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4. 아르빌로 향하는 C-130

Camp Virginia 가까이에 위치한 알리알살렘 공항에 주둔해 있는 공군 다이만 부대는 4대의 C-130 수송기를 이용해 자이툰 장병들과 물자들을 이라크 아르빌로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자이툰 부대 입장에서 보면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부대입니다. 탑승명령이 떨어진 날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알리알살렘으로 향했습니다. 미군 전투식량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방탄조끼와 방탄헬멧을 지급받아 드디어 C-130기에 탑승하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드디어 이라크 아르빌 땅으로 향합니다. 안전하게 하시고 임무완수 무사귀환 할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귀에 꽂은 Ear Plug를 넘어 들어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한동안 정신이 멍할 즈음, 기내 신호등에 불이 들어오고 승무원들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방탄조끼와 헬멧을 재확인하고 안전벨트들을 점검했습니다. 아르빌에 가까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는 약 20분간 전술비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병력 및 물자를 수송하는 비행기는 당현히 적대세력의 공격 목표이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전술비행을 실시하는 것입니다. 급강하, 급상승, 좌우로 흔드는 전술비행은 이 곳이 위험한 지역임을 실감나게 했습니다. 마주보고 앉은 장병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습니다. 아침으로 먹은 미군 전투식량들을 곳곳에서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아르빌 공항에 안착한 직후부터 돌아갈 때를 걱정하는 병사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병사들은 전술비행 사실을 모르고 큰 일이 터진줄 알고 마음 졸였다고 하니 그 때의 공포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후에 저는 쿠웨이트 및 바그다드 출장등으로 12번이나 전술비행을 경험했습니다. 지금도 꿈 속에 나타나는 단골 메뉴중에 하나입니다.

이라크에 파병되어 있는 28개국 동맹군의 최고 사령부인 MNF-I(군사령부)와 MNC-I(군단)가 있는 바그다드 Camp Victory를 다녀왔습니다. 3일간의 자이툰 부대 방문 일정을 마치고 복귀하는 미군 군목들과 동행했습니다. 두 시간동안 UH-60 헬기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저공비행으로 바그다드를 향하는데 헬기 양쪽 문을 열고 긴장한 표정으로 기관총을 잡고 경계하는 미군 승무원의 모습속에서 이 곳이 전쟁터라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더구나 전날 영국군 UH-60헬기 1대가 격추되었다는 소식에 더욱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목사가 다섯이니 하나님께서 손해보실 일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Marks목사님(대령, MNF-I 군종참모)의 농담이 우리의 긴장을 풀어주었습니다.

중간 기착지에서 재급유를 하고 야간 전투장비들을 점검한 다음에 다시 비행을 시작해서 바그다드의 기가 막힌 야경을 두려움속에 감상하며 Camp Victory에 도착했습니다. 바그다드 Camp Victory에서 연락장교 및 협조반으로 근무하는 스물네명 한국군 장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도착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식사하고 준비해간 선물도 나누어 주며 기도하는등 그들의 노고를 위로했습니다. 더구나 모든 식사를 미군식당에서 해결해야 하는 이들을 위해 특별히 고추장, 김치, 라면등의 한국음식을 준비해갔는데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Victory Chapel에서 열린 주일예배에 제가 영어설교와 축도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참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날 하루 종일 만나는 미군들로부터 설교에 대한 과장된(?) 인사를 들어야 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과장된 칭찬을 잘 알면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국군 장교들도 자신들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군종목사님이 하셨다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설교 중에 잠깐 불렀던 찬양에 감동했다고까지(?) 표현하며 저와 함께 찬양하고 싶다고 조르는 미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장소가 지금은 MNF-I 사령부 건물로 쓰고 있는 사담 후세인의 옛 궁전인 AL FAW PALACE(알포팰리스) 현관이었습니다. 거기에서 "Amazing Grace(찬송가 405장)"를 듀엣으로 부르지 않았겠습니까? 둘이서 화음을 맞춰 부르는 찬양에 지나던 미군들이 잠시 멈추어 섰다가 “브라보!”를 외쳐주더군요.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고 잠깐 부를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찬송을 끝까지 불렀습니다. 궁전 건물의 구조상 잘 울려퍼지는 소리에 부르면서 은혜도 되고 한편으로는 여기서 찬양을 해도 되는건가? 걱정도 되더군요. 찬양이 끝나고 서로 껴안아 격려하고 “Wonderful!"을 연발하는 그 일행과 헤어져 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후세인의 궁전이었던 “AL FAW PALACE(알포팰리스)”에서 찬양이 불리던 때가 있었을까? 진작에 이 아름다운 궁전에 찬양 소리가 울려퍼지는 자유가 있었더라면 이 불행한 전쟁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러면서 ‘우리가 알포팰리스에서 찬양을 한 최초의 사람들 아닐까?’ 생각하며 행복했습니다.

총 14번 동참했던 Green Angel 작전. 여러 날을 투자해서 마을회관을 건축하거나 도로를 닦고 배수로를 정비하는등 공들여 실시했던 민사작전을 마무리하면서 펼치는 대형 민사작전입니다. 자이툰 부대원들 하나하나가 녹색 천사가 되는 날입니다. 현지인들에게 각종 시범을 보이고 먹거리 장터를 만들어 한국 음식들을 제공하는등 마을 잔치를 펼치는 것입니다. 1진 군종부가 해왔던 그림 그리기 교실에 노래교실을 더하여 참여를 했습니다. 너무도 맑은 눈망울들을 가진 아이들이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며 이라크의 희망찬 미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충분하게 준비해간 크레파스와 문구세트, 스케치북등을 선물로 다 주고도 항상 모자랐습니다. 우리네 60년대 모습보다도 더 가난한 모습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이 땅에도 평화와 번영이 임하길 기도하며 Green Angel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르빌의 어린이 천사들이 눈에 선합니다.

티크리트에 주둔하고 있는 MND-N(미101공정사단, Camp Speicher)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이툰 부대로 초청해서 함께 예배드리고 교제했던 군종참모 중령 Thomas 목사님의 초청이 있던 차에 마침 그 곳에서 열리는 Asian-Pacific Heritage Month 행사에 우리 자이툰 부대 태권도팀과 특공무술팀의 시범공연이 계획되어 그 편에 함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시누크(CH-47) 헬기 한 대와 블랙호크(UH-60) 헬기 한 대에 41명이 나누어 타고 다녀왔습니다.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미 군목들과 함께 양국 군 내에서의 군종병과 위상이나 군종활동등에 대하여 토론도 하고 교제도 나누고 군종활동 자료들도 많이 획득했습니다.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Asian Pacific Heritage Month 행사에 선보인 자이툰 부대원들의 태권도와 특공무술 시범은 그 자리에 있던 한국계 미군들에게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열광 그 자체였고 모두들 기립해서 박수를 그칠 줄 몰랐습니다. 마지막에 공중에서 펼쳐진 현수막의 "Let's go together!" 에 끝없는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함께 자리했던 7명의 미군 군목들도 “Great!"을 연발하며 환호했습니다. 군종참모 토마스 목사님은 “이 곳 Camp Speicher(101공정사단 주둔지) 미군들 중에도 태권도 교관들이 있는데 평소 상당히 힘을 주고 다녔다. 그런데 오늘부터 그들은 끝이다!”라고 농담을 해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야간비행으로 복귀할 때 아르빌에 다 도착했을 무렵에는 갑자기 로켓포 같은 것이 헬기 옆을 지나가는 바람에 모두들 혼비백산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진땀이 나는데 헬기에 장착된 플레어(레이더 유도미사일 교란 장치)였답니다. 적의 유도무기 공격에 대비하여 자동으로 터지게 조절해 놓은 플레어가 터진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조준당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때부터 시작된 헬기의 곡예비행에 얼마나 놀랐었는지... 기관총을 잡고 야시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미군 승무원의 눈이 튀어나올듯 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자이툰 부대 헬리포트에 도착해서는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헬기를 한번 타도 대단한 각오를 해야 하는 그 곳은 분명 전장이었습니다.

쿠웨이트나 바그다드에 출장을 갈때마다 미군들의 Camp에 가면 어디서든지 한국계 미군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미국군복을 입고 있는 동양인을 보면 먼저 인사를 하게 되는데 그 중에 한국계가 많이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대화해보면 거의 대부분이 아기일 때 입양되어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입니다. 간단한 인사말이나 자신의 한국이름 외에는 한국어를 할 수 없지만 뭔가가 통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그다드로 들어가는 길에 만났던 Wezchel이라는 병사는 두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되어 살게 된 김영훈이었습니다. 자신의 한국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이 형제와 대화하며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친부모님을 원망하지도 않고 만나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는 그 형제를 보며 왜 우리나라가 지금도 영아 수출국의 오명을 쓰고 있는지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다지 튼튼하지도 못한 체구인데다가 어딘가 모르게 어리숙하게도 느껴졌던 그 형제의 머쓱한 웃음이 지금도 제 뇌리에 강력한 잔상으로 남아있어 때때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장면#9. 성탄선물 수송작전

2005년도 성탄절은 제게 잊을 수 없는 성탄절이었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이국 땅에서 그것도 전장에서 맞이하는 성탄절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큰 추억이겠지만 잊을 수 없는 성탄 선물이 있었습니다. 한 가정이 한 장병을 위해 정성스럽게 준비한 위문품주머니 3,800개가 수만리를 육지로, 바다로, 그리고 항공기로 이동해 부대에 도착한 것입니다. 8월말 파병준비기간에 평소 제 군목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광림교회 김정석 담임목사님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며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렸었는데 그 때 조심스럽게 성탄선물을 요청했었습니다.

예전에 1개 대대 450명 장병들과 서울 모 교회 450가정을 연결해서 성탄 선물을 받아 큰 기쁨을 누렸던 것을 기억하고 요청을 드렸던 것입니다. 이라크에서 맞이하는 올해 성탄절에 광림교회가 자이툰 전 장병을 위하여 성탄선물을 준비해 주신다면 정말 큰 힘이 될 거라고 말입니다. 사실 3,800개의 선물을 준비해 줄 수 있는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광림교회 능력에 걸 맞는 청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원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 이라크에서 위성전화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며 일을 진행시켰습니다. 3,800가정이 정성스럽게 선물을 준비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그 엄청난 분량의 선물을 한국에서 수만리 떨어진 이라크 전쟁터까지 보낸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복잡한 절차들을 거쳐 05-4차 재보급 물자 수송 작전에 성탄선물을 포함시켰습니다. 대형 컨테이너 한 대 반 분량의 선물을 서울에서 부산 2보급창으로 수송한 후 부산 8부두에서 선적하여 11월 26일 한국을 떠났는데 일정보다 조금 늦은 12월 22일 쿠웨이트 항구에 도착한 것입니다. 계획대로 육로수송을 한다면 성탄절이 한참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이툰 부대는 이 선물을 성탄전야에 병사들의 손에 전달하기 위해 합참 및 국방부와 협조하여 C-130기를 긴급 편성했습니다. 결국 12월 23일 쿠웨이트 항구에서 알리알살렘 공군 기지로 컨테이너를 옮겨 해체한 후 항공기 선적 작업을 마치고 12월 24일 오후 두 시간의 비행 끝에 무사히 자이툰 부대에 도착을 한 것입니다.

선물을 실은 대형 트럭이 교회 앞 광장에 도착했을 때 북받쳐 오르는 감동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8월부터 시작된 “광림교회 성탄절 선물 수송 작전”이 비로소 성공적으로 완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이지만 굳이 계산한다면 한 가정당 2-3만원 상당의 선물을 준비했으니 1억원이 넘는 엄청난 재원이 들어간 것입니다. 게다가 장병들이 재활용 할 수 있도록 상자대신 고급스러운 위문주머니를 제작했으니 그것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부대별로 선물 불출을 시작한 지 채 한 시간이 안 되어 작업이 완료 되었습니다. 선물에 번호를 매겨 제비를 뽑아 나눠 가진 부대가 있는가 하면 가위 바위 보를 하는 등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선물을 나눠 가지며 각기 다른 내용의 선물들을 놓고 함성을 지르는 등 행복해하는 병사들과 간부들의 모습을 보며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성탄절이었습니다.

성탄절 전날 광림교회 성탄 선물 도착 직후 간호장교 한명과 함께 난생 처음으로 싼타 복장을 하고 자이툰 병원에 입원해 있는 현지인 환자들을 찾아가 선물을 전달하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모두가 모슬렘들이었지만 기쁨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성탄인사를 주고 받았습니다. 모슬렘들과 말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Merry Christmas!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또한 많은 부대가 참여한 성탄 전야 발표회, 부대 주요시설들을 돌며 행했던 새벽송 행사 그리고 성탄축하 음악예배.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은혜롭고 감동적이었는지 모릅니다. 특히 성탄축하 음악예배는 교회가 비좁은 관계로 12여단 식당에 며칠에 걸쳐 무대를 만들어 그 곳에서 드렸습니다. 전장교회에서 성가대가 칸타타를 연주 한다는 것 자체만 해도 의미있는 일일텐데 군악대와 함께 정말 훌륭한 연주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모두들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칸타타 한번 해 보자고 의기투합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마침 청와대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님 일행이 참석해서 사단장, 여단장 및 주요 직위자들 대부분이 참석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중에도 600여명의 장병들이 참석해서 칸타타를 통해 전달되는 은혜와 감동을 맛 보았던 의미있는 예배였습니다.

게다가 12명의 장병들에게 세례도 베풀었습니다. 전장에서 그것도 성서의 땅에서 성탄절에 행하는 세례예식이라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예배중에 인사했던 권진호 보좌관도 몇 번이고 감동적인 예배에 대해서 언급하고 감격해 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는 고생한 성가대원들과 성탄절행사 준비 위원들 60여명이 성탄절 파티도 했습니다. 그 동안의 고생과 피로가 한꺼번에 씻기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많이 힘들고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너무도 행복했고 감동적이며 보람 있었던 성탄절이었습니다.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KRG(쿠르드지역정부) 대통령이나 각료들, 자이툰 부대가 속한 MNF-I의 다국적군 장성들, 그리고 한국군 관계자들은 물론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또는 파병연장과 관련하여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방문하는 정치인들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입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였고 그 때마다 일명 “Zaytun Tour"라고 불리는 자이툰 부대 시설견학을 실시했는데 그 코스에 종교센터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백만평의 부둔지 한 가운데 위치한 종교센터는 광장을 중심으로 교회, 성당, 법당 그리고 현지 고용인들을 위해 지은 이슬람사원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자이툰 군종장교들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가 이 곳을 방문하는 방문단들에게 종교시설을 안내하고 설명하는 일이었습니다. 팁(Tip)도 못 받는 여행 가이드라고 불평(?)들도 했지만 종교센터를 찾는 사람들을 정성을 다해 맞이하였습니다.

자이툰 부대를 방문해서 종교센터를 다녀간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미 중부사령관 존 아비자이드(John Abizaid) 대장, MNF-I 사령관 케이시(Casey) 대장, MNF-I 부사령관 호튼(Houghton) 중장(영국군)등등의 다국적군 장성들과 합참의장 이상희 대장, 합참차장 김명립 대장(공군), 육군참모총장 김장수 대장(현 국방부장관), 육군 감찰감 백군기 중장(현 3군사령관)등등의 한국군 장성들, 추병직 건설교통부장관, 권진호 청와대안보보좌관, 국회 국방위원장 유재건, 국회의원 신기남, 임종인, 고조흥등등의 국내 정치인들, 그리고 마수드 바르자니 대통령과 니체르반 바르자니 총리를 포함한 KRG의 각부 장관들등 모든 사람을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들을 영접하고 종교센터를 소개했던 일들이 지금에 와서는 큰 재산으로 느껴집니다.

테러위협과 안전문제 때문에 Green Angel 작전이나 아르빌 주 정부 청사방문등의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르빌 시내에 나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빌 시내에 나가서 업무를 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임마누엘교회의 초청으로 방한 연수를 떠나게 된 쿠르드교회 지도자들의 항공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항공사 사무실이 있는 쉐라톤 호텔에 다녀와야 했던 것입니다. 저 혼자 나가는 일이지만 경호병력이 15명 정도가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작전소요를 줄이기 위해 경호대상들을 통합해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마침 치안전력 담당을 맡고 있던 작전처 권영진 소령(해병, 교회성가대장) 팀과 함께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도착한 쉐라톤 호텔의 내부는 별천지였습니다. 서울 시내 호텔들과 다를 바 없는 호화로운 인테리어에 고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로비 라운지에 넘쳐났습니다. 우리네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바깥의 모습과는 딴판이었습니다. 제 업무를 마치고는 어쩔 수 없이 권소령의 목적지에 동행해야 했습니다. 경호 작전팀들을 나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행운이 있었습니다. 목적지는 쉐라톤 호텔 근처의 추와출라 호텔. 외관상으로는 쉬라톤 호텔과 비교가 안되는 7층 규모의 낡은 호텔이었지만 이 호텔은 현재 미군이 통째로 매입해서 쓰고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한 달만에 이라크로 날아온 새댁인 여군 핸더슨 중위(헌병)가 아르빌 치안전력 정상화의 책임자로 일하면서 쓰고 있는 헤드쿼터(본부)였습니다. 업무 파트너인 권 소령과 미국에서 날아온 베테랑 경찰 수사관들과 함께 회의를 하는 자리였는데 Chaplain(군목)인 저에게도 자리를 내주어 함께 회의를 했습니다. 때때로 제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자상하게 배경들을 설명해 주면서......

그런데 정작 중요했던 것은 점심 메뉴였습니다. 각종 샐러드를 포함해서 뷔페식으로 깔아 놓은 것만도 최고였는데 개인마다 메인을 따로 주문하라는 겁니다. 현지 고용인들이 웨이터로 오더를 받았고 가능한 세 가지 메뉴 중에 별 기대없이 치즈피자를 주문했는데..... 8개월 만에 먹어보는 정통 치즈피자. 정말 황홀했습니다. 미국에서 데려온 요리사가 만들어 내온 치즈피자는 정말 눈물나게(?) 맜있었습니다. 부대로 돌아와 자랑삼아 이야기했다가 여군 자매들에게 한 동안 시달려야 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치즈 피자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장면#13. 자이툰 장병들을 위해

자이툰 부대에서도 장병들을 위한 군종활동은 계속되어졌습니다. 당연히 종교활동이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전장지역에 나와 있는 장병들이 더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기․천․불 모두 매일 종교행사를 실시하며 장병들을 영적으로 위로하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작전 투입전 교육 및 기도회, 수송부 안전기도회, 장병 인성교육, 야간 경계초소 위문, 교관지원, 인간관계 Work-shop, 간부 숙소 방문 상담, 군종담당관 운용 및 교육, 취약지역 근무자들 위문 및 격려, 자이툰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장병들과 현지인들을 돌아보는 일 등등 많은 일들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 가운데 신앙상징물을 나누어 주고 기도하는 일은 자이툰 장병들에게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일 중 하나였습니다. 군종활동의 모습은 어디든지 대동소이한 것 같습니다.

C-130을 이용하여 아르빌을 떠나 쿠웨이트 Camp Virginia로 향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르빌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기었습니다. 며칠 만 지나면 그리운 가족들을 만난다는 사실에 흥분되었지만 마냥 기쁘지 만은 않았습니다. 정들었던 전우들과 현지인들 그리고 이 땅을 떠난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이륙하자마자 전술비행을 시작하는 비행기 안에서깊은 상념에 잠겼습니다. 두 시간을 날아 도착한 쿠웨이트 알리알살렘 공항에서 공군 다이만 부대 장병들과 인사를 하고 곧 바로 Camp Virginia로 이동했습니다. 이 곳에서 3일을 대기하며 수 많은 미군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라크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 곳으로 온 미군들과 이들을 대신하여 바그다드로 들어가려고 대기하는 미군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물어보지 않아도 미국으로 가는지 바그다드로 가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바그다드로 들어가는 병사들은 얼굴에 긴장한 표정들이 역력했습니다. 지금도 하루에 수십명씩 죽는 미군들이 있으니 이들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위험한 전장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보기에도 안쓰러웠습니다. 식당에서, PX에서, 오가다가 만나는 미군 병사들에게 인사하며 내가 채플린임을 밝히면 그렇게들 좋아했습니다. 가지고 있던 십자가 목걸이나 신앙 팔찌를 걸어주며 위로를 하면 눈물을 글썽이며 끌어안고 너무너무 고마워했습니다. 때로 악수를 청하며 손이 부러질 듯 힘을 주어 감사를 표시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그들에게 작은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하나님, 저들을 보호하소서!

드디어 귀국 전세기를 타는 날. 복잡하고 지루한 출국 수속 절차들을 마치고 전세기에 오르는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귀국 장병들 뒤치다꺼리를 다해준 쿠웨이트 지원대 강익모 소령과 병사 세 명이 멀찍이 서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우리 비행기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경례자세로 한참 동안이나 서 있었습니다. 창가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본 나는 애써 눈물을 참아야 했습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열 한시간 후 도착한 서울.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긴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매일 이 꿈을 다시 꾸고 싶습니다. 그리고 위의 꿈에 등장하지 않았던 세세한 장면들을 다시 재현해 보고 싶습니다. 만일 할 수만 있다면 부족했던 부분들을 다시 채워 더 완성도 있는 장면으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자이툰을 위해서!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자이툰 부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