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화요일, 2010년 히말라야 힐링미션.


인천공항 - 방콕 - 카투만두
충주터미널에서 2시 20분 인천공항버스 타다.
밤 9시 20분발 타이항공 TG 657 탑승 - 방콕 01시 05분 도착.
방콕 공항에서 약 8시간 대기,
방콕에서 타이항공 TG 319 탑승 - 카투만두 11일 수요일 오후1시 30분 도착.

목사님도 가져 왔어요!?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어 기내에서 모두 담요를 덮고 냉기를 피하였다. 기내에서 준 담요가 없었더라면 초전부터 감기에 걸릴 뻔하다. 방콕의 대합실에 가도 역시 추울 것을 예상하여 생각 깊은 많은 환승객들이 덮고 있던 담요를 챙겨 가방에 넣는다. 동료들이 챙기는 것을 보고 외국 드나들며 한 번도 가져가 보지 않았던 담요가 갑자기 탐이 난다. 나도 가져갈까 말까 한참 망설이다가 똘똘 말아 배낭에 챙겨 넣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 담요를 가져갈 용기가 생겼다. 하나는 모 교수분이 나의 봉사실에 오셨을 때 기내에서 가져 온 담요라며 봉사실에서 사용하라고 주신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것을 가져와도 되는 것이구나 생각하였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기내에서 내 옆 좌석에 앉아 있던 분들이 담요를 챙기며 항공료에 포함된 것이니 가져가도 된다고 말하기에 나도 용기 있게 배낭에 챙겨 넣었다. 검렬시 발각되면 사실을 말하고 다시 돌려주려고 상표를 떼지 않고 그대로 넣었다.

공항 검사대에서 무사히 잘 통과하였는데 문제는 공항 대합실에서 일어났다. 방콕의 공항 대기실은 아열대의 열기를 식히기 위하여 강한 에어컨 바람을 쏘고 있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잠을 청하는 이들이 각자 기내에서 가져온 담요를 꺼내어 덮기에 나도 챙겨온 담요를 꺼내 덮으려 하는데, 먼저 담요를 꺼내 덮은 일행 중 한 분이 내 모습을 보더니

“목사님도 가져 왔어요!”하며 깜짝 놀란다.

그러자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실한 성도분이 남이 들을까봐 조그만 목소리로 입을 가리며 ‘목사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라 한다. 목사가 도적질 한 것을 감춰주기 위한 배려이리라. 그러자 그분이 자기 담요를 더 깊게 덮으며

“선생님도 마찬가지지 선생님은 가져오면 되나!?”

졸지에 나의 직분이 목사에서 선생으로 강등되었고, 목사님은 남들과 다르고 목사님만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그분의 기대를 깨버리고 그분을 실망시키고 말았다. 자기는 혹시 나쁜 짓을 해도 목사님만은 그러지 말았어야 되는 것이었다.

그래, 그 때 유혹을 물리치고 가져오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이 위기를 어떻게 재치 있게 모면할까!

“여러분 지옥 갈 때 나만 혼자 천국 갈까 봐 미안해 가져 왔지요”

모두 한바탕 웃으며 일단 위기는 모면 했지만 내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으랴! 이래 가지고 선교지에 가서 내가 뭘 전한단 말인가!

그래 목사는 성직자이며 동시에 사회 지도자이다. 사회지도층에 있는 자는 남이 다 해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사회적인 책임과 권위가 있는 분들이 도덕과 윤리적으로 본을 보이지 않으면 그 밑에 있는 분들은 그 본을 보고 담력을 얻어 더 악한행위도 양심 없이 행하는 수가 있다. 지도자가 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도자는 경제력과 학식만 갖추어선 안 된다. 탁월한 도덕의식과 윤리의식을 갖춘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인류사회를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속에 장난기가 생긴다. 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싶다. 이왕 선생님으로 강등된 거, 고향도 떠나고 멀리 해외에 나왔으니 요번에는 그냥 목사의 직을 떠나 막 화도 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며 평소에 참고 있던 짜증도 마냥 부려보고 싶다.

분위기 감염

인천공항에서 대기하던 중 식사하기 위해 윈도우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며 밖이 훤히 다 보이니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이 어지럽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갑자기 어지러운 느낌이 들어 잠시 정신이 아찔한 기분이다. 또한 방콕 공항에서는 설사하는 어린아이에게 영향을 받았다. 뭘 잘못 먹었는지 기내에서도 설사를 하여 속옷을 버리더니 또 이번에는 겉옷까지 버릴 정도로 설사를 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도 배가 사르르 아프고 설사 기운이 있어 한참 동안 화장실에 가 앉았다. 환경과 분위기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지배한다. 아픈 사람 앞에 가면 내 인상도 오만상으로 우울해지고, 즐거운 사람을 만나면 괜히 미소가 생긴다. 긍정적인 사람과 있노라면 매사가 긍정적이고 즐겁고, 부정적인 사람을 만나면 매사가 꼬이는 것 같고 불평거리만 보인다.

아무도 없는 새벽 화장실에서 설사를 배설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도 영 소식이 없다. 은은한 음악소리가 화장실 스피커를 통하여 흘러나온다. 고요한 새벽 청결하게 청소해 놓아, 넓고 깨끗한 방콕 공항 화장실은 상큼하게 풍기는 향수와 조용한 클래식 음악소리가 어울려 마치 분위기 좋은 카페의 음악 감상실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언젠가 들었던 귀에 익숙한 음악이지만 곡명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가 들어도 기분 좋게 느껴지는 음악이 먼 나라 외국 사람들도 즐겨 듣는 음악이라는 점이다. 방콕은 많은 여행객들이 지나가는 곳이므로 아마 세계인들이 모두 즐겨듣는 음악이리라. 음악은 국경도 문화도 인종도 초월하여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힘이 있다.

종교의 메시지도 음악처럼 누구에게나 평안한 음성으로 들려와야 한다. 자기 종교인들만의 마인드를 충족시키는 메시지는 음악만도 못한 하나의 도그마일 뿐이다. 그런 도그마는 세계 인류의 평화를 이루기보단 패거리를 이루고 불화를 조장한다. 잘못된 많은 종교인들이 불화의 요인이 되고 있다. 히말라야의 신은 어느 특정 종교인이나 민족만 입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모든 성품의 사람들을 다 포용하며 받아들이실 것이다. 거기 깊은 산골짜기엔 비록 가난하게 살지만 그렇게 훈련된 순수하고 너그러운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그 분들을 빨리 만나보고 싶다. 우리의 히말라야 트레킹은 단순히 아름다운 산천이나 구경하는 여행이 목적이 아니고 사람을 만나는 게 목적이다. 병원도 약국도 없는 척박한 고산지대의 부족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가가 우리의 관심사며 혹시 몸이 아파도 치료받을 수 없어 고통당하는 분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그들을 위로를 해 주고자 하는 점이 금번 히말라야 트레킹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 분들은 우리가 만나야 할 가장 귀중한 분들이다. 이는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어떠한 댓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며 누군가 후원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 자비량으로 하는 자원봉사이다. 이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동안 우리의 인생을 축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조그마한 감사의 표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