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구교형칼럼
김진홍 목사의 실망스런 변화를 진심으로 슬퍼하며"(1)김진홍 목사의 변화는 자연스런 성숙이 아닙니다.
구교형  |  ku6699@freecha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6년 09월 09일 (토) 00:00:00 [조회수 : 7047]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김진홍 목사의 실망스런 변화를 진심으로 슬퍼하며”(1)

   
▲ 김진홍목사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지금 생각해도 예수를 믿는다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내게 진정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분이 내 인생의 주인 되셔서 인도하신다는 게 무엇인지, 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1987년 아모스스쿨 강좌를 통해 사흘 동안 김진홍 목사님의 집회에 참석하면서였다. 그 이후 지난 19년 동안 내 인생은 바로 그 사건의 연장선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다.

김진홍목사, 자본주의 체제와 힘의 질서를 절대화

그러던 내게 재작년 이후 인생의 사표로 삼았던 김진홍 목사님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려야 하는 아픔이 있었다. 나의 반발은 김진홍 목사가 단지 진보적 성향에서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것 때문이 결코 아니다.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는 상대적인 성향이며, 변화의 합리성과 일관성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이해할 만하지 않은가? 김진홍 목사 변화의 가장 큰 슬픔은 극복해야할 심각한 문제점들이 분명한 특정 자본주의 체제와 힘의 질서를 절대화하고, 그것을 역사적, 도덕적, 심지어 영적인 표준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다.

젊었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모순된 삶을 살아

더구나 그러한 모습을 그는 젊은 시절 온 힘을 다해 부정해 왔으면서도, 지금에 와서는 모순된 자신의 젊은 시절과 현재의 변화상을 동시에 긍정하고 있다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슬픈 것은 목회자로서의 그에게서 십자가의 신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번영과 힘의 신학을 신봉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김진홍 목사의 변화가 그저 개인적인 변화로만 그친다면 이렇게 공개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나설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는 지금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의장으로 막대한 조직운동을 주도하고 있고, 정치권 안에서도 이미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의 ‘아침묵상’을 통해 13만 명이 넘는 막대한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김진홍 목사 사상에 문제 있다

그러므로 이미 한국교계 뿐 아니라 사회 전반, 정치계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실력자가 되어버린 김진홍 목사의 엉뚱한 영향력은 한국교회를 넘어 우리나라, 나아가 통일한국과 동북아 평화에도 무시 못할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판단에서 이제 정식으로 그 분의 사상에 감히 문제제기를 하려 한다.

1. 자본주의는 또 하나의 신앙임을 아십니까?

90년대 초 사회주의 체제가 잇따라 종말을 고하면서 당시 비판적 지식인들 사이에는 자신들의 판단에 대한 깊은 반성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그것은 인간관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가 현실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를 낳았다는 반성이었다. 그러한 인간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가 현실에서 불가능한 체제를 억지로 만들려는 욕심을 낳았고, 그로 인해 결국 폭력을 통해서라도 세상을 일시에 바꿔놓으려는 생각은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를 허용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상대적 가치를 절대화하려는 데서 빚어진 실패였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 처럼 지나친 인간에 대한 낙관주의 경계해야

그러나 시장경제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절대적 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자본주의 또한 사회주의와는 다른 모습의 인간에 대한 무한한 낙관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또 하나의 신앙이다. 시장의 전능한 문제해결 능력을 믿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개개인들의 이윤추구가 결국 보다 나은 사회를 창출할 것이고, 시장의 전능한 힘은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들도 스스로 조절할 것이다’이라는 신앙이다. 그러나 이 신앙이 옳다면 마르크스의 분노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마르크스가 착각했었다고 해도 한 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세계의 절반 가까운 나라들이 자본주의를 대체할 어려운 실험을 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무엇보다 김진홍 목사의 젊은 시절도 없었을 것이다.

뉴라이트 운동, 시장경제를 숭배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라이트 운동 및 신자유주의자들은 예외없이 시장경제를 숭고한 사상이나 철칙쯤 되는 양 숭배하고 있다. 김진홍 목사는 그의 ‘아침묵상’에서 「우리나라의 헌법은 제1조에서부터 우리의 체제가 자유 민주주의임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고 자유민주주의가 내세우는 경제 질서가 시장경제이다. 그런데 시장경제가 바로 “네가 하기를 원하는 것을 남에게 하라”는 원칙 위에 서 있다. 시장경제의 원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웃과 사회를 위해 많이 한 사람이 잘 살도록 되어 있다. 남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더 잘 수행한 사람에게 더 많은 댓가가 지불되는 체제가 바로 시장경제이다.」(2006년 7월 19일)라고 말한다.

시장경제는 다른 사람의 욕구를 채워야

시장경제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삶을 살라는 예수님의 덕목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이 전혀 근거 없는 적용은 사실은 시장경제의 아버지인 아담스미스 사상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자본을 투자하는 것은 오로지 이윤을 얻기 위해서이다. …사실 그(자본가)는 사회 일반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얼마만큼 그것을 증진시키는지도 알지 못한다.…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한다.…그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오히려 그렇게 하려고 했을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다.」(국부론/아담 스미스)

신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지나친 강조는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 있어


목회자인 김진홍 목사님이 시장경제와 신자유주의 질서를 마치 지고지선한 신앙이나 되는 양 설파하는 것은 단지 뉴라이트 운동만 아니라 한국교회와 사회전체에 대단히 잘못된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

2. 김진홍 목사님은 자유민주주의를 원하는 게 아님을 아십니까?

기성세대 실제는 천민자분조의적 권위체제 선호하고 있어

기성세대 가운데 상당히 많은 분들이 자신이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원하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 그 분들은 자유민주주의라고 잘못 알고 있는 천민 자본주의적 권위주의 체제를 원하고 있다. 흔히 노무현 정부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좌파라서 다시는 집권을 막아야 한다고 열을 올리시는데, 오히려 노 정권은 지나치게(철없이) 자유민주주의적이어서 탈이다.

그들은 자주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자기주장과 표현을 보고 “저 것들, 배 곯아본 적 없어서 헛소리한다. 그저 한국 사람들은 사흘에 한번씩 두들겨 패야 말을 듣지.”라고 말한다. 노조의 파업만 봐도 그 주장의 정당성과 내용을 살피기 전에도 “빨간 머리띠 두른 것만 봐도 저것들이 빨갱이란 증거야. 일하기 싫어하니 또 파업이지. 우리 때는 저보다 더 심했어도 군말 없이 일했는데…다 너무 편해져서 그런 거야.”라고 혀를 찬다. 그러면서도 그 분들의 입에서는 언제나 “자유민주주의를 굳게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들을 수 있다.

시위하는 것 시위대의 잘못으로만 미룰 수 없어

김진홍 목사에게서도 이러한 진보운동 및 젊은 세대에 대한 반감은 노골적으로 엿보인다. 그는 올해 5월 12일 “경찰의 사기를 높여주자”라는 개인메일 글에서 「… 미국의 경우는…만일 데모하는 도중에 경찰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되면 현장 사살까지 허용한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경우는…경찰을 폭행하는 경우엡강제연행을 하여 엄한 실형을 내린다. 한국 경찰로서는 꿈같은 이야기다.…대처수상은 노동조합의 데모가 법질서의 테두리를 넘어서게 되자 기마경찰대를 보내어 진압하였다.…전국 노조대표자들이 수상을 방문하여 항의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대처수상은…“잘못했군요. 다음에는 그런 일이 있으면 기마대가 아니라 탱크를 보내겠어요. 노조든 누구든 법질서를 어기는 것을 방치한다면 민주주의는 사라지는 것이지요.”」라고 썼다.

나 자신 과격폭력시위를 극도로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폭력상황을 그저 시위대만의 잘못으로 표현하거나 시위를 내용의 정당성과 분리하여 단지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만 본다면 유신이 종말을 고하던 시기, “그까짓 거 데모하는 놈들 몇 천 명쯤 탱크로 깔아 버리면 됩니다.”라고 했던 차지철씨와 뭐가 다른가? 김진홍 목사 자신도 대학생 시절 시위 중 돌을 던져 경찰간부의 코뼈를 부러뜨린 적이 있음을 호기 있게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일제를 겪고, 한국전쟁과 잇따른 독재정부 시절을 고스란히 몸으로 살아온 염연한 그 분들의 그 정서와 넘기 힘든 한이 있음을 잘 이해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 모습은 다름 아닌 바로 내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난 결코 과거를 전면 부정하거나 단절할 생각이 추호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 분들의 그 아픈 기억에서 나온 편견을 자유민주주의라고 억지를 부리지는 않아야 한다. 그건 결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전쟁전의 세대는 통일의 주역이 될 수 없어

이미 한국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전후세대들은 그러한 기성세대의 경험과 아픔을 무시하거나 잊거나 원천 부정하려해서는 결코 안된다. 그런 면에서 386세대도 이젠 80년대 식 민주투사적 착각에서 분명히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단언컨대 그러한 아픔과 절절한 한을 겪은 戰前 세대는 결코 통일시대의 주역일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이남이나 이북이나 통일시대는 철없어 보이는(이북에서도 혁명세대들이 볼 때 젊은이들은 아무 생각없이 그저 놀기나 좋아하는 ‘놀새족’처럼 보이는 것이다) 젊은 세대가 만들어가야 하고, 또 살아가야 한다.

뉴라이트 등 이른바 신우익 운동에 합류해 있는 많은 젊은 세대들이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되어서는 안돼

대단히 죄송하지만, 그리고 안타깝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통일시대를 만들어가야 할 젊은 세대의 다소 철없고 과격해 보이는 표현들에 대한 부모세대의 애정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조언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뉴라이트 등 이른바 신우익 운동에 합류해 있는 많은 젊은 세대들이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불행이요, 역사 퇴보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모세대의 지혜를 겸손하게 수용하는 정도를 넘어 많은 아픔을 겪으며 모진 한을 가진 부모세대의 경험에 기대어 인생을 살아가려는 어른 아이적 퇴행이기 때문이다.

3. 김진홍 목사님의 사상은 매우 모순적이라는 걸 아십니까?

'잘살아 보세'보다는 '바로 살아보세'를 외쳤어야 돼

요즘 김진홍 목사의 말과 글들을 보면 한편에서는 매우 일관된 것 같으면서도, 가만히 살펴보면 매우 혼란스럽고 스스로도 정리되지 못한 견해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한 예로 그는 여러 곳에서 과거 개발독재시절 우리 사회는 속성상 ‘잘 살아보세’를 외쳤어도, 교회는 마땅히 ‘바로 살아보세’를 외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시절의 한국 개신교지도자들은 그릇된 선택을 하였다. ‘잘 살아 보세’가 아닌 ‘바로 살아 보세’ 운동을 펼쳤어야 했다.

교회지도자들도 '잘 살아보세' 노래

그러나 당시의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는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없었다. 세상 지도자들 보다 한 술 더 떠서 교회 지도자들이 ‘잘 살아 보세’를 노래하였다. 정치가들, 경제인들이 ‘잘 살아 보세’ 운동을 펼치면 교회 지도자들은 ‘잘 살아 보세’ 이전에 바른 신앙, 바른 가치관, 바른 정신으로 '잘 살아 보세'가 아니라 ‘바로 살아 보세’ 란 말을 끊임없이 외쳤어야 했다.」(2006년 6월 13일/아침묵상 “한국개신교의 위기”)
참으로 탁견이 아닌가?

그러나 바로 그런 김진홍 목사는 뉴라이트 운동을 통해 ‘바로 사는 조국’을 말하고는 있으나 사실 ‘그저 배부른 잘 사는 강대국’의 미래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비전을 보이고 있다. 가령 그에게 선진국이란 경제성장률과 국민소득이 높아 부강한 나라를 말한다. 물론 그는 민주화 등의 열매를 덧붙여 말하기도 하지만 수없이 많은 글들에서 보건대 경제성장이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64년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미처 100달러가 되지 못하였다. 같은 해에 북한의 국민소득은 240달러였다.…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에서 수출 주도의 해외 개방 경제 정책을 실시케 되면서 정세는 역전되기 시작하였다.…30년 만에 천배로 증가한 것이다. …불과 30여년 만에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단숨에 뛰어올라 세계인들로부터 ‘한강의 기적’이란 말을 듣게 되었다.…더욱 자랑스러운 것은 이 기간 동안에 경제만 이렇게 성장하였던 것이 아니라, 민주화의 업적까지 동시에 성취하게 된 점이다.」(2006년 8월 15일 “고지가 바로 저긴데”)

김진홍목사도 '잘살아보세' 노래 

그는 분명히 스스로 말했다. 우리나라 국가경영의 최우선 순위는 (‘바로 살아보기’가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데 있고, 그것은 다름 아닌 수출을 많이 하여 경제성장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과 동의어로 말하고 있다. 거기에 교육도, 노동도, 복지도, 문화도 종속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살아보세’가 아닌 전형적인 ‘잘 살아보세 주의’가 아니면 무엇인가?

나는 우리나라 국가 경영의 최우선 순위를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경제 정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교육 정책도 노동 정책도, 복지 정책과 문화 정책까지도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그 한 가지에 집중하여야 한다는 생각이다.…국가 경제는 70% 이상이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니 만일 우리에게 수출길이 막히게 되면 북한과 다를 바가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마련이다.…그러니 이 나라의 국가 경영의 최고 목표를 국제 경쟁력 확보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2004년 10월 15일 아침묵상 국가경쟁력 29위)

김진홍 목사, 재벌은 매우 고마운 존재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재벌은 매우 고마운 존재들이다. 부자에 대해 비난하는 풍토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심지어 자본가가 무슨 대단한 우국지사나 되는 양 과장을 하고 있다.「우리 사회에서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는 오해들 중의 4 번째는 “대기업, 엘리트, 부자는 나쁘다”는 오해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대기업, 엘리트, 부자는 본받아야 할 대상이지 규탄하거나 싫어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국민들이 지향(指向)하여야 할 사람들이고 대상이지 지양(止揚)하여야 할 사람들이거나 대상이 아니다.」(2005년 9월 28일 아침묵상 “우리 사회의 4가지 오해”)

김목사, 삼성그룹이 무슨 나쁜 일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은 작년 삼성 애버랜드 사채 불법증여와 관련된 이건희 회장 사건에서 김진홍 목사가 과도하게 편을 들려다보니 민망한 궤변에 이르게 되는 글이었다. 「…나는 삼성그룹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는지, 혹은 어떤 법을 어겼는지 모른다.」(위 글) 이런 말은 참으로 정직하지 못한 표현이다. 그는 분명히 사건을 잘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침묵할 일이다. 그러나 그는 삼성이 우리나라 수출을 선도하고 있고, 많은 세금을 내고, 많은 고용을 하고 있으니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그런 고마움도 모르고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을 꾸짖는다. 「…나는 그런 삼성이 몹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삼성의 이회장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체포조를 만들자는 발상까지 하고 있는 국회의원이 있다니 퍽 놀라운 일이다.」(위 글)

나는 부자이기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거나, 더 매도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더 강한 나라에 대한 신념만 가득 차 있는 그에게서 더 이상 정의나 공의, 그 스스로가 말하였던 ‘바로 살아 보세’를 기대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임을 슬프게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목사, 경제에 대한 상식은 오류튜성이

그가 그러한 혼란스런 모습을 보이게 되는 이유를 나는 그가 가벼운 몇 가지 상식들을 사태의 전부인 것처럼 단순하게 믿어버리는 그의 순진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히 그가 그토록 강하게 부르짖는 경제에 대한 상식들은 참으로 오류투성이다. 한 예로 그는 자신들이 내세우는 뉴라이트적 신자유주의를 부각시키기 위해 박정희 정권이 비록 독재는 했지만 경제를 성장시킨 큰 공로가 있는데, 그 경제성장의 조건이 바로 과감한 해외개방경제와 계획경제가 아닌 시장경제를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잘한 것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민족자립경제냐? 해외개방경제냐? 의 양자택일을 두고 논쟁이 일어났던 때에 박 대통령이 과감히 해외개방정책 쪽을 선택하여 수출지향적인 경제정책을 펼친 점이다.」(2006년 7월 7일 아침묵상 “세계로 뻗는 한국인”) 「우리는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지난 100년간에 시장경제 체제를 부정하였던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는 참혹 할 만큼 실패하였다. 시장경제 체제를 선택하였던 자본주의 사회가 승리자로 남게 되었다.」(2006년 7월 21일 아침묵상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박정희 시대, 사실상의 계획경제 채택

그러나 과연 박정희 시대의 경제정책을 그렇게만 단순화시킬 수 있을까? 오늘날 뉴라이트 운동가들이 부르짖는 것과는 다르게 박정희 시대의 정책은 수출지향적이긴 했으나 과감한 해외개방경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수입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한을 가하는 사실상의 보호무역주의자였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 모든 발전의 근원인 것처럼 여기는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허용하기는커녕 모든 산업과 경제를 국가의 계획적 정책에 따라 선별하여 절대적 후원 또는 배제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실상의 계획경제를 채택했다(물론 사회주의식 방향은 아니었지만).

김목사에게서 박정희 모습 발견 할 수 있어

매우 역설적이게도 젊은 시절 박정희 시대를 극복하려 했던 김진홍 목사에게서 나는 너무나도 많은 박정희의 모습을 발견한다. 한편으로는 일본을 극복하려 노력했으면서도, 기분만 나면 일본 군가를 부르며 다시 일본군인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했던 박정희처럼, 김진홍 목사는 일본 메이지유신 주역들에게서 소름끼치는 패권주의 사상보다는 그들의 선진적이고 지사적인 풍모를 더 부러워하는 박정희식 조국근대화의 기수역할을 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박정희 시대의 모든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박정희 시대를 오늘날 다시 살리려고 노력하는 살아있는 박정희주의자들의 퇴행성과 게으름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의 필요성을 일정부분 이해한다 해도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에도 우리의 성장모델이 여전히 박정희라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 교회개혁연대 사무국장 구교형목사

[관련기사]

구교형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280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3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t서대치 (220.116.42.70)
2006-09-15 09:03:41
얼굴은 양 몸은 돼지
약 15년의 가식적 고난이 약35년의 행복을 보장한다 난 이런 김진홍 먹사 같은

사람이끔찍하다 김진홍 은 감신대 교수 이신 김준우님의

<최근 예수연구의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라는 글을 보며 추악한 괴변에서 벋어나

참된 영성을 회복하길 바란다 ...죽음이 곧 이르리라

인생이 75요 강건하면 85라 <교회가 교회답게 변하는데 일조하고 정치적 제스처

를 멈추라 양의탈을쓴 김진홍 이여
리플달기
12 11
paulandsam (61.81.94.233)
2006-09-22 12:12:24
아침묵상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는 김진홍 목사의 모습에서 참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런 김진홍 목사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집니다. 나 역시 비록 죄인이지만 김진홍 목사정도는 아니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리플달기
7 14
소망 (124.1.189.151)
2006-09-15 12:04:28
십자가......
필자의 지적대로
"무엇보다 슬픈 것은
목회자로서의 그에게서 십자가의 신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번영과 힘의 신학을 신봉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이라는 내용은 참 신선합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 신학이라는 것도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조작 왜곡시키고 있음이 한국 신학의 현실입니다.
순수한 구속의 십자가 복음을 바라보는 필자의 시각이 어떠하신지,
그리고 독자 분들이 나름대로 생각하시는 기준이 무엇인지,
글 올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리플달기
8 14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