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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고 높은 히말라야 설산들은 무어라고 얘기했을까?당당뉴스 운영자, 장장 19일간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ABC 트래킹을 다녀오다!
이필완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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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2월 25일 (일) 00:00:00 [조회수 : 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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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뉴스 운영자인 필자는 작년 12월 5일부터 4개월간 대관령 산마을에서의 성찰과 요양의 시간을 계획했었다. 그러다 대관령에서 두달을 지내고나서 민들레교회 최완택목사의 권유와 집사람과 아들들의 강권으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19일 트래킹에 참가하고 지난 23일에 돌아왔다.

원래의 비용 예정은 비행기값 100만원 등 185만원이었으나 대단한 가이드 역할을 한 최목사의 노력으로 163만원이 소요되었다. 비용은 산돌학교 교사로 일하는 큰아들이 생활비에 보태쓰라고 준 200만원이 바탕이었고 아내는 주저없이 밀어주었다. 남은 돈은 현지 쇼핑에 일부 쓰여졌다.

   
▲ 3,200계단의 울레리 등반길에서 숨을 몰아쉬며, 첨으로 마차푸레리의 생선꼬리가 보였다. 히말라야 겨울철 트래킹엔 간간히나마 한국사람들이 특히 홀로나 둘끼리의 대학생들이 제일 많았다.
일행은 민들레교회 최완택목사와 큰아들 최의명(감신대학원1년)과 필자 3사람 그리고 현지에서 구한 네팔인 셀파 포타 2사람들 모두 5사람이었다. 2월 5일 서울을 출발하여 태국 방콕에서 10시간 기다려 갈아탄 비행기로 네팔 카투만두 공항에 도착하여 한국인 민박집에서 1박하고 다음날 네팔 국내선 비행기로 포카라에 도착하여 곧장 트래킹 출발지인 나야풀에 도착하였다.

   
▲ 역시 울레리 계단길에서 네팔 고산인들을 위한 교회를 발견하였다. 문은 걸려 있었으나 2,500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 살아가는 네팔사람들의 욕심없는 평화스런 모습에서 많은 느낌을 받았는 데 여기에도 교회가 있었다.
그리고는 종내 12일간을 2500m 이상의 고지대를 걷고 또 걸었다. 첫날 오른 울레리는 3,200 돌계단이란다. 보통사람은 2시간 반에 오를 길을 우리는 다섯시간을 걸려 겨우 올랐다. 별수없이 중도에 머물러 하룻밤을 지내고 현지식인 달밧으로 맛있게 먹고 지냈다. 다음날 비가 멈추기를 기다려 밀림지대를 지나 겨우 고레파니에 이틀만에 도착하니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마차프레리의 설산 봉우리들이 장엄하게 펼쳐졌다.

   
▲ 이틀만에 도착한 고레파니에서 처음 맞닥뜨린 히말라야 설산들... 안나푸르나 사우스, 마차프레리...
다음날 새벽 5시, 후렛쉬에 의지하여 푼힐전망대(3512m)에 오르니 일출과 함께 히말라야의 산맥들이 춤을 추었다. 한 두어시간 바라보고 또바라보고 산을 내려와 밥해먹고 출발, 겨우 겨우 바란티에 도착하니 이미 어둑어둑, 또다시 티베티안 처녀들이 운영하는 롯지에 머물르고 밤새 함께 노래하며 즐기다가 취침.

   
▲ 3,210m 푼힐전망대에서
   
▲ 푼힐전망대에서 내려오다가 셀프타이머로...
다음날의 일정도 역시 slow, sliow였다. 고레파니에 도착해 숨돌리고 점심먹으니 억수같이 눈이 내려 출발 포기 다시 머무르고, 다음 날 아침 여길 지나치는 사람은 전혀 볼 길 없는 안나푸르나 사우스 등의 설산에 취하다가 뒤늦게 출발하여 9시간이나 오르고 내리고 하여 밤늦게 촘롱의 그럴듯한 롯지에 들었으나 이미 히말라야 60년만의 대폭설로 우리가 가고자한 목표인 마차프레리 mbc 베이스캠프와 안나푸르나 abc 베이스캠프의 길이 눈사태로 막혀 버렸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 반단티의 티베티안 처녀들이 운영하는 롯지에서 맞은 주일아침예배
별수없이 일행은 촘롱에 사흘을 머므르면서 원래의 계획을 수정하였으나 젊은 최의명군은 한국대학생 팀을 따라 이틀길을 더 나아가기로 하고 최목사님과 필자는 촘롱에서 기다리면서 주변 설산을 바라보며 오르내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틀을 최의명군을 기다렸다. 이때 쯤 필자의 무릎은 이미 온전치 못해 꼼짝할수도 없었다.

   
▲ 밀림지대, 여름 몬순기에는 거머리들의 등쌀로 등반이 괴롭단다. 보통 일,이백년 묵은 고목들로 가득찼다.
   
▲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히말라야 60년만의 폭설이란다. 많은 나무들이 쓰러지거나 뿌러졌다. 미리 준비해간 아이젠과 스패츠가 큰 역할을 했다.
   
▲ 타타파니에서 출발을 앞두고 안나푸르나 사우스를 배경으로...
촘롱에서 쉬면서 부어오르는 무릎 관절을 소염제와 파스로 달래면서 10시간이살 내리는 폭설을 바라보며 앞서 나아간 최군을 걱정하며 창가를 떠나지 못하고 기다렸다. 결국은 포터 2명을 산으로 올려보내고 나서도 10시간이나 지나서야 완전히 지친 모습으로 도반까지 나아갔던 그들 최군 일행이 무사히 돌아왔다.
   
▲ 촘롱 롯지에서의 멋있는 아침식사, 필자는 주로 밀크커피 한잔과 티베티안 빵을 즐겼다.
   
▲ 촘롱에서 바라본 왼쪽의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신의 땅이라 일컫어지는 마차프레리의 봉우리, 마차프레리는 신성한 봉우리로 여겨져 아직 정상을 밟은 사람이 없으며 지금도 등반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최고 정상의 에베레스트보다 마차프레리가 네팔인들에게는 더 귀하게 여겨진다.

   
▲ "페마와 나와" 네팔인 셀파 포터의 이름들이다. 이들이 지고 가는 짐의 무게는 20kg을 웃돌았다. 이마로 지고가는 그들의 모습을 흉내내었다. 필자의 경우 10m를 지고가기가 쉽지 않았다. 트래킹 내내 이들의 활약은 대단하였다. 약간의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 쓰는 데 의사소통에 별 지장이 없었다.
   
▲ 길가다 만난 네팔의 고산족 할머니, 종내 같이 걷길 원했다.
   
▲ 길에서 만난 네팔리 아이들, 저 아래로 우리 일행의 짐을 대신 지고 가는 두명의 포터가 보인다.
   
▲ 하산길에서 만난 어느 네팔리 롯지 주인과의 기념사진. 영어가 능통한 이 네팔리는 사진을 꼭 보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젠 하산 길이다. 하루 종내 8시간 푹푹 빠지는 눈길을 오르내리면서 간드룩에 도착, 샤워할 수 있는 롯지에 닿을 수 있었고 여기에서 처음으로 집에 전화를 할 수 있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아주 조그만 민속박물관을 돌아보고 down을 거듭하여 내려왔으나 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야 별수없이 우리는 시우리바자에서 다시 일박하고 다음 날 출발지인 나야풀에 도착하여 곧장 택시로 포카라에 도착, 처음으로 값비싼 2급호텔에 여장 풀고 다음날 포카라 호수에서 보트타고 호수 건너 파고다템플에 올라 다시 장업한 히말라야를 바라보았다.

   
▲ 마차푸레리를 디지탈 줌으로 당겨보았다.
   
▲ 거의 산을 다내려와 하산 길, 마지막 보이는 설산을 배경으로...
그렇게 이틀을 포카라에서 돌아보며 쉬며 쇼핑하며 지낸 후 다시 네팔 국내선을 타고 카투만두에 돌아와 히말라야 320km를 한눈에 조망한다는 나갈곳에 가서 일박하였으나 구름낀 날씨로 처음으로 히말라야 조망에 실패하고 시골버스 타고 박타풀 등을 구경하고 다음날도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구경하고 타멜거리에서 쇼핑을 한 후 방콕행 비행기를 타고 귀경, 방콕에서 5시간 기다려 서울행 비행기로 19일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 포카라 호수에서 보트타고 건너면서... 배 젓는 네팔리 청년은 끊임없이 네팔민요를 불러주었다.
   
▲ 포카라공항에서, 설산을 배경으로...
목회를 그만 둔지 2년을 넘어서며, 당당뉴스 편집으로 눈코뜰새 없었던 1년반을 지나면서 자신을 요양하며 성철코자 했던 대관령 산마을에서의 생활이 뜻밖의 히말라야 트래킹으로  이어져 어느덧 3개월이 되었다. 잠시 며칠동안 서울에서 지내다 목요일 쯤 다시 대관령으로 가 20여일 지내며 그곳 생활을 정리하고 3월말에 서울로 돌아와 다시 당당뉴스의 새로운 운영과 발전을 위해 열심히 뛰어야겠다.

   
▲ 비행기에서 바라 본 히말라야의 일부, 가장 높은 부분이 아마 에베레스트였을까?
기회가 나면 히말라야 이야기를 더 써볼 요량이나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저 가슴에 깊이 묻어두고 하나님과 더 깊은 대화를 위해 아껴보련다. 이번 트래킹을 함께하며 여러모로 애써주신 최완택목사님과 최의명군에게 감사드린다. 물론 “페마, 나와” 두분의 네팔인 포터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물론 이 히말라야 트래킹 기회를 마련해준 아내와 두아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해야겠다. 더구나 20여일간 당당뉴스 편집을 훌륭히 도맡아준 당당뉴스 공동편집자인 송양현전도사에게 대한 감사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 로컬버스 지붕에 올라타고 한시간반 걸리는 박타풀로 향하다.(택시비로 1,500루피 걸리는 곳을 버스비 20루피로 이동했다)
   
▲ 네팔의 현재 왕궁을 포함하여 3대 왕궁 중의 하나였던 박타풀
   
▲ 과거 네팔 3대 왕국중 하나였던 파탄왕궁에서, 여기엔 잘정리된 박물관이 있다.
   
▲ 카투만두 왕궁 주변의 관광객을 위한 타멜거리(인사동?), 지금 네팔은 정국혼란으로 무정부 상태란다. 파업으로 길거리에 쓰레기가 산더미같이 쌓여있고 주인있는지 없는지 모를 소떼들이 쓰레기를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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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61.41.60.27)
2007-02-26 02:10:36
잘 보았습니다
그 동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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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갈곳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안개로 인해 선명히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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