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토요일,
비오다 개였다 하다.

샤프루벤시(Syafrubensi, 1420m) - 둔체(Dhunche, 2120m) - 카투만두(Kathmandu)

마(魔)의 계곡


오늘부턴 카투만두까지 편하게 버스로 하산하는 날이다.  7시까지 버스가 온다하여 모두 짐을 꾸려 아침 일찍 버스 타는 데 까지 갔다.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한 참 짐을 싣고 있는 데 무슨 연락을 받았는지 조수가 다시 짐을 내리란다. 길이 무너져 차가 갈 수 없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내려갈 때쯤 되면 산사태로 무너진 길 보수공사가 모두 마무리 되어 편안하게 버스를 타고 갈 줄 알았더니 또 다시 허물어진 험한 산길을 걸어가야 한단 말인가!

몇 킬로를 가야 하는지 그리고 몇 분이나 걸어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우린 그냥 걷기 시작하였다. 길은 외길이고 별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샤프루벤시 마을은 계곡 아래편에 위치하며 해발 1420미터밖에 안 된다. 카투만두를 가기 위해서는 둔체를 통과해야 하는 데 둔체의 높이는 해발 2120미터나 된다. 둔체까지 가기 위해서는 700미터나 더 높이 올라가야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거기까지는 버스가 다니므로 길만 허물어지지 않았다면 시간상 별로 얼마 안 걸리는 거리다. 그러나 고도 700미터는 걷는 거리로 7키로 이상 되는 거리다. 이 거리를 걸어서 올라가려면 예측하기 어려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곳에 와서 하루도 맑은 날이 없었듯이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구중중하게 내린다. 배낭에서 우의를 꺼내 입고 가랑비를 맞으며 버스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올라가니 멀리 안개 속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서있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한 모습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포크레인이 무너진 길 보수작업을 하고, 사람들은 길이 빨리 복구되길 기다리고 있다. 작업하는 것 바라보며 거기서 한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도저히 쉽게 일이 끝날 것 같지 않아 지켜보던 사람들과 무너진 계곡을 간신히 지나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계곡을 끼고 굽이굽이 도로를 만들어 마치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구불구불한 도로를 한 참 올라가다보니 이 지역 사람들은 우리처럼 구부러진 도로를 따라 걷지 않고, 가파른 산을 넘어 지름길로 간다.

우리 일행도 시간 절약을 위해 그 길로 걸으려 하는 데, 어린 광이가 도저히 힘들어 못 갈 것 같아 그냥 길목에 서서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오토바이 한 대가 온다. 통 사정을 하여 광이와 엄마를 태워 보내고 우린 가파른 산길을 질러 오르기 시작했다. 오전 10시, 너무 힘들어 산 중턱 쯤 올라 숨을 고르고 땀을 식히며 좀 쉬는 데 구름이 우리 눈 아래서 왔다 갔다 하고, 구름 한 참 아래 약 500미터 정도는 될까? 깊은 계곡 아래 흐르는 물이 가늘게 보인다. 가파른 길을 빨리 올라오느라 다리가 좀 아프긴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조금만 쉬면 곧 괜찮아진다. 참 신기한 일이다. 긴장이 되어 그런가? 여자들도 다리 아파 못 가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참 걸어 고개로 올라서니 조금 전에 우리가 걸어오던 버스길과 다시 만나게 되고 오토바이를 타고 먼저 올라 온 광이와 다시 합류하다.

모두 기가 차서 잠시 무너진 계곡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갑자기 산에서 ‘우르릉 쾅쾅’하며 바윗돌들이 떨어져 내린다.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놀라 소리를 지른다. 잠시 후 굴러 떨어지던 바윗돌들도 멈추고 사람들의 숨소리도 멈추고 깊은 산속에 적막이 흐른다.

무너진 계곡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람들 중에 한 용감한 의인이 조심스럽게 계곡에 한 발짝씩 길을 내며 나아간다. 그 때 또 다시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릉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큰 바위가 세차게 다시 굴러 떨어져 굉음을 내며 그가 건너려는 곳을 힘차게 때리고 수백 미터의 끝도 보이지 않는 계곡 아래로 쏜살같이 사라진다. 이를 지켜보고 서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한 목소리로 ‘아-악!!’하고 놀라는 소리가 마치 비명소리처럼 울려 앞산에 메아리쳐 온다. 하마터면 앞서 가려던 사람에게 부딪쳐 큰 사고가 날 뻔하였다. 정말 소름이 오싹 끼친다. 우리를 빼 놓고는 대부분 이 지역 사람들인데도 험하게 무너진 길을 바라보고는 건너지 못하고 두려워 머뭇거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새내기인 우리는 아무 겁도 없이 그냥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 와중에도 우리 마음속엔 현지인들처럼 두려워하거나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참사의 현장을 목격해 본 경험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우리에게 특별히 평안을 끼치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일까?

항상 어디든지 용사는 있기 마련이다. 한 사람이 다시 무너진 절벽을 한 발짝 한 발짝 내 디디며 건너기 시작한다. 아직 산 위에서 바윗돌은 굴러 내리지 않고, 그는 간신히 무너진 길의 중간쯤 갔다. 만일 그 위치에서 돌이 굴러 떨어지면, 앞으로도 피할 시간이 없고 뒤로도 피할 시간이 없다. 그냥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위험한 지점에 이르렀다. 참으로 절박한 순간이다. 하늘이 도왔는가! 그 사람이 가까스로 건넌 다음에야 그의 등 뒤로 바위가 세찬 소리와 함께 굴러 떨어지고, 바위 소리와 함께 또 다시 사람들의 놀란 함성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겁에 놀란 사람들에 의하여 주위가 한 참 적막감에 휩싸이며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나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

몇 분이 지나자 다시 용기 있는 한 사람이, 앞 사람이 가던 방식대로 간신히 넘어갔다. 간간이 바위가 굴러 떨러질 때는 멈추었다가 다음 사람이 가고, 또 다음 사람이 지나갔다. 한 십여 명 그런 식으로 건너간 다음 우리 일행도 건너가기 시작했다. 세르파 라메쉬가 먼저 건너기 시작했다. 그는 힘도 세고 이곳 산에서 단련된 사람이므로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코스에 가서 두 손으로 바위를 집고 오르려 하는데 발로 디딘 부분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손으로 잡은 바위가 위험스럽게 움찔하고 흔들린다. 라메쉬가 겁이 나 힘차게 오르려 하면 다시 또 바위가 움직여 오를 수 없다. 그 큰 바위가 라메쉬를 안고 굴러 떨어지는 날이면 라메쉬는 바로 황천길로 가는 거다. 그리고 그 다음 사람들은 아예 그 길을 더 이상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말 것이다. 요번에도 못 오르면 라메쉬의 팔에 힘이 떨어지고 아주 극한 상황이 될 지도 모른다. 라메쉬가 비지땀을 흘리며 다시 한 번 온 힘을 다해 철봉을 하듯이 힘차게 차 오르자 가까스로 바위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이건 연극이 아니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실제상황이다. 사람들이 지른 함성은 보통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죽음을 이겨내고 살아나는 자들이 질러대는 아주 통쾌한 승리의 감격스러운 함성이었다.

그렇게 통과한 라메쉬가 자기 다음으로 몇 사람이 더 그 마(魔)의 계곡을 통과하는 모습을 지켜 본 후, 우리를 오라고 부른다. 너무 늦게 가면 또 언제 더 크게 길이 무너질지 모르므로 기회가 있을 때 빨리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용감하게도 광이 엄마가 광이를 데리고 먼저 건너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하여 아직 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위험스런 눈초리로 모자가 건너는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다. 이상할 정도로 광이와 광이 엄마는 겁이 없는 것 같다. 그들이 건너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의 뒷다리가 후들 후들 떨린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절박한 순간에 다른 미사여귀가 필요 없다. 무조건 살려 달라고 기도했다. 무사히 통과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가 중간 지점을 넘어설 때 어미가 못미더워 광이의 손을 잡고 뒤를 바짝 따라 붙는다. 중간 지점을 지났다. 다행으로 바위가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 마지막 한 곳만 통과하면 된다. 라메쉬가 조금 전 오를 때 무너져 내릴 뻔 한 바위에서 손을 뻗치고 가까이 다가온 광이의 손을 잡으려 한다. 바위 바로 밑은 길이 끊어 져서 손을 잡지 않으면 어린아이 보폭으로는 도저히 뛰어 건널 수 없는 상황이다. 그 밑은 천 길 낭떠러지로 곧장 이어져 있다. 라메쉬가 뻗친 손으로 광이의 손목을 잡았다. 그 순간 광이 엄마가 혹시나 광이가 아래로 미끄러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광이를 뒤에서 잡고 놓아 주질 못한다. 언제 또 다시 산에서 바위가 굴러 떨어져 광이를 덮칠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하고 긴박한 순간이다.

엄마가 계속 광이의 손을 놓지 않자. 라메쉬가 광이의 한 쪽 손을 꽉 잡고 잡아당기며 광이 엄마한테 잡은 손을 놓으라고 큰 소리를 친다.
“빨리 놔요! 빨리! 빨리!”
라메쉬가 숨이 막힐 듯 한 긴박한 어조로 빨리 광이의 손을 놓으라고 계속 소리친다. 광이의 한 손은 라메쉬에게 잡혀 있고, 한 손은 엄마에게 잡혀 있어 광이의 몸이 반은 공중에 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광이의 한 쪽 발밑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깊고 시커먼 무시무시한 마의 계곡이 입을 더 크게 벌리는 듯하다. 수십 초 안에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라메쉬도 지치고 광이 엄마도 지쳐 광이의 손을 노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정말 큰 일이 나고 만다. 다시 빨리 손을 놓으라고 소리치는 라메쉬의 고함소리에 마침내 엄마가 포기하고 잡았던 광이의 손을 놓는다. 순간 라메쉬가 광이를 잽싸게 끌어 당겼다. 아! 광이가 무사히 건넜다. 아슬아슬한 장면을 애타게 지켜보던 사람들이 또 큰 함성을 지른다. 정말 그 때 그 긴박한 순간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살기 위해서 때로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우리 일행은 무사히 그 길을 통과 하였다. 그리고 또 다시 한 참 걸어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몸을 싣고 그냥 차 안에서 반은 기절하다시피 지쳐 떨어지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번엔 버스 바퀴가 펑크가 났다고 가지 못하고 수리하느라고 또 한 시간 정도 길에서 지체 하였다. 그리고 한 참 달리다 요번엔 앞에 가던 트럭이 진흙탕에 빠져 길을 막아 한 시간 정도 또 지체 하였다. 이렇게 법석 난리를 피워도 지구는 돌고 시간은 가고 있었다. 너무 피곤들 하여 차안에서 골아 떨어져 자고 있는 사이 우리가 탄 차가 어느 듯 카투만두에 도착하고 있었다.

어린아이 겁없이 바닷가에 뛰어 나가듯이 우린 무얼 모르고 히말라야를 왔다가, 악천후 속에서 너무 힘든 산행을 하였다. 참으로 위험한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이렇게 위험한 곳인 줄 알았다면 아예 이곳을 계획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죽음 앞에 몇번이나 직면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마의 계곡을 통과하는 그 절박한 순간에도 우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살 것이란 생각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자하는 생각뿐이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 하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 후 무사히 카투만두에 도착하여 호텔 침대에 누워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이다. 죽음에 관한 생각도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어떤 이가 살기가 너무 바빠 아플 시간도 없었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너무 긴박하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장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자래’라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머리맡에서는 그의 처자식이 슬픔에 잠겨 울고 있었다. 때 마침 찾아 온 ‘자리’라는 친구가 그 광경을 보고 호통을 쳤다.
“왜들 우느냐. 사람의 임종을 방해하지 말거라.”
이것이 장자 자신의 사생관이다. 죽는 당사자가 조용히 죽음을 맞으려 하는데 주위에서 운다는 것은 죽는 사람에 대한 적절한 예우가 아닐 뿐더러 자연의 섭리에 거스르는 행위라고 보았다. 그래서 자기 아내가 죽었을 때도 장자는 울기는커녕 두 다리를 뻗고는 아내의 시체 앞에서 북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莊子妻死 惠施弔之 莊子則方箕踞 鼓盆而歌 – 至樂)

장자의 친구 혜자가 옆에서 지켜보자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조강지처가 죽었는데 곡을 안 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노래까지 부르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혜자는 힐난한다. 그러자 장자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인간이네. 한 평생 고생만 시킨 아내인데 난들 어찌 슬프지 않겠나. 헌데 가만히 생각해 보게나. 본래 삶과 죽음은 없는 것이네. 생명뿐만 아니라 형체도 없었고, 형체만이 아니라 기(氣)도 없었네. 무엇인가 혼돈 속에 섞여 있다가 변하여 기가 생겼고, 기가 변해서 형체가 생기고, 형체 속에서 생명이 생겼다네. 그리고 오늘은 이렇게 변해서 죽음이 된 것이네. 이것은 춘하추동 사계절이 운행하는 것과 같을 뿐이네. 지금 내 아내는 천지라는 거대한 방에서 해와 달과 별들을 품에 안고 편히 잠들고 있는 것일세. 그렇게 거대한 방에 누워 편히 잠을 자려하는데 내가 곁에서 큰 소리로 비통하게 운다는 것은 천명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네. 내가 곡을 하며 슬피 운다면 오히려 아내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겠나”

장자는 의아해 하는 문상객들에게 다음과 같은 우화를 들려주기도 한다.

옛날 어느 나라의 공주가 시집을 가게 되었다. 공주는 이 미지의 세계가 던져 주는 불안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부모님, 무엇 하나 부족할 게 없는 지금의 생활에서 떠나, 전혀 미지의 한 남자에게 자신을 맡긴다는 것이 불안하고 초조해졌던 것이다. 울며불며 시집을 안 가겠다고 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날은 다가오고, 속절없이 공주는 이웃 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이제 공주는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한 사람의 아내로서 근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공주는 지금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내가 왜 결혼하지 않겠다고 망설였던가! 지금 이렇게 행복하지 않은가. 그 당시에는 미처 상상하지 못한 보람이 있고, 깊은 사랑이 있지 않은가. 공주는 혼자 고소(苦笑)를 지었다.

장자는 이 우화를 죽음에 비유한다. 우리가 죽고 난 다음, 그때 왜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했는지 이해할 수 없노라 는 독백을 할지 누가 알겠냐는 것이다. 장자의 사생관이 잘 드러나 있는 우화이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원래의 상태로 돌아감(歸)이다. 우리말에도 죽음을 ‘돌아 가셨다.’로 표현하는데 장자 이후 동양의 사생관이 일상의 언어에까지 자연스럽게 녹아 든 것이 아닌가 한다. 생사란 변화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일 뿐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구름이 끝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것과 같다. 만약 구름이 어느 한 모양만 고집하여 변화하는 것을 슬퍼한다면 우스갯감이 될 것이다. 인간에 있어 죽음도 만찬가지이다.

장자가 볼 때 죽음은 존재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삶에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누구나 삶을 사랑한다. 다시 말해서 죽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은 인간에게 영원한 숙제이다. 누구도 죽음을 면할 수는 없다.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살아 있는 자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듯이 죽은 자 또한 어떠한 경우라도 살아날 수 없다. 혹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도 있고, 심한 경우는 죽어서 며칠이 지난 뒤에 살아난 이야기도 있다. 이들의 사후 경험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도 그것은 유사(類似) 죽음일 뿐이지 진짜 죽었던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살아난 죽음은 이미 죽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이 죽음이고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필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은 한마디로 죽음의 세계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증명해 보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장자는 삶과 죽음을 별개로 생각하는 이러한 문제점을 단칼에 해결해버린다. 즉 죽음은 없다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다른 형태일 뿐 강물이 흐르듯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틀에는 <장자>의 ‘제물론(齊物論)’편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의 비유가 자리 잡고 있다.

“전에 장주(莊周)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것이 분명히 나비였다. 스스로 즐겁고 뜻대로라 장주인 줄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조금 뒤에 문득 깨어보니 분명히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나비의 꿈을 꾸는 장자인지 장자의 꿈을 꾸는 나비인지 모르겠다는 이 호접몽의 비유는 절대인식을 위해서는 일체의 존재를 하나의 흐름으로 유연하게 봐야 한다는 이치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장자의 사생관에는 삶도 죽음도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자는 죽음은 해와 달과 별들의 운행, 춘하추동 사계절의 변화와 같다고 보았다. 삶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마치 자연의 변화처럼 유구하게 흐를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 태양이 빛나고 있다. 아침에 동쪽에서 솟아올라 저녁이면 서쪽으로 넘어간다. 그러면 동쪽에서 태양이 솟을 때 없던 태양이 새로 생겼다고 하고, 서쪽으로 기울 때 이제 태양이 아주 없어졌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서쪽으로 태양이 넘어가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태양은 저 너머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침에 찬란하게 태양이 솟아날 때에도 태양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눈에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죽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몸뚱이가 있을 때는 우리 눈에 보이니까 살았다고 하고 몸뚱이가 없어져 보이지 않으면 죽었다고 하는 것이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도 이처럼 이곳에 있던 사람이 저쪽으로 이사를 간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가 장자에서 배우는 삶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장자는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구태여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지 않음이다. 여여(如如)하고 담담할 뿐이다. 이렇게 보면 다만 삶을 절대화해서 생각하지도 않을 뿐더러 늙고 죽음을 다만 슬픈 일로 생각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옛 선사(禪師)들의 생사일여(生死一如)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금번에 몇 번의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전혀 두려워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잘 겪어 낸 우리들의 모습을 스스로 돌이켜보면서 신앙과 믿음에 관하여 묵상하게 되었다. 우리일행 중에는 연약한 여자도 있고 초등학생 아이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魔)의 계곡을 몇 번이나 통과하는 험한 트레킹 코스를 무사히 잘 마치고 내려왔다. 이는 우리의 육체적 능력이 아닌 순전히 정신적인 의지로 이루어진 결과라 생각한다. 우리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신앙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우리들은 인생과 죽음에 대한 큰 철학적 사색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들의 몸에 밴 신앙은 이미 생사일여(生死一如)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기 때문에 어떠한 두려움 앞에서도 담대할 수가 있었던 게 아닌가. 피상적으로만 바라보면, 기독교 신앙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꾸준히 신앙생활을 한 분들이라면, 우리들처럼 고난의 현장에 직면할지라도 담대한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잘 극복하리라 생각된다. 깊은 신앙심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강인하게 하는 큰 힘이 있다. 히말라야는 힘으로 오르는 곳이 아니고 의지로 오르는 곳이었다.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키에르케고르는 "속물근성"이란 말로 절망에서 애써 눈 돌리려는 이들은 경멸한다. 그들은 부유하고 안락한 일상이 곧 인간다운 삶이라고 착각하는 탓이다. "행복의 깊숙한 곳" 이곳이야 말로 절망이 가장 편안하게 머무는 곳이다. 이런 상태는 오래 가지 못한다. "현명한 충고와 처세술에 귀 기우리면서 더 큰 쾌락과 안락함을 끊임없이 쫒지만, 결국 절망감은 어김없이 찾아들 터이다. 늘어난 아파트 평수와 차의 배기량이 주는 행복감이 얼마나 빨리 증발하는가를 생각해 보라.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속의 사람들을 지하와 지상 2층으로 되어 있는 집을 빗대어서 설명한다. 절망한 사람들은 이층에 살 수 있는데도 굳이 지하층을 고집하는 사람들과 같다. 이들은 이층이 비어 있으니 그 곳에 옮기라 하면 화를 내기까지 한다. 인간은 정신을 최고로 발휘할 때 가장 인간적이지만, 사람이 그 보다 굳이 낮은 감성과 쾌감 상태에만 머무르려 한다는 뜻이다.

이보다 나은 절망은 "자신이 절망하고 있음을 깨닫는 절망"이다.

이 단계에 이른 자들은 삶의 허무함과 고통을 더 이상 바깥에서 찾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괴로움이 돈 없고 풀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덧없고 무의미한 삶 자체에서 비롯됨을 깨닫는 자들이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던 사람들 역시 대부분 절망 안에서 주저앉아 버린다. 이들 중 어떤 이는 "절망하는 자신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 자기 자신이 너무 싫은 나머지 "마치 옷을 바꿔 입듯이"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그는 유능하고 똑똑하고 훌륭한 인물처럼 행동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마음속에서 또 다시 자신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면서 또 다시 절망 속으로 움츠려 든다.

드물게는 이 수준을 넘어서서 절망하는 자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에 대한 절망에 빠진 이들이다. 이들은 기분전환을 위해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에 빠져 들거나, 다른 이들처럼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신이 왜 절망하는지를 똑 바로 바라보며 삶이 과연 무슨 가치가 있는지를 끝 까지 고민한다. 그럼에도 이들 역시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의 절망은 "반항"에 지나지 않으며 급기야 아무 희망이 없음에 좌절하며, 자살에 이르기까지 한다. 인간 스스로는 결코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탓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절망에서 벗어 날수 있을까?

키에르케고르는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절망의 반대말은 희망이 아니라 신앙이다' 신은 죽어 사라져 버려서 의미가 없을 우리의 삶을 비로소 가치 있고 영원하게 만든다.

이점에서 절망은 변증법이다. 절망은 인생을 힘들게 만들지만, 그 의미를 깨우칠 때 삶이 더 깊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처럼 가장 높은 단계인 절망하여 자기 자신이 되려는 절망은 신이라는 절대적 가치와 믿음을 통해서 완성된다. "절망의 반대말은 희망이 아니라 신앙"이다.

< 죽음에 이르는 병>은 우리가 진짜로 행복한 삶을 쫒는지 하는 의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현대의 삶은 속도전이나 돌격전 같은 북쪽 나라의 구호를 떠올리게 한다. 반대로 그 대가로 얻어지는 일상은 가볍고 단순하며 유쾌하다. 키에르케고르 식으로 설명하자면 우리는 삶의 무의미함에서 이중으로 도망치는 셈이다.

경쟁의 무거움은 덧없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물음 자체를 한가하고 쓸데없는 소리로 만들어 버린다. 무겁고도 치열한 삶에서 잠시 비켜 나오면 이번에는 단순하고 가벼운 오락거리가 우리 일상을 가득 채우곤 한다. 어디에도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과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면 행복할 수 있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쾌락은 우리의 마음을 채워 줄 수 있을까?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은 마약을 더 구하는데 있지 않다. 자기 처지를 분명히 파악하여 건강한 삶을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때에야 절망에서 탈출하는 길이 열린다.

키에르케고르는 "믿음은 절망에 대한 안전한 해독제"라고 말한다. 해독제는 자신이 독에 물들어 있음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내 삶을 절망에서 이끌어 낼 "구원"은 어디에 있을까? 기독교 신자인 키에르케고르는 그 답을 믿음에서 찾았다. 우리가 그동안 믿음 생활한 것이 대수롭지 않은 듯하나, 그 믿음이 우리를 마(魔)의 계곡에서 구해냈다.

자료제공 : 아시아미션(http://www.amccm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