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이석주 기자의 기사입니다.

사실상 24일 오후 부터 26일 새벽까지 계속된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가 끝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첫 물리적 충돌이라는 불상사로 이어졌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총 69명이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연행당해 현재까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말하고 있다.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니 법과 원칙에 의해 연행했다고. 보수신문들은 26일 일제히 '융단 폭격'을 가하고 나섰다. 민주노총과 전교조, 한총련 등 과거 시위 경력이 있는 '주동자'와 일부 '반 정부' 세력들에 의해 서울 중심부가 점령 당한 것이라고.
 
반론은 잠시 미뤄두자. 이대목에서 1박 2일 동안 진행된 촛불문화제의 당시 상황을 짚어보면, 이제껏 촛불문화제 후 나름의 '뒤풀이'로 아쉬움을 달랬던 시민들이 왜 귀가하지 않고 청와대로 향했는가에 대한 답을 읽을 수 있다.
 

 
주최즉에서 '공식 종료' 알렸지만, 시민들 "성에 안찬다. 청와대로 가자"

지극히 평범하게 진행되던 문화제에 '이상' 기류가 발견된 시점은 저녁 9시를 넘긴 시각. 본 행사가 거의 마무리 돼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현장 구석구석에서 "청와대로 가자"는 구호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이명박 정부를 향한 분노가 촛불문화제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공식 종료를 알리는 순간 시민단체 관계자가 단상에 올라 "청와대 까지 평화대행진을 벌이는 학생들과 함께하자"고 외쳤다.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사거리를 향했다.
 
이런 상황은 주최측은 물론, 현장에 있던 기자들 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후 광화문 사거리와 교보문고 앞을 중심으로 연좌농성이 벌어졌고, 당초 예정에 없던 가두행진을 불법으로 간주한 경찰은 대규모 병력과 전경 버스로 이들의 행진을 차단했다.
 
이과정에서 시민들과 해산을 종용하던 경찰들 사이에 크고 작은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했다. 결국 경찰은 자정을 훌쩍 넘긴 25일 새벽 1시 30분 경 병력을 자진 해산시켰다. 경찰에 의해 시민들이 해산하지 못하는 상황을 염두, 경찰 스스로 길을 비켜준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 발생했다. '상황 종료'가 예상되던 순간, 경찰은 마지막까지 교보문고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던 150여명의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이상황은 어청수 경찰청장과 추부길 청와대 홍보비서관이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뒤였다.
 
결국 10시간이 넘는 '24일의 촛불문화제'는 경찰이 시민 37명을 연행하는 결과로 귀결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첫 물리적 충돌과 함께, 시위 참가자에 대한 첫번째 사법처리 방침을 밝힌 것이다. 경찰은 '불법행위 엄단' 방침을 세워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의 이같은 방침은 되레 화를 불렀다. 이튿날인 25일 까지 산발적 가두시위와 촛불문화제가 서울역, 신촌, 광화문, 명동 등 서울 중심부 곳곳에서 진행됐던 것. 이들은 "연행자 석방", "독재 타도" 등을 외치며 청와대로의 게릴라성 행진을 시작했다.
 
시민 "난 빨갱이도 좌파도 아니다"…과연 이들이 '시위 전문가'들 일까?
 
경찰은 "앞으로도 불법시위에 대해 강경 대응 방침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들이 주말 새벽 거리로 쏟아져 나오리라고는 경찰조차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이대목에서 경찰이 시민들의 행진을 '우발적 돌출행동' 쯤으로 보고 있다면 큰 오산이 아닐 수 없다.
 

▲ 장관 고시가 27일 예정된 가운데, 이명박 정부를 향한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질 양상이다.    © 이명박 탄핵연대

시민들의 행동이 경찰과 보수신문들의 주장 처럼 정말 충동적이었을까. 아니면 '시위 주동자'로 몰린 일부 시민단체에 의해 끌려다니듯 청와대로 향한다고 했던 것일까. 아니다. '반 이명박 정서'라는 공감대가 없다면 결코 충동적 행동으로 이어지기 힘든 상황이었다.
 
실제로 24일 촛불문화제가 끝난 이후 시민들이 청와대로 향하자며 거리를 점거하자, 주최측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측은 불법집회로 변질될 것을 우려, 저녁 10시 30분 께 공식 종료를 선언하며 다음번의 문화제를 위해 자진해산을 유도할 정도였다.
 
하지만 '청와대를 향한' 분노의 함성은 그칠줄 몰랐다. 이들 가운데는 애를 업은 어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성도 눈에 들어왔다. 소위 '운동권'이 아닌, 일반 시민의 모습 그자체 였다.
 
여기에 이날 촛불문화제와 거리시위에서 시민들이 외친 주요 구호는 과거 "미친소 반대, 재협상 촉구"에서 "독재타도", "MB 탄핵", "폭력경찰 물러나라"로 바뀌고 있었다. 스피커를 통해 울렸던 록음악도 시민들의 입에서 나오는 민중가요와 애국가로 바뀌었다.
 
당시 연좌 농성을 벌이던 20대 직장 여성은 "나는 '빨갱이'도 아니다. '좌파'도 아니다"며 "우리가 왜 이 늦은 시간에 여기에 앉아 있어야 하는가"라고 외칠 정도였다. 당시 시민들은 이중 삼중으로 쳐놓은 경찰 병력에 둘러싸인 상황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22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 한미FTA 조속 비준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방침을 강조했다.     ©CBS노컷뉴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총체적 위기의식'의 발로…촛불, 점차 '항쟁'으로
 
24일 촛불문화제는 과거 16차례와 비교했을때, 참가자들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우선, 당시 촛불문화제에 앞서 여의도 집회를 마친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의 시민단체가 오후 7시 서울 청계광장에 합류했다.
 
과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친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 촛불문화제가 '반 이명박 정부'를 주창하는 목소리로 확산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의 바람과 역행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주장이 팽배해 진 것.
 
이러한 이유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철회'와 '재협상 촉구'가 주를 이뤘던 집회 목적이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공교육 말살 정책 철회, 한반도 대운하 추진 백지화 등으로 확산된 것이다. 나이와 계층을 망라해 정부 정책에 대한 '총체적 성토장'이 된 것이다.
 
결국 청와대를 향한 시민들의 행진은 국민 소통을 강조한 정부가 되레 국민 의사를 무시하고, 공권력을 통해 국민을 탄압하는 것에 기인한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촛불집회가 '항쟁'의 모습을 보이게 된 데는 이명박 정부의 '불도저식' 정책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진중권 중앙대 교수는 26일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이명박 정권의 통치방식이 3공, 5공식으로 회귀하다 보니 시위문화도 다시 가두투쟁 비슷하게 클래시컬 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대통령은 '나는 CEO고 국민들은 사원이다'는 식의 마인드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무시당했다고 생각해 분노한 것이다. 국민들이 요구하면 재협상에 나서야 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명박 정권 타도"…급기야 '분신' 까지
 
이러한 '분노'는 급기야 또 한명의 '분신'으로 이어졌다. 전북 전주에 거주하는 40대 이병령 씨가 지난 25일 오후 자신의 몸에 시너를 끼얹고 불을 질렀던 것. 당시 이 씨는 "이명박 정권 타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25일 오후6시경 공공서비스노조 평등지부 이병렬 조합원이 정권타도, 미국광우병쇠고기수입반대를 외치며 분신했다.     © 이명박 탄핵연대

온몸에 80%이상의 화상을 입고 생명이 위독한 이 씨는 26일 현재 전주 예수병원 중환자실에서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정부 정책에 대한 강도높은 실망과 분노가 이러한 극한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와 관련, 진보신당은 25일 논평을 통해 "독재의 망령이 되살아오고 있다"며 "국민 생명을 우습게 알고, 국민 불안을 괴담으로 몰고, 국민을 기어코 벼랑 끝으로 미는 이명박 정부의 '불도저독재'가 우리사회를 80년대로 되돌려버린 듯 해 참담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진중권 교수는 특히 "정운천 농림부장관 해임결의안의 부결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국회에서 실패하다 보니, 국민들이 '거리 항의'를 하는 양상이다. '합리적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감의 표출이다"고 배경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