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 김세진 기자의 기사입니다.

	▲ <스스로 말하게 하라> 복간 출판 기념회에서 박형규 목사가 감회를 전하고 있다. 이장호 감독이 사회를 맡아 순서를 진행했다. (오른쪽 아래) ⓒ뉴스앤조이 김세진

'밀알 노동'을 외친 허병섭 선생의 <스스로 말하게 하라> 복간 출판 기념회가 열린 서울 연자동 기독교회관 2층에 300명 가까운 사람이 자리를 메웠다. 허병섭 목사와 이정진 사모는 '상세불명의 뇌증' 투병으로 이날 출판 기념회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이들이 '스스로 말하게 되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모였다. 평소 허 목사와 친분이 있던 박형규 목사·이장호 감독·배태진 목사·손학규 의원·도법 스님·배우 안성기 씨 등도 참석했다.

23년 전 처음 출간된 이 책에는 '문동환 교수님과 박형규 목사님께 이 책을 드린다'고 적혀 있다. 허병섭 목사가 책을 선물했던 박형규 목사(남북나눔재단 이사장)는 "동지들이 몸과 마음을 던져 가난한 사람과 함께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모두 목숨 걸고 했지만 허병섭은 가장 앞서 갔다. 민중과 함께 살겠다고 결심하고 민중과 함께 했다"고 했다.

제정구 기념사업회 박재천 사무국장은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민중의 가능성과 희망을 말하게 하는 주민운동 교육론의 현장 교과서"라고 평가했다. 주민 운동의 목표는 주민 자신이 변화의 당사자로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고 스스로 가능성을 찾고 희망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인데, 허 목사 책이 잘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출간한 학이시습 출판사는 현장에서 야학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찾다가 <스스로 말하게 하라>를 복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날 출판기념회에서는 책과 관련된 이야기뿐 아니라 허병섭 목사와 이정진 사모의 쾌유를 비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도법 스님은 "종교 간의 벽, 종교와 일반 사회와의 벽들을 모두 허물고 넘어서서 한 생명의 존재로 한 인간의 존재로 만나고 함께 하는 길을 가보자 했던 게 허병섭 선생의 매력"이라고 했다. 도법 스님은 "빈민운동을 하거나 대안적인 삶을 살 때 두 분을 응원했던 것 같이 앓고 있는 삶도 인정하고 존중하자"며 "그 분들이 주어진 시간을 편안하고 외롭지 않게 보내도록 마음을 열고 뜻을 모으고 함께하자"고 말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권오성 목사는 "무주에 간 첫 해, 자연농법으로 농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허 목사는 자연에게도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허병섭 목사는 다른 사람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고 평생을 살았는데 '스스로 말하게 하라'가 우리의 과제"라고 지적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허병섭 목사는 "교회는 성전이 아니라 민중 속에 있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했던 사람"이라면서 병실에 있는 허 목사에게서 꾸지람의 눈빛을 봤다고 했다. '당신은 뭐하고 있소. 아직도 청계천에서 노동자들을 위해 운동하던 그 열정을 가지고 있나. 정치하면서 세상에 무엇을 만들겠나'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배태진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는 "허 목사가 그리스도의 군사로 한 구조적 악에 대해서 몸을 내던진 투사"라고 비유했다. 또 "체 게베라와 성녀 테레사를 기억하듯 허 목사님 뜻을 되새시고 그가 걸은 십자가 길을 함께 걷자"고 촉구했다.

	▲ 출판기념회에는 배우 안성기 씨, 권오성 총무, 도법 스님 등 종교계 문화계 인사가 참여했다. ⓒ뉴스앤조이 김세진

<어둠의 자식들>을 제작해 극 중 공병두 목사로 허병섭 목사의 삶을 영화화했던 이장호 감독은 "허 목사 때문에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했다. 또 "허 목사는 문화 쪽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동월교회에서 국악찬송을 한 것도 그렇지만, 영화의 리얼리즘도 허 목사님 때문에 부활했다"고 말했다.

이날 출판 기념회에는 녹색 온 배움터(전 녹색대학) 학생이 나와 국악 찬양을 부르고 이성재 선생이 연주를 해, 허 목사 부부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허병섭 목사와 이정진 사모는 병세에 차도를 보이고 있다. 이 사모는 출판 기념회를 가고 싶냐고 묻는 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라고 한다. 허병섭 목사도 누가 찾아오면 반응을 하고 행동도 절도가 있어 희망의 조짐이 있다고 둘째 딸 허미란 씨가 전했다. 허병섭 목사는 신천연합병원에 있다가 서울 연희동 애린실버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겼고 이정진 사모는 서울대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 허병섭 목사 내외의 병상 소식을 말하고 감사의 인사를 하는 가족들. (왼쪽 허병섭 목사의 딸 허미란 씨와 이정진 사모의 딸 김아람 씨) ⓒ뉴스앤조이 김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