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풀이하는 이야기 신학
  - 천상병의 시에 기대어  

정연복(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1. 어떻게 봄이 오는가? 그건 하느님의 섭리이다

     오늘은 91年 4月 14日이니
     봄빛이 한창이다.

     뜰의 나무들도
     초록색으로 물들었으니
     눈에 참 좋다.

     어떻게 봄이 오는가?
     그건 하느님의 섭리이다.

     인생을 즐겁게 할려고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거다.
     (‘봄빛’)

“어떻게 봄이 오는가? 그건 하느님의 섭리이다. 인생을 즐겁게 할려고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거다.”

시인은 “하느님의 섭리”를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눈망울을 굴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의 눈에 띄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것. 바로 그것에서 시인은 인간의 행복에 관심 갖고 계신 “하느님의 섭리”를 느낀다.

그대는 “봄빛이 한창”임을 인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가. 그대는 “초록색으로 물”든 “뜰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눈부신 황홀감을 맛보는가. 그대는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봄”을 생각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느끼는가. 그대는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 “인생을 즐겁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혹시 그대는 “인생”의 행복이라든가 “하느님의 섭리”를 너무 거창하고 어렵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대는 생활 주변의 일상적인 것, 평범한 것은 도외시한 채 뭔가 비범하고 특별한 것에서 삶의 의미라든가 하느님의 뜻을 읽으려고 애쓰는 나머지 결국은 평범도 비범도 모두 잃고 마는 것은 아닌가. 

일상의 평범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그 얼마나 평화롭고 깊고 행복할 것인가!
              

2. 하나님! 하나님도 흐르시나요!

     바다도 흐르고 구름도 흐르고
     사람도 흐르고 동물도 흐르고
     흐르는 것이 너무 많다.

     새는 날고 지저귀는데
     흐름의 세계를
     흐르면서 보리라.

     물이 흐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위에서 아래로만 흐른다.
     하나님! 하나님도 흐르시나요!
     (‘흐름’)

시인은 이 세계를 “흐름의 세계”로 파악한다. “바다도 흐르고 구름도 흐르고 사람도 흐르고 동물도 흐르고 흐르는 것이 너무 많”은 세계. “물이 흐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인의 눈에는 “사람도 흐르”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 시인의 마음에서는 하나님마저도 “흐름의 세계”를 벗어나 있지 않는 것으로 느껴지는가 보다. “하나님! 하나님도 흐르시나요!” 그러길래 우리는 삼라만상과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마저도 “흐름”으로 느끼는 시인의 영성을 “흐름”의 영성이라 이름지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흐름”은 무질서한 변덕스러움이 아니다. “흐름”은 자유 분방하지만 그 “흐름의 세계”는 아름다운 질서의 테두리 안에 있다. “물이 흐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위에서 아래로만 흐른다.”

그 무엇에도 얽매임이 없이 흐르되 그 흐름에 질서가 있는 그런 “흐름”의 신앙.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겸손한 자기 낮춤과 섬김의 삶.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의 신앙과 삶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3. 하느님이시여!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집 가족이라곤
     1989년 나와 아내와
     장모님과 조카딸 목영진 뿐입니다.

     나는 나대로 원고료(原稿料)를 벌고
     아내는 찻집 ‘귀천(歸天)’을 경영하고
     조카딸 영진이는 한복제작으로
     돈을 벌고

     장모님은 나이 팔십인데도
     정정하시고...

     하느님이시여!
     우리가족에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가족’)

시인은 기도한다. “하느님이시여! 우리가족에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 신자들이 주변에서 늘 듣는 기도다. 사실 이런 기도를 너무 많이 듣다 보니 “하느님”이 인간의 필요에 따라 “복을 내려” 주는 도깨비 방망이로 전락한 듯한 느낌마저 들 때가 많다.   

그런데 “하느님이시여! ....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하는 시인의 기도가 전혀 천박하게 들리지 않는다. 왜일까?

시인은 욕심이 없다. “나는 나대로 원고료(原稿料)를 벌고 아내는 찻집 ‘귀천(歸天)을 경영하고 조카딸 영진이는 한복제작으로 돈을 벌고” “장모님은 나이 팔십인데도 정정하시”니, 시인은 그걸로 만족이다. 시인은 자기에게 없는 것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않고 지금 자기에게 주어져 있는 것에 감사할 줄 안다.       

“하느님이시여! 우리가족에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라는 시인의 기도는 지금 자기에게 없는 것을 더 베풀어 달라는 욕심의 기도가 아니다. 지금의 형편 그대로 고스란히 만족한다는 감사의 기도다. 그래서 그 기도는 순박하고 아름답다.

“복을 내려” 달라고 하느님께 떼를 쓰지 않는 기도. 물질에 대한 탐욕이 없이 일상의 작은 행복에 감사할 줄 아는 기도. 신학이나 교리를 들먹이지 않고 살림살이의 이야기가 그대로 기도가 되는 그런 기도. 화려한 수식어와 미사여구가 불필요한 그런 기도. 삶이 곧 기도인 그런 기도.

이런 소박하고 해맑은 기도에 어찌 하느님이 귀기울이지 않으실 수 있을까.
  

4. 하나님은 청녹색을 좋아하시는가 보다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산의 나무들은 녹색이고
     하나님은 청녹색을
     좋아하시는가 보다.

     청녹색은
     사람의 눈에 참으로
     유익한 빛깔이다.
     이 유익한 빛깔을
     우리는 아껴야 하리.

     이 세상은 유익한 빛깔로
     채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다.
     (‘청녹색’)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산의 나무들은 녹색”인 사방천지 온통 푸름의 향연 속에서 시인의 마음은 “하나님”과 통한다. “하나님은 청녹색을 좋아하시는가 보다”며 하나님과 감정 이입한다. 

시인의 눈에 “청녹색”은 그저 다채로운 색깔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눈에 참으로 유익한 빛깔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런 “유익한 빛깔로” “이 세상”을 가득 채우시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게 시인의 신앙이며 영성이다.

“이 유익한 빛깔을 우리는 아껴야” 한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 푸른 “산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유익한 빛깔”을 아낌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깊이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감사하는 마음은 “이 세상은 유익한 빛깔로 채워야” 한다는 삶의 신앙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다”는 게 자연의 푸름을 매개로 펼쳐지는 시인의 한바탕 상상력이 가닿는 삶의 반성이며 가벼운 듯 육중한 현실 비판이다.

그래, 신자의 삶이라고 해서 유별난 것일 필요는 없으리라.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는 생활 주변의 작고 일상적인 것들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느끼는 마음. 그런 맑고 순수한 마음 하나 고이 간직하고 한평생의 인생길을 여행하는 여유로움. 그런 여유로움이 주변의 이웃들에게 전달되어 각박한 세상살이가 견딜 만하게 되는 것. “이 세상은 유익한 빛깔로 채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까운 정도의 현실 인식으로 남을 탓하기에 앞서 먼저 제 자신이 “이 세상”에 “유익한”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

이 땅의 신자들이 그런 정도의 영성 하나 마음 깊이 새기고 산다면, 그게 바로 아름다운 신앙생활이요, 행복한 인생살이요, 세상을 구원하는 일이 아닐까. 
  

5. 막걸리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한 되) 사면
     한홉짜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원짜리 한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人生)의 최대목표(最大目標)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막걸리’)

시인은 딱 잘라 말한다. “즐거움은 인생(人生)의 최대목표(最大目標)다.” “우주도.... 세계도.... 인생도....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천박한 쾌락주의자와는 거리가 멀다. 시인을 즐겁게 하는 것은 “한홉짜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마다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가는” “막걸리.... 한 병(한 되)”이거나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원짜리 한 잔만 하는” “맥주”다.

시인은 산해진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시인이 “음식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막걸리” “한 병”이나 “어쩌다” “맥주” “한잔”을 마실 때뿐이다. 시인에게서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막걸리”가 “하나님의 은총”이라니? 감히 “막걸리” 운운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얘기하다니 이건 틀림없는 신성모독이라고 혹자는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음주를 신자들이 멀리해야 할 불신앙의 행위로 가르치지 않는가. 그래서 개신교 신자들 중에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음주 행위를 솔직히 드러내지 못하고 쉬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아닌가.

그런데 시인은 그렇지가 않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라는 게 막걸리를 벗한 오랜 생활 체험 끝에 시인이 내뱉는 고백이다. 그래서 시인은 자기 건강을 염려하여 금주를 권하는 아내를 향해서도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하고 항변한다.

그렇다. “즐거움”이 없는 “우주”는 공허하다. “즐거움”이 없는 “세계”는 삭막하다. “즐거움”이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 “즐거움”이 없는 “하나님의 은총”은 신학의 궤변이다. 인생의 소박한 “즐거움‘을 죄악시하는 신앙은 너무 갑갑하다. 그러니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막걸리” “한 잔”의 여유,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어찌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막걸리” “한 잔”을 인생살이에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고백하는 시인의 단순 소박한 자세를 우리는 배워야 하지 않을까.

6. 지금 천국에서 기도 하시겠지요

     가을이 되었으니
     한가위날이 멀지 않았소.
     추석이 되면
     나는 반드시
     돌아간 사람들을 그리워 하오.

     그렇게도 사랑 깊으시던 외할머니
     그렇게도 엄격하시던 아버지
     순하디 순하던 어머니
     요절한 조카 영준이!
     지금 천국에서
     기도 하시겠지요.
     (‘한가위 날이 온다’)

시인은 정(情)이 많은 것 같다. “추석이 되면 나는 반드시 돌아간 사람들을 그리워 하오.” 해마다 “한가위날”이면 “돌아간 사람들을 그리워”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나는 반드시”라는 말이 붙어 “돌아간 사람들”에 대한 시인의 “그리워” 하는 마음이 더욱 깊고 애절하다.

시인의 마음에서 “돌아간 사람들”은 그저 그리움의 대상만은 아니다. “그렇게도 사랑 깊으시던 외할아버지”, “그렇게도 엄격하시던 아버지”, “순하디 순하던 어머니”, 그리고 “요절한 조카 영준이!” 그들 모두는 “지금 천국에서” 살아 있는 현재진행형의 존재들이다. 그들은 “지금 천국에서 기도”하고 있다고 시인은 믿는다.

“천국”이 어디에 있는가? 저 멀리 하늘에 있는가? “천국”을 어떻게 맛볼 수 있는가? 신앙생활 착실히 하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예수의 대속적 구원의 은총을 믿어야만 하는가? “천국”은 기독교인들만의 독점물일까? 기독교 신자가 아니고서는 제아무리 선량하고 따스한 마음을 가져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걸까?

아니다! “천국”은 “지금” 여기에 있다. 사랑하던 사람들, 지금은 “돌아간 사람들”이 “반드시” 그리운 시인의 마음속에 있다.

“지금” “천국”을 느끼고 누리지 못하면서 먼 훗날의 “천국”을 소망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고 서글픈 일인가.     

7. 구름도 좋고 기쁜 소식의 혜존(惠存)이다

     얍삭하게 뭉클덮인 구름면이,
     달빛으로 환하게 비친다.
     정말이지 얍삭한 구름뭉치구나.
     구름사이에 운하(運河)이듯한 하늘 강물이 푸르고,
     마치 하늘나라 선녀(仙女)이기도 하고,
     천사(天使)의 숨바꼭질이기도 하고,
     하느님의 외출이기도 하고,
     세계지도이기도 하고,
     숲을 멀리 바라보는 듯도 하고,
     도저히 구름이면서도
     아예, 그런 냄새도 안나게 아름답다.
     구름이 예술품이라는 것을,
     이제 알겠다.
     이것도 좋고 기쁜 소식의 혜존(惠存)이다.
     (‘서울, 평양 직통전화’)
 
시인의 눈에는 구름이 그냥 구름이 아니라 “예술품”으로 느껴진다. “하늘나라 선녀(仙女)이기도 하고, 천사(天使)의 숨바꼭질이기도 하고, 하느님의 외출이기도 하”다. “좋고 기쁜 소식의 혜존(惠存)”이다.

시인은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아직도 어린애다. 시인의 마음에는 동심이 펄펄 살아 숨쉬고 있다. “선녀(仙女)”도, “천사(天使)”도, “하느님”도 시인의 해맑은 마음에서는 전설 속의 존재들이나 형이상학적 교리적 개념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이제 알겠다”는 시인의 고백으로 보아 한때는 시인도 한 점 구름 같은 일상적인 것에서 “좋고 기쁜 소식의 혜존(惠存)”을 읽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시인은 깨달았다. “좋고 기쁜 소식” 곧 복음이란 실은 우리 주변에 늘 널려 있다는 것을. 복음은 우리 생활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 작은 아름다움들 속에 임재하고 있다는 것을.

한 점 “구름”이 “좋고 기쁜 소식의 혜존(惠存)”일 수 있듯이 우리의 존재도 마땅히 그래야 하리라.  

8. 하나님께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나는 일주일에 네번 다섯번은
     기원(棋院)에 나갑니다.
     김형(金兄)은 더 자주 나오는 사람인데
     장애자에 속할 것입니다.
     등이 약간 굽어져 있으니까요.
     그러나, 김형(金兄)은 어찌 그리도
     마음씨가 곱고
     바둑도 아주 센 급(級)인데
     꼭 이기겠다는 생각없이
     여유있게 너그럽게 두기만 합니다.

     UN이 올해는 ‘장해자의 해’라고
     못 박았는데
     휴머니즘이 드디어 발화(發花)했습니다.
     인류가 비로소 눈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언제나 김형(金兄)은 떳떳하고 의젓하니-
     되려 내가 장애자 같구나!
     (‘김형[金兄]’)
 
시인은 작은 일에 감동을 받는다. “바둑도 아주 센 급(級)인데 꼭 이기겠다는 생각없이 여유있게 너그럽게 두기만 하”는 “등이 약간 굽어” “장애자에 속할 것”인 “김형(金兄)의.... 그리도 고운 마음씨”를 보며 시인은 “되려 내가 장애자 같구나!” 하는 자기 성찰에 가닿는다.

그리고 그 자기 성찰은 “인류”에 대한 성찰로, 신앙에 대한 성찰로 확장되고 깊어진다. 시인은 “휴머니즘”의 “발화(發花)”에서 “비로소 눈뜬” “인류”를,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하나님”을 느낀다.

지금까지 “인류”는 잠들어 있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잠들어 계셨다. “휴머니즘”이 활짝 꽃피어 사람들이 “꼭 이기겠다는 생각없이 여유있게” 서로를 보듬는 “고운 마음씨”로 살아가게 되기 전까지는, 숨막히는 경쟁 사회가 상호 이해와 사랑의 따스한 인간 공동체로 변화되기 전까지는, 역사는 아직은 추운 겨울이다. “휴머니즘” 없이는 역사의 봄도 없다.

그러므로 “휴머니즘”을 기독교 복음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파악할 게 아니다. 인간의 인간다움을 꿈꾸는 “휴머니즘”을 얕보고 멸시하는 것은 복음을 잘못 이해한 데서 오는 크나큰 오류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소망하는 것. 그래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일체의 것에 힘차게 거부와 저항의 깃발을 쳐드는 것.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의 핵심에는 바로 이 “휴머니즘” 정신이 둥지를 틀고 있지 않는가.

복음서의 예수가 꿈꾸고 실천했던 것은 “휴머니즘”이 일상적 가치로 작동하는 따뜻한 인간 세상, “고운 마음씨”의 사람들이 오순도순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었던가. 바로 그런 세상이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인 모습이 아니겠는가.     

소박한 “휴머니즘”의 영성! 이 땅의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그 인간적 가치 존중의 영성에 눈뜨지 않는 한, 한국교회의 모든 신앙 실천은 어쩌면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으리라.

9.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행복’)

 시인은 말한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대를 이을 자식 하나 두지 못한 것도 시인에게서는 행복의 조건일 뿐이다.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어 “얼마나 편안한가.” 그뿐이랴.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시인은 인생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시인은 삶을 “불평”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걸로 만족하며 매사를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신 “하나님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일상의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게 없는 것으로 “불평”하기보다는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행복”한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다. 내가 누리는 그 “행복”이 내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되어 세상이 온통 “행복”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는 어진 마음 하나 고이 지켜가는 것이다.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하는 두둑한 배짱으로 여유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다.

가만히 뒤돌아보면 지난 세월은 구비구비 “하나님”의 은총으로 수놓아져 있는 것을!    
   

10. 하나님의 축복이 배달민족 온 마음에 비추시기를......

     나는 매일 밤마다
     내일! 내일하고 마음먹습니다.
     내일 안찾는 오늘이 없고
     오늘없이 내일이 있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70년대때는
     80년도에 희망을 걸어왔었는데
     81년인 금년엔
     90년대의 복지국가를 꿀 겁니까?

     우리 민족의 선진국발전을
     모름지기 희구하여 갈망하는데
     나는 구세주(救世主)님과 하나님의 축복(祝福)이
     배달민족 온 마음에 비추시기를......
     (‘매일마다 내일’)

시인은 “희망” 속에 산다. 그래서 시인은 “매일 밤마다 내일! 내일하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시인은 “오늘없이 내일이 있지 못”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하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시인의 “희망”은 “오늘”의 삶에 충실함으로써 비로소 꽃피는 보다 나은 “내일”이다.

그런데 시인의 “희망”은 오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개인적인 희망이 아니다. 좀더 잘 살고 좀더 높은 지위를 얻고 싶은 이기적인 희망이 아니다. “구세주(救世主)님과 하나님의 축복(祝福)이 배달민족 온 마음에 비추시기를” 바라는 희망이다. 개인의 차원을 뛰어넘는 “민족” 차원의 희망이다. 남과 북의 겨레를 아우르는 “배달민족” 차원의 웅대한 희망이다.

시인의 너른 “희망”, 너른 신앙에 비추어 볼 때, 오늘 나의 “희망”과 신앙은 너무 편협하고 이기적인 게 아닐까. 오늘 이 땅의 교회의 “희망”과 신앙은 지나치게 교회 중심적인 것은 아닌가. 우리 기독교 신자들이 믿는 “구세주(救世主)”란 글자 그대로 교회의 주님만이 아니라 세상의 주님이 아닌가. 이 땅의 신자들은 교회의 일원이기에 앞서 “배달민족”의 일원으로서 이 민족 이 겨레의 “복지국가”를 “모름지기 희구하여 갈망”해야 하지 않을까.

“구세주(救世主)님과 하나님의 축복(祝福)이 배달민족 온 마음에 비추시기를......” 우리의 “희망”, 우리의 기도는 마땅히 그래야 하리라.        
 

11.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아주 가난해도
     그래도 행복(幸福)합니다.
     아내가 돈을 버니까!

     늙은이 오십세살이니
     부지런한 게 싫어지고
     그저 드러누워서
     KBS 제1FM방송의
     고전음악을 듣는 것이
     최고(最高)의 즐거움이오. 그래서 행복(幸福).

     텔레비전의 희극(喜劇)을 보면
     되려 화가 나니
     무슨 지랄병(病)이오?

     세상은 그저
     웃음이래야 하는데
     나에겐 내일도 없고
     걱정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찌 어기겠어요?

     행복은 충족입니다.
     나 이상의 충족이 있을까요?
     (‘나는 행복[幸福]합니다’)
 
시인은 말한다. “나는 아주 가난해도 그래도 행복(幸福)합니다.”

“행복은 충족”이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고전음악을 듣는 것”도 “최고(最高)의 즐거움”이기에, 시인은 “아내가 돈을 버”는 어쩌면 남편 구실 하나 제대로 못하는 자존심 상하고 구차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나 이상의 충족이 있을까요?” 하고 자신의 행복을 드높이 노래한다.

“세상은 그저 웃음이래야 하는데 나에겐 내일도 없고 걱정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찌 어기겠어요?”

남들 같으면 창피스러워 애써 감추고도 싶을 자신의 별볼일없는 인생살이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고 자신의 행복을 만천하에 고하는 시인의 밝고 명랑한 삶의 자세. “내일도 없고 걱정도 없”는 느긋한 여유로움.

“아주 가난해도 그래도 행복(幸福)”할 수 있는 시인의 소박한 듯 당당한 삶의 자세가 마냥 부럽다. 
              
  
12.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한 살 두 살 나이를 더하면서 인생살이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구경이라는 시인의 생각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마냥 짧은 인생.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하늘로 돌아가”는 예정된 짧은 시간 속의 인생. 그래서 더욱 소중한 인생.

인생이 깊어지고 마음이 맑아지면 동심(童心)으로 돌아가는가 보다. “아름다운 이 세상”이 마음의 눈에 환히 들어오나 보다. 동심이 신심(信心)이 되고, 신심이 “아름다”움과 통하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죽음마저 두렵지 않은 마음의 평온이 샘솟나 보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그 날, 그대의 죽음이 그대의 천국으로 이어지는 그 날까지, 그대의 인생살이에 즐거운 추억들, 보람찬 일들이 울긋불긋 수놓아지기를!

그 날. 그대의 입술 사이로 “아름다웠더라”는 고백이 스며나와, 그대의 생(生)은 시인의 생애처럼, 예수의 생애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추억거리로 남기를! 이야기로 부활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