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년 04월 30일 (토) 00:07:15 최종편집 : 2011년 05월 01일 (일) 15:57:00 [조회수 : 2187]
다윗의 거울
▲ 이광섭 목사
새벽기도회 시간에 만나는 다윗이야기가 정말 흥미롭습니다. <사무엘상> 풀어읽기를 마치고 <사무엘하>를 읽고 있는 중입니다. 마침내 오늘 새벽(?) 사무엘하 5장에 이르러 다윗이 유다왕을 거쳐 온 이스라엘 장로들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다윗에게 지나온 세월은 생각하면 떠올리기도 싫은 끔찍한 고난의 나날이었지요. 한가하게 양을 치던 천진한 다윗을 찾아와 느닷없이 기름을 부었던 사무엘이 축복의 사자가 아니라 저주의 사자처럼 여겨졌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다음의 대목을 읽다가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삼하5:12). 그는 진짜 알아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에게는 왕이 되는 것, 그게 인생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그의 인생의 목적이 왕이 되는 데 있었다면 그는 훨씬 더 빨리 왕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를 죽이려고 뒤쫓아 오던 사울 왕을 없애버릴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두 번씩이나 주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때를 분별할 줄 알았습니다. 그의 비범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윗은 스스로 무엇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남기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성전을 지을 준비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기 때문에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짓지 못한다”(대상22:8). 들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말씀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대로 따릅니다. 일절 토를 달지 않습니다. 이 대목이야말로 다윗다움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다윗 믿음의 백미이지요.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다윗이 넘어져 큰 실패를 맛봅니다. 다윗의 실패는 내부에서 일어납니다.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것입니다. 다윗은 그 죄를 숨기기 위해 충성스런 부하 우리아를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우리아를 죽이는데 전쟁의 명분을 이용하였고, 요압장군을 동원했습니다. 성경은 그 시기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이긴 시기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블레셋을 항복시키고, 모압 사람들이 다윗의 종이 되었고, 아람과 암몬과 아말렉이 그 앞에서 모두 패했습니다. 다윗의 이름이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그의 이름이 휘날렸습니다.
다윗은 어느새 하나님을 제쳐놓고 왕이 된 것입니다. 왕이 되어 권력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사울왕의 창끝을 피하여 왕이신 하나님을 향해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고난의 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7-8) 하고 노래하던 그 다윗이 아닙니다. 이제 다윗은 결과를 마음대로 조작해 냅니다. 결과만 괜찮으면 과정은 얼마든지 덮어버릴 수 있다는 결과지상주의에 눈이 어두워진 겁니다.
그는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합니다. 이것이 다윗이 겪은 영적 침체와 위기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결과 지상주의에 중독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게 얼마나 큰 죄악인지 느끼지도 못하지요. 과정에 관심을 갖는 이를 찾아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과정입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다윗은 왕이 되려는 인생의 목적을 갖지 않고도 왕이 된 다윗입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가진 그런 다윗입니다. 그랬던 다윗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제쳐놓고 스스로 왕이 되어 왕의 권력에 중독된 모습은 또렷한 거울입니다.
선명하게 비치는 다윗의 거울을 집어 들기가 두렵습니다. 비춰보면 왕이 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흉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도 차마 다윗의 거울을 던져버리지 못하는 것, 그래서 눈을 질끈 감고 조심스레 거울을 들여다보는 손톱만한 믿음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 유약한 믿음으로는 하나님나라의 진정한 일꾼이 되기에는 한없이 뒷심이 딸리지만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