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값 하는 세상이 되어야

일전에 나이가 지긋하신 분을 만나 대화를 했다. 그 분은 대뜸 “목사님, 나이 먹어 갈수록 두려운 게 뭔지 아세요?”라며 물었다. “나이 값을 못한다는 말을 들을 때 두렵지요.” 그 어른의 말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이 값을 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성숙해져야 함이요 불필요한 논쟁거리에 휘말리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게다가 말조심도 해야 하는 체면치레도 필요한 것 일게다.

필자는 지역 특성상 젊은 청년들을 많이 상대하는 편이다. 간간이 친구들에게 “난 늙을 시간이 없다”며 능청을 떨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어찌 세월가고 주름살 늘어가는 것을 피할 수 있으랴!

어느 날 문득 장성해져 가는 자식들을 보며 내 자신의 존재를 뒤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 과연 내가 나이 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자문하기도 한다. 누구나 마음은 안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변해가고 있음을 알 때가 있다.

지난달에 한국에 잠시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6년 반 만에 딸과 동행을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왔던 딸이 이제 중3 나이가 되어 동행하니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아빠의 무릎팍을 유난히 좋아 했던 딸이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되어 가려야 할 상황들이 많았다.

사실 나름대로는 딸의 마음을 잘 읽고 있다고 생각하며 지냈는데 아내는 가끔 “제발 딸 좀 잘보고 이해하고 파악 좀 하라”고 핀잔을 주었다. 뭔가 부녀지간에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아빠가 되어 나이는 먹어가도 자식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잘 모르고 사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음이다. 무조건 아빠의 권위(?)만을 내 세워 가정교육을 할 수 없는 시대라고 일침 한다.

그런 탓인지 딸과의 한국방문은 많은 것을 느끼게 했고 아빠는 아빠대로 딸은 딸대로 이제는 나이 값(?)좀 해야 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나 할까? 좋은 인생 공부였다.

요즘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얼마나 공들이는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핵가족의 현실이 이제는 자기 자식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주의적 편향이 있어도 말 할 수 없다. 사회성에 대한 배려가 없다. 물론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특별한 존재’로 키우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이 때론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을 때가 많다.

자식 위주로 가다보니 어른이 없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 어른들만 보면 무조건 90도로 머리 숙여 절하고 지나가도록 했다. 친지를 방문하면 어른들께는 큰 절부터 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 그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까? 오히려 항상 낯선(?) 사람은 철저히 경계 하라고 가르치는 세상이다.

이것은 분명히 원인이 있다. 적어도 필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어른들이 나이 값을 못하는 세상이 된 게 아닐까 싶다. 점점 오래 사는 장수의 시대가 되었음에도 젊은이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시대다. 볼 쌍 사나운 모습을 봐도 감히(?) 말 할 수 없는 시대인지 이미 오래다. 어른들이 나이 값을 할 수 없는 시대이다. 누구의 책임인가?

일전에 보도된 사건에 의하면 15세 손자가 할머니의 잔소리가 귀찮아서 잔인하게 살해한 끔직한 일이 있었다. 집안에 부모의 부재로 인해 비행 청소년이 되어가도 아무도 주변에서 어른들의 역할을 해 주는 자가 없었다. 어른으로서 할머니의 존재가 있었지만 이미 15세 소년으로 커버린 손자를 이길 수 없는 할머니의 약함만 남았다.

이웃에도 주변에도 나이 값 할 만 한 어른이 없었단 말인가? 비극이다. 어른이 나이 값 못하는 것은 분명 시대적 비극이다. 적어도 어른의 큰 기침 소리에 예의를 갖출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혹자는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말 하느냐고 역정 낼 수 있겠다.

필자도 필리핀에서 목회하다보니 별별 경우들을 많이 보았다. 더구나 부모를 떠나 자유분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현실에 안하무인의 철부지들을 보면서 나이 값 못한 부모들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안보아도 알만 큼 느껴진 예가 한두 번이 아니다.

거짓은 기본이고 일탈적 행위에 대한 뻔뻔한 모습들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해야 할지, 무관심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설 때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실을 부모에게 말하면 오히려 말해주는 자가 핀잔을 받는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지만 참으로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건 가릴 건 가려야 한다. 가르칠 건 가르쳐야 한다. 어른이 어른 노릇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른이 나이 값 제대로 하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잠언10:1)

(글쓴이/ 고광태목사, 다스마리냐스 남영한인교회, 따가이따이 제2남영한인교회 담임, 카비떼 한국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