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한 현장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있으면서, 나라는 존재가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과 함께 가난의 문제를 극복하고 가난한 사람과 운명을 함께 해야 한다."

허병섭 목사는 1992년에 낸 <일판사랑판>이라는 책에서 이와 같이 썼다. 군인 시절 빈민촌을 방문한 후 제대해서 청계천 판자촌에서 생활하고 판자촌이 철거되자 상월곡동으로 옮겨 동월교회를 섬겼던 허병섭 목사. 동월교회에서 최초의 탁아소 '똘배의 집'을 만들고 최초의 국악예배도 드렸다. 그러나 불현듯 1988년 기장에 목사직을 반납하고 일용노동자공동체 '월곡동 건축 일꾼 두레'를 만들어 일용직 노동자의 생활개선을 도모한다. 1996년 전북 무주로 귀농해 친환경 농법을 하면서 '푸른꿈 고등학교'와 '녹색온배움티' 개교를 도왔다. 가난한 사람과 운명을 함께한다더니 2009년 새해가 밝은지 얼마 안 돼 허 목사가 쓰러졌다.

	▲ 딸이 잡은 허병섭 목사의 손. (허병섭·이정진 선생 쾌유를 위한 카페 제공)

허 목사가 쓰러지기 일주일 전인 1월 3일, 이정진 여사가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등 증세를 보이자 허 목사는 부인과 함께 서울로 왔다. 6일 이 여사가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하고 10일 돌연 허 목사가 사라졌다. 3일 후 경찰은 실종신고 되어 있던 허 목사를 찾았다. 근처 지하상가에 신발과 잠바 없이 쓰러져 있었고 다시 찾은 허 목사의 증상은 이정진 여사가 보인 증세와 비슷해 같이 입원했다. 현재 허 목사 부부는 무동함구증으로 움직일 수 없고 말을 하지 않는 증세를 보이고 있다. '상세불명의 뇌증'으로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치료를 하면서 두 분이 다른 치료를 받기로 결정해 2월 17일 허병섭 목사는 서울 시흥시 신천동 신천연합병원, 이정진 선생은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허 목사는 양·한방과 대체의학 등을 같이 진행하고, 이정진 선생은 양방으로 치유하고 있다. 치료의 차도를 보고 병원을 바꿀 수도 있고, 다른 요양기관으로 갈 수도 있다.

'허병섭 목사·이정진 선생 치유를 위한 모금 위원회' 김성훈 목사는 "현재 두 분은 뇌백질 전체가 손상되었다. 지금은 폐렴·간병 같은 합병증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존 치료에 주력하고 있고 재활치료를 하면서 장기적으로 나아질 수 있도록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초기에는 약초 등 독성 물질 섭취 등이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었으나 장기 손상이 없어 사실무근인 걸로 추정하고 있다. 또 증세가 일산화탄소 중독 증세와 비슷해 보조연료기구 영향이라는 추측도 있었으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 무주 집에서 허병섭 목사와 이정진 선생. (허병섭·이정진 선생 쾌유를 위한 카페)

허 목사와 이 선생은 지금 소화기관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콧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하고 있고 손에 고무공을 쥐고 있다. 손이 오그라들거나 서로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손을 주무르며 말씀을 나눌 때 허 목사는 눈을 마주치진 않았지만 찬양을 들려드리니 눈물이 맺히는 듯도 했고 눈을 잠시 한 곳에 고정했다. 이 선생은 말씀을 나누니 눈을 마주쳤다. 간병인이 다리를 들어 움직이며 물리치료를 하면서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했지만 움직이는 게 쉽진 않은지 얼굴을 찡그렸다. 병원을 찾았던 지난 2월 말에 간병인은 "낮에 허 목사와 산책하려고 휠체어에 옮겨드렸는데 몸이 뻣뻣하고 일자로 누우시려 해서 산책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서울대병원 이정진 선생 간병인은 "가래가 끓어 힘들어 하셔서 석션으로 뺐는데 괴로워하셨다"며 이 선생의 등을 두드리며 "오늘은 석션 안 할 테니까 걱정 마시라"고 격려하고 있었다. 현재 허 선생 병동엔 하루에도 여러 명이 찾아온다고 했다. 머리 곁에는 두 분을 응원하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허병섭 목사·이정진 선생 치유를 위한 모금 위원회' 오용식 목사는 "곳곳에서 모금을 하고 있지만 병원비와 간병비가 만만치는 않다. 자제들도 두 분의 삶을 따라 넉넉하게 살지는 않고 있다. 두 분이 귀농하면서 교회에서 받은 돈으로 사신 땅, 전 재산 뒷산 6만 제곱미터를 마을 재산으로 환경국민신탁에 기증해 아무 재산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5일까지 두 달 여간 병원비만 25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이들 모금 위원회는 4월경에, 지금은 절판된 허병섭 목사의 책 <스스로 말하게 하라> 출판 기념회와 문화 행사를 통해 기금 모음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허병섭 목사가 그의 저서에서 김재준 선생의 말을 인용했다. "송사리 한 마리는 흐르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생명력을 자랑한다. 거세게 내려 떨어지는 폭포수를 치솟아 올라가는 송사리에서 생명의 멋을 느낄 수 있다." 허병섭 목사와 이정진 선생이 송사리처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