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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神話)와 역사적 사실과 영성(靈性) (2)
류기종  |  rkc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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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01월 22일 (일) 17:35:03
최종편집 : 2012년 01월 22일 (일) 17:47:36 [조회수 : 2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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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神話)와 역사적 사실과 영성(靈性) (2)


불트만은 성서(복음서)의 기록들에서 신화적 요소들을 벗겨내는 일을 성경의 "비신화화"(非神話化/demythologization)라고 명명했다. 그에 따르면 "비신화화"란 성경 속에서 신화적 요소를 없애고 제거하는(reject or exclude)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사유(우주관)에 이해될 수 있는 용어와 개념들로 재해석하고 설명해내는 일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신화들은 고대인들 특히 성서기자들에 의해 어떤 특정한 혹은 심오한 종교적 의미들을 나타내고 전달하기 위한 수단들로 사용되어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1960년대 대학원 재학시절에 "불트만의 비신화론"이란 제목의 글을 모 신학 학술지에 발표한 적이 있었다.

불트만의 비신화론의 근본 의도는 예수의 복음의 핵심적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인들의 우주관의 표현인 신화적 요소로 옷 입혀진 내용들을 현대인의 우주관에 공감되고 이해될 수 있도록 재해석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심도 있는 해석 작업이 없이 그대로 성경의 말씀을 전달하게 되면 현대인들에게는 하나의 허구적인 웃음거리로 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이 우주를 삼층의 세계 곧 신과 천사들과 영물들의 세계와 인간과 동식물과 자연의 세계 그리고 사탄과 악귀들의 세계로 이해한 고대인의 우주관과 전혀 다른 과학적 우주관을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불트만은 그의 비신화론에 있어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4-1976)의 실존주의 철학에서 많은 힌트를 얻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이것은 마부르그 대학에서 하이데거와의 교제를 통해서 그와 많은 사상적 교류를 가진 결과일 것이다. 하이데거의 실존 철학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실존 곧 현존재(Dasein/Existence)는 본래적 존재(Sein/Being/근원적 존재)에서 이탈되어 이 세상에 내던져진(Entwurfen) 존재로서 항상 불안과 초조와 근심과 걱정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다. 즉 우리 인간은 언제나 비 본래적 존래 아니면 본래적 존재가 되든가 두 가능성 속에 있으며, 항시 양자택일의 결단을 요구받고 있는 존재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존재를 타락이전의 상태와 타락 이후의 상태 또는 신앙을 가진 인간/존재와 신앙을 갖지 않은 인간/존재로 보는 성서적 인간이해와 같은 유형으로 보인다,

하이데거가 보는 본래적 존재는 타락이전의 인간 존재를 지칭하며 비 본래적 존재 곧 실존적 인간존재는 타락 이후의 인간존재를 지칭한다고 보여 진다. 불트만은 불신앙 혹은 무 신앙으로 인해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과의 분리로 하나의 소외된 존재가 된 우리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로고스 곧 진리의 현시자/구현자)에 의한 신앙(영적 깨우침/거듭남)을 통해서 지금 이 자리/여기에서 하나남과의 올바른 관계를 다시 회복함으로 온갖 종류의 불안과 초조, 근심과 걱정에서 놓임을 받고 자유함을 얻게 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이 그가 의미하는 인간의 구원이다. 요컨대 불트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이 바로 우리 인간의 소외된 상태에서 벗이나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게 하는데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먼 미래적인 사건 혹은 죽은 후에 얻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현재적인 사건으로서 지금 여기에서 획득되고 실현되어지는 내용이다.

불트만의 성경 특히 복음서의 비신화론에 관련하여, 필자는 성경에 나타난 종교적 진리(의미)들에 대한 현대적 이해와 해석의 방법의 하나로서 "영성적 이해와 해석의 방법"(a method of spiritual understanding or spiritual interpretation)을 제안하고 싶다. 이것은 일직이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오리겐(Origen, 185-254)에 의해 이미 제안된 방법이다. 오리겐은 성경의 말씀들은 적어도 삼중적 의미(threefold meaning)가 들어있음을 말했다. 즉 역사적 의미와 윤리적 의미와 신비적 곧 영성적 의미이다.

그에 따르면 성경의 말씀의 영성적 의미는 지극히 신비한 측면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그것은 단순히 문자적으로나 혹은 역사적 사실이나 혹은 윤리적 의미의 파악만으로 다 이해될 수 없으며, 깊은 영적 통찰 곧 영적 지혜(gnosis)를 통해 영(성)적으로 혹은 신비 신학적으로 이해해야만 그 의미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오리겐에 따르면 이런 지고한 영적 인식을 위해서는 우리 인간의 모든 지적 한계를 훨씬 넘어서는 진리와 지혜의 영인 성령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면, 성경에 나오는 초자연적(문자적으로는 신화적으로 표현된) 사건들은 깊은 영성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문자적으로나 윤리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며, 그 속에 함축된 깊은/신비한 영성적 의미를 파악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바로 그런 점에서)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과 우주관을 가지고 사는 현대인들에 대해서는 그러한 초자연적 사실들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믿으라고 해서도 안되며 그리고 또한 그것을 그대로 진리라고 말해도 안되는 것이다. 반면에 그것은 우리 인간의 가장 깊은 영적 통찰을 통한 인식방법인 초이성적(supra-rational) 인식방법 즉 영성적으로 혹은 영성 신학적으로 풀이해서 말해주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엔 현대의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지성인들은 성경의 말씀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바로 영성신학이라고 사료된다. 왜냐하면 영성가/영성신학자들은 성경의 깊은 의미를 깊이 파악해서 말해주었을 뿐 아니라 그 방법들까지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오리겐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에바그리우스, 어거스틴, 디오니수스 아레오파지트, 닛사의 그레고리, 그리고 마이스터 에크할트 등이다. 지난 2천 년간의 역사 가운데 탁월한 영성가들의 문헌을 보면 성경이 지닌 깊은 영적인/신비한 의미들을 그들의 영적 직관과 깊은 체험들을 통하여 깊이 이해한 기록들을 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불트만의 비신화론과 영성적(영성신학적) 인식 방법은 서로 통하는 점(혹은 공통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오늘의 목회자들이 성경에 나타나 있는 신화적(神話的) 표현들을 영성적으로 깊이 이해하고 오늘의/현대적 우주관에 조화되게/공감될 수 있게 설명해주고 표현할 수 있다면 오늘날 교회를 떠난 많은 젊은이들과 지성인들을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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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람 (210.2.47.57)
2012-01-26 09:49:32
비 신화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신화적 표현들의 영성적 깊이로 이해하는 것이란 진정 무엇일까요? 앞으로의 글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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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5.211)
2012-01-22 22:50:55
잘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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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종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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