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 발행인 방인성 목사의 칼럼이다.

12월 31일 밤 9시쯤 재야의종 타종행사가 열릴 종각으로 달려갔다. 마침, 올해는 우리교회에 송구영신 예배가 없어 2008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에 꼭 기원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신각 부근에는 전경들이 겹겹이 둘러 경호(?)를 하고 있었고, 전경버스는 물론 물대포 차도 눈에 띠었다. 주변 지하철역 출입구에는 경찰들이 줄을 지어 도열해 있어 시민들은 그 사이 좁은 통로를 지나가야했다.

그래도 시민들은 모여들기 시작했다. 노란 풍선이나 피켓을 든 이들도 있었다. 모 방송사의 젊은 기자들은 '언론장악반대'에 대한 글을 쓴 긴 현수막을 들고 추위에 떨며 서 있었다. 아직은 시민들의 숫자가 많지 않고 경찰들의 삼엄한 경계 때문인지 거리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나는 실내에 들어가 추위에 언 몸을 녹이고 11시 30분경 다시 보신각으로 왔다. 보신각 주변은 타종행사를 보려고 수 만 명이 운집해있었다. 조금 전과는 달리 같은 현장이지만 한쪽에는 깃발이 나부끼고 '명박퇴진' 등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한쪽에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소원을 비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역사상 이런 대규모의 '제야의 밤 도심 촛불집회'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KBS가 보낸 영상에는 놀라운(?) 아니 그들에게는 아주 쉬운 기술로 한쪽의 촛불시민은 비추지 않았지만 어마어마한 인파가 있었다.

이런 방송 태도에 항의하자 KBS 영상 책임 맡은 국장은 "시위를 하려면 다른 데 가서 해야지 않느냐", "행사 자체는 존중돼야 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그곳에 나온 시민들은 저마다 소원을 갖고 희망을 나누려고 모였다. 희망을 말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각자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데 그 시간에 우리의 희망을 토로하지 않는다면 어디서, 언제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단 말인가? 국민의 소원과 외침을 제대로 골고루 방영하지 못한 부끄러움과 비겁함은 모르고 오히려 변명하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삼대 째 목사인 나는 보수신앙의 교회에서 자랐다. 감히 교회에서 송구영신예배를 안 드리고 길거리에서 촛불 들고 떠들고 있다니 책벌감이다. 그래도 좋다! 보수신앙을 가진 목사인 나에게는 마땅히 함께해야 할 자리이고 경험이었다.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추위에 떨며 거리에서 드리는 기도! 시민들과 함께 외치며 드리는 기원! 또 다른 감동과 결단의 시간이었다.

나는 타종소리와 함께 기도했다. 대통령이 잘못 된 부를 축적 한 것과 거짓을 회개하고 공약대로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고 새 출발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재벌위주의 개발 성장논리가 아니라 서민을 살리는 정책을 펴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국민들에게 법질서를 바로 잡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보다 대통령과 정치지도자들이 먼저 법을 존중히 여기는 모본을 보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정권에 아부하며 국민의 소리를 막는 실력 없는 장관들은 하루빨리 옷을 벗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제위기를 조장하며 4대강 정비를 녹색성장이라는 거짓 선전에 국민이 넘어가지 않도록, 농어민을 죽이고 식량문제로 경제 속국으로 가는 무분별한 한미 FTA를 거두어 달라고 하늘을 우러러 외쳤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를 못했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어려운 올해이지만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친절한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정치권력과 힘에 아부하거나 기웃거리는 약삭빠른 목사가 되지 않도록, 우리교회 성도들에게 삶으로 본을 보이는 겸손한 목사가 되기를 기도했다.

지난여름 촛불의 함성이 기대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얻지 못한 부분도 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지금도 촛불은 진행형인 것을 목격했다. "촛불은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위에 둔다."는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기독인과 교회는 누구인가? 생명과 평화, 정의를 위한 촛불을 드는 시민들 때문에 2009년에도 이 땅에는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