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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봉 신부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한겨레신문 4월 25일자 기사를 옮겨왔습니다.
4대 종단의 종교인들이 생명과 평화의 순례길에 나선지 70여 일이 지났다. 강을 따라 걷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하나는 대운하 사업을 통해 죽어갈 그 수많은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요 인간만을 위한 개발과 물질주의가 과연 자연과 인간에게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겠는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른 하나다.
종교인들의 순례길이 참으로 가볍고 편안하다. 각기 다른 믿음의 형식을 지녔으면서도 갈등하거나 반목하지 않는다. 종교의 본질이 생명과 평화라는 것에 동의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종교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형님”, “아우님”이라는 호칭에 서로가 금방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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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30일 부산에 입성하여 드려진 미사를 집전하는 김규봉 신부 |
순례단의 삶은 소박하다. 빨래는 1주일에 한 번, 식사는 밥그릇 2개로 해결한다. 잠은 어디서든 한 데 모여 잠을 잔다. 식사는 발우공양이다. 음식은 남김없이 먹고, 식기에 물을 부어 김치나 손으로 잘 씻은 후에 그 물까지 모두 마신다. 식기를 닦는 데는 1~2장의 휴지로 족하다. 분명 불편 하지만 더 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다. 이렇게 살아도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또 적게 소비하고 크게 만족하는 것이 인간과 인간이,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길임을 알기에 즐거움은 더 크다.
강을 통해 생명을 만났고 종교인의 삶을 배우고 있다. 한강은 여주에 이르러 ‘여강’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여강은 굽이굽이 흐르며 많은 여울과 광활한 은빛 모래사장을 품고 있었다. 물가에는 갈대와 버드나무가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 안에서 많은 물고기와 새들이 유영하며 평화롭게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태고의 아름다움이 이것에 비할까? 참으로 아름다웠고 평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낙동강에 이르러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대규모 골재채취와 공장폐수, 생활하수 등으로 강은 크게 몸살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강은 생명을 지키고 회복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강은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말없이, 하지만 쉼없이 굽이굽이 흐르며, 낮은 곳으로 흘러가며 스스로를 정화하고 있었고, 또 자신을 뭇생명의 탯줄로 내어주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적인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다. 자연을 대상화하면서 그것을 통해 인간만의 편의를 추구해왔다. 그것이 올바른 방향이 아니었음을 더워지는 지구가, 각종 재해와 기상이변, 고갈되는 자원이 증명해 주고 있다. 어느새 우리는 먹고 마실 공기와 물조차 가려 먹어야 하고, 무해함이 검증되지 않은 유전자조작농산물(GMO)이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는 처지가 되었다. 우리가 우리의 편의대로 함부로 사용했던 자연이 이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비수가 되어 돌아오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인간은 살아야 하고 생명 역시 살아야 한다. 우리의 강과 산, 물과 공기는 우리의 생명이다. 그 생명의 강과 산을 콘크리트로 도배하고 백두대간을 끊고, 식수원에 거대한 화물선을 띄운다는 구상은 생명을 살해하는 행위이며, 모든 생명과 함께 우리 인간 역시도 죽음으로 내몰게 되는 거대한 재앙이 될 것이다. 생명의 강이, 자연이 죽으면 우리 역시 살 수 없다. 우리 역시 생명이고 자연이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서구와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구 3개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인간의 편의주의와 물질에 대한 집착이 채워지리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비워야 한다. 줄여야 한다. 불편하더라도 뭇생명이 공존할 수 있는 즐거운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살라고 강물이 흐르며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강물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생명이 보여주는 가르침을 배우며 오늘도 순례의 길을 가야겠다.
김규봉 신부(천주교 의정부 교구 환경·농촌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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