞추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려니 죄인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죄인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를 진멸하려고 하니 의인을 죽이는 불법이 있어야만 하고, 불법으로 죽으려면 불법자가 있는 곳에 와야 하는데,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므로 인간을 마귀가 임금인 이 세상에 창조하고 죄를 범하도록 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인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입지 못하였다고 하니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려면 인간이 반드시 죄인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다음 이야기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아버지가 어느 곳에 출장을 갔다가 좋은 상처 치료제를 사 왔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 약을 사용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운전도 못하는 아들에게 자동차를 사 주면서 사용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좋아라 하고 그 차를 이리저리 운전하며 다니다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다리가 심하게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는 기뻐하였습니다. 약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약이란 상처 났을 때 필요한 것이지 약을 사용하기 위해 상처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약사용을 위하여 고의적으로 사고를 내고 상처를 내는 그것은 인간 생체 실험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약 실험의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 실험을 하는데는 휜 쥐나 동물을 사용합니다. 그것은 약을 위하여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위하여 약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마귀를 진멸하기 위하여 인간이 필요하다거나 사랑을 나타냄으로 영광을 받기 위하여 인간의 범죄가 필요하였다는 설명은 정말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죽음이 필요하였고, 인간의 자유를 위하여 마귀를 진멸하였다고 설명하는 것이 합당하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하여 인간을 죄인으로 만들어야만 한다는 등의 설명은 결론적인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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