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오늘 새벽 4시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 9시에 일어났다. 아내가 옆에 와서 발을 주물러 준다. 고마운 사람이다. 아내가 아침밥을 지으러 나가고 난 다음 방바닥에 엎드려 이글을 적는다. 어제 있었던 송구영신예배에 대해서 내가 느꼈던 감동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송구영신예배에 참석하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부터이다. 40년 전 일이다. 아버지가 우리 사남매를 부르더니 편지봉투를 나눠주면서 거기에 새해 자기의 기도제목을 적으라고 하셨다. 그리곤 빳빳한 지폐를 나눠주셨다. 그 때 봉투에 무어라고 적었는지 기억이 없다.

	▲ 좋은나무교회 송구영신예배 풍경

내가 송구영신예배를 처음 인도한 곳은 강원도 정선 덕송교회에서였다. 교인이라야 할머니 일곱 여덟 분,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고등학생까지 20여명이 전부였다. 처음으로 송구영신예배를 인도했는데 아내가 시집올 때 해 준 두루마기를 입고 예배를 집례했다. 한 분 한 분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 했는데 한 오 분 쯤 했던 것 같다.

참 많이 울었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선한 사람들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한다는 것에 대해, 하느님 앞에 송구스러웠다. 아내도 참 많이 울었다. 교인들이 다 집으로 돌아가고 난롯불이 꺼진 찬 바닥에서 “이들을 더 열심히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종이 되게 해주십시오.”하고 기도했었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교동에서 목회할 때였다. 송구영신예배를 예배당에서 드리지 않고 보일러 시설이 되어 있는 교육관에서 드렸다. 예배를 마치고 한 분 한 분 정성을 다해 축복기도를 하는데, 어느 여자 권사님 차례가 되어 머리에 손을 얹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식들마저 대처로 내보내고 혼자사는 권사님이셨다. 나는 더욱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머리에서 손을 뗐는데 무엇인가 손에 달려오는 것이었다. 가발이었다. 그때 얼마나 놀랬는지, 우습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던 적도 있었다.

	▲ 서로 포옹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눈다.

송구영신예배의 형식은 단순하게 한다. 형식이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게 예배에 더 집중할 수 있어 좋다. 한해를 기도로 마감하고 기도로 한해를 시작하는 송구영신예배이니만큼, 회개와 참회의 기도, 결단과 소망의 기도에 초점을 둔다. 가급적 모든 기도는 침묵으로 하게 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제단 앞에 카펫을 깔고, 모든 교우들이 일곱 명씩 짝을 지어 오체투지(五體投地)하며 기도하는 순서를 가졌다. 기도의 의미는 주님 앞에서 항복하고 바짝 자신을 낮추며 살겠다는 결단의 표현이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저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저를 어디에 두시던지,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과 제가 견딜 수 있는 모든 일 가운데서와, 그곳에 저를 위한 것이 있을 때나 전혀 없을 때나, 제가 괴로울 때나 평안할 때나, 모든 일 가운데서 제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제가 존귀할 때나 비천할 때나, 제가 넉넉할 때나 궁핍할 때나, 제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을 때나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나,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저의 모든 것과 제 자신까지도 주님이 택하신다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기꺼이 주님을 섬기는데 드리기를 원하나이다. 존귀와 영광을 성부 성자 성령님께 돌려드립니다. 주님은 저의 것이며,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이것이 이렇게 영원하기를 원합니다. 2008년 한해 예수를 몸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지금 이 땅에서 한 이 언약이 하늘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예배당 안에는 조용한 음악이 흐른다. 그러나 깊은 침묵을 느끼게 했다. 교우들은 계속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는 기도를 바친다. 참으로 엄숙하고 숙연해 진다. 몇 분의 교우들의 하느님의 은혜에 감읍하여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하느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 촛불처럼 자신을 희생할 때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제 마지막 순서로 제단 앞으로 나와 서원예물과 기도제목을 봉헌하고 하느님이 올해 나에게 주신 말씀카드를 뽑는다. 교우들이 강단에 올라와 무릎을 꿇고 앉으면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간절하게 저들을 축복한다. 내가 교우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한다는 것은 내게 그만한 자격이 있어서도 아니고 저들에게 기복신앙을 심어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축복 기도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주여, 이 아무개가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이 시대, 주의 부름받은 종이오니 축복하소서. 예수의 제자로, 예수의 참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가정에 평화가 있게 하소서, 주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 받게 하소서, 사업도 번창 하게 하시고, 모든 일이 보람되며 의미 있게 하시고 예수의 향기로 충만하게 하시옵소서.”

송구영신예배 후 축복기도를 모두 마치고 시간을 보니 새벽 2시가 조금 안 되었다. 예년보다 사람들이 적게 나와서 1시간가량 일찍 끝난 것 같다. 젊은이들 중 몇이 해장국을 먹으러가자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10여명이 해장국을 먹으로 초량으로 갔다. 새벽 2시 넘어 해장국을 먹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늘은 우리 교회 양○○ 집사가 쏜다고 한다. 말씀 카드를 뽑았는데 자기에게 가장 적절한 말씀을 주셨다고 한다.

다시 집에 돌아와 교우들의 채취를 느끼며 교우들의 기도제목을 하나하나 읽는다. 모두 소박하다. 또 눈물이 쏟아진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마른다고 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이들의 간절한 기도와 소망이 올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나의 기도제목은 “올 한해 좋은나무교회 목사로서 머슴 노릇 잘 하게 해주소서.”였다.

	▲ 한해의 소망을 모자가 함께 기원하고 있다.

아내가 아침밥을 다 지은 모양이다. 압력밥솥 김빠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이들은 아직도 곤하게 자고 있다.

조용한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