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추어탕

추어탕 한 그릇을 먹으려고 50분을 기다렸습니다. 정동교회 건너편 정동극장 옆 골목에 있는 허름한 한옥집, 남원추어탕에서 점심을 먹은 것이지요. 사진이나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았던 식당 앞에서 길게 줄을 서 기다리던 모습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그냥 갈까 하다가 분위기라는 게 있잖습니까.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전부 밝은 얼굴로 함께 온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그래서 그 대열에 그냥 합류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춥지 않은 날이라 해도 한 시간 가까이 밖에서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봄추위에 장독 깨진다고 은근히 몸속으로 파고드는 찬 기운이 몸을 잔뜩 얼어붙게 만들었지요. 찔끔거리며 한 번에 몇 걸음씩 감질나게 줄어드는 긴 줄을 참아냈더니, 드디어 볼품없이 서있는 좁은 음식점 문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마치 천국 입성을 눈앞에 둔 것처럼 마음이 설렜습니다.

마침내 들어갔습니다. 정말 좁더군요. 그런데 꽉 찼습니다. 이십여 평쯤 되는 실내 공간은 주방을 빼고 안마당이었던 좁은 홀과 손님을 받는 방이 세 개였습니다. 방마다 빼곡히 사람들이 앉아서 밥을 먹고,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 기다리던 사람들이 그곳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질서정연했습니다. 좁은 사이로 종업원들이 능숙하게 다니고요. 감탄을 했지요.

우리 일행은 네 명씩 앉을 수 있는 상이 두 개, 그리고 두 명이 앉는 상이 하나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제일 안쪽으로 자리를 잡고 보니 그 음식점에서 최고로 좋은 자리에 앉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요. 우리가 VIP라고 너스레를 떨며 음식을 기다렸습니다. 음식은 오직 하나 추어탕이었습니다. 주문도 받지 않았습니다. 사람 수대로 컵과 물병, 김치 한 접시, 깍두기처럼 썰어 묻힌 오이나물, 그리고 고추 다진 것, 산초 가루를 먼저 내왔습니다. 조금 더 기다리니 팔팔 끓는 추어탕이 뚝배기에 담겨 나왔습니다.  

얼마나 기다리던 음식입니까. 한 숟가락 입에 넣으니 담백했습니다. 칼칼한 맛이 먹을 만했습니다. 게다가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쌀밥은 입맛을 한층 돋구었지요. ‘맛있다’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를 알겠다며 시키지도 않은 남원 추어탕 헌사를 남발했습니다. 문득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맛없어도 맛있다고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던 여우의 가련함을 떠올리니 따끈하게 입에 붙는 맛있는 추어탕을 먹고 있는 내가 대견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추어탕 한 그릇을 먹으려고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린 것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허기가 지면 대개 사람들이 날카로워 지는데, 음식 먹으려고 기다리던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따스함과 넉넉함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추어탕을 정말 열심히 먹더라고요. 그 모습에서 기다렸던 음식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손맛에 대해 정직하게 반응하는 배고픈 사람들의 호의가 음식점에 가득한 그런 느낌말입니다.

허기진 배를 추어탕 한 그릇으로 채우면서 슬그머니 기도가 나왔습니다. ‘나도 이처럼 진실한 손맛이 배어있는 설교 한 편 밥상에 올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