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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놓인 구체성(具體性)의 오류
류기종  |  rkc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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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01월 09일 (월) 21:26:11
최종편집 : 2012년 01월 11일 (수) 23:08:08 [조회수 : 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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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기종 박사
우리가 말할 때나 글을 쓸 때에 가장 조심하고 유의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마치 절대적인 진리인 양 생각하거나 말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과 깨달음을 확신을 가지고 표현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며 또한 권장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이 자신에게 중요하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만일 그 말이나 생각이 상식이하의 허황된 것이거나 혐오스러운 것이거나 비윤리적인 것이거나 반지성적인(비합리적인) 것일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뿐 아니라 강한 비판까지 받게 된다. 이점은 특히 종교적/신앙적 진리를 말할 때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종교적 진리나 신앙적 표현에는 객관성 보다는 주관성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기독교/교회의 가장 큰 수치와 해독은 종교적 신념이나 의견에 해당하는 교리논쟁으로 인한 교회의 분열 현상일 것이다. 그 좋은 사례가 지난 2천 년간의 기독교 역사에서 교리논쟁이 끝없이 진행되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교리라는 것은 일종의 종교적 신념들에 대한 다수의 혹은 힘있는 세력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며, 때로는 특정한 시기에 특정 인물들의 제안이나 혹은 특정 공동체의 의견들의 결집에 의해 형성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떠한 교리도 하늘에서 완성되어 땅위에 떨어진 것이 아닌 것이다. 예를 들면, 특히 개신교회에서 칭의론(justification by faith)을 가장 중요한 교리로,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절대적인 진리로 믿고 있는데 반해서, 개신교보다 훨씬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동방교회에서는 그것을 별로 중요하지 않는 낯선 교리로 여기고 있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교리적 견해의 차이 때문에 많은 신실한/탁월한 신학자들과 영성가들과 성인들과 존경받던 교회 지도자들이 무수히 죽임을 당했으며, 교회에서 축출 당했으며, 그로 인해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가 지리한 교리논쟁 끝에 둘로 갈라졌으며, 또한 그러한 이유로 인해서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가 갈라졌고, 또한 개신교 안에서 수 십 개의 교파로 분열되어 있는 것이다. 아마도 교파싸움이나 교파 분열을 점수로 매기자면 심히 수치스럽고 통탄스러운 일이지만 한국교회가 세계에서 단연 최고일 것이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약점은 무절제한 교회/교파 분열로 인한 무질서와 무통제성에 비롯한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우리가 종교적 진리를 말할 때 유의해야할 점은 바로 영적인 종교적 진리를 말할 때나 혹은 영적인 경험의 내용을 말할 때 그것을 사실적인 구체적인 혹은 역사적인 사실인 양 말하고 표현하는 일이다. 이러한 추상적 혹은 형이상학적 원리(진리)를 구체적 사실들에 직접 적용하는 일을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A. N. Whitehead)는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the fallacy of misplaced concreteness)라고 명명했다. 이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는 우리가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이며 동시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오류이고 따라서 모든 오류의 모태 같은 것으로써, 그런 점에서 가장 큰 오류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꿈과 현실을 혼동하거나 착각하는 일, 신화(神話)와 역사적(歷史的) 사실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혼합시키는 일, 환성(幻想)과 환시(幻視)와 환청(幻聽)같은 것을 사실적인 것이나 현실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일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는 모든 이단사상이나 사이비 종교의 근원적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에 한 미국인 원로목사가가 2011년 5월에 인류의 종말이 온다고 예언했다가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자 자신의 계산이 약간 잘못됐었다고 말하고, 5개월이 연기되어 10월에는 반드시 종말이 온다고 떠들다가, 10월에도 아무 일이 없자 아무 소리도 못하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이러한 사례는 지구상에 수없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이러한 오류는 인간의 정신적인 혹은 심리적인 현상 혹은 영적인 경험의 내용을 사실적인 혹은 역사적인 사실과 혼동하거나 또는 직접 연결시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바로 화이트헤드가 말한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에서 비롯됐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교계(교회)에서 흔히 듣는 말 중에 지금이 "말세"이며 "말세 지말"이란 소리를 자주 듣는다. 아마도 성경 말씀 중에 이 같은 암시를 나타내는 구절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세라는 말은 구약 신명기에도 나온다.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에서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행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 함으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신31:29). 종말/말세 혹은 재림 신앙은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교회/기독교의 종말(말세) 신앙과 재림신앙은 "내가 속히 오겠다"는 예수의 재림을 암시하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1세기 말경에 기록된 요한복음에서는 말세/종말 혹은 재림이 "로고스"(즉 신적/영적 생명과 빛)로 이 세상에 임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실현된 것으로 암시되어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 종말 재림 등이 먼 미래적 사건이 아니고 바로 영적 실재이신 하나님과 하나 됨을 성취함으로써 죽음(사망의 세력)을 초극한 부활 생명 혹은 영적 생명인 자신을 통해서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실현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곧 부활이고 (영적)생명이므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한 것이다(요11:25). 이것에 기초하여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이란 신학자는 종말/재림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실현되었다고 보아 "실현된 종말론"(realized eschatology)을 말했다. 재림과 종말 신앙이 수평적으로, 즉 시간선상으로 이해되지 않고, 수직적으로 혹은 영성적으로, 다시 말하면 영원한 사건(생명)이 시간 속에서 이미 실현/성취되는 '지금 여기에서'의 사건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요한복음은 종말과 재림에 대한 영성적 이해의 근거를 이미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는 종말이나 재림에 대한 모든 오해나 속단 등을 미리 예방하고 또한 종말이나 최후의 심판의 날에 대한 모든 억측들을 예방하기 위해서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고, 자신도 모르고 천사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아시는 사항이라고 말씀했다(막13:32; 마24:36). 예수의 이 말씀은 유한한 우리 인간이 우주/지구의 종말이나 최후의 심판이나 재림에 관해 말하거나 생각할 때 반드시 숙고해야 할 말씀들이라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인류의 종말이나 최후의 심판 등은 이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의지와 섭리에 관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의 의지에 속한 사항을 우리 인간이 이러쿵 저러쿵 예단하거나 속단하는 행위는 심히 불손한 일일 뿐 아니라 불신앙적인 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교회에서 시도 때도 없이 '지금이 말세다 말세 지말이다' 라고 말하는 일은 자신이 믿는 예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 불신앙적인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오류를 막기 위하여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오리겐(Origen, 185-254)은 "내가 속히 (구름을 타고) 오겠다"는 주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은 어디까지나 영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써, 로고스적 존재 즉 부활생명 혹은 영원한 영적 생명(eternal-spiritual life)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영적인 임재"(spiritual presence)를 나타내는 것임을 강조하여 시간공간의 역사적인, 혹은 우주적인 종말의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준 바 있다. 사이비 종교가들과 이단자들 혹은 종교 사기꾼들이 종말(재림)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우매한 백성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하여 금품을 갈취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무서운 범죄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종말과 재림에 대해 요한복음에서 말해주고 있는 깊은 영성신학적 이해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지금이 말세다/종말이다 외치는 행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혹세무민의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의 사실을 성경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일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성경의 말씀들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의미들을 나타내는 문헌들이며 때로는 가장 심오하고 신비스런 영적인 의미나 진리를 표현하는 문헌들인 것이다. 이러한 깊은 영적 진리들이 함축된 경전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는 우리의 깊은 영적 통찰이 요구되는 것이다. 신비 지극한 영적인 진리가 함축된 성경의 말씀들을 단순히 문자적으로 혹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으로만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은 땅속 깊이 숨겨진 보석을 캐내려하지 않고 땅 위에 보이는 돌멩이만을 보려하는 행위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심오한 영적인 진리를 구체적 사실, 곧 자연적/역사적 사실과 혼동하거나 그 틀 속에 갇혀 있도록 제한하는 행위로서 일종의 "전도(顚倒)된 구체성의 오류"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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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환 (118.46.108.121)
2012-01-13 16:54:46
글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전도된 구체성의 오류'에 대한 이해가 생겼습니다.
화이트 헤드에 대한 호기심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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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1
박평일 (72.196.235.211)
2012-01-09 22:28:15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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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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