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며, 참여불교 재가연대 공동대표인 박광서교수가 이메일로 보내온 글이다.  불교인의 눈으로 본 여러종교들의 종교자유 등에 대해서 '현대불교'에 종교자유칼럼으로 기고하고 있는 글들이다.  당당뉴스는 박광서 칼럼중 일부를 계속 연재한다.

대통령의 종교
“사회통합 위해 종교문화적 편협성 벗어나야”
                                - 현대불교 / ‘종교자유 칼럼’ / (2007.11.7/제652호) / 박광서 -

국가 최고지도자의 의식구조는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대통령이 종교색깔을 분명히 하는 경우 더 이상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1993년 2월 문민정부의 첫 개각에서 개신교 13명, 천주교 4명에 비해 불교는 겨우 2명을 끼워 넣어 생색만 내는 편중 인사를 함으로써 일생을 통해 일관되고 소신 있게 ‘내 종교만 소중하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종교편향은 본색을 드러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시 황산성 환경부 장관은 청사 내 식당에서 근무시간에 예배 또는 기도모임을 가졌는가 하면, 법당을 폐쇄하고 불상을 뒷산에 버린 ‘17사단 훼불사건’으로 문책 해임되었던 국방부 장관 권영해 장로는 그 후 안기부장에 임명되어 ‘국방부 예배사건’을 주도하더니, 청와대 대변인 윤여준 장로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교회를 찾아 예배를 볼 것”이라며 장로 대통령에서 전도사 대통령으로까지 만들 배짱임을 드러내기도 했다.
1995년 4월 기독교인 김숙희 교육부 장관은 ‘고입ㆍ대입 검정고시 일자가 부활절과 겹친다’는 기독교계의 민원을 접수한 고충처리위원장 김광일 장로의 권고에 따라 시험 일자를 5월 5일로 변경하였다. 이미 국민에게 발표한 공식 시험일마저 기독교 단체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시행 12일 전에, 그것도 온 국민이 일 년 중 하루 아이들과 함께 쉬게 되어 있는 어린이날로 변경하다니. 어처구니없게도 그 해 초파일(5월 7일)에 수십 가지의 국가자격시험이 실시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1996년 12월 총무처 장관 김한규 장로는 공무원 임용시험을 평일에 치른다고 발표하고, 인터뷰에서 “고위공직에 임용된 것은 복음사역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며, 기독교인들의 숙원사업인 성수주일을 관철시키겠다”며 의기양양했다고 한다.
‘선교도구로 전락한 김영삼 정권’ 당시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문제였지만, 결국 최종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국민들은 순진하게도 “나의 종교가 소중한 만큼 남의 종교도 소중하다”는 그의 거짓말에 속은 것이다.
기독교 국가를 꿈꾸던 이승만 대통령도 자신의 종교를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임시의장으로 추대된 그는 “대한민국 회의를 열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운을 뗀 뒤,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께 감사드릴 터인데 이윤영 의원(목사) 나오셔서 기도를 올려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식순에도 없는 횡포를 부리더니, 이어진 개회사에서도 감사할 대상 중 첫째로 ‘하나님’을 꼽아 온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어느 분의 지적처럼 비신자로서 ‘한국기독교역사 시대’에 2등 국민으로 낙오자가 되는 모멸감을 느끼게 해준 순간이었다.
한편 군승제도 도입(68년),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75년), 불교방송 개국(90년)이 군목(48년 창군 시), 크리스마스(49년 공휴일 규정), 기독교 방송(54년)에 비해 각각 20년, 26년, 36년이나 뒤처진 것도 건국 초기부터 친기독교로 일관한 파행적 정책 때문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대통령의 종교가 문제가 된 것은 주로 이승만ㆍ김영삼 두 대통령 시절이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도 종교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전두환씨에 의해 미국으로 출국 당했던 1981년도에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당시 MIT 연구원이었던 필자도 참석했는데, 80년 광주항쟁 직전 정치인들이 대중연설 등을 통해 모처럼 ‘정치적 봄’을 만끽하던 수개월 동안 유독 김대중씨가 강연할 때마다 ‘예수형님’이란 말을 쓰는 것을 의아해했고, ‘육체적ㆍ정치적 생명을 로마교황청이나 미국기독교 세력에 의탁하고파 필요 이상으로 예수를 파는 것 아니냐’고 직접 묻고 싶던 차였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의 어느 여교수가 먼저 “기독교 전통이 아닌 한국에서 정치지도자들이 기독교를 앞세우며 이용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질문을 하지 않는가. 갑작스런 질문에 엉겁결에 해방신학을 끌어들여 그럴싸하게 답을 했지만, 궁색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천주교 신자인 김대중 대통령과 개신교 신자인 이희호 여사의 영향 아래 청와대와 내각, 그리고 행정부와 군ㆍ경 등의 고위 임명직에 불교인을 소외시키고 기독교 일색으로 채워왔다는 불만도 많았다. 각종 위원회에 기독교 인사(현직 목사 포함)가 50~60%인데 반해 불교 인사는 10%에도 못 미치는 등 국민정부가 문민정부 때보다 더 심하다는 보고도 있었다. 국무총리 지명자였던 장상씨는 국회 인사청문회 자리에서까지 “하나님의 참된 도구가 되겠다”며 종교색 짙은 발언을 하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서 대통령이 종교적으로 편협한 경우 사회적 갈등의 뿌리가 깊어지게 마련이다. 종교문화적 편협성이 없는 통합형 대통령의 선출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