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산편지
나는 가시거리가 아주 먼 별에서 왔다.

첫 새벽 3시경에 가시거리가 아주 먼 별 하나가 사뭇 떨고 있다.
그 별을 보는 순간에 나는 나도 모르게, "나는 가시거리가 아주 먼 저 별에서 왔다" 고 소리내 혼자 말하고 말았다.

저 별에서 나한테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
'광년(光年)'은 천체와 천체사이의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인데 1광년은 빛이 초속 30만km의 속도로 1년동 나아가는 거리이다. 계산하면 9조 4670억 7782ㅇ만km이다. 이 거리를 지구상에서 한번 재본다면 ? 아마 재보다가 지쳐서 지구촌을 떠나게 되겠지?

그 별은 시방 내가 머물고 있는 롯지(lodge:트래커들을 위한 민미박집)마당의 동남쪽 하늘 위에서 밝게 빛나며 심하게 떨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대로라면 저렇게 심하게 떨고 있는 별은 이미 소멸된 것이데, 가시거리가 먼 저 별에서 별빛이 몇 광년 걸려 나한테까지 오느라고 아직 저기서 저렇게 떨며 빛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게 아닐까. 그 순간 내 온 몸과 마음이 그리고 영혼이 심하게 떨려왔다.
아아, 이 새벽은 내 생애 가운데 가장 엄숙한 시간이다.

▲ 네팔 히말 랑탕 트레킹에서 ⓒ 사진제공 장재환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을 하거나 다투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이 되어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하느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십시오. (필립비 2장 14-15절,공동번역)

평생 빛을 품고 산다고 자부해온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깊고 아름다운 고장을 순례하면서 아주 하찮은 일로 심하게 화를 냈고, 그 화를 미처 풀지 못하고 피로에 몰려 잠자리에 들었다가 첫새벽에 일어나 밖에 나왔더니 그 별이 그렇게 심하게 오돌오돌 떨면서 자기의 빛을 내게 정면으로 비쳐 주었다.
그 순간 나는 심하게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나는 그 별빛을 깊이 들이마셨고 이어 숨을 힘껏 내쉬면서 내속의 화 기운을 힘껏 내 몰았다. 호흡(呼吸. 숨을 내쉬고 들이 마심)을 한 것이 아니라 흡호(吸呼.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쉼)를 한 것이다.
이 순간,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짐 포리스트는 탁닛한이 미국에서 순회강연을 할 때 있었던 사건 하나를 기억하고 있다. 그가 미국 사람들에게 베트남에서 벌어지는 살생을 끝내야 할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는데 청중 가운데서 성이 잔뜩 난 사람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그렇게도 베트남 인민을 걱정한다면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요?"

틱닛한은 똑같이 화를 내며 대답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한참 동안 말을 않고 있다가, 자기가 여기 있는 까닭은 이곳에 전쟁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다음, 서둘러 강당을 떠났다. 포리스트는 그의 뒤를 따라가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았다. 마치 깊은 물속에 들어갔다가 겨우 수면 위로 헤엄쳐 올라온 사람처럼 헐떡거리며 숨을 쉬고 있었다.

그는 성난 청중의 말을 듣고 너무나도 화가 났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화를 내며 맞받아치는 대신에 다른 장소로 가서 심호흡(深呼吸)을 했다. 깊은 호흡으로 자신을 회복할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내 눈에는 그 사건이야말로 틱낫한의 인간성, 그의 취약함, 그리고 무지와 증오로 말미암은 폭력 앞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로보트H. 킹지음, 이현주옮김(토머스 머튼과 팃낫한)

나는 이 글을 (이현주의 생각나눔 - 오늘하루 - 삼인)에서 베꼈다. 이 책은 내가 히말라야 순례길을 가기 직전에 이 목사가 보내주서 대강대강 뒤적거리다가 이 글이 눈에 뜨려서 감동했던 것이다. 자기가 번역한 글을 자기 글에 인용할 때는 스스로 깊이 감동했을 터다. 이 책을 순례길에서 읽을려고 가방에 넣었다가 이 이야기만 머리에 넣고가서 살아보자고 했으나 깜빡깜빡 잊고 여러 번 화를 내고 말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엄숙한 시간인 히말라야 순례 길에 아주 하찮은 일로 심하게 화를 내고 자기 화에 취해서 어설프게 잠들었다가 첫새벽에 문득 잠에서 깨어 밖에 나갔더니, 나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가시거리가 아주 먼 별 하나를 내게 비춰 주셨다. 그 순간 나는 얼떨결에 그 별빛을 드리마셨고, 그 기운으로 이내 숨을 내쉬면서 내 안의 화 기운을 내몰았다.
아아, 그 순간 온 하늘의 별들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고 내 심성과 영성은 착해졌다.
히말라야 순례길은 바로 이런 길이다.

이른 아침에 그 롯지를 떠나면서 나는 그 롯지 주인에세기 악수를 청했고, 안 주인에게는 초콜릿 몇 개를 건네면서 랑탕 히말에 다시 트레킹을 오게 되면 이 집으로 오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들의 얼굴이 아주 환해졌다.

히말라야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서둘러 히말라야 순례길을 복기(復記)해 보았다.
(복기/ 바둑에서, 한번 두고 나 바둑의 판국을 돌이켜 보기위해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 봄. 달리 용어가 생각나지 않아, 내가 걸은 히말라야 순례길을 다시 살펴보는 일에 이 말을 써 본다)
그런데 이 별빛을 다시 만난 것은 히말라야에서 돌아돈 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좀 늦긴 했지만 이 별빛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고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인생 순례 길도 찬찬히 복기해 보면 가장 형편없고 아주 힘들었던 순간에 비춰 온, 가시거리 아주 먼 별빛을 본 자여. 그 별빛 들이 마시고 자기의 부끄러운 순간을 내쉰 행보는 이제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아름다운 발자취가 되어 오돌오돌 떨면서 빛을 내는도다. / 나는 가시거리가 아주 먼 별에서 왔다!

▲ 네팔 히말 랑탕 트레킹에서 ⓒ사진 제공  장재환

▲ 네팔 히말 랑탕 트레킹에서 ⓒ 사진제공 장재환

2007년 안나푸르나 트레킹에서 ⓒ  이필완

*최완택 목사는 11월10일-20일에 민들레식구 3명과 히말라야 랑탕지역을 트레킹하고 돌아왔다. 지난11월말 인도로 출발한 당당뉴스 운영자 아들 진형이도 산돌학교 3학년생들을 인솔하여 2달여 간의 인도지역 이동수업 말미에 네팔 랑탕 트레킹을 하고 돌아온다....(운영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