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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8월 13일 금요일,
잠깐 맑았다 가끔 비, 구름.
카투만두(Kathmandu) - 둔체(Dhunche, 2120m) - 샤프루벤시(Syafrubensi, 1420m)
샤프루벤시(Syafrubensi)를 향하여
새벽 5시 50분 렌터카로 티베트 게스트 하우스 출발.
전시출동명령을 수행하는 군인들처럼 우린 새벽 4시가 좀 넘어 일어나 각자 짐을 챙겼다. 아무도 더 자고 싶어 하던가 좀 늦게 출발하자는 말도 없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샤프루벤시(Syafrubensi)다. 그곳까지는 찻길이 있어 차를 타고 갈 수 있지만 내일부터 가는 길은 차가 다닐 수 없는 산악길이라 모든 짐을 각자 지고 가던가 포터의 도움을 받아야 되므로, 최대한으로 짐을 줄여 꼭 필요한 짐만 챙기고 남은 짐을 돌아올 때까지 호텔에 맡겼다.
목적지를 향하여 승합차로 약 2시간 정도 달려가니 새벽안개가 걷히며 멀리 병풍처럼 들어선 히말라야 산군이 위용을 드러낸다. 구름이 휘감다 물러서는 파노라마는 사진에서 본 경치처럼 가슴이 후련하도록 웅장하게 확트인 전망이다. 산간지역 비탈길 도로변에 아슬아슬하게 위치한 작은 마을 라니포우와(Ranipouwa, 2100m)의 노변 음식점에서 아침식사하다. 갈 길이 멀어 식사 후 곧 승차하여 또 다시 산길을 달려 약 3시간 정도 가니 깔라까스탄 마을이다. 아침을 간단히 먹어서인지 벌써 시장기가 돈다. 여기서도 여행객들을 기다리는 노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지체하지 않고 다시 차를 타고 산길을 달려 올라가다. 카투만두에서 오늘의 목적지 샤프루벤시(Syafrubensi)까지 빨리 가야 자동차로 10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가능한 한 빨리 가서 푹 쉬어야 내일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에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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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흙탕에 빠진 승합차를 보내고 트럭을 잡아타다 |
지금까지는 별 무리 없이 잘 왔는데 깔라까스탄 마을 지나고부터는 장마로 인해 여기저기 길이 파헤쳐져 있다. 점심 후 약 30분 정도 달렸을까 진흙길을 요리조리 잘 피하며 달리던 우리를 태운 차가 결국 진흙탕에 빠졌다. 이곳까지 오면서 길에 빠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 운전수가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포기한다. 하는 수 없이 차에서 짐을 내리고 차를 되돌려 보낼 수밖에! 아무도 없는 산 중턱의 도로에 우리 일행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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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엔 트럭도 갈 수 없어 트럭에서 내려 무너진 길을 걸어 올라가다 |
그러나 왠지 모르게 우리 모두는 아무 염려 없이 그냥 차를 갈아타려고 내린 사람들처럼 마음이 평안하다. 길에 서성이며 몇 분이 지나니 바퀴가 큰 대형 트럭이 흙탕길에 빠지지 않고 유유히 우리 앞에 다가온다. 산간마을에 곡식과 부식을 나르는 차다. 운전수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화물칸에 타게 한다. 우리 일행은 다행으로 생각하고 화물칸 곡식더미에 올라탔다. 트럭이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달리자 의자도 없는 화물칸에 짐처럼 실린 우리 몸이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쳤다 하며 요란하게 앞뒤 자우로 흔들린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팔이나 다리가 부딪쳐 다칠 것 같다. 그러나 처음 이런 차를 타보는 초등학생 광이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즐겁다고 좋아한다. 트럭 뒤로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지면서도 너무 험한 산길이라 긴장감에 빠지다. 트럭에 실은 짐들이 심하게 요동하며 나의 허리를 강타한다. 허리가 약한 나에겐 치명적으로 위험한 순간이다. 나는 옆의 곡식이 든 짐 보따리를 단단히 잡고 몸의 중심을 잡으며 할 수 있는 한 허리에 충격이 덜 가도록 긴장을 하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트럭이 멈춰 서더니 더 이상 가지 못하겠단다. 두 번째로 갈아탄 대형 트럭도 결국 무너진 길 앞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비가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산이 무너져 도로를 완전히 쓸어버리고 말았다. 도로는 흔적도 없이 보이지 않고 무너진 계곡에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에 의하여 조그만 오솔길만 겨우 생겼다. 이런 길은 차는커녕 구루마도 지나갈 수 없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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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너진 좁은 길을 한 참 걸어가니 덜 무너진 도로가 나오다 |
아직 목적지까지 약 170km나 남았다. 이제 겨우 반 온 셈이다. 그냥 길에서 지체하며 서 있을 수가 없다. 우리 일행은 무작정 앞서 가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한 사람씩 지날 수 있는 무너진 길을 간신히 넘어가니 다행히도 파손되지 않은 평평한 도로가 나오더니 또 다시 무너진 길이 나온다.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하면서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은 각오하고 왔다는 듯이 아무 불평이나 염려도 하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하여 걷는다. 어디서 이런 평온한 마음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이런 변을 당할 것을 예상하지 못한 한 자매님은 등산화 대신 고무신을 신고 왔다. 그냥 차만 타고 있으면 목적지에 당도할 것으로 생각하고 편한 고무신을 신은 거였다. 맨발에 고무신만 신고 배낭을 메고 무너진 산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마치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 신발도 제대로 챙겨 신지 못하고 고무신 바람에 피신하는 피난민의 모습 같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너무 기가 막힌 일이 연달아 일어나니 일행 모두 아무 말도 없이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침묵하며 걸어갈 뿐이다.
약 30분 정도 걸어가니 멀리 자욱한 안개 속에 포클레인이 무너진 길을 보수하는 모습이 보인다. 포클레인 기사에게 물어보니 조금만 더 걸어가면 마을이 나타나고 그 마을에 가면 반대편에서 온 버스가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준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무작정 앞을 향하여만 달려온 자들에게 믿음대로 구원의 손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신발에 묻은 진흙을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에 대충 씻고 작업 중인 포클레인을 피하여 약 10분 정도 걸어가니 운전기사의 말대로 멀리 주막이 보이고 그 뒤로 집들이 한두 채 보이기 시작한다. 아! 그리고 그 뒤에 버스도 희미하게 보이는 게 아닌가!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버스를 향하여 달려갔다. 이 버스는 우리가 아침에 출발한 카투만두를 향하여 가는 버스인데 길이 끊어져 가지 못하고 다시 반대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길이 끊어졌다는 소식이 터미널에 전해져 이제 더 이상 다른 버스가 오지 않을 것이며 이 버스가 마지막 버스라고. 아마 우리가 10분만 늦게 도착했어도 타지 못할 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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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스를 만나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다 |
오고 가던 사람들이 한 차에 타고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느라 버스가 만원이다. 1시간 정도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달려가니 둔체(Dhunche)에 도착하다. 이곳은 히말라야 산군으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통행증을 발급하는 곳이다. 각자 사진을 제출하고 서류를 작성하여 여권을 만들듯이 통행증을 만들다. 버스에 탔던 모든 외국인들이 약 30분 정도 걸려 통행증을 발급받고 세 번째로 다시 버스를 타고 목적지를 향하여 가다. 버스를 타면 평안하게 갈 것이라 생각하였더니 걸어가는 것 보다 더 불안하다. 꼬불꼬불하고 가끔가다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도 한 좁은 비포장 고산길 아래는 천길 만길 낭떠러지이다. 유리창 밖 낭떠러지 밑으로 흐르는 계곡을 내려다보니 현기증이 난다. 운전기사가 조금만 실수하면 곧 차가 굴러 계곡 아래로 떨러질 판이다. 눈을 감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기도할 수밖에. 솔직히 말해 나는 지금 죽어도 그리 원통하지 않은 나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철없이 곤하게 잠에 떨어진 10살짜리 광이는 아직 더 살아야 한다. 그 아이를 위해서도 차가 구르면 안 된다. 오기 싫어하는 아이, 그 어미가 말을 태워준다고 달래서 여기까지 데리고 왔는데 말도 못타보고 어린나이에 큰 봉변을 당한다면 이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모두 각자 눈을 감고 기도하다. 얼마 후 눈을 뜨니 어느 덧 흔들리는 버스밖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밤하늘 검은 산 위에 초승달이 떠 산뜻한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별이 몇 개 더 있다. 좋은 예감이 든다. 티 없이 맑고 검은 산위에 떠 있는 하현달이 그림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간다. 환상이면 어떻고 생시이면 어떤가! 구태여 구별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도 생시인지 꿈인지 모른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이다. 좋은 꿈을 꾸면 좋은 현실을 산다. 여행은 새로운 꿈을 꾸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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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둔체에 도착하여 히말라야 산군에 입성하는 통행증 발급받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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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스에서 내려다 보니 무너져 가는 길 옆으로 천길 낭떨어지가 가슴을 조이다 - |
여행이란 무엇인가?
김휴림은 그의 여행수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떠나고 싶어 훌쩍 떠나는 것을 모두 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큰 범주의 여행을 생각한다면 이런 것도 여행이다. 하지만 소리를 낸다고 모두 음악이라 할 수 없듯이, 어디론가 떠난다고 모두 여행이라 할 수는 없다. 작은 범주의 여행, 즉 구체적인 의미의 여행은 어느 정도 준비된 사람이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떠나는 여행을 말한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여행도 바로 이 작은 의미의 여행에 대해서다. 이 작은 의미의 여행이야말로 사람의 정서를 풍요롭게 해주고 인내심과 의지력을 키워주는 참 여행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은 의미의 여행은 도대체 어떤 행위를 말하는 것일까? 이 여행이란 일상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체험하는 일이라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일상을 벗어난다’는 의미는 ‘집’과 ‘일’을 벗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출장으로 지방이나 해외에 가는 것은 사실 여행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다른 세상’이란 일상을 벗어난 다른 환경을 의미한다. 즉, 다른 곳의 자연과 풍경 그리고 역사와 문화 등이 바로 다른 환경에 해당된다. 그리고 ‘체험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렇게 정리한 여행의 의미를 자세하게 다시 풀어 써보자. 여행이란 집과 일을 벗어나 새로운 자연과 풍경 그리고 역사와 문화를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우는 것이다.
아직은 막연하게 느껴지겠지만 앞에서 말한 내용이 바로 진정한 여행의 의미다. 그러므로 여름철에 해수욕장에 가서 며칠 신나게 해수욕을 즐기고 온다거나, 친구들과 강촌쯤 가서 1박2일로 놀다 오는 것은 여행이라 할 수 없다. 이는 단순히 유희나 여가를 위한 나들이일 뿐이지 무언가를 체험하기 위한 여행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이 모든 것들을 다 여행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앞의 경우는 여행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노는 것 혹은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니 엄밀한 의미에서 여행은 아닌 것이다. 여행은 놀거나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단순히 유희를 위한 트레킹을 위하여 이곳을 찾지 않았다. 우리에겐 분명한 목표가 있다. 우리의 목적은 히말라야의 경관을 보기보다도 그 속에 묻혀 사는 .소박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함이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도 갈 수 없고 약이 필요해도 약을 살 수 없는 척박한 고산지대! 티베트인들이 고향을 잃고 망명 와서 오랫동안 외롭게 살고 있는 산 속 부족마을을 방문하여 어쩌면 모두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오랫동안 고통 속에서 살아왔을 그들을 만나 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들의 아픈 부분을 치료해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 우리의 소박한 꿈이다. 김휴림의 정의에 의하면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고 떠난 우리의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라 말할 수 있겠다.
고개가 아프도록 뒤를 돌아보며 그림같이 아름다운 초승달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창문 밖을 쳐다보다 앞을 바라보니 차창너머 멀리 산 아래 희미한 전등불빛이 보인다. 저기가 바로 샤프루벤시! 드디어 우린 해냈다. 우리 앞에 펼쳐진 험한 광야(장애물)를 우린 아무 불평하지 않고 믿음으로 통과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 광야에 도달한 후 불평불만 하다가 40일에 지날 수 있는 길을 40년간 방황하지 않았는가!
아! 히말라야의 신은 우리를 거부하지 않으셨고, 우리는 제 1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였다. 히말라야 초입의 통과의례는 정말 상상하지 못한 위험한 길이었다. 가이더 조차도 예견하지 못하였으며 아무도 예고하지 않은 험악하게 무너진 길이었다. 우리는 겁도 없이, 철부지처럼, 아무 두려움도 없이, 그저 이 거대한 산을 찾아왔다. 무식하면 겁이 없다고 했던가. 우리는 정말 히말라야 산군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초반부터 히말라야가 우리에게 엄하게 경고하는 듯하다. 결코 이곳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라고! 그러나 이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신은 우리를 용납하셨다. 그분은 오늘 밤 우리를 평안으로 인도하시고 예정대로 내일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을 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다.
자료제공 : 아시아미션(http://www.amccm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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