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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_ 창조 이야기 2
김명신  |  redpillar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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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10월 02일 (금) 18:31:21
최종편집 : 2015년 10월 07일 (수) 22:46:39 [조회수 : 2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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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괴물과 태양신(https://en.wikipedia.org/wiki/Enûma_EliÅ¡)

 

 

 

 

 

 

 

 

 

 

 

 

   Philip Im 님의 질문과 제 답변입니다.

1) 액자소설의 관점에서 한 작가가 두 명의 이야기꾼을 등장시켜 전개한 이야기는 아닐까요?
2) 두 창조 이야기를 반드시 두 명의 서술자가 있다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지요?
3) 문서 가설이 맞는다면 그 창세기 내용의 사실성이 훼손되는지요?

<답변>

1)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단편가설이라는 것이 있는 데, 여기서는 편집자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여러 이야기의 단편들이 있습니다. 편집자는 그 단편들을 서로 연결하면서, 자기의 신학을 드러냅니다. 액자소설과 유사합니다.
2) 가설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문서가설은 여러 가설 중의 하나인데, 이 여러 가설들의 주장에 따라, 저는 아래와 같이 생각합니다.

   - 모세가 단 한 번에 오경을 작성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작성하여 성경이 성장했다.
   - 따라서 성경에 일관되지 않은 신학이 많고, 차이는 당시의 인간현실을 반영한다.

3) 현상의 객관적 진술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는 성서자체가 훼손된 사실일겁니다. 그러나 성서의 많은 부분이 신학과 비유자료와 전승자료를 이용합니다. 의미의 세계인 신학, 비유, 그리고 전승을, 어떻게 사실이니 참이고, 사실이 아니니 거짓이라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들어가며>

   이 기사에 제 주장은 눈곱 만큼입니다. 두 권의 책과 위키영어사전을 참고하여 각색 했습니다.

   1) 악의 상징, 문학과 지성사, 폴 리쾨르 저, 양 명수 역, 173-175
   2)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한국기독교 연구소, 월터 윙크 저, 한성수 역, 44-48
   3) https://en.wikipedia.org/wiki/En%C3%BBma_Eli%C5%A1

위의 두 책은 명저이고, 번역도 참 잘되었습니다. 시간이 나면 읽어 보시기를 강추합니다. 사족을 달자면, 사탄의 체계와 예수의 비폭력을 저술하신 월터 윙크, 이 분이 돌아가셨을 때, 저는 매우 슬펐습니다.


1. 에누마 엘리쉬(Enûma Eliš)

   독자 여러분은 에누마 엘리쉬라는 바빌로니아 신화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 신들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신(god)입니다.

등장인물: 아푸스(아빠), 티아맛(엄마), 뭄무(아들), 킹구(아들. 나중에 티아맛의 새 남편이 된다.), 에아(아들), 마르둑(손주), 기타 젊은 자녀들과 손주 손녀들.

(젊은 애들의 노는 소리가 시끄럽다. 우당탕, 우당탕)
아푸스: 아, 신경질 나. 너무 시끄러워 잠을 못자겠어. 저 놈들을 싹 죽여 버릴래.
티아맛: 그러면 안 되지요. 어떻게 자식을 죽여요.
뭄무: 조놈들을 요렇게 죽이면 어떨까요? (쏙닥쏙닥)
아푸스: 히히, 그거 좋은 방법인데.

(아무도 없을 때, 엄마가 에아에게 슬그머니 다가간다.)
엄마: 에아야, 너희 너무 시끄러워. 아버지가 너희를 다 죽이려고 해. 조심해.
에아: (머리를 숙이고 겸손하게) 예. 알았어요.

(젊은 애들을 대표하여 에아가 마술로 아버지를 죽인다.)
에아: 우랑다리나바롱 부타라카 부랑야(주술). 아버지야 죽어라.
압수: 나 죽는다. 으악.

(엄마가 열 받았다.)
티아맛: 이 잡것들이 내 남편을 죽여. 남편의 복수를 해야겠다. 조금만 기다려라.

(애들이 모였다)
에아: (덜덜덜 떨면서) mother가 father의 복수를 하려고, 우리를 몽땅 때려잡는단다. 어떻게 하지?
에아: (웅성웅성하는 가운데, 가장 젊은 자기 아들에게며) 마르둑아, 우리를 위해서 싸울 수 없겠니?
다른 애들: (애걸복걸 싹싹 빌면서) 우리를 한 번만 살려줘. 제발 부탁이야.
마르둑: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앞으로는 내가 대장이야. 나보다 어른이라고 해서, 나한테 까불면
          안 돼. 영원히. 알았쥐~~.
에아와 형제들: OK. 협상 끝.

(할머니와 막내 손주의 싸움 장면)
티아맛: (막강 무기를 휘두르며) 이놈아, 남편의 복수를 하련다. 한판 붙자.
마르둑: 할머니, 그런다고 내가 쫄 줄 아세요. 먼저 독 바람이 나 드세요.
티아맛: (독 바람을 마셔서 할머니 배가 부푼다.) 아이쿠. 하지만 내가 질 줄 아니?
마르둑: 화살도 있는 데요.
티아맛: (마르둑의 화살이 할머니의 팽창한 배에 꽂혀 배가 터진다.) 으윽, 내가 졌다. GG.
마르둑: (할머니의 시신을 둘로 나누어) 내가 이제 천지를 창조하노라.
          (잘 개 나뉜 할머니의 다른 부위를 들고) 별과 이 세상 모든 것들도 만드노라.

(티아맛을 지지했던 자녀들이 철창 안에 있다.)

감옥에 갇힌 자녀들: (투덜거리며) 그래도 명색이 신(god)인데,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대접해.
                          침대도 엉망, 밥도 엉망.

(마르둑과 에아의 대화)
마르둑: 아, 전쟁에서 진 놈들이 불평이 많아. 저것들 어떻게 하지요?
에아(마르둑의 아빠): 그렇지 않아도 근질근질했는데, 한 놈에게 본대를 보이소서. 전하.
마르둑: 어떤 놈을 작살낼까요?
에아: 티아맛의 새 남편 킹구(티아맛의 아들이기도 하다.)를 죽이옵소서. 저 놈들의 대장입니다.
마르둑: 흠, 아빠에게 그놈을 맡길게요.

(에아가 티아맛의 새 남편 킹구를 끌어낸다.)
에아: 이놈아, 감옥이란 것이 다 그렇지 말이 많아. 이놈 죽어라. 퍽 퍽 퍽.
킹구: 이제 고마 해라 잉. (킹구가 죽으면서 피를 흘린다.)
에아: 내가 킹구의 피와 흙을 섞어 인간을 창조한다. 앞으로는 신이 해야 할 노동을 인간이
       대신한다. 또 인간은 때에 맞추어 신에게 맛있는 음식 가득한 수랏상을 올려야 한다.
       인간은 신의 무수리이자 종이다.


2. 창세기의 첫째 창조 이야기와 에누마 엘리쉬의 비교

   제가 쓴 앞의 기사 <김명신 목사의 성서이야기 "옛날 옛날에">와 <옛날 옛날에 _ 창조 이야기 1>에서 문서가설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문서가설를 따르면, 창세기 1: 1- 2:3까지 첫째 창조 이야기는 P 자료의 일부입니다. P 자료의 특징 하나와 기록연대를 말씀드립니다.

   특징: 하나님은 장엄하고 초월적이고 거룩한 분.
   역사와 기록연대: 유대인들이 느브갓네살 왕에게 작살나고, 유대의 높으신 분(왕, 귀족, 제사장)들
          이 바빌론으로 다량 방출됩니다. 그 후,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페르시아 왕
          이자 유대인의 메시야 고레스(사 45:1)가 등장합니다. 그는 유대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
          을 가나안 땅으로 돌려보냅니다. P 자료의 기록연대를 보통 유대인의 바빌로니아 포로기간
          부터 가나안으로 돌아온 후(기원전 6-5 세기)로 봅니다.

    P 자료의 특징과 기록 연대를 염두에 두시면서, 에누마 엘리쉬를 창세기의 첫째 창조 이야기(창 1:1~2:3)와 비교해 보세요. ^_^ 코피 브레끼(coffee break, 휴식시간) ^_^.

   간단하게 비교표를 만듭니다.

  창세기(1:1-2:3) 에누마 엘리쉬
장엄하고 거룩하신 하나님 폭력적, 패권적, 악마적 신들
우주

- 거룩한 하나님 말씀으로 창조
- 따라서 거룩한 우주

- 폭력(신들의 전쟁)에 의한 결과물.
- 신의 시체로 창조.
- 따라서 악으로 가득한 우주
인간 - 하나님 말씀의 결과
- 하나님의 형상
- 하나님의 동역자(피조물 관리)

- 반역과 불만의 결과.
- 흙과 살해당한 신의 피로 창조.
- 신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무수리.
- 신 대신 노동하는 종.

능동성 - 능동적 피조물(1: 11, 16, 20 등등) - 수동적 피조물


3. 성서와 역사를 통한 통찰.

   기원전 6-5세기, 유대인들 패전국민이었고, 많은 제사장, 귀족들이 바빌론(바빌로니아의 수도)으로 끌려가 생활했습니다. 나중에 그들의 일부는 가나안으로 돌아옵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자치권을 유대인에게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 바빌로니아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의 문화적 영향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승전국 문화는 마르둑이 최고신이라고 합니다. 바빌로니아/페르시아 사람들은 마르둑이 신들의 전쟁을 일으켜 승자가 되었고, 패자 티아맛의 시체로 마르둑이 우주를 창조했고, 에아가 킹구의 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믿는 신이었고 절대적 신앙이었습니다. 이 신앙이 기독교 신앙만큼이나 인류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니다. 그들 앞에 닥친 현실을 볼 때, 하나님은 마르둑보다 약합니다. 전쟁에 패한 그들의 일부는 타국 땅으로 끌려갔습니다. 끌려가지 않은 사람이나 끌려간 사람이나 생활은 심히 곤궁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깔보던 이방의 왕이 시키는 대로, 그들은 해야 합니다. 자존심이 내 팽개쳐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하나님이 마르둑보다 강하다면, 선택받은 백성이 이렇게 무참하게 당할 수는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점차 하나님 신앙을 멀리하고, 마르둑 신화에 더욱 빠져 들었을 것입니다.

   그 때, 새로운 신앙이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1) 전쟁에 패한 신의 시체를 이용해서, 우주를 만들었다고? 웃기지마. 우주는 저주스런 폭력과 전쟁의 결과로 생성된 것 아니야. 거룩한 하나님께서 거룩한 말씀으로 창조했어. 하나님이 우주 만들고 얼마나 좋았는지, “보기 좋았다”하고 번번이 말씀하시네.

2) 살해당한 신의 피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Oh, No. 인간은 거룩한 존재야.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어. 인간은 신의 노동을 대신하는 종도 아니고, 신의 음식을 장만하는 무수리도 아니야.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먹거리를 제공해(1:29-30). 하나님께서 내 종 같은데?

3) 피조물에게 능동성이 없다고? 절대 동의 못해. 피조물은 스스로 알아서 일하는 능동적 존재야. 땅이 풀과 나무, 그리고 짐승을 종류대로 내잖아(produce). 태양과 달이 낮과 밤을 다스려. 게다가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일을 위임하셔(1:28). “너는 내 형상. 나는 너를 믿어. 그러니 네 뜻과 이성대로 해봐.”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4. 우리 시대의 마르둑 신자.

   이 새로운 신앙이 어떻습니까? 패배자 유대인들은 제국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고,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자존감은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패전국의 백성도 승전국의 백성만큼 거룩하고 능동이랍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도 페르시아 왕궁에서 호위 호식하는 왕만큼 거룩하고 능동적이랍니다. 낫놓고 ㄱ자도 모르는 무지렁이도 똑똑한 제사장만큼 거룩하고 능동적이랍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 시대의 마르둑은 누구 혹은 무엇일까요? 혹시 케케묵은 교리나 일부(?) 몰지각한 종교 지도자들 아닐까요? 그것들로 인해서 독자들은 종살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나는 죄인이니, 하나님의 종이 까라면 까라는 대로 해야 해. 그래야 내가 복을 받아.”하는 신앙생활 말입니다. 저는 그 진절머리 나는 죄인 신학에서 벗어났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거룩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사람을 잡는 방법 가운데, 위기감을 조성(머지않아 전쟁 일어나.)하거나 죄인을 만드는 방법(완전히 타락한 놈아.)이 있습니다. 이용당하지 마세요. 본론으로 돌아가, 대대로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생각해서, 자존감이 파괴되어 불의에 저항 한 번 못해보고, 쥐새끼 죽은 듯 꼼짝 못하는 인생이 마르둑 신자가 아닐까요? 망할 때는 망하더라도, 찍소리라도 해야 합니다. 특히 현 사회 체계에서 패배한 사람은 말입니다. 물론 승자가 압도적인 힘을 가진 독한 사람/단체이면, 작살나겠지만요. 그래서 내 뺄 줄도 알아야 합니다.


5. 성서에 대한 오해.

   이 부분은 Philip Im 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1장은, 당시에 만연한 비극적 인간상과 폭력적인 신앙에 대한 반론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거룩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거룩한 피조물임을 주장하는 신학 글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은 현대의 정밀한 과학이 용납하지 않는 논리를 포함합니다. 즉 창조 이야기를 저술한 저자의 일차적 관점은 하나님과 인간을 바로 알자는 것이지, 현대 과학을 바로 알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창세기 1장을 무슨 과학 논문 대하듯이 읽고, 필요에 따라 그렇게 증오하는 현대 과학의 자료를 들이대며, 창세기 1장이 조금도 가감되지 않은 과학의 진리라고 변호하기에 바쁩니다.

   성서가 종종 현대의 과학자들에게 놀라운 통찰력을 주기도 합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서를 읽을 때 하나님과 인간의 존재 의미를 먼저 읽어내야 합니다. 현대 과학과 상충되는 성서의 내용을 변론하지 말고, 그 상충되는 것을 과감히 수정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진화론을 하나의 지식으로 받아들입니다. 디모데후서 3:16-17에서 말씀하듯, 성서는 사람을 온갖 선한 일에 유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영감(inspiration)입니다. 성서는 사람을 효율적이고 유능한 과학 종사자로 만드는 하나님의 영감이 아닙니다.


6. 기타

1) 저의 주장을 못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자기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십시오. 저는 아무리 그럴듯한 타인의 주장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제 주장을 타인에게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견해의 차이를 받아들이면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토론하지만, 가끔가다 씹어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이 어린 제 자식과 대화할 때, 내가 옳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 무참하게 도륙당하는 사건을 종종 경험합니다.

2) 앞으로 질문 안 받습니다. 사실 제가 성서신학 전공자가 아닙니다. 역사 비평의 개념만 알 뿐, 내용을 정확하게 작성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3) 역사비평으로 성서를 더욱 풍부하게 고찰할 수 있습니다. 단점은 더럽게 어려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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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180.227.226.250)
2015-10-08 10:03:11
글쓰신 분의 상처만 보입니다.
편집자 설은 신학교에서 처음에 배우는 것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하고 있는데... 이 글은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글쓰신 분의 상처만 묻어 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처를 새로운 신학으로 덮으려는 느낌...
리플달기
0 4
참빛 (207.210.3.147)
2015-10-06 06:59:27
고맙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액면 그대로 또 문자 그대로 받기 보다는 성경이 누가 어떻게 왜 쓰여졌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

사람의 생각패턴 즉 사고방식은 그가 평생 경험하고 듣고 배운 것이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결산물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평생을 근본주의 테두리 안에서 머무르며, 오로지 자기가 보고 듣고 믿어온 그것들 만이 유일하게 옳은것이라고 여기면서 살아온 외골수 신앙인이 있다고 한다면, 실제로 그에게 무슨 직접적인 잘못이 있겠습니까?

더 넓은 세상과 또 다양한 밖의 생각들을 접하지 못하게 아애 막아넣고, 순수한 성도들에게 새로운 것이란 무조건 "나쁜것" 으로만 여기도록 유도하며 가르치며 자기들의 권력유지에만 급급한 목사들과 그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병신도들이 진짜 책임을 져야 하겠지요.


한번 근본주의 신앙(?)에 깊게 세뇌당해 버리면, 정상적인 사람이 아무리 바로잡아 가르쳐 주려해도 절대로 않됩니다. 헛된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그들의 두뇌안에는 종교는 "사실에 입각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만이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아니면 믿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모두 거짓이라는 겁니다. 완전한 흑백논리이지요.


종교는 "진실", "의", "사랑" 등의 가치와 선에 대한 개념을 다루는 것이지 결코 "사실"을 다루는데에 핵심을 두지는 않습니다. 사실에 대한 관심은 과학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의 창조과학이니 하는 그런 신앙을 빙자한 혹세무민적 싸구려 계략은 자기를 속이고, 사람을 속이고, 과학을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는 폐망적 행위임에 틀림없습니다.

....



예수님의 참빛이 어둠속을 헤매는 자들에게 오늘도 환하게 비추어 지기를 기대하면서...


ps.: 김명신 목사님, 화이팅! 꼭 필요한 글을 써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좋은 내용의 글, 쉽게 풀어쓰는 글, 계속 기대합니다.
리플달기
3 2
액자소설 (122.35.176.192)
2015-10-05 04:31:45
액자소설의 구성과 두 가지 창조이야기는 같다고 볼 수 없죠. 액자소설의 구조는 큰 이야기 안에 다른 이야기가 포함되는 것인데, 두 가지 창조이야기는 병치되어 있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자료에서 온 것이 편집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의 병치는 창조를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기 어려워하는 다원성을 발견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가설은 이제 단순한 가설을 넘어서 정설이 되어 있습니다. 받아들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진화론도 하나의 가설을 넘어서 이제는 하나의 정설로 정착했습니다. 가설로 시작했지만, 많은 증거에 의해서 그 가설이 뒷받침되면 그 이론은 정설로 맏아들여지는 것이죠.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가설이었지만, 갈릴레오 등에 의해 그 가설이 옳다고 증명되었기 때문에 정설로 인정되었습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자기가 배운 것, 알고 있는 것을 고집하는 경향이 아주 심한데, 신앙적 확신은 장점을 지니고 있으면서 단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신앙을 전해준 분들은 보수적인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신앙을 전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분들처럼 지난 시대의 사고에 함몰되어서 새로운 것이라면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성인이 된 우리 인간은 분별력을 가져야 성인다울 것입니다.
리플달기
3 1
Philip Im (70.62.49.64)
2015-10-04 10:06:39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창세기 1장은, 당시에 만연한 비극적 인간상과 폭력적인 신앙에 대한 반론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거룩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거룩한 피조물임을 주장하는 신학 글입니다."
이런 종류의 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인용한 이 구절만 하더라도 '스스로 계셔서 자기를 계신하신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결국은 인간의 머리에서 그려낸 하나의 잡신에 불과하게 됩니다.
아니라면?
리플달기
2 5
Philip Im (70.62.49.64)
2015-10-03 04:40:27
감사합니다.
저는 댓글을 통하여 답을 주실 줄 알았습니다.
견해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토론하신다 하셨는데
저는 그 방법이(만나서 할 수 없으니까) 댓글을 통하여 주고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이제 질문을 안 받으신다니 더 이상 토론이라 할 것 없고 그저 쓰신 글에 대하여 저의 생각한 것만 쓰도록 하겠습니다.
리플달기
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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