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인도의 조승현선교사가 감리교 게시판에 올린 글을 허락 받아 게재합니다. 조승현 목사는 허락과 함께 "나를 떠나간 첫사랑... "이라는 글을 함께 보내주어 아랫 쪽에 실었습니다.
지금 감리교 목사로서 행복한 이유 10가지
제가 속한 감리 교회가 이리 심한 몸살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히려 더 행복해졌습니다. 너무나 행복해서 여러분들께 미안할 정도입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제가 왜 행복해 하는지 그 이유를 여러분들께 감히 하나씩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저의 목회관이 확실히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이번 일을 통하여 저는 목회란 교회 크기와 밀어붙이기가 아니라 ‘원칙적 섬김’에 있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사항을 재확인 하였습니다. 아울러 교인들에게 물질 축복만을 남발해대고 헌금을 지나치게 강요하며 이름 내는 자리 탐하고 자신은 대우만 받으려드는 일부 몰지각한 부흥사들을 비롯한 ‘삯꾼 기질’의 목회자들의 전철을 결코 따르지 않을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해 주었습니다.
고급차등 사치와 부흥회 빙자 잦은 외국 여행과 금권을 동원하여 자신의 영향력 확대와 자녀 세습에 관심 있는 정치꾼적, 양아치적 목회상을 결단코 거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제 자신의 삶과 목회를 되돌아보며 각성을 하여 자신의 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됨이 제가 행복해진 첫 번째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2) 옳은 선택을 하게 해준 제 양심과 가치관 때문에
지금껏 제 삶을 지탱해준 제 양심이 옳은 선택을 해주어서 행복합니다. 제법 많은 분들이 되게 따지길 좋아하는 감리교 목사 연급(정3)은 적으나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또 하나의귀한 연급(나이)이 제법 쌓여왔음(오십)에 따라 얻어진 가치관과 하나님이 뒤늦게(36세) 구원해 주셨지만 너무나 확실한 체험으로 알게 하시어 갖게 된 열정적 믿음의 삶, 그리고 지금껏 여러 달란트와 지혜로운 머리를 주셔서 좋은 대학교(서울대)를 나오게도 하셨고 세상 약사와 목사, 선교사 그리고 박사(구약신학)로서, 신학교 교수로서 축복해 주셨는데 이번 기회에 이러한 저의 모든 것이 합하여 정말 옳은 길을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 준 것에 대하여 저는 제 자신에 대해서도 감사와 행복함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3) 평소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들과 같은 길에 섰음을 알았기 때문에
평소 많은 목회자님들과의 친분이 별로 없는 저이지만 그간 만난 적이 있는 분 중에서 제 마음 속에 참으로 좋고 올바른 분이구나 생각했던 분들(박인환 목사님, 정연수 목사님, 송창섭 목사님)의 생각과 판단이 저와 같음을 죽 지켜보며 또한 행복하였습니다. 이 분들의 인격과 믿음과 지성을 익히 신뢰하는 저로서는 저의 판단 역시 옳았음을 확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검증 기회가 되었기에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4) 새롭게 알게된 훌륭한 분들을 발견하고 추후 이 분들과의 깊은 교제가 기대되기 때문에
그 뿐만이 아니라 비록 직접 만나 뵌 적은 없으나 특별히 게시판을 통해서 알게 되고 존경하게 된 수많은 분들로 하여금 저는 큰 행복을 느꼈습니다. 앞으로의 인생과 목회 길에서 저는 수많은 배움과 교제를 이 분들에게 수시로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찬희, 박영규, 도현종, 장병선, 김성국, 김교석, 문병하, 조희영(기린), 남재영, 김원기 목사님외에 많은 분들을 저는 마음으로 소중히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5) 반면교사를 제게 주심으로 또 다른 방향에서 깨달음을 주셨기 때문에
역으로 목회와 신앙 생활을 정말 잘해야겠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을 반면교사 역할로 저에게 주신 많은 분들이 있어 좋았습니다. 믿음은 그저 뜨거운 열정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는 극명한 사실을 언어와 태도로 몸소 적나라하게 보여주신 전임 감독 몇 분들 이하 일부 감리사님들과 목사님들 그리고 임*** 교회 교인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친절한 가르침을 보여주신 은혜에도 저는 정말이지 행복합니다.
(6) 의연하고 소신있게 중심을 잘 잡아준 본부 직원들 때문에
아시다시피 새 감독회장님의 첫 업무 시작 날이었던 그 날, 우리 모두는 일영 연수원에서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전체 직원들의 금식 기도와 비상 업무 모습을 놀라움으로 바라보았었습니다. 당시를 기억할 때,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토록 신속히 단행한 행동력과 일치 단결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놀라움과 함께 원칙에 대한 확고한 저들의 판단력과 의지로 받아들여졌다고 여겨집니다. 원칙을 벗어난 주장을 하는 분들이 당시 수의 논리로 압박하고 있었고 지명도에 있어서 상당한 무게감을 갖고 계셨던 전, 새 감독님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KD 지지 태도에 크게 영향을 받을 법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책임하게 광화문 본부 자리를 비웠다는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의연히 그 본연의 자리를 지키고 무언으로 원칙을 추구하며 미래 감리교의 희망을 위해 버텨온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너무 행복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개인 감정이지만, 평소 본부 직원들로부터 느껴오던 딱딱하고 권위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이 분들에 대해 저는 평소 좀 유감을 갖고 있었음을 솔직히 시인합니다.
그런데 이번 일을 통해 이 모든 것이 눈녹듯 사라지고 오히려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변한 느낌입니다. 심지어 저의 선교사 파송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유발된 해외 선교부의 한미* 목사님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특별했던 섭섭한 마음까지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7) 후원 교회와 담임목사님과 동일한 노선을 확인했기 때문에
금번 감독회장님 선거에 즈음하여 일어난 혼란 속에 저는 처음부터 당연히 원칙적인 결정과 각오를 굳게 하고 있었지만 저를 파송한 교회(수표교)와 김 고광 담임 목사님의 입장이 어떠하신지 몰라 사실 전전긍긍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게시판을 통하여 <올감모> 동정을 전하는 글에서 담임 목사님의 존함을 발견하고 얼마나 감격하고 하나님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는 서울의 한강 이남에 있어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뼈대 있는 큰 교회요, 수준이 있고 인격이 높은 목사님과 교인들이 계십니다. 아, 이렇게 올바른 길을 가는 훌륭한 후원 교회를 가진 저는 그래서 너무 행복합니다.
(8) 서울연회와 미주 연회의 감리사 성명과 <올감모>등의 활동 때문에
그동안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젖어있던 소위, <교단 정치>에 길들여져 사리 분별을 정확히 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 이 분들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가뭄 속에 단비 같았습니다. 당시 선거 결과표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KD 지지 대세 흐름과 그 분과의 인간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판의 길로 들어서거나 아니면 침묵으로 일관하며 양비론적 냉소주의로 흐르고 있던 시대적 상황 앞에서 이 분들은 담대히 옳은 원칙을 고수하시고 비록 소수지만 <그건 아니요>라고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셨습니다.
이러한 분들의 분명한 방향 설정은 그 때까지 이건 아니다라는 신앙 양심과 목회 철학 앞에서 움추려 있었던 많은 이들을 각성시키기에 충분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이 분들의 자세와 활약에 감동하였고 같은 감리교 목사로서의 크나큰 자부심과 함께 큰 행복함을 만끽하였던 것입니다.
(9) 종교의 자유와 자율을 맘껏 보장하는 조국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자랑스런 민주 공화국이며 자유 국가입니다. 종교를 억압하고 독재가 있는 공산주의 나라가 결코 아니어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절대 보장해 주고 있는 나라입니다. 또, 국가는 각 종교별로 또는 교단별로 자체의 자율성과 질서를 최대한 부여하되 자체적인 조율과 질서가 어려워질 때는 국가의 최고 기본법인 헌법을 비롯한 여러 법률 장치를 통하여 우리가 얼마든지 조정, 권면을 받을 수 있는 혜택과 권리도 부여하고 있습니다.
한편, 비교적 짧은 연륜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 기독교는 아름답고 풍성한 신앙의 선배님들과 역사를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우리 기독교인 모두는 이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우리 교단은 이번에 아주 어려운 시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의견이 첨예하게 갈라지고 도저히 자율적 조정과 해결이 어려운 국면이 도래되어, 모두가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러한 국가로 부터의 조정과 판단을 자초하게 됐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부끄러운 일이었다고만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자체 안에서 의견이 서로 다름으로 심히 다투게 되고, 결국 의견 일치가 어려울 때, 부득이 국가가 이러한 조정의 자세로 나오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사회법과 교회법 운운하면서 믿음 안에서 해결을 끝까지 주장하지만, 저마다 하나님 뜻이라면서 자기 주장만 하고 평행선을 달릴 때는 정말이지 현실적으로는 해결 불가능함을 우리는 이번에 확실히 경험하였다고 봅니다.)
저는 오히려 이 조정은 어떤 면에서 보면 나라의 근간인 법률에 의한 신앙의 혜택과 보호라고까지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하튼 그리하여 오늘 우리가 국가법으로부터 받아 쥐게 된 그 <결정 고지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KD 자격없음>이라는 애초부터 우리가 알고 있었던 바로 그 원칙에 대한 확인이지요. <SC 권한 인정>에까지 명쾌히 이르지 못한 아쉬운 감은 없지 아니하나 어쨌든 왈가왈부하던 모든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분명한 기준선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저는 큰 의의를 두고자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 생활과 교회 활동을 맘껏 보장해주고 있으며 나아가, 어느 종교적 내부 사정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어쩌다 자체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 도래하면 부득이하게 국법에 의거해 최대한 정확한 기준 제시와 분쟁 조정을 해 주는 국가(국가 기관)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처럼 때때로는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조정자가 되어주는 든든한 우리의 조국(국가)이 존재함으로 인해 저는 무한한 행복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0) 이 길이 옳다고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때문에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늘 저를 인도하셔서 너무 행복합니다. 저는 너무나 부족한 자인데도 불구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외치라”고 하신 그 분이 목회 초기 선상에 선 이 부족한 종에게 자칫하면 길을 헤매거나 잘못 선택할 위급한 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제가 선택한 그 길이 옳다고 가르쳐 주셨던 그 자상하심으로 인해 저는 지금 매우 행복해졌음을 여러분 모두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오! 한국의 모든 감리 교회여! 당신들은 행복자로소이다!”
(제가 지금껏 택하고 견지해온 입장은 무작정 KD가 싫어서도 아니요, 그렇다고 SC가 좋아서도 결코 아닌 원칙적으로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교리와 장정>에 따른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간 KD목사님의 용퇴와 SC목사님 중심으로 한 우리 감리 교단과 교회들의 정상화와 단합과 발전을 위해 이를 간절히 바라고 또 기도해 왔음을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나를 떠나간 첫사랑...
1. 참으로 오랜만에 나와 딸, 부녀가 저녁 먹구 함께 동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지금 이곳 선교지 인도의 날씨는 한국의 늦여름 같아서 아침, 저녁으론 공기가 제법 좋아 가게에 갔다가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가 마냥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둘은 어느 작은 어린이 놀이터 까지 가게 되었고 거기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사춘기인 저의 딸네미는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관심이 무척 많아보였습니다. 돌연, 제 아빠의 첫 사랑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라댔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하나의 약속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엄마에게는 비밀>이라는 약속 말입니다. 사실 나는 아내에게도 결코 말하지 않았었습니다. 묻지도 않는 이에게 말해서, 괜히 긁어부스럼을 왜 자초하려 했겠습니까? 하지만 딸은 아직까지 내 편이라 믿고 있기에, 약속을 지킬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딸에게 들려준 저의 첫사랑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도 들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굳이 제 아내에게 아직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훗날 알려지게 될 땐 알려지더라도 당장은 피하고 싶은 솔직한 심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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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에겐 지금 중학생인 내 딸만할 때 시작된 첫사랑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그 당시 여학생 교복들의 유난히 하얀 칼라만큼이나 순수했던 시골 소녀였습니다. 그 작은 시골, 장항읍에서는 너무나 잘 알려진 그 소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리 또래 남학생들 모두의 마음 속 애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공부까지 잘하던 그녀는 늘 반장으로서 우리 남학생들 모두가 인정하였던 아마 당대 최고의 스타였을 겁니다. 저 역시 그 애를 좋아하는 마음은 아주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그 애 앞에 당당히 서지 못할 정도로 눈에 뛰는 아이가 아니었고 그녀 역시 나를 알아볼 리 만무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는...
이윽고, 남녀 학교로 갈렸던 중학교 시절이 왔지만, 여전히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은 직접 표현은 하지 못하고 낙서장에다가 수없이 끄적거렸던 절절한 안타까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 당시 나의 노트와 구겨버린 쓰다만 편지글 속엔 수없이 많은 OO 란 이름만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그랬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놀랍게도 나의 여자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시험쳐서 들어간 나의 고등학교가 당시 유명한 명문고라는 이유와 함께 어느 날 길목을 한참 지켜 결행한 나의 다소 투박했지만 대단한 용기였던 ‘사랑 고백’ 때문이었습니다.
멀리 객지 대전에서 하숙 생활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그러다가 월말고사가 끝나는 주말을 이용해 한 달에 한 번 꼴로 고향에 갔었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데이트를 했습니다. 당시 우리가 가졌던 일반적 코스는 오로지 그 애가 다니는 학교가 있던 군산에서 만나, 정기 여객선 배를 타고 금강을 건너, 장항으로 향하던 참 짧기만 했던 한 20 분간의 시간과 밝은 달빛과 강 건너 보이는 군산시의 수많은 불빛들의 강물 위 반짝임이 어우러진 긴 제방 둑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가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그 시절 나의 여드름 청춘 2년은 꿈속같이 아름답게 흘러갔었습니다그려.(후우~).
그러나 저는 그 뜨거운 열정 속에서 그래도 간신히 ‘이성’의 끈만은 결코 놓치진 않았습니다. 대학을 가기 위한 아니, 더 긴 사랑을 위한답시고 잠시의 이별을 제안했고 그 애가 이를 흔쾌히 동의해줘 이후 우리는 죽어라 공부만 했습니다. “그래 대학 가서 만나자. 그것도 되도록 수도권 대학으로 함께 들어가자” 약속을 했었지요. 아! 하지만, 나는 합격하고 그 애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애는 집에서 가까운 전문대로 방향 전환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어긋남의 시작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좀 소원해진 이유가 될지언정 아주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여겨집니다. 정말 아주 긴 이별은 그 다음에 또 다른 이유로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 1 년 후에...
그것은 바로 나의 <신체 검사>였습니다. 군대의 현역병과 보충(방위)병을 가리는 것 말입니다. 나의 ‘신체검사’ 결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그녀의 마음을 당시 나는 결코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보처럼... 작은 체구의 안경 낀 내가 현역 판정 받은 것에 매우 실망하던 그녀는 여타부타 말도 없이 그 이후부터 슬금슬금 나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보충역 근무는 훨씬 짧은 복무 기간으로 저에게는 큰 바램이었습니다.)
징집 소집일(논산 훈련소)까지 그 애를 죽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화도 나구 슬프기두 하고 영문을 몰라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마침내 징집 전날 밤이 되었습니다. 일명 “송별의 밤”이 친구들의 배려로 펼쳐졌습니다. 그러다가 나의 사랑을 알고 있던 무리들이(기억하건대... 아마 수십 명쯤 친구들이 모였으리라) 모두 나를 위로 한답시구 그녀를 마구 성토하는 시간이 돼버렸습니다. 그리하여 급기야 이미 많이 취해버린 나를 업어 짖궂게도 녀석들이 나를 그녀의 집 마당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아주 깊은 밤이었는데, 글쎄... 이후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화가 나신 그녀의 아버지는 소리, 소리 지르시고, 그 애 남동생은 친구들에게 항의하고, 그녀는 어쩔 바를 모르며 울고 서 있는 가운데, 정작 나는 곧이어 필름이 끊겨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뚝!!!)
그렇게 나는 훈련소 박박 기는 군인이 되었습니다. 1982년 2월 달 무렵, 힘들고 X 빠지게 바쁘기만 하던 그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틈나면 그녀에게 끈질기게 편지를 썼습니다. 하지만 한 통의 편지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 친구로 부터 그 애의 생각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결정적 힌트가 전해져 왔습니다. 그녀의 판단은 이러했습니다. 아무래도 앞을 내다볼 때, 나의 군복무와 졸업 등을 고려하면 동갑인 내가 미덥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기야 그때까지 미래 설계는커녕 철없이 굴며 미덥지 못했던 내 쪽의 가벼운 태도가 특히 문제였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런 나의 미련까지도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결정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13개월 만의 첫 휴가 때입니다. 다시 찾는 일시적 자유, 아니 그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확실하게 그때 나의 첫 휴가에는 있었습니다. 바로 “그녀를 빨리 만나보리라...이해시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 의지도, 희망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들려온 소식은 놀랍게도 그녀의 결혼 소식이었습니다. 그렇게 너무나 신속히 결행해 버린 그녀의 결혼 소식 앞에서 아, 나, 나는... 너무 슬프고, 정말이지 아주 괴로웠습니다. 먼발치에서 이미 남의 아내가 돼버린 그녀를 한번 바라만 보다 그냥 귀대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됐으니 부디 잘 살고 행복 하거라.” 지금도 그렇게 눈물짓던 그 시절이 자꾸만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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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나 세월은 참 빠르고 그 위력 또한 대단한 것 같았습니다. 다시 바빠진 일상 속에서 그녀는 나에게서 점점 희미해져갔으며 아주 가끔씩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일 뿐이었습니다.
전역, 졸업, 취업, 결혼, 약국 개업, 아들 낳고 딸 낳고...돈 벌구 폼재구...가끔씩 술취하고...
마침내 하나님 만나 은혜받구 술끊고 담배 끊고 교회 나가구 그래서 주위 사람들 놀래키구, 그러다가 목사 사명 받아 신학교까지 들어가서 뒤늦은 나이에 열심히 공부하던 그 시절에...딱 그녀와 한 동창 모임에서 조우했습니다. 실로 22년 만에... 이때 나는 전도사로, 그녀는 믿음 좋은 집사로 같은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앙 얘기만(?) 실컷하다 헤어졌습니다.
그 후 2 년 후, 뜻하지 않은 병으로 입원한 나의 병상에 그녀가 내 친구와 뜻밖에 병문안 왔습니다. 당시 나는 ‘근막염’이라는 특이한 병으로 위험한 시기였습니다. 이때도 지난 이야기들은 서로 못했습니다. 위중한 ‘병’이야기만 나눈 것 같습니다.
또, 그 1년 후, 이번엔 반대로 내가 그녀의 병원 침대 머리에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이 세 번째 만남은 그녀의 여성암 수술 후였습니다. 하지만 이때 역시도 우리의 추억을 떠올릴 만한 상황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재작년 4월, 나의 목사 안수 기념 예배에 우리 교회로 축하차 그녀는 여러 크리스챤 고향 친구들과 함께 왔습니다. 그때 그녀는 어느 교회 심방 전도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신앙과 사명 얘기만 잠시 하다가 헤어졌습니다.
그 해 가을, 그 친구, 아니 그녀가 그만 하늘 나라로 갔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슬픔을 잔뜩 안고 영안실로, 화장터로 납골당까지 많은 친구들과 동행했었습니다. 이때는 정말이지 많은 얘기, 그때까지 못다 한 얘기들을 그녀와 너무나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녀와 한마디도, 단 한마디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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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기까지 듣던 당돌한 제 딸아이가 물었습니다. “그럼, 아빠, 그 아줌마와 뽀뽀도 못해봤어요?” ..음....“못한 것이 아니라 안했다. 대신 손은 꽤 오래 동안 잡고 다녔었지.” “그런데, 그래 이 눔아! 그게 고작 너의 반응이구 궁금증이냐? ”
“아니에요.. 아빠의 첫 사랑 이야기가 너무 아름답구두 슬프기두하고 안타깝기두 해서요...”
하기야 나의 이 이야기 같은 것은 애당초 요즘식 감각의 세대들이 이해하기에는 무리라는 걸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조금은 서운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딸아이를 먼저 집으로 올려 보내고 혼자 한참을 생각해 봤습니다. 사람과 인생과 사랑과 믿음과 천국과 소망에 대하여 말입니다. 그러다 마침내 겨우 알아냈습니다.
이 모든 것을...우리에게 할당된 시간 안에서 기쁨뿐 아니라 때로는 슬픔까지도 함께 엮어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섭리요 또,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을...
그래서 저는 이후로 지금도 가끔씩 이렇게 마음속으로 대화를 청합니다. 죽기 직전까지 오히려 호스피스 사역을 감당했다던 착한 그녀에게... “친구야, 하나님 계신 천국 좋치? 여기 세상에 있는 우리들도 잘 보이고? 그래, 이제야 맘놓구 우리 얘기들도 실컷 할 수 있겠군. 그때 왜 기다리지 못했니? 정말 나를 믿지 못했니? 그래... 하지만, 이제 그게 무슨 소용이냐 아무렴 그건 그만두자. 그런데 야, 친구야, 부탁이 있다. 나좀 도와줘라. 목회와 선교 좀 잘 하도록! 나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라! 그리구 그리구 말야... 지나친 부탁 같지만 말인데, 신랑도 각시두 결혼두 없다는 거기 천국이라는데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는 우리 딸이 놀려대는 거... 있쟎니? 그거.. 우리 못해본 그 뽀뽀를 꼭 해 보고 싶구나!
아! 보고 싶은 친구 OO야 ! "
2008. 12. 2. 조승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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