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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곱게 살고 곱게 늙고 곱게 죽자
 닉네임 : 쓴소리  2022-01-08 07:15:16   조회: 410   
곱게 살고 곱게 늙고 곱게 죽자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죽어가고 있다. 부산역에서 케이티엑스를 타면 후진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나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새해를 맞이하면 지난해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즉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내년을 향하여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올바른 삶은 내 일에 희망이 되지만, 오늘의 그릇된 삶은 내일에 거침돌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대중가요에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酒色雜技)에 침몰하니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라고 하였다.

문제는 사람이 태어나서 어떻게 사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짐승같이 살다가 짐승 같이 죽는 사람도 있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답게 죽는 사람도 있으며 사람으로 태어나서 성자가 같이 살다가 성자같이 죽는 사람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이 태어나는 장소와 형편과 상황은 각각 다를 수 있지만,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은, 모두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이 무엇이고 인생은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속언에 “인생은 나그네요 세상은 여관이라 그리하여 인생은 과객인생(過客人生)이라”라고 한다.

그렇다. 인생은 세상이라는 곳을 지나가는 객(客)일 뿐이다. 머무르는 햇수는 평균 70년이나 많으면 80년인데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一息間)에 지나가는데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迅速)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하였다.

어제 태어난 것 같은데 벌써 늙어버려 검은 머리가 백발(白髮)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생을 뒤돌아보니 즐거운 일보다는 슬픈 일이 더 많았다는 고백이다. 그런데도 인생은 무엇을 잡으려고 생각 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는지 분명하지 않다.

레흐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세 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 자신에게 던진 질문 형태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무엇을 아는가?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 성경은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말한다. 인생만큼 허망하고 무의미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인생이 어떻게 살라야 하는가? 누구에게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좀 더 일찍이 깨닫고 산다면 삶의 내용이 달라질 것이고 그 삶의 결과는 인간의 삶의 가치를 창조주께서 인정할만한 데까지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금수(禽獸)와 같이 본능대로 살다가 본능에 의하여 죽는 것이, 아니고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은 만물 중에 영장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곱게 살려고 하면 양심을 속이지 말고 양심을 피하여 비양심으로 사는 생활을 청산하면 곱게 살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사는 것은 곱게 살 수가 없는 것이다. 타인의 이익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곱게 사는 삶이 될 것이다. 그것은 사랑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성내지 아니하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선한 것에, 마음을 가지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사는 것을 곱게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남에게 이익은 주지 못해도 손해는 끼치지 않고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곱게 늙는 것이다. 이는 얼굴에 흠이나 티가 없이 깨끗하게 늙는 것을, 말하지 아니하고 망령(妄靈)이나 치매(癡呆)에 걸려 헛소리하지 아니하고 추하게 살지 아니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말로 하면 노망(老妄)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본인의 마음대로 할 사항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기도해야 할 문제이다.

성경에 “나를 늙을,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떠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라고 기도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대화하듯 기도하던 모세는 120세를 살았지만, 귀도 어둡지 않고 눈도 어둡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곱게, 죽자는, 것이다. 세상 어느 사람도 죽음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은 원치 아니하였지만, 중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여 점점 상태가 나빠져서 연명치료까지 하면서 생을 보내는데 이는 살았다고 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살아만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사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삶의 질이 좋은가 나쁜가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좌우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자는 것이다. 창조주여 나를 지으시고 지금까지 나의 생명을 연장하셨지만 남은 생도 나를 병원 침대에 눕히지 마시고 중한 병으로 의식을 잃고 사람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누워 있다가 숨을 거두는 일은 없게 하옵소서 차라리 건강하여 봉사하다가 죽게 하시고 아니면 남의 생명을 구하다가 살신성인(殺身成仁)이 되어 사람을 구하다가 죽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도 밑져보아야, 보전이 아닌가? 생각한다.

속는 셈 치고 희망을 품고 그렇게 기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어떤 사람은 죽으면서 남을 원망하고 자식에게 유언하기를 그를 용서하지 말아 달라고 하며 발악 바락 악을 쓰다가 눈을 감는 죽음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순교자 스데반은 죽으면서 “내 영혼을 받아 달라고 기도하고 자기를 죽이는 원수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이와 같은 죽음은 얼마나 곱게 죽는 죽음인가? 모두가 부러워할 죽음이다.

어느 분은 저녁 잘 드시고 잠든 그 상태에서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이보다 더 곱게 죽을 수가 있겠는가? 죽음은 같은 죽음인데 곱게 죽지 못하고 험하게 죽는 것은 자신은 물로이지만 가족들에게도 매우 부담을 주는 험한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유언을 남기되 다윗과 같이 신앙생활 잘하라고 유언하고 야곱처럼 자녀들을 위하여 축복하고 세상을 떠나야지 곱게 죽는 죽음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독일에 패션디자이너 칼리 거 펠트는 85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하기를 “그냥 사라지고 싶다.”라고 하여 그 유언에 따라 가족들은 장례식 없이 화장하였다. 다시 말해서 야생동물과 같이 번거롭게 장례식은 하지 말고 그냥 화장하여서 뿌리든지 수목장을 하든지 해달라는 유언하고 죽었다.

고, 장달윤 목사도 유언하기를 “내 시신을 병원에 기증하기로 했으니 죽는 즉시 병원 연락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장례 예배는 시신을 병원에 이송 후 수속(手續)을 끝내고 교회에 연락하여 교회에서 예배 한번 드리는 것으로, 장례식은 마치도록 한다. 다음 사항을 금지한다. 병원에 영안실 만들고 손님 받고 예배드리는 것, 금한다. 조위금 받는 것 일체, 금한다. 우는 것을 금한다. 내가 노회 장을 역임하였기에 장로님들이 노회 장을 하여야 한다고 하실 것이나 절대 금한다.

다른 사람들과 일가, 친척에게까지 알리는 것, 금하며 장례 예배 후에 알린다. 나를 기념하여 추도 예배드리는 것도 금한다. 너희들은 목사 자녀답게 살아 주기를 희망한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곱게 죽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 곱게 죽는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22-01-08 07: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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