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
한국 최초 김창식, 김기범 목사 안수의 의미
서영석  |  교수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1년 09월 06일 (월) 21:28:46 [조회수 : 59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한국 최초 김창식, 김기범 목사 안수의 의미

서영석 박사(협성대학교 한국교회사 교수)

 

I. 들어가는 말

 1901년 5월 14일 오후 2시, 김기범과 김창식은 서울 상동교회에서 열린 제17회 미국감리회 조선선교연회에서 무어 감독(Bishop D. H. Moore)의 주례로 스크랜턴, 존스 등 서양 목사 보좌를 받아 안수(준회원 목사)를 받았다.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와 스크랜턴이 내한하여 활동한지 17년 만에 한국인 교역자를 세운 것이다. 김창식, 김기범은 초기에 선교사들과 함께 헌신적으로 전도하며 한국에 기독교를 세우기 위해 부름받은 특별한 일꾼들이었다. 교육선교에 힘쓴 아펜젤러 선교사는 현지인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배재학당에 전도인 양성반을 만들어 1887년 한국 최초의 신학 교육을 실시했다. 이어 존스 선교사는 1893년 별도의 ‘신학반’을 조직했고, 1899년에는 ‘신학회’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진행해 한국인 김창식, 김기범목사가 한국교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그리고 이분들이 최초로 한인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한다.

 

II. 김창식, 김기범 목사의 생애와 활동

 

1. 김창식목사의 생애와 활동

- 김창식(1857~1929.1.9)은 1857년 황해도 수안군 성동면 생금리에서 출생
-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며 농사일을 하다가 21세 되던 해 고향을 떠나 전국을 떠돌며 머슴, 마부, 지게꾼, 막노동꾼 등을 전전함
- 29세 되던 1886년 박노덕과 결혼을 하면서 비로소 정착생활로 접어든다. 
- 미 북감리교 선교사 올링거(F. Ohlinger 1887년 말 내한)의 집에 잡부로 취직
- 올링거 목사 내외의 인격과 생활에 감화를 받으며 오히려 그리스도교에 마음을 열게 됨
- 올링거, 아펜젤러 선교사로부터 마태복음을 비롯한 4복음서와 ‘셩경초등문답’ 등의 교리서를 배움
- 1890년경 세례 받고 1892년 봄, 미국 감리회 조선선교회에서 정식으로 임명한 전도인이 됨
- 1893년 올링거가 미국으로 돌아가자, 미국 감리교 의료선교사 홀(W.J. Hall 1891년 12월 내한)의 개인비서 겸 조사가 되어 평양으로 감
- 그해 8월 김창식은 홀과 함께 평양지방에 정식으로 파송되어 순회전도를 시작하였다. 
- 1894년 5월 수구파였던 평양 관찰사 민병석이 평양에 기독교가 확산되는 것을 막고자 서양선교사를 돕던 김창식을 비롯한 교인 8명과 장로교 한석진 조사가 평양관아로 압송하여 배교를 강요하며 고문을 당함
- 1894년 7월에 청일전쟁이 일어나 평양이 전쟁터가 되었을 때 홀 선교사와 김창식은 남아서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과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봄
- 그해 12월 홀 목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평양선교를 도맡아 하는 등, 위기상황에도 변함없이 선교활동을 하여, 전쟁이 끝난 후 오히려 교회는 크게 부흥함 
- 1896년부터는 노블과 함께 평양이북 지역의 감리교회를 이끌며 그해부터 시작된 신학회에 들어가 4년 과정의 정식 목회자 수업을 받음
- 이후 ‘순행(巡行) 사역자’로 서북지방의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리스도의 교리를 전파하는 ‘길 위의 목사’, ‘민중 전도인’으로 알려짐
- 1901년 5월 14일 서울 상동교회에서 개최된 제17회 미국감리회 조선선교연회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김기범과 함께 집사 목사 안수를 받음
- 1904년에는 한국인 최초의 지방감리사로 임명되어 북한지역 순행목사로 5년간 순회전도에 진력함
 - 1918년 경기도들 1919년 안산구역, 1920년 수원 서지방에서 각각 순행목사로 일했다. 
-  1921년부터 1924년 67세로 정년 은퇴하기까지는 황해도 해주지방 순행목사로 활약했다. 
- 1901년 한국인 최초의 목사가 된 후 25년을 전국을 돌며 125개 교회를 개척하였고 48개 예배당을 건축함
- 마지막 순간까지 ‘낮은 자’의 자세를 견지하며 선교사들로부터 ‘조선의 바울’이라는 칭호를 받음
- 1929년 소천함 

2. 김기범 목사의 생애와 활동

- 1869년 황해도 해룡면 금천리에서 출생
- 1889년 보부상과 함께 제물포를 찾은 김기범은 이명숙, 장경화, 복정채 등과 함께 인천내리교회의 초대 교인으로 본격적인 신앙인의 길을 택함.
- 존스목사(선교사)를 도와 엡웟청년회를 만들고, 학문국장으로 교육을 담당함
- 내리교회전도사, 신학회 전도사과정 이수, 원산으로 파송받음
- 1901년 5월 김창식목사와 더불어 목사 안수를 받음
- 1901년 연안교회 담임
- 1903년 내리교회의 담임목사가 됨
- 존스목사를 도와 영화학교 발전을 위해 힘씀
- 내리교회 엡웟청년회가 항일운동에도 가담함. 우국충정(憂國衷情)의 정신으로 목회하며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함
- 1920년 소천

 

III. 김창식, 김기범의 목회와 선교의 특징

 

1. 열정적인 복음선교

     “동으로 이십리 되는 담방리촌에 다섯 번 가서 전하였으며 서로 이십리 되는 영종섬에 두 번 가서     전하였으며 동북간으로 사십리 되는 부평, 김포 등지에 네번 가서 전하였으며 북으로 일백사십리 되     는 강화 등지에 다섯 번 가서 전하였는데 외처에 전도하려 십륙차 내왕에 전도말을 들은 사람은 육배     육십삼인이오니...”
(1898년 9월 7일자 “대한그리스도인회보”)

 김기범 목사는 “다양한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둔 인물”이며 “열정으로 영혼 전도하며 교회를 부흥 발전시켰고” “웹웟청년회와 영화남학생과 함께 국권회복에 항일 독립운동에서 앞장섰던 목사”였다. 


2. 검증된 전도자 및 지도자로서의 활동- 유능한 인재였음

김창식, 김기범 목사는 선교사와 교인들에게도 인정받는 전도자 및 일꾼으로서 한인 성도들을 이끌어갈 지도력을 검증받은 인물이었다. 이들은 복음을 듣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는데 


3. 고난과 박해를 이겨낸 용기있는 인물

 1894년 5월 수구파였던 평양 관찰사 민병석이 평양에 기독교가 확산되는 것을 막고자 서양선교사를 돕던 김창식, 한석진 등을 평양관아로 압송하여 배교를 강요하며 고문을 하였다. 그러나 김창식은 “나는 기독교가 옳다는 사실을 안 이상 기독교 신자로 살 것이며 또 복음을 전하겠다.”고 말하여 계속해서 혹독하게 고문을 받고 죽을 지경에 처했다. 이때 선교사들의 요청으로 미국과 영국 총영사가 조정에 강력하게 항의를 하여 마침내 어명에 의하여 관가에서 이틀 만에 풀려나게 되었다. 
 이들은 복음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진리의 말씀임을 확신하고 용감하게 한국 사회 속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이후에도 김창식과 김기범은 평생동안 산골과 농촌에 있는 성도들을 방문하고 설교하면서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이로 인해 고난과 박해를 받았다.

 

IV. 한국 최초의 목사 안수의 의미

 

1. 자립적이고 토착적인 리더십 형성에 기여

    “이번 연환회의 제일 긴요한 일은 대한 전도사 중에 김창식과 김기범 양씨를 선정하여 성품을 주심     이니라. 대개 우리 대한예수 각명교회 중 전도하는 선생이 많되 그중에 목사품 있어 세례줄 권세와      혼례행할 권세와 성만찬 베풀 권세는 다만 서양목사에게만 있더니 지금부터 대한 형제도 또한 이 권     세중에 세례와 혼례행함을 서양목사와 동행할 수 있느니라...”
(1901년 6월호 신학월보에 “한국인 목사의 의의”를 설명함)


2. 한국인의 기독교복음 수용의 전반적인 확대를 의미함

 한국인 목사가 안수받아 활동함을 계기로 한국 교계에 한인 지도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한국의 기독교 선교에 상당한 활성화가 나타남


3. 김창식, 김기범 목사의 안수를 계기로 한국인들이 선교의 주체로 나서게 됨

 한국 감리교목사 1호인 김창식, 김기범 목사의 안수로 인해 이후 한국인 신자들에게서 보다 더 헌신적인 전도자나 목회자가 배출 되었다.
 이들의 안수 후 계속해서 신학교육을 받은 한국인 목회자들이 배출 되었다. 그리하여 김창식, 김기범 목사의 안수의 의미는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들이 속속 출현되는 계기를 열게 되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민족운동과 계몽운동을 주도하는 인물이었음

 

V. 나가는 말


 
 120년 전 한국 감리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초기 선배 목사님을 공부하면서 21세기에 부름받아 신학 공부를 하는 우리에게 어두움의 시절 복음을 밝히는 등불,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상기해야한다. 우리는 두 목사님이 복음을 위해 전 생애를 바쳤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 진정한 사도적 역할을 하였음을 기억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잊지 말고 세상으로 달려 나가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8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