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8월 15일, 주일,

하루 종일 비오다 개였다 반복함


라마호텔 - 랑탕빌리지

제철이 지난 줄도 모르고 밤새도록 쏟아지던 쓸모없는 장맛비가 창문 밖 처마 밑을 치며 깊은 산속 송판으로 엉성하게 지은 롯지의 습기 찬 침실을 더욱 습하고 음산하게 만들더니 아침 6시가 되어도 그치지 않는다. 아직 대원들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혼자 치약을 짜들고 눈을 비비며, 힘없이 떨어지는 아침 비를 맞으며, 따로 떨어져 있는 아래채의 주방 겸 다이닝룸에 가니 부지런한 주인아저씨가 벌써 일어나 아궁이에 장작불을 피우고 짜이를 끓이기 위해 양은 주전자를 올려놓았다. 우리나라처럼 부엌을 방과 구별하여 따로 만들지 않고 거실 안에 만들어 놓아 그냥 거실에서 불을 때어 요리를 하니 요리하기도 편하고 난로의 효과가 있어 실내 공기가 훈훈하여 별도로 난방 설치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 마치 우리네 아파트 거실에 주방시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편리하다. 부엌을 실내로 끌어 들여온 서양의 키친문화가 이들에게서부터 시작 된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개인 주택을 지을 기회가 생긴다면 이들처럼 부엌을 거실로 끌어들여야겠다. 차가운 새벽공기로 인해 추운 몸을 데우려고 난로 불을 좀 쬐다가 빗줄기가 가늘어진 틈을 타 산에서 연결하여 흘러오게 만든 급수대로 나가 양치질을 마무리하다.

오늘은 금번 ‘힐링미션’의 봉사처인 랑탕마을을 가는 날이다. 이곳을 가기 위해 이틀 전 카투만두 시내를 출발하여 무너진 험한 산길을 이틀이나 걸려 고생하여 올라왔고, 오늘 다시 하루 종일 트레킹 하여 올라가야 한다. 오늘은 주일이어서 조촐하지만 새벽에 대원들이 한 방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주일헌금을 드렸다. 헌금은 오늘 처음 만나는 불쌍한 이에게 모두 기부하기로 하다. 오전 6시 30분에 식사하고 7시에 출발하기로 예정되었지만,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오는 바람에 대원들은 예정시간에 출발하지 못할 것으로 여기고 하루 종일 무얼 할까 궁리중이다. 그러나 나는 마치 예언자처럼, 7시가 되면 비가 그칠 것이라 말하고, 빨리 아침식사를 서둘러 먹게 하였다. 정말 7시가 되니 비가 그쳤다. 밤새도록 구중중하게 내리던 비가 그나마 나의 체면을 살려 주었다.


불청객의 불만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어린 광이를 말에 태워 앞서 보내고 우린 뒤따라 걸었다. 어제처럼 그냥 걷고 또 걸었다. 어젯밤 한잠도 못잔 탓인지 골이 아프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 어린아이와 같이 마냥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히말라야를 향하여 왔는데, 어제 밤 한 불청객이 우리의 마음을 너무 상하게 하였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길 술중독자요, 사채업자이며, 여행중독자라 하였다. 자랑스러운 이력이라 생각하는지 아니면 미리 방어태세로 말하는 건지 자신을 그렇게 밝히고 수작을 걸기 시작하였다. 그를 소개한 라메쉬에 의하면 49세나 된 그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술과 담배와 여행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며 그의 소개가 맞는다고 거들어 준다. 그런 사람의 경우 노름에도 중독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노름은 하는지 안하는지 확인한바 없다. 이틀 전 카투만두에서 처음 그를 만나고 우리 일행은 혼자 외롭게 산다는 그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긍휼히 여기며 차도 대접하고 식사도 대접하며 따뜻하게 대하였다. 그러나 어제 밤 식당에서 만난 그는 배은망덕하게도 우리의 행위를 총체적으로 부정하고 비판하였다. 술을 먹기 전에는 공손하고 착하게 보이는 듯하더니, 술이 들어가니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우리의 여행하는 모습을 그는 교회의 헌금을 흥청망청 쓰며 놀러나 다니는 잘못된 사람들로 평가하였다. 한국에도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외국까지 다니는 이유는 선교라는 명목으로 ‘화려한 여행’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 주장하였다. 우리와 같은 이런 기독교인들 때문에 자기는 하나님은 믿지만 교회를 안 나간단다. 실은 자기 아버지가 늦게 교회를 개척하여 70이 넘어 목회생활을 하시지만 교인들 하는 꼬락서니가 보기 싫어 자기는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고! 10살짜리 광이가 걸어 올라가기엔 너무 험하고 힘든 산길이라 조랑말을 빌려 태워 가는 것도 그는 시종일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았던 거였다. 자기 아들이라면 걸어서 올라가게 하지 말을 태우지 않는다고! 광이가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대견스러워 우리 일행은 사진을 찍어주며 격려해 주고 있을 때 그는 엄청난 비판의식과 부정적인 생각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목사와 성도들이 헌금으로 저런 짓거리를 하고 다닌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시종일관 인생에서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건 자기 경험에 비추어도 그렇고, 돈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이렇게 말을 타고 호화판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속마음을 털어내며 우리를 신경질 적으로 대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에 반박하여,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그리고 또한 우리는 돈 많은 부자가 아니라 하였다. 그러자 그는 즉시 반박하며

“부자가 아니면 이렇게 다닐 수 없다. 당신들은 거짓말 하는 거다. 당신들은 부자다!”

그는 눈에 쌍심지를 켜며 성을 낸다. 그는 계속 우리의 말을 위선으로 받아들이고 이루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모욕적인 발언을 퍼부었다. 더 이상 말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판단하고 그만 헤어져 각자 방으로 들어갔지만 그의 오만불손한 행동이 너무 괘씸하여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 대원들이 혼자 온 사람이라고 이틀 동안 있는 정 없는 정 다해 잘 대해 준 것을 생각하니 그의 예의 없는 행동이 더욱 괘씸한 생각이 든다. 그를 데리고 온 라메쉬도 역시 그의 말을 듣고 너무 괘씸하여 지난 밤 밤새도록 뒤척이며 한숨도 못 잤다고! 서운한 일이 있다하더라도 어떻게 본인 앞에서 그렇게 대놓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거다. 라메쉬는 한국말을 잘 하는 바람에 모든 말을 잘 알아들었다.

히말라야 산군의 한 자락인 아름다운 랑탕 계곡을 걸으며 트레킹에만 전념하여야 할 터인데, 지난 밤 잠을 설치고 그리고 그가 한 말이 또 생각나 길을 걸으면서도 골이 아프다. 그러나 계속 걷다보니 히말라야의 신선한 공기가 기분을 전환시켜 준다. 수림의 신선한 허브 향은 치료의 효과도 대단한가 보다. 얼마쯤 걷다 보니 아프던 골이 한결 맑아졌다. 맑은 정신으로 내 자신을 살펴본다. 이 좋은 아침 내가 왜 이리 흥분하고 기분나빠하고 서운해 하는 걸까? 내가 하는 일이 정당하고 좋은 일이라면 상대편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기분나빠할 이유가 없는 게 아닌가. 수양이 부족하여 그를 이해시키지 못하고 스스로 피해망상의 올무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 산은 말없이 묵묵히 우리를 사랑스런 마음으로 품고 맞이하는데, 난 왜 저 웅대하고 넉넉한 산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이리 스스로 불쾌감의 늪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걸까.

조용히 묵상하며 좁은 등산로를 한 걸음 한걸음 계속 걸었다. 가끔 심호흡을 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큰 사랑을 생각해 본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십자가에 매어 달은 원수들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셨던 주님의 마음은 나로선 정말 흉내도 못 낼 어마어마한 아가페적 사랑이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을 내가 진정 용서할 수 있을까? 나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사람을 내가 정말 예수님처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작은 벽에 부딪치고도 오르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마음을 가다듬고 걷고 또 걸었다. 무거운 십자가를 어깨에 메시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지도록 심한 고통을 받으시며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던 주님을 생각하며 아무 말 없이 혼자 걷고 또 걸었다. 얼마큼 걷다 보니 하찮은 일에 억눌려 있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평정을 이루기 시작한다. 주님처럼 나를 해치는 원수까지 사랑 할 수 있을지는 자신하지 못하지만, 의무적으로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새들도 날지 않고 안개만이 자욱한 산길을, 마음을 가다듬고 계속해서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또 걸었다. 땀이 내 몸에서 비 오듯 쏟아지며 마음의 묵은 때까지 다 씻어지는 기분이다. 잡생각으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맑고 신선하고 은은한 숲속의 향기가 내 코를 스쳐가며 기분이 상쾌해진다. 용서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동시에 가슴 속으로 뿌듯한 행복감이 젖어든다. 바로 그거다, 용서하는 마음이 내 마음을 이렇게 행복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생각을 바꾸니 긴장도 풀리고 너그러운 마음이 생긴다. 하염없이 높고 거대한 산허리를 바라보며 저 산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고 받아들이고 싶다. 평온한 마음을 되찾으며 지난 밤 그가 했던 억지주장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본다. 그를 미워해야만 할 일이 아니다. 그의 생각은 단지 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그와 같은 생각을 그가 대신 말한 것뿐일 수도 있다. 아마 그가 말한 것처럼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지금 행하고 있는 ‘힐링 미션’을 그렇게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생각을 사실대로 전하여 준 그를 미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맙게 받아들여야 할 게 아닌가!

히말라야를 오게 된 동기

남들은 평생 여행 한 번 가기도 힘든 인생을 사는데, 비행기를 타고 그 먼 외국까지 가서 말까지 타고 여행을 다닌다는 말은 어찌 보면 그가 말한 대로 ‘호화판 여행’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는 대화중 무조건 공격적이며 부정적인 태도로 말하여 우리의 마음을 거슬리게 하였을 뿐이지, 그의 말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우리의 입장과 처지를 그리고 우리의 비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그렇게 이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날 서울의 관악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히말라야 다녀 온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히말라야 다녀 온 감격이 아직도 식지 않은 듯 ‘평생에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그 웅장하고 엄숙한 히말라야의 모습을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그 말을 듣고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경제적인 면이나 이미 중년의 나이를 넘어서고 있는 나의 체력으론 감히 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경비가 약 5백만 원 정도 든다는데 어떻게 나의 형편으로 거길 갈 계획을 쉽게 할 수가 있으며, 베이스캠프까지만 가더라도 고산증이 우려되는 4천 미터 이상이나 되는 높은 곳인데, 나의 체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 후 몇 년이 지나고, 어느 날 우연찮게 한국에 와서 일하는 네팔인 노동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중에 한국에 노동자로 왔다가 목사안수를 받은 네팔의 게시목사가 나에게 침과 뜸을 배우러 오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을 배워 선교하는 데 도구로 쓰려고 매 주일마다 와서 열심히 배웠다. 그를 통하여 다른 네팔 친구들도 만나게 되고 그들과 자주 만나다가 자연스럽게 네팔에 갈 궁리를 하게 되었다. 히말라야 산속 마을에 가면 아픈 이들이 많이 있으니 꼭 함께 가서 봉사하자는 네팔친구들도 생겨났다. 자기가 가이드를 하면 경비도 별로 들지 않게 가는 방법이 있다고 함께 가자는 친구도 생겨났다. 게시목사는 자기가 내년에 포카라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침뜸 봉사실을 만들 예정인데 내가 먼저 가서 붐 조성을 해 달라고 부탁한다. 네팔인 들은 힌두교와 불교의 전통에 오랫동안 젖어 있어서 전도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교회 내에 의료봉사실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을 초청하면 쉽게 모을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네팔 사람들은 아직 침과 뜸을 잘 모르고 접해 본 사람이 거의 없어서 내가 먼저 가서 침뜸으로 환자들을 치료해 주면, 내년에 자기가 네팔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의료봉사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니 내가 먼저 자기 마을에 가서 의료봉사를 좀 해 달라고 신신 당부한다.

정말 내가 히말라야를 갈 수 있을까! 몇 몇 선교대원들이 ‘히말라야 힐링미션’을 놓고 기도하기로 하였다. 1년 후에 가기로 약속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드시 가게 될 것으로 믿고 매주 금요일 모여 가까운 산을 오르며 트레킹 연습도 하고 매월 일정한 금액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않게 우리의 히말라야 일정이 6개월이나 앞당겨 졌다. 내 처지를 안 어느 분이 치유목회사역을 돕기 위하여 나의 여비를 후원하시겠는 거였다. 평상시에 늘 선교에 관심을 갖고 계셨던 신실하신 분이 불쌍한 이들을 위하여 치유사역을 나가는 데 후원하고 싶었던 거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은혜의 사건이 발생하였고, 우리의 히말라야 힐링미션의 꿈은 예정보다 빠르게 진행 되었다. 또한 우리는 5백만 원의 절반 정도의 가격에 현지인 자원봉사자의 성실한 안내를 받으며 싸고 아주 안전하게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염세주의자의 모습

남들이 하는 일을 무조건 자기 식으로만 이해하고 해석하여선 안 된다. 몇 해 전 설악산에 갔더니 평일임에도 수많은 인파가 단풍구경은 와서 차가 밀리고 복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것을 바라 본 일행 중 한 분이 “먹고 할 일 없어 이런데 와서 돌아다니는 사람들 좀 보라”고 말하는 이가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분은 먹고 할 일 없어 왔는지 모르지만, 꼭 그렇게 할 일 없는 사람이 등산을 다니거나 여행을 다니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자기 자리에서 일하던 분들이 휴가를 내어 잠시 머리도 식힐 겸 등산도 가고 골프도 치러 간다. 어떤 이는 여가를 선용하여 자전거 하이킹을 가는 이도 있고, 올레길 트레킹을 가는 이도 있으며 수영을 다니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먼 동해안 까지 회를 먹으러 가는 이도 있다. 이들 모두는 할 일이 없어 다니는 이들이 아니고 자기 나름대로 더욱 열심히 살기위하여, 휴식을 통한 에너지를 재충전 하기위한 모습들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벌기도 잘한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므로 휴식과 안정이 필요하다. 매사를 자기 입장과 수준으로만 생각하고 해석하던가, 자기가 못하는 것을 남이 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만한 자의 태도이며 염세주의자의 모습이다.


왜 평생 여행 한 번 가기도 힘든 인생을 사는가!

그런 인생은 자기가 스스로 인생을 그렇게 만들어서 그렇다. 정말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지금보다 좀 더 규모 있는 생활을 하고, 장기간의 계획을 세워서라도 여행을 갈 수 있다. 몇 년 전 거지 아저씨를 교회에 모셔다 함께 산 적이 있다. 그분을 돌아가실 때까지 돌보며 함께 지내려 하였지만, 그분은 3년 동안 잘 참고 지내시다가 다시 배낭을 메고 나가셨다. 이유인즉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싶다는 거였다. 배낭하나만 메면 우리나라 어디고 여행 다니며 살 수 있는데 매일 교회에 붙들려 매여 사는 게 지겨워 견딜 수가 없었던 거였다. 며칠 전 이제 벌써 70세나 되신 그분이 말쑥한 차림에 배낭을 메고 호암지 연못을 향하여 걷는 모습을 운전을 하다가 보았다. 이렇게 거지 할아버지도 여행을 다니며 자기 인생 재미나게 사는데, 평생 가고 싶은 여행 한 번도 가보지 못하며 남 여행 다니는 것을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지만도 못한 인생을 사는 거다. 살기위해서 버는 거지, 벌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의 히말라야 여행을 부정적으로만 해석한 불청객도 그렇다. 자기 자신도 히말라야 트레킹을 올 정도면 대단한 경비를 들여 온 사람인데, 똑 같은 입장에서 자기 자신은 나무라지 않고, 왜 유독 우리만 나쁜 사람들로 취급하는가. 우리는 교인들이기 때문에 이런데 오면 안 된단 말인가!

얼마 전 전립선염으로 고생하는 분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분은 약 1년 전부터 육신의 고통으로 나를 알게 된 분이다. 그분은 부인이 요즈음 너무 고생이 심하다며 안쓰러워하신다. 그분은 큰 회사에서 중역으로 퇴임 하셨고, 고가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아파트도 있고, 퇴직연금도 받기 때문에 노년에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는 분이다. 그런데 그분이야말로 부인과 함께 평생 한번 여행을 다녀 본 적이 없단다. 이유인즉, 젊어서는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중년이 되어서는 자녀들 결혼시키느라 정신이 없었고, 지금은 결혼한 삼남매 자녀들이 번갈아 손자들을 떠맡기는 바람에 정신없이 바쁘단다. 요즈음 1-2년 사이에 부인이 부쩍 늙었다며 큰 걱정이시다. 큰아들이 아이를 데리고 집에 들어와 3년 동안 살면서 어미에게 아이를 맡기고 두 부부가 맞벌이를 나가더니, 요즈음엔 둘째가 들어와 아이를 맞기고 맞벌이를 나가는 데, 늙은 할머니가 손자까지 포함하여 다섯 명의 식구 뒤치다꺼리를 하느라고 어깨가 쑤시고 몸이 아파 입원할 지경이라고! 그런데 막내딸이 다음엔 자기 차례라고 둘째 오빠가 아이 데리고 나가면 자기가 들어오겠다는데, 딸이야 말로 친정엄마가 돌봐줘야 되지 않겠느냐며, 앞으로 어떻게 견디어 낼지 너무 힘들다고 고민이시다.

아이들 다 키워 출가 시키고, 정년퇴임 하게 되면 여행도 다니고 행복하게 살자는 미래의 꿈은 모두 사라지고, 겹겹이 일만 쌓여 요즈음은 젊었을 때 자기자식 키우는 것보다 더 힘들고 고되다는 거다. 우리 부모들이 그렇게 살아 주셨고, 내 나이의 세대도 그렇게 사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었고, 그러한 아름다운 가족공동체 정신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기 좋은 나라로 발전한 점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국의 정겨운 가족공동체 모습이다. 이러한 좋은 면을 우리가 계속 발전시켜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에 여행한번 다녀보지 못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은 잘 사는 모습이 아니다.

왜 인생을 사는가. 벌기 위해서 사는가? 아니면 살기 위해서 버는가? 그분이 후자가 맞는다고 생각한다면 새로 인생 설계를 해야 할 것이다. 인생은 남이 살아 주는 게 아니다. 내가 살다, 내가 가는 거다. 오늘 행복을 살아내지 못하고 내일 행복을 꿈꾸는 이에게 행복은 없다. 내일은 어쩌면 더 큰 고통이 우릴 기다릴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내일보다 오늘 지금 여기(Now and Here)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 행복을 이루지 못하는 이는 내일도 행복이 없다.


해외봉사를 가는 이유

어제 밤 식당에서 불청객이 갑자기 화포를 내 쏘는 바람에 변명할 여지도 없이 흥분하여 다른 말만 하다가 헤어졌지만 우리가 해외 침뜸의료봉사를 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와 목표가 있다.

첫째, 국내에서는 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청객의 말대로 우리도 누구보다 국내의 가난하게 살며 몸이 불편하신 노인 분들을 먼저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뜸은 만성병 환자들이나 노인 분들에게 경제적 부담도 없이 큰 보양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각 교회에 보급하여, 젊은 교인들이 교회내의 노인 분들에게 뜸을 떠 드린다면, 교회에 생기가 돌고 훈훈한 정이 넘쳐, 침체되어 가는 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뜸에 대해서 좀 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국내의 병원시설이 비미한 시골지역은 물론이고, 서울의 중심가에서도 뜸 봉사를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법상 아무나 뜸을 떠 줄 수가 없어 국내에서는 봉사를 할 수 없다. 하여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 좋은 면역요법을 외국인들에게만 서비스 해 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도 받을 만한 사람들은 다 받는다. 국회에도, 감사원에도, 각 유명한 방송사에도 뜸 봉사처가 운영되고 있어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층 분들이 뜸 봉사를 받고 있다. 힘없는 자들만 봉사하지 못하고, 그리고 힘없는 분들만 봉사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사실을 당국은 잘 파악하여 의료혜택 실수요자의 입장에서 법이 개정되도록, 국민이 원하면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의료법의 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효과가 탁월하다는 점이다.

오십 이상 된 분들은 누구나 몸의 한두 군데 아픈 곳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가난하고 척박한 나라에 사는 분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뜸을 떠 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척박한 환경에 사는 원주민들은 간단한 침뜸요법을 받고도 금세 몸이 회복되어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의약품처럼 습관성이 없으며, 몸에 면역력을 높여 자연치유력을 증대시켜 주므로 평소에 약을 써보지 않은 원주민들은 한번만 침뜸을 받아도 오랫동안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임상현장에서 많이 경험 하게 된다.

셋째는, 선교활동에 좋은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많은 선교사를 외국에 파송하여 많은 선교사들이 외국에 진출하였지만, 실제로 선교현장에 나가보면 선교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언어불통이며 사람 모으는 일이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는 선교사라도 선교현장에 가면 영어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선교현장의 원주민들은 그들이 쓰는 부족언어가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언어를 소통하며 산다. 선교사들이 부족언어를 배워 선교하기 까지는 매우 긴 시간과 힘든 과정이 필요하다. 설령 현지 언어를 습득하였다 하더라도 실제로 전도하려고 원주민들에게 접근하면, 사람들을 모으기 위하여 또 다시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은 국내에서 전도를 해본 사람은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라고 전도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의료봉사를 해 주면 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갖고 쉽게 몰려온다. 그렇게 되면 언어가 필요 없이도 그들과 쉽게 교제를 이루며 친해질 수 있다. 그런 경우 선교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된다. 원주민들의 의지와 노력에 의하여 그들 스스로 의료봉사실을 짓게 되고, 그리고 봉사를 시작하게 되면 자연히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를 드리고 시작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선교의 장이 마련된다. 침뜸선교는 큰 장비도 필요 없고, 비용도 많이 들지 않고, 뜸뜨는 방법과 경락경혈학 책을 볼 줄만 알면 보양뜸 몇 자리 정도는 누구나 쉽게 배워 해 줄 수 있다.

넷째는, 선교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함이다.

성도의 사명은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하는 것이다(막6:15). 많은 교인들이 교회에 모이고 회중을 이루어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듣는 것은 자신의 성결 된 삶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매번 그런 신앙행위만 반복하기 위하여 교회가 존재한다면 복음의 참 의미는 사라지게 된다. 복음은 앉아서 배우기만 하는 게 아니고, 나가서 복된 소식을 전파해야 한다. 감리교를 창시한 웨슬리 목사는 ‘세계는 나의 교구다’고 외치며 말을 타고 하루에도 수백리 길을 달리며 복음을 전하였다. 이미 믿은 사람에게 자꾸 믿으라고 반복하여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믿은 사람들은 더 이상 앉은뱅이처럼 교회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실정에서 보면 기독교인이 상당히 많은 것 같지만, 아직 전 세계 인구의 겨우 3%만이 기독교인이다. 아주 매우 미미한 정도다. 우리가 가는 히말라야 지역의 사람들 역시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고, 한 번도 예수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목사라는 용어도 생소하여 목사를 설명하기 위하여 몽크(불교의 스님)라고 말해야 이해한다. 예수를 모르고 성경을 모르는 세계 총인구 중 97%의 사람들이 지구촌 오지마다 떼를 이루어 살고 있다. 예수가 진정 생명의 복된 소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예수의 지상명령임을 믿는 다면, 이를 간과하고 가만히 앉아서 설교만 들으며 나만 복 받겠다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아니겠는가!

다섯째, 이름보다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다. 예수쟁이들은 예수를 믿으러 열심히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의 정신이 부족하다고! 맞는 말이다.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이다. 예수의 정신은 사랑과 희생이다. 그것이 없이 단순히 이름만 믿으면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치는 구원론 자들의 구호는 국민의 의식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지금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불신자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구호보다는 예수의 사랑과 희생을 몸소 실천하는 편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우리 ‘힐링 미션’ 팀은 비록 미약하고 어설프고 숙련되지 못한 순례자들이지만 힘닿는데 까지 예수의 정신을 실천해 보고자 길을 떠났다.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루도록 내 마음을 괴롭힌 염세주의자를 인간적으론 미워하지 않는다. 그의 말은 그분 혼자만의 말이 아니고 많은 비그리스도인들이 그분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점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계속 내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선교한다고 다니며 ‘호화판 여행자들’처럼 보여 조금이라도 현지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행동을 한다면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처지와 형편과 생각도 알아보지 않고, 그런 염세주의자의 태도로 우리의 앞길을 훼방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책임자로서, 영적으로 연약하고 순진한 우리 대원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그런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봉사의 기쁨과 베너핏(benefit)

라마호텔을 떠나 약 1시간 정도 걸어 조그만 리버사이드 호텔(롯지)에 도착하였다. 깊은 계곡을 흐르는 가파른 강줄기 옆에 위치한 롯지의 봉당에 걸터앉아 땀을 식히며 한잔하는 커피의 맛은 정말 형용할 수 없는 만족감을 가져다준다. 갈 길이 멀어 커피를 다 마시자마자 먼 산 바라보며 한 숨 한번 크게 쉬고 다시 또 걸었다. 이번엔 제법 큰 나무들이 우거진 울창한 숲속을 지나가는데 멀리 숲속에서 나무를 베어 송판을 켜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우리를 만나러 급히 뛰어 온다. 나무를 찍다 도끼에 손을 다친 모양이다. 삼일 전에 다쳤다는데 약도 바르지 못해 상처가 몹시 성이 났다. 깊은 산중에서 응급치료도 못하고 고생을 하다 우리를 만나 혹시나 하고 찾아 온 것이다. 즉석에서 상처를 소독하고 나쁜 피를 사혈하여 빼내고 옥도정기를 바르고 지혈제를 바른 후 잘 싸매어 주고 소염진통제 약을 좀 주니 그제야 안심하고 한숨을 쉬며 안색이 돌고 감사해한다. 어제 밤 불청객에 의하여 한 잠도 못자 피곤하고 지쳤던 대원들이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고 나서, 그가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행복해 하며 활기를 되찾는다. 남을 돕는 일은 남을 돕기 이전에 내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치유사역은 남을 치료하기 전에 내 마음을 먼저 치유 받게 된다. 이 점이 바로 우리가 얻는 베너핏이다.


신이 인간의 간계를 모르실까!

점심시간이 다 될 쯤, 해발 3008m 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고다 타벨라 티베티안 호텔이 나타난다. 한라산 보다 더 높은 곳을 내가 올라오다니!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실감난다. 어딜 가나 식사를 주문하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리던 중, 마침 비가 그치고 해가 솟아 뜰의 벤치에 앉아 있으니 먼저 온 사람들과 나중 온 외국인들이 모여들어 깊은 산골이지만 지루하지 않다. 에스파니아 인들이 말을 태워 어린 자녀들까지 데리고 우리가 갈 칸진곰파를 이미 다녀오는 중이다. 스위스인 중년 부부가 짐승 뿔로 만든 지팡이를 들고 내려온다. 미국인도 지나가고 프랑스 인과 일본인도 지나간다. 손바닥만 하게 빠끔히 하늘 만 보이는 조그만 롯지 앞마당에 갑자기 대여섯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만나니 서로 색다른 얼굴 모습이 어울려 다국적 민족모임을 이루게 된다. 힘들게 올라 온 광이를 태우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 온 말도 야생초의 꽃향기를 맡으며 흡족히 풀을 뜯으며 한가한 여유시간을 보낸다.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이야길 나눈다.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산에서 만나면 누구나 형제처럼 즐겁고 반갑다. 수많은 동식물들만이 주로 서식하는 깊은 산속에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니 인류는 같은 종(種)에 속하며, 모두가 한 뿌리에서 나왔음을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모든 인류는 아담의 후손으로 한 종(種)을 이루며 사는, 지구촌의 여러 피조물 가운데 하나의 동물군에 속하는 무리이다. 어느 피조물이 더 귀하고 덜 귀하다 판단할 수 없다. 신이 만든 모든 창조물은 피조물로서 모두가 동등하게 귀한 존재들이다.

3008m 라는 고도 표시는 고도 이외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3000m 이상부터는 짐승을 죽일 수 없다는, 이들의 관습을 지켜야 된다는 묵시적 메시지다. 그 높이에서 부턴 신이 가까이 계시기 때문일까? 아니면 신의 영역이라 그런가! 이 고지 이상에 사는 원주민들은 고산 지대에만 사는 야크 고기가 먹고 싶으면, 짐승을 죽이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낭떠러지로 야크를 굴려 떨어지게 한 후, 야크가 스스로 죽으면 그를 가져다 요리를 만들어 먹는단다. 그런다고 살생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행동한다고 신이 인간의 그런 간계를 모르실까? 그런데 속아 넘어가는 신이라면 어떻게 전지전능한 신이라 말할 수 있는가!

어쩌면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의 모습도 똑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사람들 앞에서는 잘 하면서도, 하나님이 무시로 우리를 관찰하신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함부로 산다면, 우리들의 행위가 바로 야크를 낭떠러지에 밀어 죽이고 자기가 죽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과 다를 바가 뭐 있겠는가.

점심식사를 마치고, 또 다시 걷고 또 걸었다. 해발 3000미터 이상서 부턴 큰 나무들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내 키만 한 크기의 작은 나무들만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그 밑에는 각종 이름 모를 야생초들이 햇빛을 넉넉히 받으며 신이 나서 무리를 이루며 자란다. 내가 아는 에델바이스도 있다. 옛날 중학교 시절에 에델바이스를 말려 코팅한 것을 선물 받아 본 적이 있는 데 그 후 처음으로 자연 속에 직접 자라나 꽃을 피운 생화 에델바이스를 보니 너무 반갑고 신기하다. 조금만 더 높이 올라가면 키 작은 나무들도 자취를 모두 감추고, 땅바닥에 기어 다닐 듯한 아주 작은 야생초들만 있을 것이다.

어둑어둑할 무렵이 되어서야 10시간이나 걸려 드디어 랑탕 빌리지에 도착하였다. 보통 트렉커들의 소요시간보다 꼭 배가 걸렸다. 2000가구나 사는 지역이라 하여 대단히 큰 마을이려니 상상하였는데 정작 와 보니 겨우 몇 채의 롯지만 보이는 작은 마을이다. 알고 보니 산속 깊은 골짜기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가옥을 모두 합하여 인구를 계산한 모양이다. 하루 종일 걸어오느라 몸이 매우 지쳐 있는데, 우리가 온다는 소문을 듣고 4명의 환자가 대기하고 있다가 치료해 달라고 간청을 한다. 할 수 없이 전등불도 안 들어오는 어두운 방에서 플래시를 비추며 환자를 치료 해 주다.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 치료하는 치료용 침대가 없으면, 허리를 꾸부리고 치료해야 하므로 허리가 약한 나에겐 너무나 고역이다. 하루종일 걸어와서 쉬지도 못하고 약 1시간 반 동안 환자를 돌보고 나니 허리가 끊어질 것 처럼 아프다. 8시는 넘어서야 캄캄한 밤에 촛불을 밝히고 저녁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모두가 지쳐 힘든 가운데도 내 허리를 돌보기 위해서 뜸을 떠 주는 분이 있는 바람에 큰 통증을 면하고 잠을 자게 되다. 난방시설이 되어있지 않은 롯지의 침실은 너무 습하고 춥다. 두꺼운 솜 이불이 있지만 고약한 냄새가 나서 덮기가 역겹다. 침낭을 가져오려다 무거워 빼 놓은 것이 이내 후회가 된다.

자료제공 : 아시아미션(http://www.amccm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