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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순종의 종으로 목회자의 본이 된 김창식·김기범제1회 감리교신학대학교 개교기념 아펜젤러 학술대회
“한국 최초 목사안수 120주년 기념과 미래 목자상”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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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9월 06일 (월) 18:28:32
최종편집 : 2021년 09월 14일 (화) 10:46:29 [조회수 :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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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한국기독교 최초로 신학교육을 시작한 감리교신학대학교(총장 이후정)가 개교 134주년을 맞아 감신대 웨슬리채플 제[1세미나실에서 제1회 아펜젤러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감신대는 한국인 최초 김창식과 김기범 목사 안수 120주년을 기념하고, 오늘날 한국교회 목사의 정체성과 미래 목자상을 성찰하는 취지에서 이번 학술대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또한 올해는 한국 최초의 신학전문지 ‘신학월호’(1900년 창간)에 최병헌의 ‘죄의 도리’가 한국인 최초의 신학논문으로 게재됨으로 한국기독교 신학이 시작된 120주년이기도 하다. 신학월보는 초기 목회자 양성과 신학교육에 주요한 교재로도 사용되었다. 이 땅에 ‘자유와 빛’을 전하고자 소망했던 아펜젤러의 꿈은 한국인 목사 안수를 통해 한국교회의 부흥을 이루는 중요 전기가 되었고, 한국기독교 초기 신학교육과 목회자 양성은 교회와 더불어 민족을 섬기는 지도자 양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소요한 교수의 사회로 1부 에배, 2부 주제강연 순으로 진행됐다. 주제강연자로 이덕주 교수(전 감신대)와 서영석 교수(협성대)가 “1901년 한국인 최초 김창식과 김기범 목사 안수의 의미”에 대해,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가 “목사란 누구인가?” “뉴노멀시대의 목자상 전망”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유튜브로 생중계되었으며 다수의 언론사가 현장에서 취재경쟁을 벌였다.

 

앞서 개회예배에서 이후정 총장은 “민족의 등불을 밝힌 분”이란 설교를 통해 김창식과 김기범 두 목사안수는 한국인에 의한 자립 교회의 시작과 부흥의 전기가 된 사건이며, 동시에 민족적 위기에서 백성을 섬기는 종으로서 목회자의 본이 되었다고 전했다.

이후정 총장은 “김창식 김기범 두 목사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도 그분들에게 비추었던 그리스도의 빛을 만나고 순교의 길을 걸어갔던 그 분들의 삶을 따라가 이 시대 회개와 부흥의 운동과 영적 각성이 일어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1부 강연은 ‘한국인 최조 목사안수의 의미’를 살펴보는 시간이다.

1885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의 선교로 시작된 한국기독교 선교는 1901년 5월, 16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놀라운 부흥과 함께 선교지 토착인 목사를 배출하는 역사를 이뤘다. 이는 먼저 선교가 시작된 중국 및 일본과 비교하여 훨씬 빠르고 경이로운 사건이다. 전용 캠퍼스와 교육시스템을 갖춘 신학대학교가 설립되기 전 신학교육은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어떤 절차와 요건을 통해 목사 안수가 이뤄졌는지? 그리고 한국기독교 초기에 한국인 목사 배출이 이뤄진 배경과 원동력은 무엇이며 김창식과 김기범 목사 안수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와 초기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전 감신대 한국교회사 교수인 이덕주 박사 그리고 협성대 한국교회사 서영석 교수가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이덕주 박사는 한국선교 초기에 토착 전도자들에 대한 신학교육과 목사 안수가 이뤄진 배경에는 교회의 양적 부흥과 성장에 비해 감리교 선교사회의 부족한 인력난과 이에 대한 적극적 대처 방안의 일환으로 보았다. 이 같은 배경에서 1887년 가을 배재학당 학생들에게 방과후 성경과 교리공부를 시킨 ‘신학부’(theological department) 개설로 감리교신학대학가 출발했다. 1893년부터는 연회 안에 정규과정을 개설하여 농한기에 전도자 양성수업을 하였고, 이것이 발전하여 ‘신학반’ 혹은 ‘신학회’로 자리 잡았다. 신학회 수업을 받은 전도인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성례 집행 권한은 없지만 설교와 교인 치리를 하는 ‘본처 전도인’(local preacher)과 목회에 전념하는 '순행 전도사'(intinerant preacher)가 되었다. 그리고 목사안수는 기능에 따라 성찬례를 집전 할 수 없는 ‘집사목사’(deacon)와 성찬례를 집전할 수 있는 ‘장로목사’(elder)로 구분했다. 이런 장정규칙에 따라 1901년 첫 목사안수를 받은 김창식과 김기범은 ‘본처 집사목사’(local deacon)였다. 이 교수는 한국인 최초 목사안수의 신학적. 역사적 의미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한국 토착교회 목회자의 지도력에 대한 확증을 의미한다. 둘째로 김창식과 김기범 두 목사는 직제상 ‘본처 전도사’였지만 감독이나 감리사의 파송을 받아 임지를 옮기면서 사역한 감리교회의 전형적인 ‘순행 목회자’의 본이 되었다. 셋째는 두 목사 안수를 계기로 한국 개신교회 목사 안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원문보기: 한국인 최초 목사 김창식과 김기범 목사 안수와 그 역사적 의미 -이덕주

서영석 박사는 김창식과 김기범의 목회와 선교의 특징은 세 가지이며, 첫째로 열정적인 복음선교자로 보았다. 김창식은 25년간 목회하면서 “이사한 수가 열 번이나 되고 교회 없는 곳에 들어가 새로 설립한 교회가 48처”에 달했다고 했다. 김기범은 “다양한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둔 인물”이며 “열정으로 영혼 전도하며 교회를 부흥 발전시켰고” “웹웟청년회와 영화남학생과 함께 국권회복에 항일 독립운동에서 앞장섰던 목사”였다는 것이다. 둘째로 선교사와 교인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인증을 받은 검증된 전도자 및 지도자로서의 활동했다. 셋째로 고난과 박해를 이겨낸 용기 있는 인물이다. 김창식은 1894년 평양선교 개척과정에서 심한 매질과 배교를 강요당함에도 신앙을 지켰고, 이어진 청일 전쟁 중에도 피난대신 남아서 이웃을 돌보고 교회를 지킴으로 홀의 부인으로부터 “조선의 바울‘이란 칭송을 받았다. 김창식과 김기범은 평생동안 산골과 농촌에 있는 성도들을 방문하고 설교하면서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이로 인해 고난과 박해를 받았다고 했다.

원문보기: 한국 최초 김창식, 김기범 목사 안수의 의미 - 서영석

   
▲ 시계방향으로 이덕주 교수, 서영석 교수, 지형은 목사, 유기성 목사

2부 강연은 ‘목사란 누구인가?’ 주제로 목사의 정체성과 뉴노멀 시대 목자상을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세계교회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놀라운 부흥을 경험한 한국교회는 수많은 믿음의 선인들의 헌신이 밑거름이 되었다. 개화, 일제식민, 한국전쟁과 남북분단,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 등 격동과 질곡의 압축 근현대사와 함께 한 한국교회사의 중심에는 말씀의 역사를 자신의 삶으로 전한 목회자가 있음을 기억했다. 더불어 양적 성장이 정체된 20여년을 보내며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한 정체성 위기의 중심부에도 목회자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목사란 누가인가?’, 성경에서는 목사의 정체성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시대의 변화 속에서 특히 오늘날 같은 초갈등사회와 새로운 일상속에서 변하지 않은 목회자의 본질과 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와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가 강연을 통해 성경이 말씀하는 목회자의 정체성과 오늘과 내일의 목회자 상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공유했다.

‘목사란 누구인가?’로 강연한 유기성 목사는 “목사는 신자들의 만인제사장적 역할을 북돋워주고 유지시켜 주기 위해 세움 받은 것”이며, 먼저는 “예수님을 잘 믿는 성도”여야 한다고 제시했다. 목사의 사역과 역할로 “목사는 말로만 설교하지 말고 말씀을 살아내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목사의 부름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로의 부름”이라 말했다. 끝으로 “목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요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다”라며 목회자의 정체성과 삶에 대한 성경적인 조명과 예리한 성찰의 메시지를 전했다.

원문보기: 목사란 누구인가 유기성

‘뉴노멀 시대 목회자상’을 성찰한 지형은 목사는 먼저 목사 직무에 대한 성경의 근거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장 14절) 이 성육신 사건에 근거하여, 말씀이 삶이 되게 하는 일이 목사 직무의 심장으로 제시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목사는 ‘세계 자체가 목회의 대상’이라는 이 지평을 잃어버렸다고는 것이다. 지목사는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동떨어진 섬처럼 고립돼 있는 현실이 코로나 상황에서 그대로 드러났다며 초기의 한국 교회는 이 땅 전체와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 역사적인 흐름에서 분리돼 있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자기 집단 안에 들어온 사람들만을 위한 닫힌 제도가 되었다고 했다. 지 목사는 잃어버린 지평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서 잃어버린 근원으로서 기독교 신앙의 시원(始原)인 성경으로부터 멀어진 현실을 안타깝게 지적했다. 한국교회는 일제 강점기 이후 정치 사회적으로 보수나 진보에 끌려가는 종속 변수가 되어 성경에 굳건히 선 자신의 땅을 갖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국 교회와 그 중심에 서 있는 “목사직이 현재의 당혹스러운 상황을 헤쳐 나가면서 미래를 열어가는 길은 잃어버린 지평과 잃어버린 근원을 되찾는 것”으로 ‘오래된 새로운 땅’의 회복을 제시했다. 뉴노멀 시대 목사는 ‘항상 개혁되는 교회’(ecclesia semper reformanda)를 중심에 품고 목사의 직무에 헌신하기를 요청했다.

원문보기: 사란 누구인가? - 뉴노멀 시대의 목사 전망 - 지형은

UCLA 한국기독교학 옥성득 교수는 1901년 한국인 최조 목사 안수는 “선교사 교회에서 한국인 교회로 자립 자전 자치하는 첫 걸음이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특히 평양박해사건 때 사형의 위기에도 믿음을 지킨 김창식 목사의 예는 “강한 믿음, 순회하는 전도 열정, 고난을 견디고 가난과 질병과 더불어 사는 영성이 그의 특징이며. 목회 현장에서 검증되고 신도들의 존경을 받는 자들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했다. 

 

   
 
   
▲ 사회: 소요한 교수
   
▲ 설교
   
▲ 이덕주 교수(전 감신대)
: 이후정 총장
   
 
   
 
   
▲ 서영석 교수(협성대)
   
▲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유목사는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 지형은 목사(상 성락성결교회)
   
 

 

이덕주 교수의 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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