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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혼과 육체「참 나」 영혼은 영원히 존재함
김주범  |  kjbjoh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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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1월 13일 (일) 16:31:35 [조회수 : 3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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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혼과 육체

영혼

① 참 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참 자신이 무엇인 지 알지 못하여 인생을 잘 못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란 바로 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각도 몸에서 유출되는 기능이며, 몸이 죽으면 사람의 생명도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본질적으로 같다고 보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동안만을 위해서 삽니다. 이것은 마치 외투를 입고 「나는 바로 외투」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외투가 존재하는 동안만 자신이 존재하고 외투가 버려지면 자신도 버려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 생각에서는 사람이 다름 아닌 물질이라는 것이지요. 루마니아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가 들어오면서 학교 학생들에게 「사람은 다름 아닌 물질이다」라고 가르치니까 어떤 학생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가 그 교사의 뺨을 한대 후려 갈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야, 이 녀석, 감히 누굴 때리는 거야」하니 그 학생이 「아니 물질이 어떻게 아픈 것을 알고 감정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 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참 사람이 아닙니다. 참 사람은 내 영혼입니다. 하나님이 낳으신 영혼이 참 사람이며 참 「나」라는 것입니다. 시편에서 「나」는 곧 「내 영혼」이라고 말합니다(시130:5). 사람이 아무리 잘 생겼다 할지라도 그 얼굴과 모습 그 자체가 그의 참 존재가 아닙니다.

참 사람은 「영혼」임을 보여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회당장의 딸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울며 통곡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야 일어나라」하시자 그 아이의 「영」이 돌아와 그 아이가 일어났습니다(눅 8:49-56). 또한 사도행전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기 밭을 팔아 가지고 사도들에게 드리면서 그 돈이 판 것의 전부라고 말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영으로 아나니아가 속이는 것을 알고 「네가 어찌하여 성령을 속이느냐」하면서 책망을 하자 그 「혼」이 떠나 죽었습니다(행5:1-10). 이 경우들에서 보듯 참 생명은 그 영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참 생명은 그 영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영혼 없는 몸은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약 2:26).  

② 「참 나」 영혼은 영원히 존재함

신앙에서 혼동되어 사용되고 있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믿어야만 영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멸성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하지 않은 상태 안에 존재하는 가능성이라 합니다. 죄를 범한 모든 사람은 멸절한다는 것입니까? 물론 그런 의미로 「불멸」이란 말을 사용하지는 않았겠지만 혼동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즉 이 말들은 육체를 두고 말하는 것으로서 인간이 죄를 범하지 않았더라면 육체가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자기가 육체를 두고 그렇게 말한다는 것조차 모른다면 그는 진정으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고 그냥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영혼은 결코 멸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한 영혼이라도 영원히 존재합니다.  

육체

① 육체는 죽는 것이 아님.

사람의 본체는 육체가 아니라 영혼입니다. 사람 또는 인간이란 육체를 입고 있는 영혼을 일컫습니다. 인간은 죄를 범하여 마귀에게 속하든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께 속하든 영원히 존재합니다. 죽음이라는 말을 소멸이라는 의미로 사람에게 적용시키면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잘 모르는 것을 나타냅니다. 안식일 교회는 죄인 영혼 멸절론을 주장하여 이단으로 정죄 받고 있습니다.

죽음을 소멸이라는 의미에서 육체에 적용시키는 것은 가능하나 육체의 죽음이 죄의 결과라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하신 인간의 과정적 필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죄의 결과라는 신앙의 공적 사실에서 불 때 「죽음」이란 말을 사람의 육체의 죽음에 적용시키는 것은 신앙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소멸」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죽음」의 의미를 혼돈 시키는 것입니다.  

죽음은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죽음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의미합니다. 마귀에게 속하여 있으면 죽은 것이요, 하나님께 속하여 있으면 산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사람의 육체에 적용시켜서는 안됩니다. 죽음이 상태가 아니라 관계라는 면에서 볼 때 인간은 영원히 소멸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 집니다. 「죽음」이라는 말은 소멸의 의미가 아니라 관계이기 때문에 「육체가 죽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합당하지 못합니다.

 ② 성경에서의 죽음의 의미

정말 사람이 이 땅에서 죽는 것이 죄의 결과입니까? 죄가 사망을 가져오고(고전15:56),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합니다(롬6:23). 여기에서 말하는 사망은 분명히 육체적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죽었다고 하는 것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살며 이 세상 풍속을 쫓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마음의 욕심대로 행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보통 죽음을 살다가 죽어서 없어지는 것을 말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속함(belong)을 말합니다. 마귀에게 속하였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속하였는가? 이중 마귀에게 속한 것을 죽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파괴된 관계에 있는 것을 죽었다고 말합니다(엡 2:1-3). 죽음은 속함 및 관계를 말하는 것이지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③ 육체는 영혼의 옷

「죽음」은 육체에 대하여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 영혼에 대하여 사용하는 말입니다. 육체의 소멸을 죽음이라고 말하며 더 나아가 죄의 삯으로 사람의 육체가 죽는다고 말하는 것은 「죽음」이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멸은 죽음이 아닙니다.

육체는 영혼을 위하여 만들어 진 것입니다. 무엇을 만들 때는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육체도 영혼에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만들어 영혼이 거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영혼에 대한 육체의 목적을 다하면 육체는 없어질 것입니다. 필요에 의해서 만든 것을 그 필요가 다해서 버리게 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계란이 있습니다. 계란은 겉껍질과 속껍질과 속의 흰자와 노른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계란의 이 구성 요소들은 절대적으로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어느 것이 덜 필요하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속껍질은 그 알맹이를 위해 있고 겉껍질은 그 속을 위해 있습니다. 어미 닭이 21일을 품으면 계란 속에서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옵니다. 이때 겉껍질이 깨지는 것을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분명히 죽음이 아닙니다. 만약에 이것을 죽음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겉껍데기 중심에서 본 것입니다.

사람의 육체가 소멸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육체 중심적 사고입니다. 영혼은 육체를 벗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습니다. 부활 영체를 입을 수가 없습니다. 영혼의 입장에서 본다면 마치 옷을 벗는 것과 같은 것인데 육체 중심적으로 보기 때문에 죽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④ 육체의 소멸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것임

성경에서 사람의 육체를 「장막」이라 합니다(고후 5:1-4). 이 장막 집은 무너질 것이라 합니다. 마치 옷같은 것으로 말합니다. 이 세상의 의미로 사람이 죽는 것을 성경은 장막을 벗어나는 것으로 말합니다(벧후 1:13-14). 사람은 육체라는 장막을 입고 본향을 향하여 가는 나그네입니다(히11:13-16). 마치 추운 겨울 두꺼운 외투를 입고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와 그 외투를 벗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의 육체는 외출할 때 입는 외투 같은 것입니다.

외투는 사람이 필요하여 만든 것입니다. 만드는 것은 어떤 소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추운 지역에 살다가 열대 지방으로 이주를 한다면 그 사람은 외투를 버리고 갈 것입니다. 외투는 그가 추운 지역에 살 때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든 것은 필요가 다하면 그것을 버립니다. 하나님은 만든 것을 흔드신다고 하셨습니다(히 12:27). 사람의 육체는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체도 하나님이 흔드실 것으로 처음부터 계획되어 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하십니다(벧전 1:17). 이 말은 다시 말해 육체에 있을 때 장래 하나님이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므로 육체의 정욕대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벧전 2:11).

사람의 몸이 폐기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히9:27). 이것은 죽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육체를 흙으로 만드시고 사람의 장막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때가 되면 육체를 벗어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든 것들은 모두 진동하며 변동될 것으로 만드셨습니다(히12:26-27). 진동치 아니하는 것 즉 영혼을 영존케하기 위하여 만든 것들을 모두 진동시켜 버리시는 것입니다.  

⑤ 죄는 육체의 소멸을 재촉함

육체의 소멸은 필연 과정으로서 죄의 직접적인 결과는 아니지만 죄는 육체의 수명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의 기한이 되기까지 육체를 보존하십니다. 영혼을 육체 안에 두신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기까지 영혼과 육체를 하나로 보존하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의 영혼의 기회를 상실시키려 육체의 수명을 단축하려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죄를 발판 삼아 공격합니다. 그리스도인이든 비 그리스도인이든 육체 수명의 단축은 영혼의 기회를 상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육체가 수한이 못되어 폐기되는 것은 영혼의 기회를 영원히 상실시켜 버립니다. 사고나 병으로 육체가 자기의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중도에 폐기되면 그 영혼은 이 세상에서는 물론이려니와 영의 세계에서도 결코 기회를 가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나 병으로 죽은 사람은 돌이킬 기회를 영원히 상실하여 영원한 저주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가 사고나 병으로 불편한 사람은 그 만큼 영혼의 기회가 제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때 입는 옷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입니다. 그런데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합니다(계19:8). 행실은 육체의 문제입니다. 육체가 있을 때에 순종의 행동을 할 수 있는데 육체가 폐기되거나 불편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자신의 온 존재로 소통시킬 수 가 없습니다.

육체로 심은 만큼 영혼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활할 때 입는 영체가 다 같은 영체가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해와 달과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듯 죽은 자의 부활도 그렇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부활 영체는 육의 몸으로 심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이 땅에서 입고 있는 육체도 다 다르듯 부활시 입을 영체도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고전15:40-48).

부활 영체는 육체로 있을 동안에 결정됩니다. 때문에 영혼의 유일한 기회는 육체 안에 있을 동안입니다. 때문에 마귀는 우리 영혼을 파멸로, 영원한 저주 가운데로 이끌기 위하여 갖가지의 수단을 통하여 육체의 수명을 단축시키려 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 사람들의 불순종 곧 죄를 통하여 공격합니다. 죄가 있을 때 마귀는 사람의 육체의 수명을 단축시켜 버립니다. 죄와 마귀는 하나입니다. 마귀 없는 죄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죄 때문에 사람들이 사고를 당했다, 또는 병들었다 하는 것은 마귀에게 당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죄와 마귀를 분리시키면 실상을 알지 못합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져 그것에 깔려 죽은 이유를 예수님은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시며(눅13:4-5), 중풍 병이 든 이유도 죄(마9:2-6)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와 마귀는 필연적 관계이므로 결국 마귀가 이들의 영혼을 유혹함으로 그 유혹에 넘어간 자의 육체를 공격하여 육체의 수명을 단축 폐기 한 것이며 육체의 기회를 철저하게 제한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유한성

인간이 유한하다는 것은 인간의 생명 자체에 대한 말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육체가 영원히 살지 못하고 소멸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어야 합니다. 이같은 유한성은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점에 기인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인간 육체의 죽음은 하나님과의 차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지나치게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라는 것 때문에 인간의 육체는 어쩔 수 없이 죽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의 죄 때문에 인간의 육체가 소멸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원래는 인간의 육체가 영원하도록 만드셨으나 인간이 범죄함으로 그것에 대한 결과로 인간의 육체가 죽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인간의 유한성”이라는 말은 대부분 육체의 유한성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게 합니다.

인간의 유한성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육체를 주신 것은 마치 작업복과 같은 의미로 주셨습니다. 사람은 일을 할 때에 작업복을 입지만 저녁이 되어 일을 마치게 되면 그 작업복을 벗어 놓고 집에서 입는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이 경우에 작업복의 유한성을 말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이것을 굳이 작업복의 유한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주인의 의도를 왜곡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것은 유한성이 아니며 어떤 신분의 차이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집에서의 그 사람과 작업장에서의 그 사람의 차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필요에 따라 옷을 바꿔 입는 것뿐입니다.

사람의 육체의 죽음이 분명히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 이지만 이 차이를 「유한성」이라는 말을 붙여 가며 강조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원래 육체가 없는 영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을 이렇게 하실 수 있으시나 어떤 필요에 의하여 육체를 지으시고 그 안에 영을 두시어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체는 마치 작업자의 작업복과 같습니다.

마치 사람과 물고기 같이 존재 적으로 다르다면, 사람과 물고기의 각각의 제한성을 각 존재의 유한성이라고 할 수 있으나 한 존재가 상황과 필요에 따라 옷을 달리 입는 것을 유한성이라 하여 이것이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과정적 필요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과정이 마치 최종 목적으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육체의 죽음은 인간의 유한성이 아니라 인간의 과정적 필요입니다.

인간 육체 폐기의 좋은 점

육체의 죽음으로서의 유한성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유한성은 하나님의 좋은 계획입니다. 인간은 육체를 입고 영원히 살 존재가 아닙니다. 스쿠버 다이버들은 좀 거추장스러운 장비를 착용하고 수중으로 들어갑니다. 수중 작업시 스쿠버 장비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 장비는 수중에서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장비를 뭍에서도 착용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전시 행동을 하는 것이거나 정신 이상자일 것입니다.

다이버는 수중에 들어 갈 때만 스쿠버를 입습니다. 수중에서는 이것을 입는 것이 좋은 것이지만 뭍에서는 입지 않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뭍에서도 계속 입으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육체의 죽음은 그 영이 육체를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한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그 말은 일반적인 의미로는 죽은 것을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죽은 아이보고 일어나라고 하시자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났습니다(눅 8:52-55). 영이 이 땅에 있을 때는 육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땅을 떠나면 육체가 필요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체는 본질적 필요가 아니라 과정적 필요입니다.  

사람 - 육체와 영혼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낳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의 몸을 만드시고 생기로 영혼을 낳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에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는 사람의 몸이 만들어 졌음을 말하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낳으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이란 몸을 입은 영혼의 일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육체를 입고 있는 영혼 전체를 통칭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만든 것과 낳은 것이 일체가 된 존재입니다.

만든 것과 낳은 것이 일체라는 것은 시간과 영원이 함께 거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은 시간적인 존재이기도 하고 동시에 영원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시간적인 것은 영원한 것을 위하여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시간 안에 있을 때 영원을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영혼 : 하나님의 목적

우리는 앞에서 만든 것은 한시적인 것이며, 한시적인 것은 영원한 것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주와 육체는 우리 인간의 참 존재인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육체와 우주 모두 영혼과 동일하게 중요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 영혼입니다.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우주와 육체 안에 있을 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주와 육체는 사실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비용이 투자된 우리의 환경입니다. 병이 났다거나 사고를 당해서 몸이 상했을 때 그것을 치료하기 위한 비용이 엄청나게 들거니와, 비용들을 들여 치료 작업을 하였다 하더라도 제대로 못하여 죽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더구나 인간의 육체를 인간이 만든다면 우주 전체에 대한 값을 들인다 하더라도 모자랄 것이며 그 작업 자체가 영원히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에 대하여서도 동일합니다. 창세 이후로 인간들이 지금까지 사용한 모든 것을 값으로 환산할 수 있는 수(數)가 없으며 설사 있다 하여도 그것을 계산해 낼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값으로는 절대로 셈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위해 이같은 값을 지불하면서 인간에게 주시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도대체 인간에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실까요? 인간은 이 땅에 사는 사명이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대답을 계속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은 만든 것과 낳은 것의 일체, 물질과 영혼의 일체, 시간적인 존재와 영원 존재의 일체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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