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얀부족의 민속시장

     2010년 1월 15일 금요일

▲ 이강무 목사

     문명의 사각지대라 말하면 원주민들을 너무 무시하는 말이 될 것이고, 문명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순수하고 신성한 곳이라 말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이라 지적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의 마음은 설레기 시작한다. 산속부족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디카를 무비로 돌려놓고 흥미로운 이들의 풍물시장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마을길을 따라 계속 끝까지 가 보았다. 이들 마을에 가면 무언가 생소한 원시문화의 원형이 잡힐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망얀부족의 전통 가옥들이 나타나고 한 허름한 가옥에 아이 몇 명이 밤부하우스 벽에 난 구멍을 통하여 안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무슨 일이 있나 안으로 들어가 문을 열고 보니 두 평 남짓한 조그만 방에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 더 이상 앉을 자리도 없이 비좁게 앉아 비디오를 시청하고 있다. 밖에서 틈사이로 보는 아이들은 미처 들어가지 못해 자리를 잡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너무나 실망이다. 난 이런 모습을 보러 온 게 아닌데! 누가 이 마을에 이런 걸맞지 않은 문화기기를 설치하였단 말인가! 이 아이들은 지금 문명인의 노예가 되는 학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아이들은 신기하고 이상한 비디오를 보면서 즐거워 할지 모르지만 내 마음은 왼지 답답한 생각이 든다. 무언가 잡았던 것을 빼앗긴 기분이다.

▲ 비디오 방에서 시청하는 아이들과 어른들

     문명의 맛을 본 이상 이곳의 원주민 아이들은 이제 평온하고 아름다운 산속마을의 동요와 동화를 더 이상 재매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비디오에서 본 도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과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을 입고 싶어 할 게다. 실제 형편상 그러지 못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알게 되면 도시인들과의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 가난하고, 불쌍하고, 미개하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이들은 자기네 형편으로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바라보며 좌절하고 실망하고 시름할 것이 아닌가!

     이들에겐 그동안 아무 부러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배가 고프면 산에 가서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풍성한 열대과일 등을 먹고 싶은 것을 따 먹던지 캐어 먹으면 되었다. 지천에 자라는 바나나는 알칼리 성분이 있어 주식으로 먹어도 상관이 없다. 원산지에서 나는 바나나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맛이 좋다. 땅속에서 대나무 뿌리처럼 옆으로 사정없이 뻗어가는 뿌리 고구마도 먹을 만한다. 물이 먹고 싶으면 야자수 열매를 따 먹으면 된다. 단백질 섭취를 위해 산돼지를 사냥하던가 마을 파티를 위해 5미터 이상 되는 황구렁이를 잡으면 되었다. 어른들이 먹을거리를 채집하는 모습들은 어린이들에게 너무나 재미있는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조그만 방구석에 틀어박혀 앉아 문명인들의 모습을 뚫어지게 보고 그것을 동경하고 있다.

▲ 민속시장을 구경나온 원주님 어른들

     선교사의 말에 의하면 10년 전만 해도 옷을 전혀 입지 않고 살던 이들이 선교여행 오신 분들 불쌍하다고 옷가지를 가져다주는 바람에 옷을 입기 시작하였다고! 문명인들이 가져다주는 옷이 어른들의 경우엔 그동안 오랫동안 벗고 지낸 습관 때문에 너무 불편하여 아랫도리는 전혀 가리지 못하고 위에 티셔츠만 입는다고. 그리고 더 이상 비싼 돈을 들여 살 수 없기 때문에 얻어 입은 옷이 갈기갈기 다 떨어져 못 입을 때까지 거지 중에도 상거지처럼 냄새나는 옷을 걸치고 다닌다고. 세탁도 할 줄 모르고 한 번 입으면 다 떨어질 때까지 수백 번이고 냄새가 나는 옷을 그대로 입는다고! 차라리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음부만 가리고 전처럼 그냥 살면 더 편하고 깨끗해 보일 텐데 문명의 때가 묻어 더 더러워 보인다. 어린아이들은 도시아이들이 보는 비디오까지 즐겨 시청하고 있으니, 이들은 문명인들의 삶을 동경하며 앞으로 더더욱 자격지심에 빠지게 될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문명에 익숙해질수록 그들은 산속 물건을 내다 팔아 장사라도 하여 돈을 마련하고 도시로 나가길 꿈꿀 것이다. 그들이 도시로 나가면 경제 형편상 거지나 사는 무허가 판자촌 이외엔 살 형편이 못된다. 평생 거지가 뭔지도, 가난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행복하고 여유롭게 낮에는 야자수 그늘에서, 밤에는 수없이 쏟아지는 초롱초롱한 별들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꿈을 꾸며 산속마을에서 살 던 이들이, 도시에 나가게 되면 왱왱거리는 트라이시클과 지프니가 뿜어내는 소음공해와 매연공해에 시달리며 생 거지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도시인들 보다 몸이 왜소하고 몸에서 많은 냄새가 나 도시인들로부터 기피당하거나 멸시받고 사는 게 지금의 실정이다. 그렇게 사는 것 보다 그냥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하며 산속에 머물러 산다면 오히려 그들의 삶은 외국인인들에게 볼만한 문화상품이 되어 외국인들이 찾아와 더 많은 풍요를 가져다 줄 텐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은 지금 도시문화에 매료되어 자기도 모르게 거지 생활을 꿈꾸게 되었다.

     참으로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의 시각으로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비록 문화와 관습과 전통이 우리와 다를지라도 상대편의 시각에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음부만 간신히 가리고 다니는 남자들의 모습이 우리의 시각으로 보니 추하게 보일뿐이지, 그들에겐 아주 자유스러운 복장이다. 만일에 외계인이 우리가 사는 곳에 나타나서 우리가 입은 옷이 유치하다고 외계인 방식대로 우리의 옷을 만들어 입힌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는가! 우리사회 기성세대들의 입장에서 보면, 젊은 여자들이 속옷이 보일정도로 너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모습은 염려가 되어 단속을 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음부만 살짝 가리고 아무 옷도 입어 보지 않은 산속부족마을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 자녀들이 아래 위 긴 옷을 입고 다니면 오히려 마음이 불안하고 야단치고 싶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윤리관은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윤리관은 상황과 장소에 따라 다르다. 이를 상황윤리라 말한다. 내 윤리관의 잣대로 상대편을 재어선 안 된다. 특히 다원문화시대의 물결이 세차게 밀려오는 이 시대에 문화의 상대성을 잘 이해해야 할 것이다.

▲ 원주민들의 전통가옥

     우리는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보면서 미개하다느니 우리나라로 말하면 구석기시대 사람 같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으나 전혀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죄를 짓고부터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가까운 사람끼리는 함께 목욕탕을 가도 부끄러운 줄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시각으로 원주민들을 해석하거나 도우려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만일 그들을 돕기 원한다면 통역관을 세워 그들이 원하는 것만 채워주었으면 좋겠다. 선교하는 일도 그렇다. 그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전해주려고 안간힘을 쓰지 말고, 그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문화를 존중하여 그들의 고유한 문화 속에 복음의 씨앗이 자라도록 하였으면 좋겠다.

     장날이라고 그들이 펼쳐 놓고 파는 물건들을 보기만하고 그냥 지나치기가 미안해 슬리퍼 하나를 샀다. 그들은 이미 도시문명의 물이 들어 세상물건들을 떼어다 팔고 있었다. 역청과 같이 산속에서만 나는 고유한 물건이 있으면 우리의 마음을 더욱 흥미롭게 하고 몇 가지 더 사올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토착물건보다 거의가 도시사람들이 쓰는 물건이라 아쉬웠다. 풍물시장에는 윗도리만 입고 아래는 음부만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허리에 칼을 차고 다니는 전통인의 복장을 한 이들이 더러 있다. 아직도 원주민의 원형을 조금이나마 간직하며 보여주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그나마 신기한 볼거리다. 문명인들이 가져다 준 비디오를 시청하며 자란 젊은이나 아이들은 거의가 도시문명에 매료되고 종속되어 도시인들이 가져다주었거나 시장에서 사온 옷을 입고 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옛 문화와 전통을 버리지 않고, 맨발에 옷을 입지 않고, 허리에 칼만 차고 다니는 고집스런 모습은 부족마을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아직도 그런 고집스런 기성세대 때문에 이 마을에 볼거리가 있어 많은 문명인들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망얀부족 젊은이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보수는 무조건 과거 지향적이고 진보는 무조건 미래지향적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또한 문화는 보수적이며 생각은 진보적이어야 한다고 말해도 안 된다. 보수와 진보는 상호대립적 관계가 아니고 상호보완적 관계이다.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 보수와 진보는 모두 필요하다.

     이 마을을 방문하기 전 지난밤에 이제 겨우 20살이 조금 넘은 선교사 부인 로이다와 몇 마디 나눈 적이 있다. 그녀는 일찍 현대문명을 접하여 도시에서 정규 대학을 졸업하였고 영어도 잘 말하는 망얀부족의 엘리트이다. 그녀가 지금 사는 집(선교센터)과 시집오기 전에 살았던 망얀부족 집하고 어느 집이 더 살기 편하냐고 질문해 보았다. 처음엔 모두 좋다고 하다가 자꾸 다그쳐 물으니 나중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산속 마을의 집이 더 좋다하였다. 지금 그녀가 사는 선교센터엔 가정부가 2명이나 있어 청소와 세탁, 주방 일, 아이들 기르는 일까지 그들이 모두 해 주고, 약 100여 평 되는 가옥(선교센터)에 큰 거실과 손님방 그리고 자기가 쓰는 방이 별도로 있고, 수세식 화장실은 물론이고 수영장까지 갖추었다. 집 앞에는 수백구루의 망고나무가 심겨져 있고 멀리 호수가 보이고 말들이 유유히 풀을 뜯는 모습이 바라다 보이는 대단히 아름다운 곳에 지어진 집(선교센터)이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호화 저택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녀가 시집오기 전에 살았던 원두막과 같은 다 낡은 밤부하우스 밑엔 돼지들이 똥오줌을 싸며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곳이다. 샤워 실도 부엌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곳이 지금 사는 곳 보다 편하며 좋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망얀부족들은 모두가 행복하다고 답하였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는 새로운 문명이 과연 우리의 생체리듬을 위하여 정말 좋은지 한번 연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유치원 내부에 마련된 어린이 기도방에서 두 어린이가 기도하고 있다.

     산속마을 유치원아이들이 사용하는 조그만 밤부하우스 교실 건물에 식탁을 붙여 놓고 원주민 환자들을 받기 시작하였다. 한 노인분이 침과 뜸을 뜨며 뜨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모였던 많은 사람들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하나 둘씩 달아난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K선교사가 노인 옆에 누워 직접 자기 몸에 뜸을 떠 보이는 시범을 보였다. 그리고 L권사도 웃통을 벗고 시범을 보였다. 그러자 부족의 한 젊은 청년이 망설이며 두려워 하다가 용기를 내어 자기도 하겠다고한다. 그 청년에게 침을 놓은 다음 뜸을 한 장 떠 주니 뜨거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하여 다른 곳에는 더 작게 하여 가볍게 한 장씩만 떠 주고 마치니 참을 만 한가보다. 그 후 자기들끼리 무슨 말이 오갔는지 젊은이들이 한명 두 명 늘기 시작한다.

▲ 치료받는 원주민

     지난 주일에 방문한 루손섬 잠발레스지역 청년들과 달리 망양부족 청년들은 거의 대부분이 허리 통증을 호소하였다. 20대 젊은이들이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통은 신과 관계된 것이고, 또한 신은 무절제한 방사(房事)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 이들이 요통이 심한 것은 20도 안된 젊은 나이에 특별한 직업도 없고 산속에서 놀 거리도 없으니 지나치게 합궁을 많이 한 탓이 아닐까 생각된다. 30세 여성이면 약 8명의 자녀를 두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반찬이 없어 소금을 너무 많이 섭취하는 환경요인도 있다. 병원이나 약국 신세를 져보지 않은 이들이라 그런지 치료를 받은 후 모두 금세 몸이 가벼워졌고 허리가 아프지 않다고 좋아하며 자꾸 친구들을 데려 온다. 시간상 다 받을 수 없어 도중에 마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던 K선교사가 앞으로 이곳에 원주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침뜸병원을 세우고 싶다고 그렇게 되면 와서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다. 원주민들을 잘 앓지 않는다고. 그러나 병이 걸리게 되면 금방 죽는다고. 현지인 어른 중에 가장 나이 많은 노인이 고작 50세 정도라고. 침뜸 병원이 들어서게 되면 이들의 수명이 상당히 연장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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