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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년 아성, 정통 보수신앙 의심하기류상태 목사가 진실된 신앙을 찾아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류상태  |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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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2월 09일 (월) 15:43:42
최종편집 : 2009년 02월 09일 (월) 18:35:49 [조회수 : 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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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시무하는 예수동아리교회에 찾아온 한 젊은이(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학생)의 진지한 고민과 질문에 답하는 글입니다.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젊은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J군.^^  

   
군을 보니 5년 전까지 다니던 학교 생각이 나네요. 청소년들이 좋아 학교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고, 그렇게 학생들과 함께 평생(학교에서 은퇴하게 될 줄 알았거든요.^^;) 살고 싶었지요. 갑자기 찾아온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아무 준비 없이 제자들과 헤어져 서운했는데, 이렇게 하느님께서 우리 교회에 젊은 친구를 보내주셨네요. 

 

J군이 아마 우리 예동 교우 중 가장 젊은 분일 거예요.^^ 요즘 젊은이들은 주로 책으로 공부하는데 발로(삶 자체로)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가끔 있지요. J군도 그 중 하나인 것 같아 더욱 반갑네요. 

 

질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었으니 그에 맞추어 답변해야 되겠네요. (논문식 시험 치르는 것 같아요.^^) 

 

1. 인터넷에서 보면 다원주의 신학은 이단이라는 글들이 팽배한데 한국교회는 이것을 정말 인정하지 않는지 이것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대체로 보수적이에요. 우리나라처럼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교회는 우리보다 앞서 기독교가 꽃피웠던 유럽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요. 미국에서도 50% 이상은 다원주의 신학을 받아들이는 열린 교회들인데 비해 30~40% 정도는 우리나라 교회들처럼 매우 보수적인 신앙을 갖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80~90%에 이르는 대다수의 교회가 보수적인 신앙을 갖고 있지요. 

 

다원주의 신학은 다른 종교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요. 기독교가 훌륭한 종교인 것처럼 불교나 힌두교, 유교, 도교 등 다른 종교도 훌륭한 종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생각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생각이지요.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이런 상식적인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회가 대부분이에요. 안타까운 일이지요. 

 

무엇이 진실인지는 한두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나는 물론 내가 가진 다원주의 신학이 옳다고 생각하고, 대부분의 보수적인 한국교회 목사님들은 이런 나를 이단자라고 생각해요. (사실은 내가 옳다고 속으로는 지지하면서도 겉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분도 꽤 많아요.^^) 

 

하지만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로 눈을 돌리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내가 합리적인 신앙을 가진 목사라고 생각할 거예요.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전도하는 사람을 보면 기독교를 이천년 전의 과거에 가두어 두었다고 무척 슬퍼할 거구요.^^   

 

그러니까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라고 말할 수 있어요. 우물 안에서는 “이 우물이 세상의 전부다.”라고 생각하는 개구리가 다수이며 진리처럼 되어 있겠지요. 어쨌든 이렇게 서로 주장이 다르니 각자의 주장을 차분히 들어보고 J군이 잘 정리해야 할 거에요.^^ 

 

2. 성경을 두고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의심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번역의 오류이지 그 자체는 진실이라고 항상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책에서는 신앙의 고백이라 하셨는데요. 이것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자세히 설명 부탁드려요. 

 

이런 말이 있어요. “사람이 종교를 가져서 받을 수 있는 피해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자주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자주적으로 생각하는 것, 상대방의 말에 의심을 품거나 질문을 하는 것은 나쁜 게 아니에요. 의심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어요. 의심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기 주관을 가질 수 없고,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상대방의 말에 세뇌될 수밖에 없어요. 한국 교회에는 그렇게 세뇌된 분들이 매우 많아요. 

 

성경이 과연 하느님의 말씀이기만 한 것일까... 하는 의심, 그리고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 라는 질문은 반드시 필요해요.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글이에요. 예를 들면, 내가 강의한 내용을 J군이 노트에 정리한 것과 같아요. 그 글의 기록자는 J군이지만 글의 내용 자체는 내 강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그 글은 내 글이면서 동시에 J군의 글이 되겠지요. 

 

만일 내가 강의 후에 강의내용을 정리한 학생들의 노트를 비교해 본다면, 중심 내용과 주제는 거의 일치하겠지만, 그 기록들은 서로 다를 거예요. 어떤 학생은 비교적 정확히 이해하고, 어떤 학생은 오해하기도 하고, 철자가 틀린 학생도 있을 것이고, 자기 주관이 너무 깊이 들어가 교사의 강의 내용을 거의 거꾸로 알아들은 학생도 있을 수 있겠지요. 

 

성서의 기록도 그와 같다고 할 수 있어요. 성서는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대로 받아 적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동행하며 살아간 하느님의 사람(기록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어요. 그러나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들의 기록은 서로 다르기도 하고 틀린 것도 있어요. 똑같이 내 강의를 들었어도 J군과 다른 급우들의 기록이 다를 수 있는 것처럼요. 

 

문제는 학생들의 기록이 얼마나 교사의 강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느냐에 있겠지요. 이처럼 성서의 기록자가 얼마나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담고 있으며, 기록자의 한계에 의해 곡해된 부분은 없는지 등을 객관적으로 연구해서 잘못된 부분을 가려내야 성서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이해할 수 있어요. 

 

3. 어려서부터 오직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배웠는데요. 책에서 나온 타종교에 의한 구원의 가능성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건가요 ? 

 

위의 글에 이어서 생각해 보지요. 학생들 중에는 자기 기록은 절대로 오류가 없고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빠짐없이 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다른 친구들의 기록과 차이가 날 때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자기가 기록한 내용은 절대적으로 옳고 따라서 다른 학생의 기록은 틀린 것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위에 든 예에서, 선생은 누구고 학생은 누구일까요? 일차적으로, 선생은 하느님(하나님), 학생은 성서를 기록한 수많은 기록자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폭을 넓히면 선생은 신(우리의 하느님, 다른 종교의 절대신이나 궁극진리, 철학이 말하는 원리나 우주 법칙 등)을, 학생은 신의 말씀을 체험한 지구마을의 여러 종교들을 의미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에요. 

 

다른 예를 들어 볼께요. 나에게는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어요. 이 아이들이 지금은 서로를 많이 위해주지만, 어렸을 때는 많이 싸웠어요. 자기 말이 절대로 옳고 쟤는 틀리다는 식이죠. 그러나 아비 입장에서 보면 똑같이 사랑스런 아들딸이에요. 

 

우리 기독교와 한 뿌리에서 나온 형제종교로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있어요. 유대교가 맏형, 기독교가 둘째, 이슬람교가 막내죠. (우열의 순서는 아니고 역사적인 태동의 순서에요.) 기독교는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슬람교는 이슬람교에만 완전한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고, 유대교인들도 자기들이 완전한 진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세 형제가 자기가 제일이라고 주장하는 걸 보고 계신 하느님의 마음이 어떠실까요? 그것이 그냥 자기만 옳다고 고집부리고 주장하는 선에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니 용서할 수 없다며 서로 치고박고 싸운다면 하느님께서 뭐라고 하실까요? 깊이 생각해 볼 문제에요. 

 

4. 서구의 교회는 다원주의가 일반화 되어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렇다면 한국교회와 미국에 있는 여러 교회들의 근본적인 신앙관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건가요? 

 

성경에 기록된 문자를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던 옛날에는, 기독교 이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기독교는 오랫동안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못한 채 배타적이고 정복적인 선교를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이민족에 대한 학살 등 잔인한 행동도 많이 했지요.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서구 세계에서는 빠르게 이런 배타적인 태도에서 벗어나게 돼요. 성서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성서의 기록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여선 안된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에요. 성경에는 역사 기록도 있지만 신화와 설화, 시와 비유 등 여러 문학 장르가 담겨있다는 것도 발견했어요. 그래서 역사는 역사로, 신화는 신화로, 시는 시로, 비유는 비유로 읽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런 학문적인 연구과정을 거쳐 서구 교회는 이미 이삼백 년 전부터 교리적 배타와 독선에서 벗어나 다른 종교의 가치를 그대로 인정하고 서로 교류하고 상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다원주의 신학을 당연하고도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에요. 하지만 세계 교회의 흐름에서 볼 때 극우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리를 절대진리로 받들어 양식있는 지성인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지요. 

 

5. 교리화는 예수님 사후 20년 지나서 사도바울로부터 시작해서 초기 교회서 부터 교리가 만들어 졌다고 하셨는데요. 그를 바탕으로 한 기독교는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인가요? 

 

독일의 신학자인 본 훼퍼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어요. “예수께서 진정으로 원한 것은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새로운 삶이었다.” 기독교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아름다운 삶과 말씀에 있어요. 한 마디로 경천애인(하느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으로 요약할 수 있지요. 전 인류와 생명을 품는 무한히 큰 사랑, 큰 뜻이에요. 

 

그런데 교회는 무한히 넓고 큰 우리 주님의 그 뜻과 사랑을 배타적인 교리 안에 가두고 말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 교리화를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이 바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바울은 교리를 말한 것이 아닌데 그 제자들이 교리화했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래서 기독교는 예수교가 아니라 바울교라고 비웃기도 하지요. 

 

사실 기독교는 ‘예수께서 전하신 하느님’을 믿는 종교가 되어야 되는데, ‘바울이 전한 예수님’을 믿는 종교가 되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아요.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르쳐 주었는데,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보는 셈이지요. 

 

그러므로 기독교의 배타적인 교리는 부정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 배타적인 교리를 벗겨내고 극복하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생명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어요. 

 

6. 목사님께서는 이 책을 지으실 때와 마찬가지로 다원주의신학에 대해 변함없으신 거죠? 혹시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조언 부탁드려요 ㅠㅠ.. 

 

앞서 말했듯이 지금의 서구 교회에서는 대부분 다원주의를 상식으로 받아들여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처럼 배타적인 교리를 절대 진리처럼 생각하는 기독교는 미국의 일부와 우리나라 외에는 별로 없어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직도 30~40% 정도 되는 상당 수의 교회가 우리처럼 매우 보수적인 신앙을 갖고 있고, 서구의 열린 교회보다 미국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고 있는 우리나라 대다수의 교회는 배타적인 교리기독교가 기독교의 중심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어요. 

 

나는 <한국 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를 쓸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다원주의 신학을 갖고 있어요. 다원주의 신학은 겸손한 신학이거든요.^^ “유한한 인간이 절대자 하느님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기독교만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종교도 하느님(이름은 다를지라도)을 경외하고 섬기는 아름다운 종교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을 배척해서는 안되고 우리의 길벗(진리의 길을 함께 찾아 걷는 벗)으로 존중하고 서로 배우고 대화하며 지구마을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함께 어깨동무하며 일해야 한다...” 이런 신학을 갖고 있는 거에요. 

 

7. 신앙인으로서 예배자로서 앞으로 어떠한 신학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또한 주의할 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ㅠㅠ

 

어떤 특정 신학 가치관을 지금부터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열린 마음으로 배우겠다는 자세가 필요해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좌의 주장도 들어보고 우의 주장도 들어보고 하면서 신중하고 바르게 판단하여 자신의 길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시간이 되면 우리 교회에서 올해 공부하는 여섯 권의 추천도서를 읽어보면 좋겠네요. (자유토론 게시판에 공지로 올라있어요.) 댓글에서 용인님과 다른 교우님들이 추천해주신 책들을 읽어보는 것도 좋아요. 특히 오강남 교수님이 지으신 <예수는 없다>라는 책은 깊은 종교적 성찰을 바탕으로 해서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세히 풀어 쓴 매우 훌륭한 책이에요. 시간이 된다면 꼭 읽어보면 좋겠어요. (고3이라 학과 공부가 우선이겠지요?^^) 

 

휴~!!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되었네요. 글을 쓰면서 잘 정리가 되지 않아 고생하기도 했고, 쉽게 설명하려고 비유를 들기도 했는데 제대로 전달이 된 건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며칠 후에 이 글을 보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눈에 띄어 고치고 싶어질 지도 모르겠어요. 성서를 기록한 분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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