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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지게 지고 휘청거리던 첫 목회
이광섭  |  ksl61@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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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3월 10일 (목) 00:21:10
최종편집 : 2011년 03월 10일 (목) 00:37:01 [조회수 : 3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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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희망쏘는 목사]

똥지게 지고 휘청거리던 첫 목회

   
▲ 이광섭 목사

동대문지방 평강교회 개척 창립예배에 참석했습니다. 홍파초등학교 건너편 2층 건물에 10여 평쯤 되는 홀을 임대하여 주님의 몸인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평강교회 개척예배를 드리면서 20년 전 첫 목회지를 생각했습니다. 화성군 발안에서 20여리쯤 떨어져 있는 35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 한 가운데 있는 교회였습니다. 개척한지 3년쯤 되는 교회였는데 제가 부임하기 전, 예배처소로 쓰던 가건물이 불이나 다 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불이 나자 30여명쯤 되던 교인 가운데 절반 이상은 옆 마을에 있는 성결교회로 가 버리고 목사님 역시 다른 임지로 떠났습니다. 부임해보니 예배처소가 없어 20평이 채 안되는 주택 마루에 십자가를 걸어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10여명쯤 앉으면 꽉 찰만큼 협소했습니다.

낙심한 교인들에게 새로 온 풋내기 담임전도사가 미더웠겠습니까? 좋다, 싫다 말이 없더군요. 며칠을 그렇게 지내는 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이 꽉 찬 것입니다. 난감하더군요. 화장실을 치워야 하는데 도와줄 사람은 없고, 생전 해봤어야지요. 고민하다가 옆집에서 똥지게와 바가지를 빌렸습니다. 긴 장대 끝에 철모를 달아 만든 바가지로 조심스레 떠서 똥통을 채웠습니다. 똥통을 짊어지고 걸어가는데 중심 잡는 게 기술이었습니다. 넘치지 않도록 발걸음에 박자를 맞추어야 했습니다. 몇 번 하니까 요령이 생겼습니다. 할 만하다 싶더군요. 하지만, 냄새가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닦고 옷을 갈아입어도 몸에서 똥 냄새가 가시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서 점차 첫 목회지가 눈에 익고 교인들과도 소통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와 학생들이 제법 많이 모였습니다. 큰 기쁨이었지요. 동네 아이들은 모두 다 교회로 모였으니까요. 토요일과 주일은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빴습니다. 주보를 일일이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학생주보와 어린이 주보, 어른 주보까지..중노동이었습니다. 게다가 읍내로 나가 복사를 해 와야 했습니다. 중고등부 토요집회와 특별활동, 새벽기도회가 끝나면 교회 마당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 주일 어린이 예배, 그리고 주일 공동예배까지 정신없이 지났습니다. 그렇다고 일주일 내내 그렇게 바빴던 것은 아닙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첫 목회를 하면서 두 가지만 잘하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첫째는 교인들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과 무엇이든 함께하자. 두 번째는 어린이와 학생들하고 함께 잘 놀아주자.’ 그래서 마을 일을 내 일처럼 여기고 함께 참여했습니다. 동네 부역은 물론이고, 벼를 베면 논에 나가 온종일 낫을 들고 함께 벼를 베었습니다. 마을에 젖소 키우는 집이 많았는데 어떤 날은 송아지 낳을 때 초산이라 송아지가 나오지 않아 송아지를 줄로 매어 당기기도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목회라고 생각했지요. 학생들과 참 많이 놀았습니다. 문화 공연이 있으면 수원으로, 서울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구요. 저녁이면 교회에 모여 함께 공부를 하게 했습니다. 그 해 여름 성경학교는 온 동네 잔치가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참 좋은 전도사가 왔다고 이야기 할 때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교인들의 모습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 게 속상했습니다. 물론 교인들도 늘어나지 않았지요. 마음에 낙심이 되고 은근히 원망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3년을 지내다가 첫 목회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의 음성이 들리더군요. ‘네가 했던 첫 목회는 내 목회가 아니라 네 목회였다.’ 큰 깨달음이었지요. 생각해보니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저 쓰임 받는 게 감사할 따름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 중심적’인 전도사의 풋내기 열심을 참아주었던 첫 목회지, 발안의 영광교회 성도들이 생각할수록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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