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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론 - 선악과 이야기
에덴동산은 하나님 나라의 원형이다. 하나님과 인간은 동산을 함께 거닐며 자유롭게 대화할 만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도 완전한 조화가 있었다. 에덴에서의 인간의 존재 방식은 ‘더불어 삶’이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알몸으로 어울려 살아도 수치를 몰랐다. 이것은 하나님과 타인에 대한 신뢰에 찬 개방적 자세와 사랑의 일치를 보여준다.
하지만 아담과 이브가 뱀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면서 인간의 역사는 걷잡을 수 없이 죄의 수렁에 빠져든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악과를 따먹는 게 왜 그리도 큰 죄악인가 하는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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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연복(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
만일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나님이 아담에게 내리시는 준엄한 명령이 인간은 선악에 대한 분별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라면,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우리의 자애로우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없다. 왜? 선악도 분별하지 못하는 인간, 도덕 관념이 없는 인간이란 하나님이 그분 마음 내키는 대로 부릴 수 있는 로봇 같은 존재이지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인간은 결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다른 각도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우리는 선악과를 따먹는 것을 선악의 기준을 제멋대로 정한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선악의 기준을 자기 멋대로 정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가진 자들, 한 시대를 풍미하는 지배자들과 권력자들과 부자들이다. 그들은 풍부한 물적(物的) 토대를 바탕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영역, 즉 도덕과 이념과 가치와 법의 세계 또한 빈틈없이 지배한다. 물론 그들이 정하는 선악의 기준의 밑바닥에는 그들의 기득권을 안전하게 유지하려는 음흉한 발톱이 숨어 있다. 창세기가 인간의 원죄로 고발하고 있는 선악과 사건은 모든 역사적 비극과 죄악의 중심에는 권력 독점 혹은 권력 남용이 도사리고 있음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이었을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옷은 인간의 신분을 상징했다. 타락 이후 옷을 지어 입은 것은 신분과 계급에 의해 인간 사이에 단절이 생겼음을 뜻한다. 동반자적 남녀 관계, 즉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던 관계가 이제 지배-피지배 관계로 변한다. 이러한 관계 단절은 자연으로 확대된다.
타락과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이야기는 인간의 계급적 차별, 하층민들의 고통스러운 강제노동과 남성의 가부장적 여성지배 등을 하나님의 저주로 받아들이게 하려는 의도로 솔로몬 시대의 지배계급에 의해 교묘히 문서화되었겠지만, 민중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그 시대에 내재된 모순들이 본래 하나님이 허락하신 게 아니라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은 왜곡된 삶의 형태임을 밝힌다. 민중은 더불어 사는 에덴의 공동체적 이상을 사회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사랑과 일치가 깨지고 사회적 모순이 팽배한 곳마다 에덴동산 이야기는 반복된다. 이 이야기는 사회적 모순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모순을 뚫고 최초의 이상사회인 에덴으로 회귀하려는 강한 욕구를 민중에게 솟구치게 한다. 이것이 에덴동산 이야기의 역사적 기능이다.
전통신학에서는 죄를 개인적, 사적, 존재론적으로 다루었다. 하지만 죄는 집단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구약성서에서 죄는 은총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아니라 민족 공동체와 관련된다. 죄 개념은 인간의 본성이 타락했다는 식의 존재론적 차원이 아닌 역사적, 구체적 용어로 풀이되어야 한다. 죄는 사회-역사적 사실이다. 즉 죄는 인간들 사이의 사랑과 형제애의 부재, 하나님 및 타인들과의 친교의 단절이다. 여기에서 죄의 집단적 차원이 드러난다.
원죄 교리에서 주목할 점은 죄에 대한 집단적 책임성의 강조다. 신약성서의 지적대로 죄는 우리를 지배하는 세력이다. 바울은 로마제국의 은유로 죄의 지배를 상세히 묘사한다. 죄는 인간과 세계를 지배하고 복종시키고 정복하고 공포와 죽음을 유발한다. 바울은 죄를 사회학적 맥락에서 다룬다. 오늘의 용어로 하면, 우리는 군국주의, 에너지 고갈, 식량 낭비, 착취 등 폭력적 세력의 지배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이 바울의 죄론의 사회학적 의미다. 기독교의 죄론은 사람을 억누르고 죄책과 무력감에 빠지게 할 수도 있지만, 오늘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구조적 죄의 세력에 대한 상황분석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
지상 낙원과 아담의 범죄에 관한 이야기는 기원전 950년 경 솔로몬 통치 말기에 쓰여진 야휘스트 전승에 속한다. 야휘스트 사료를 쓴 저자는 이스라엘 민중이 처해 있는 상황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많은 악을 목격하고 그 모든 악이 대부분이 지배적 군주체제의 부정부패로 말미암은 것임을 발견했다. 원죄는 오늘날 사회와 온 세계 민중을 해치는 악의 기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온 세계 민중의 절대 다수가 인간답게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도 갖추지 못한 것은 바로 인류가 저지르고 있는 원죄 때문이다. 원죄의 교리는 아담의 범죄가 미치는 전체 범위와 범죄의 보편성을 깨닫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예수는 죄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사탄을 문제삼았다. 예수의 대전제는 하나님 나라였다. 하나님 나라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의 종식을 의미한다. 그러면 사탄의 실체는 무엇인가? 사탄의 실체는 구조악이다. 예수는 민중해방을 위해 끝까지 구조악과 싸웠고, 그 구조악에 속박된 소위 죄인들을 죄인이라 부르지 않고 가장 영예로운 이름인 “아브라함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이라고 불렀다.
성서의 죄는 집단적 구조와 관계된 개념이므로 사회구조에 내재하는 계급 차별이 가장 큰 죄다. 성서에서 죄는 가난한 자, 눌린 자, 빼앗긴 자, 추방당한 자의 현실과 직결된다. 이 현실을 인식하고 정확히 분석할 수 있어야 그리스도교 사랑의 실천은 허공을 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정책도 공허하지 않게 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