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움직임은 누군가의 자원을 쓰는 것이며, 나의 편리함은 누군가의 수고로 이루어짐을 잊지 않는 여행을 위해 기행을 생각한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자연과 사람을 파괴하는 여행이 아니라 지역이 다른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배우고, 나누며 나와 가족들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위해 새해 첫 가족기행을 떠났다.

남해안을 보고 느꼈던 것은 사람들이 자연을 즐기며 살기 위해 산비탈이 사라졌고, 자연체험과 학습을 위해 골이 메워지고, 관광을 위해 끊임없이 숲이 파괴당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 사천시 공무원 재활용프로젝트 팀이 필자의 집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천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사진은 사천만을 가로치르는 사천대교를 배경으로 좌로부터 조수옥님, 김홍규님, 필자, 정대웅님이다. ⓒ 채복희

요사이 강이 살아나야 사람도 경제도 산다는 4대강 정비 사업으로 한반도대운하가 재추진되고 있어 논쟁이 뜨겁다. 과거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하천본류와 지류의 개발 사업들과 어촌마다 행해졌던 무분별한 방파제공사로 인해 환경파괴가 건전한 물 순환시스템을 왜곡시켰던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는 도심구간과 일부 지역의 하천, 어촌의 어항 등에 돌이킬 수 없는 황폐화를 안겨주었기에 더욱더 우려스러움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건설사업과 관광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경제를 살린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인간과 자연을 위한 일자리여야 한다.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산을 깍고 강과 들을 메워 만든 아파트문명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뿐 아니라 편리함을 오히려 즐기게 되었다. 어느 프랑스 학자는 우리네 아파트 건설을 바라보면서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생태환경파괴는 남이 아닌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다.

▲ 왕실의 객사 같기도 한 대양루(大陽樓)의 자태가 범상치 않다. ⓒ 류기석

지난주 6일~9일까지 시름의 해를 보내고 희망의 햇살을 찾아 가족기행을 떠났다. 애초에는 진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혀있는 진주성과 촉석루를 돌아보면서 하룻밤을 묵으려 했는데, 사천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유는 작년가을, 사천시 공무원 한 팀이 재활용프로젝트를 위하여 필자의 집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천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기행은 사천을 시작으로 남해도를 한 바귀 돌아 하동과 광양 그리고 갯벌의 고향 순천만까지 착한기행을 위해서다.

6일 오전 남양주 광릉내를 출발,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달려 경남 사천톨게이트를 빠져나오니 오후1시가 넘었다. 사전연락을 통해 축동면 만남의 광장에서 먼저 마중 나온 조수옥님을 따라 확장공사가 한창인 3번 국도를 달려 용현면 해안도로가 호젓한 식당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작년 이후 처음 뵙는 사천시청 김홍규님, 정대웅님이 미리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들과 살아가는 모양과 지역은 다르지만 자연과 역사, 문화를 사랑하고 창의적인 삶을 지으려고 노력하는 면에선 공통점이 많다. 함께 늦은 점심식사를 하면서 각자의 관심사항과 서로에 대한 근황을 화기애애하게 나누고는 사천지역 생태 답사지에 대한 소개를 받았다. 몇몇 답사지의 안내와 관광자료까지 챙겨주어 고마웠다.

이분들은 작년까지는 함께 사천시청에서 근무했던 창의적인 프로젝트팀으로서 올해 들어 김홍규님만 빼고는 조수옥님은 축동면으로 정대웅님은 벌용동으로 근무지가 바뀌었다. 연초라 바쁜 와중에서도 친절하게 답사를 함께해주신 조수옥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린다.

▲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때 연기조사가 영악사(靈嶽寺)로 개창되었다가 다솔사로 개칭된 1500년 된 고찰이다. ⓒ 류기석

해안가 용현면 갯벌 체험장을 잠깐 둘러보고는 곧장 사천대교를 건너 곤명면 봉명산내에 위치한 고찰 다솔사에 도착했다. 다솔사(多率寺)는 소나무가 많다는 것보다는 군사가 많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주문은 보이지 않고 쭉쭉 하늘로 힘차게 뻗어 자란 장엄한 소나무들만이 이곳이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암시했다.

이곳을 오르다가 만난 커다란 바위에는 묘를 쓰지 말라는 징표의 글귀가 쓰여 있었고, 그리 험하지 않아 마을 뒤뜰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산사의 숲이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이유는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소나무들로 장관을 이루는 경관 때문이리라 봉명산을 직접 오르면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때 연기조사가 영악사(靈嶽寺)로 개창되었다가 다솔사로 개칭된 1500년 된 고찰이다. 자연석 기단의 중건비를 보면 조선국 경상우도 곤양군 북지리산 영악사라고 표기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불탔는데, 숙종 때 재건되었다가 1914년에 다시 불탔다고 한다.

왕실의 객사 같기도 한 대양루(大陽樓)의 자태를 뒤로하고 마당에 올라서니 커다란 건물이 눈을 꽉 채운다. 현판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걸렸다. 뒤로 대양루를 수리하면서 나온 사리들을 한곳에 모신 탑이 차밭에 둘러있었다.

▲ 토끼와 거북이, 용왕이 등장하는 별주부전의 전설이 서려 있는 비토(飛兎)섬에 닿는다. ⓒ 류기석

곤명에 있는 다솔사를 나와 우리는 서포면으로 향했다. 사천시에서는 사천만을 가로지르는 사천대교를 건너 서포면으로 가면 되지만 곤명면에서는 인근이다. 토끼와 거북이, 용왕이 등장하는 별주부전의 전설이 서려 있는 비토(飛兎)섬에 닿는다.

비토섬은 토끼가 날아가는 형태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섬 동쪽 월등도가 바라보는 곳에 서면 거북섬, 토끼섬, 목섬 등이 보인다. 썰물 때면 비토섬과 월등도를 잇는 바닷길이 열려 이색풍경을 선서한다. 비토섬과 갯벌은 연안 생태계유지물로 잘 보존되어 봄부터 가을까지 자연생태 체험관광지로 활용중이다.

또다시 사천대교를 역으로 건너 실안 해안관광도로가 펼쳐져 있는 곳에서 낙조가 아름다운 사천 바닷가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이 길은 삼천포에 가까워지면서 더욱 아름다워지며 바다에는 초양섬, 모개도, 늑도동, 학섬, 신도 등이 점점이 떠 있고 바다를 밝혀주는 등대가 유난히 아름다운 장소다.

▲ 부채꼴 모양의 참나무 말뚝으로 만든 죽방렴과 섬, 바다 그리고 일몰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 류기석

이곳의 풍치를 더해준 것은 다름 아닌 바다에 죽방렴이 있다는 것이다. 사천지역의 대표적인 원시정치망 어업형태로 이곳에서 어획되는 멸치는 맛과 질이 우수하다고 한다. 부채꼴 모양의 참나무 말뚝으로 만든 죽방렴과 섬, 바다 그리고 일몰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 자연산 굴맛이 일품인 비토섬은 갯벌과 함께 연안 생태계유지물로 잘 보존되어 봄부터 가을까지 자연생태 체험관광지로 활용중이다. ⓒ 류기석

곧이어 도착한 곳은 삼천포해상관광호텔이다. 장작불로 뜨끈하게 덥혀진 고즈넉한 황토민박을 구하려 했으나 여의치가 않아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곳은 사천시와 남해도를 연결하는 장엄한 연륙교 창선-삼천포대교와 한려해상의 어울림, 낙조가 아름다운 곳이다. 밤에는 푸른 바다와 조명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인상적으로 시선을 끈다. 그러나 이 다리가 놓여지지 않았더라면 저 너머 섬 마을 곳곳에는 인간과 자연이 문명의 이기와 오염대신 느리지만 멋진 삶의 평화와 고요가 오래도록 지속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밤새 삼천포시내를 기웃거리다가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이내 통닭 한 마리와 생맥주, 먹거리를 등을 사들고 호텔로 돌아와 착한기행의 황홀함에 빠져든다. 그리고 늦은 밤 사천사람들의 따스한 안부전화와 특산인 다래와인을 호텔로 보내준 정성에 감동했다.

이렇듯 집을 떠난 착한기행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축복해주고 격려해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울을 벗어난지 20시간 째다. 사랑하는 딸 새라가 중국유학으로 참여하지는 못해 아쉬웠지만 우리가족이 함께 보냈던 이번 사천기행 길에는 참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다솔사 풍경, 온화한 사천 바닷가의 고운숨결, 삼천포선창가의 활기 넘침을 보고 행복해하면서 다음 기행지인 남해도로 떠났다.

▲ 청정한 바다에서 나오는 각종 해산물 들이 어촌마을을 살려왔다. ⓒ 류기석

▲ 착한기행에 나선 가족들이 비토섬에서, 비토섬은 토끼가 날아가는 형태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조수옥

▲ 실안 해안관광도로가 펼쳐져 있는 낙조가 아름다운 사천 바닷가, 창선-삼천포대교를 바라본다. ⓒ 류기석

▲ 사천시와 남해도를 연결하는 장엄한 연륙교 창선-삼천포대교와 한려해상의 어울림을 늦은 밤 불빛으로 그려보았다. ⓒ 류기석

▲ 사천기행 길은 참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다솔사 풍경, 온화한 사천 바닷가의 고운숨결, 삼천포선창가의 활력에 행복해하면서 다음 여행지인 남해도로 떠났다. ⓒ 류기석

▲ 청정한 바닷가에서 하루는 참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다솔사 풍경, 온화한 사천 바닷가의 고운숨결, 삼천포선창가의 활력에 행복했다. ⓒ 류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