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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배타적 선교 문제, 정면으로 다뤄라!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배타주의 입장의 보수 기독교와는 정면으로 맞서야 할 때
정강길  |  minjung2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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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8월 31일 (금) 14:17:43 [조회수 : 4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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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공격적 선교의 본질은 배타적 입장의 교리에 있다.
 

   
 
   
 

다행스럽게 이번 사태가 합의되어 19명의 석방소식을 들으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같은 소식에 대해 네티즌들에게서 보여진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증오 현상이 또다른 측면의 폭력임을 가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그저 '네티즌 매질'로만 여겨지는데는 동의할 수 없다. 사실상 소중한 생명들을 죽임으로 내몰았던 그 과업에 기존의 배타적인 보수 기독교야말로 크게 한 못 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다 생산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은, 앞으로는 이런 비극적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기독교는 이번 인질석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있잖은가. 왜냐하면 이번 아프간 인질사태 이후에도 보수 개신교 단체들은 여전히 기존의 기독교 선교 방식을 고수할 뜻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한심스럽게도 오히려 그것이 "어떻게 공격적 선교냐?"라며 반문하기까지 한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누차 강조하지만, 저들은 왜 아프간에 갔던 것인가? 바로 비기독교 지역의 복음화에 대한 열렬한 바램이 마침내 교회의 선교사업으로서 추인되고, 그곳이 위험하든 위험하지 않든 기독교인들을 전세계 곳곳의 오지에까지도 파송하여, 수단적으로는 의료봉사를 하든 구제봉사를 하든 궁극적으로는 저들을 기독교 신자로 만드는 데에 그 최종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온 세계에 기독교 왕국을 만들겠다는 이 신념이 강하게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진짜로 먹이고 싶은 당근은 의료봉사 및 구제봉사 같은 인도주의 차원이라기보다 궁극적으로는 기독교 신자화 즉, 저들의 뇌에 심어놓고자 하는 기독교의 배타적 교리의 주입인 것이다. 보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외에 그 어떤 종교문화에도 영혼구원이 없다고 보고 있는 이 배타주의 입장을 지니고 있다. 내가 보기에, 바로 이 <배타주의 구원론>이야말로 기독교가 종종 공격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그 핵심적 실체이다.
 
주류 기독교가 배타주의 입장을 채택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거리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고래고래 외치게 되고, 강의석군 사태처럼 기독교가 교육과정에서도 강요되고, 세계 곳곳의 위험스런 오지에도 기독교인들이 여지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배타주의 입장의 기독교인이 볼 때, 타종교인들은 죽으면 지옥 갈 불쌍한 영혼으로밖에 안보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저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켜야겠다는 불타는 사명감이 절로 들 수 밖에!
 
그리고 이 문제는 기독교 성경에 쓰인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요한14:6)나 혹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행전4:2)에 대한 문자적 해석에 기반한다. 따라서 이 문제를 깊이 그리고 온전하게 파헤치지 못할 경우, 다른 종교를 폄하하는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 행태는 여전히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일반 사회언론들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질 못하였고, 기껏해야 그저 기독교 선교에 대한 행태비판에만 머무를 때가 많았었다. 교리비판은 기독교 신념 자체에 대한 간섭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인가. 하지만 특정 종교의 신념이라도 그것이 사회적 공공의 문제와 충돌할 경우 분명하게 다룰 수 있다고 본다. 개혁적이라는 기독교 언론들조차 역시 교리적인 문제는 골치 아프다고 피해간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만일 기존 기독교가 계속적으로 배타적인 교리를 유지하면서 선교정책을 펼 경우(그 선교정책에 인도주의 봉사활동이라는 당근도 함께 갖고 있든 어떻든 간에) 그 같은 기독교의 확장은 궁극적으로는 <배타적인 기독교 제국주의>를 고수하는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갈등과 충돌이 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배타주의 입장의 기독교야말로 바뀌어야 할 진정한 선교의 대상!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기독교 문제의 본질 역시 한국교회가 지녀왔던 배타주의 입장에 기인한 교리의 수호와 확장이다. 이제는 이미 일반 사회인들마저 기독교인들의 배타성을 끔찍하게 여길 정도다. 이것은 선교방식이나 방향수정만 가지고는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기존의 보수 기독교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리를 폐지하고 전면적으로 다시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로 거듭날 때만이 그나마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이미 기독교에는 배타주의 입장만 있지 않다. 배타주의 외에도 포괄주의 입장과 다원주의 입장도 함께 지니고 있다. 다원주의 입장 역시 또 나뉘고 있다. 따라서 입장별로 보면 배타주의 입장의 기독교는 여러 다양한 입장들의 기독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물론 배타주의 기독교인들은 자기들 입장만 성경적으로 옳다고 볼 것이다. 이점에 있어 진보적이라는 기독 진영들이라면 배타적인 기독교 교리에 대해선 솔직하고도 분명한 커밍아웃 선언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안그러면 돌들이 소리칠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는 이젠 거의 총체적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좋은 일을 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이를 좀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건강한 시민사회를 위한 언론이라면, 썩은 기독교에 대해선 분명하게 정면으로 비판하고, 건강한 기독교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부각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기독교인들은 왜 그다지도 남의 절에 들어가 불상의 목을 자르고, 마을 어귀의 장승을 베는 짓들마저 서슴없이 저지르겠는가. 강의석군 사태에서도 보는 것처럼 왜 기독교 학교에서는 예배강요 문제가 끊임없는 잡음마냥 일어나는가. 기독교인들은 거리에서 그리고 지하철 안에서 빨간 십자가를 들고 다니며 왜 그토록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내지르는 것인가. 안하무인격으로 옆의 스님에 손을 얹는 무례한 행태마저 저지르잖은가.
 
내가 보기엔 이것은 보수 기독교의 신앙 체계 안에 이미 내함된 본질적 신념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곧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보고 있는 이 배타주의 교리야말로 사람들의 생명을 죽이고 있는 진정한 사탄의 실체요 교설인 것이다. 이번의 아프간 피랍사태 역시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제발 똑똑히 알기 바란다. 사실상 오늘날 기독교의 선교 지역은 저 먼 나라의 오지가 아니라 놀랍게도 바로 기독교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기독교만이라도 제대로 건강해보라. 아마 우리 사회 전체가 더없이 환영하고 기뻐할테지만, 현재의 기독교는 사회적으로 돌 맞기에 딱 좋은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설쳐되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전환기의 한국 기독교, 바뀌어야 산다! Christianity must change, and live! or die!
 
정강길 / 『미래에서 온 기독교』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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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121.141.148.251)
2007-08-31 22:17:00
아직 '길'이 있을까?
“기존의 우리 교회에서 가르쳐 온 ‘교리적’인 용어들이 대부분 파기(破棄)되거나, 재해석(再解釋) 혹은 대치(代置)되어야 한다.”

-‘한울성서연구’ 결론 중에서-

박해받던 기독교가 박해하는 기독교로 바뀌면서
기독교는 ‘잘못된’ 길을 갔다.
벌써 1700년 넘게 ‘딴 길’을 간 기독교가 ‘돌이킬’수 있을까?
차라리 '새로운 기독교’를 찾아나서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솔직히 현실적 한국 기독교를
아직도 여전히 하나의‘기독교’로 여길 수 있을까?

- - - - - - - - - - - - - - - - - - - -

아주 옛날
생명으로 가는
작은 오솔길이 있었다.
몇몇의 사람들이
감격과 기쁨 속에
그 길을 갔다.

그 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소문이 난 후로는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작은 오솔길은
언제부터인가
대로가 되었고
이제는
어느 길이 그 길인지
아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 길은 전설이 된 것이다.
생명의 길은 아득하게 되었다.

-한울성경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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