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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聖靈/Pneuma)은 기독교에 국한된 것인가? (2)
류기종  |  rkc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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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02월 19일 (일) 18:19:44
최종편집 : 2012년 02월 19일 (일) 18:25:18 [조회수 : 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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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聖靈/Pneuma)은 기독교에 국한된 것인가? (2)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진정한 성령 충만자는 어떤 모습이며, 또한 어떤 인격의 소유자가 진정한 성령 충만자 인지를 알려고 할 것 같으면 바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삶과 그의 인격을 제대로/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바로 이점을 오늘의 한국교회에서 간과하고 있으며 또한 등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오늘날 성령 충만의 참 모습을 바로 알려고 하면, 사도행전에서가 아니라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삶과 인격 그리고 그의 성령 충만의 모습을 통해서 알아야 하고 또한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바로 이점이 성령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의 허점과 빗나감과 왜곡과 이탈의 모든 원천은 바로 성령 충만의 참 모습을 성령 충만의 전형(典型)과 정형(正型)인 예수에게서 찾지 않고, 주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실과 또한 1장 8절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다니며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령 충만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성령 충만의 결과와 현상(phenomenon)의 일부분이나 특정한 사례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 있으며 또한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 즉 인간의 감정적인 요소나 무속(shamanism)적인 요소가 스며들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입신, 방언, 떨림, 환상, 신유 등의 현상은 기독교 이외의 여러 종교행위들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특히 무속행위들에서 많이 일어나는 현상들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점은 성령체험이나 성령 충만의 방식이나 상태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일률적인 것이 아니란 점이다. 즉 각 사람의 기질과 특성 곧 이지적인 성향의 사람과 정적인 기질의 사람과 의지적/행동적인 사람의 기질에 따라서 각각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성령체험이나 성령 충만의 경험이 조용하게 내면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뚜렷한 외적인 현상과 함께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설교의 말씀을 듣는 중에, 어떤 사람은 기도하는 중에, 어떤 사람은 성경말씀을 읽는 중에, 또한 어떤 사람은 깊이 묵상/사색하는 중에, 어떤 사람은 묵묵히 선행을 실천하는 중에 이런 성령의 임재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성령에 대한 이해의 편협성과 결핍의 가장 큰 원인은 성령을 신구약 성경 전반에서 이해하지 않고,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오순절 사건을 중심으로 이해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불 수 있겠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성령을 바로 이해하는 최상의 길은 삼위일체론과 같은 고대 교회의 추상적인 신학/교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가장 완벽한 성령 충만자의 삶을 살았고 동시에 성령에 대한 가장 완벽하고 명쾌한 정의를 내려준 예수의 삶과 그의 가르침을 통해서 접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라 사료된다.

다시 말하면 성령에 대해 가장 올바르게 아는 길은 바로 가장 완전한 성령 충만자였으며 또한 성령에 대하여 가장 완벽한 정의(definition)를 내려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의 성령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말해주고 있어(14,15,16장에서) "성령복음"이라고까지 칭해진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최초의 완전한 성령체험자 혹은 성령 충만자라고 말할 수 있으며 또한 최초의 완전한 성령론자 혹은 성령신학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완전한) 성령 충만자이었기 때문에 성령이 어떤 영인가를 가장 확실하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수의 성령이해의 핵심은 성령이 하나님과 별도의 다른 영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발현되어 나오는(proceeding) 하나님의 영으로서, 진리와 사랑과 지혜의 영으로 요약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본성/본질이 진리와 사랑 그리고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靈)이란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초월성을 지녔기 때문에, 영적 실재로서의 성령은 언제 어디서나 즉시적으로 우리를 찾아오시고 또한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성령을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시는(proceeding)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했다. 여기서 사용되는 "나오시는"이란 말은 "샘물"(spring water)이 "샘"(spring)에서 솟아나오는 것에 비유된다. 특히 요한복음 4장 24절에서, 예수는 하나님을 "영"(Pneuma/Spirit)이라고 정의 내리는데, 그러므로 성령은 "영"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발현되어 나오는 영적 존재(spiritual entity)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과 성령은 둘 다 "영적 실재" (Pneuma)이기 때문에 같은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영(적 존재)이시고 성령도 영(적 존재)이시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이 성령이시고 성령이 곧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점은 예수가 "하나님은 영이시다"(God is Spirit, 요4:24)고 한 말씀을 통해서 뒷받침이 되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하나님은 "샘물"(spring water)을 품어내는 근원 곧 "샘"(original spring) 자체에 해당되고, 성령은 그 근원적 샘에서 흘러나오는/분출되는 "샘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성령이 같은 본질이라는 삼위일체론의 이론이 설득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근원적 측면"을 말함이고, 성령은 바로 그 근원에서 발현되어 나오는 하나님의 "활동적 측면"(the aspect of God's activity)을 지칭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성령의 활동을 하나님 자신의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 자신의 (창조와 계시의) 활동을 성령의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과 성령의 존재와 활동을 분리해서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존재(being)과 활동(action)이 둘이면서 하나이고 또한 하나이면서 둘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이 오늘날 성령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핵심점이라고 사료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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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종 (76.90.215.244)
2012-02-25 04:45:38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남겨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이 제목의 글이 너무 길어서 7회로 나누어 올렸으므로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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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박평일 (72.196.235.211)
2012-02-23 20:02:47
선생님의 글이 실릴 때마다 유익하게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글 "성령은 기독교에만 국한된 것인가' 라는
제목은 다른 글들과는 달리 왠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

첫째는 성령이 지적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둘째는 기독교적 성령론으로 타종교의 영성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수로 시작된 기독교역사는 겨우 2천년입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날 때부터 종교가 시작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아주 일잔한 역사지요.

저도 기독교인 입니다만 가끔은 기독교신학논리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기독교 이전 모든 인류역사는 헛것이었고,
기독교인 아니면 영적인간이 아니라는 독선말입니다.

선생님께서 글을 통해 이런 기독교적 독선을
허무는데 많은 기여를 하실 걸로 기대해 봅니다.
종교이전에 같은 인간으로써 대화가 가능한
상식적인 기독교인들 말입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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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람 (210.2.47.57)
2012-02-24 09:25:06
좋은 말씀입니다.
박평일님의 리플에 동의합니다.
저 또한 기독교인입니다만 기독교의 교리는 좀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삼위일체, 성령, 계시 등 신화적 요인이 많은 복음서나 바울서신 등을 역사로 가르치는 것은 좀 지나칩니다. 동정녀 탄생, 부활,이런 사항들은 이미 지중해와 레반트지역에 만연한 신화입니다. 디오니소스, 미트라,아도니스,조로아스터 등 열거하면 아주 많습니다. 할 말은 아주 많지만 길어져 그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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