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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석, 영웅심리에 사로잡힌 몽상가인가?함께 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류상태  |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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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11월 23일 (일) 20:17:41
최종편집 : 2008년 11월 24일 (월) 03:33:01 [조회수 : 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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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론가의 글을 읽었습니다. 강의석과 지만원을 닮은꼴 스트라이커로 비유한 글이었습니다. 평론가의 논지에 타당성이 있음을 인정하며, 학교내 종교자유를 주장했을 때 그를 지지했던 분들이 지금의 그로 인해 당황해하는 모습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강군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강군은 어려서부터 유별난 학생이었습니다. 저는 눈에 잘 띄는 그 아이와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요. 4년 전에 갑자기 찾아온 사건으로 인해 함께 눈물 흘렸고 속깊은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제 목에 칼을 들이대는 어린 제자의 당돌한 주장에 반박할 논리를 찾지 못해 당황했고 도피하고 싶었지만 도망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그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제가 느끼는 점을 ‘한 때나마 그를 사랑했고 지지했지만 지금은 그의 행보를 안타까워한다는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강군은 저와 처음 만났던 6년 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좌충우돌식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일으키는 내면의 원인자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학교내 종교자유를 외쳤던 4년 전의 순수함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제 눈에는 그가 여전히 그 때의 순수성을 잃지 않았기에 일관성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보입니다. 그가 복싱도 했을 때도, 택시 기사 일을 했을 때도, 심지어 호스트바의 종업원으로 일했을 때도 겉으로 드러난 그의 행동 이면에 그 다변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원인자는 늘 하나임이 느껴졌습니다.


강군은 자신의 내면에서 ‘왜?’라는 물음이 뚫고 나오면 외면하지 못하는 청년입니다. 납득할 수 있는 답이 나올 때까지 그 물음을 붙잡고 씨름합니다. 머리나 가슴에서 솟구쳐 오르는 질문에 그는 온 몸으로 답을 찾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철이 들지 않는 스타일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이해)와 가슴(느낌이나 감동)이 움직인다고 해도 발(행동)까지 동시에 함께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발이 머리나 가슴의 움직임을 따른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시차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강군은 시차가 거의 없이 동시에 움직이기에 주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 때도 많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보겠습니다. 저는 둘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자기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어떤 실마리가 잡히면 그는 즉시 실험에 나섭니다. 복싱을 한 것, 택시 기사를 한 것, 호스트 바, 이 모든 것이 자기 길을 찾기 위한 실험이었다고 생각하며, 저는 강군의 이런 실험 정신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또래 젊은이들이 책을 통한 간접공부만이 아니라 이렇게 발로 뛰는 직접공부도 열심히 하면 참 좋겠습니다.)


혹자는 호스트 바 일로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덕 또는 윤리라는 말을 책임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그가 호스트 바에서 일한 경력과 시위 때 옷을 모두 벗었다는 점 때문에 비도덕적인 행동을 했다고 판단하시는 분들에게는 잠시 윤리적인 기준을 내려놓고 생각해 보시도록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가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지지 않은 일, 또는 어느 누군가에게 직접적이고 명백한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한 적이 있었던가요?


그가 좌충우돌하며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의 두 축 가운데 또 하나는,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길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고3 때 학교내 종교자유 문제를 제기하여 거대한 조직과 싸웠습니다. 그냥 개인이 아니라 학생회장이었기에 주변에서 들려오는 학우들의 불평과 고통을 외면하지 못했고, 결국 또래 친구들과 함께 누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싸웠던 것입니다.


   

얼마 전 국군의 날 퍼포먼스도 저는 같은 선상에서 이해하고 싶습니다. 혹자는 그렇게 튀는 행동을 해야만 했느냐고 물을 수 있겠습니다만,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허공에 대고 외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강의석이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지만, 조직도 힘도 없는 개인이 사회의 거대한 구조와 맞서 어떤 의미있는 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언론의 도움을 받는 것은 필수입니다.


제가 알기로, 그가 먼저 언론을 찾았던 때는 오직 사회와 대화를 하고 싶을 때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대광고 사건과 이번 국군의 날 퍼포먼스와 관계된 일에 한해서였습니다. 그 외에는 언론이 먼저 그를 찾아나섰기에 기사화되었고, 지극히 개인적인 그의 인생 실험이 갑자기 사회의 도마 위에 올랐던 것입니다.


강군이 선택한 나체시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고 낯설지만, 나체시위는 거대하고 견고한 조직과 맞서 싸울 때 힘없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으로 이미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시위방법입니다. 그 의미는 모든 껍질을 벗고 투명하게 대화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들이 의미를 느끼는 그 일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군대 문제에 대해 강군이 보수진영 뿐 아니라 진보진영으로부터도 적지 않은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가 징병제 폐지가 아니라 군대 자체의 폐지를 주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의 주장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실을 고려한 유연한 주장으로 인해 역사의 물줄기가 바뀐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요? 오히려 당장은 미치광이처럼 보이는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새로운 담론을 트고 막혔던 문제를 한꺼번에 뚫는 통쾌한 몽상가들에 의해 역사는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분들, 특히 그리스도교에 몸담고 있는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강군이 주장한 군대 폐지 문제는 성서가 제시하는 하느님의 나라, 즉 완전한 평화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칼과 창을 녹여 쟁기를 만들고, 사자가 어린 양과 함께 풀을 뜯는 환상을 보았던 이사야의 꿈과 닿아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평화운동을 하는 기독교 진보진영이 제시해야 할 주제를 강군이 제시했다고 생각되어 저는 한없이 부끄러운데, 기독교 진보진영은 별 생각도 느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평화의 세계를 꿈꾼다는 범진보진영의 인사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의 주장이 비현실적이며 한반도의 실정에 비추어 위험천만한 철부지 짓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중간 단계의 ‘과정과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고 궁극의 목적을 바라보며 돌진하는 이 무모한(?) 젊은이의 내적 동기를 보고, 그가 미숙하여 미처 헤아리지 못한 ‘과정과 목표’를 대신 메꾸어 줄 수는 없었습니까? 저는 강군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오로지 궁극점을 향해 돌진하는 이런 젊은이들이 각 나라에 열 명씩만 나와 서로 연대해도 세계평화는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20년 전인 1989년, 한 미친(?) 사람을 보고 흥분한 적이 있습니다. 현실과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느닷없이 북한으로 들어가 김일성을 끌어안은, 철들지 않는 타입의 사람 문익환입니다. 당시 그의 돌출행동으로 인해 진보진영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보수진영은 신이 나서 무차별 공습을 감행했지요. 그러나 그의 철없는 행동이 역사의 물줄기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그 때 흥분하던 제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겠습니다.


강의석은 아직 23살의 젊은이입니다. 충동적일 수도 있고 미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 흐르는 순수와 열정, 그리고 모든 이웃과 함께 누리고 싶어 하는 꿈을 보지 못한 채, 단지 전통적인 시각과 전제에 의해 그의 행동과 주장을 재단한다면, 그는 그저 영웅 심리에 사로잡힌 몽상가요 사회 질서를 해치는 위험한 젊은이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강군은 지금 망설이고 있는 듯합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오직 양심의 명령만 따르던 이 젊은이가 지쳐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의 몸부림은 곧 시들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앞에 드리워진 거대한 벽은 너무나 높고 그를 마음 깊이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너무 적기에 그는 외로울 것이고, 그의 시도는 탄력을 받지 못한 채 추락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혼자 꾸는 꿈은 이루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함께 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강군이 한 말입니다. 어쩌면 그의 날개를 꺾고 꿈을 짓밟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를 건방지고 무모한 아이로 보았던 꽉 막힌 종교인들이 아니라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으나 더 이상은 그의 행보를 버거워하는 분들, 그러니까 새 세계를 이루어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고 싶다는 진보 의식을 가진 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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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71.255.109.229)
2008-12-03 03:51:22
자기 당착에 빠진자일수밖에 없다
공동 묘지에 묻혀있는 시체들에게 물어봐도 왜 죽었는지의 답은 있다고 했다
정신병원에 가서 정신 질환자들에게 왜 이곳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들 역시
얼마든지 할 말이 있을 터인즉, 그러니 글을 쓴자 역시 왜 할 말이 없겠는가?

그러나 세상에는 절대성이 있고, 보편성이 있고, 상대성이 존재 하는 것이 현실인데!
그것을 무시하고 제 잘난 멋에 사는 인간들이 많아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먼저 인간들에게는 절대성이 없다. 석가모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절대자이신 하나님은 절대성을 가지고 절대성을 요구 하신다는 것을 알야 할 것이이다.

그러기 때문에 정암이라는 호칭의 중이 주장하는 이것도 정답이고 저것도 정답이라는 얘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중의 사람이 한 말이기 때문에 시비를 걸 필요는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예" 또는 "아니오" 라는 답이 한가지 뿐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싶다.

또한 완전하지 못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곳에는 보편성이라는 것이 존재 한다. 일반적인 상식이라는 말로도 이해 할수 있다 물론 이것이 무너지니까 법이 있지만 법 이전에 이 것이 사회를 지탱한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그러한 보편성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자들을 짐승과 같은 행동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행동을 하는 자들을 이런 저런 말로 포장을해서 당연한 일로 치부를 하며 사회가 잘못된 것이라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악한 자들이 있다.

따라서 세상에는 속한 모든 일에서 생기는 것들은 상대적인 것이다 보니어느 학자는 상대성 원리라는 법칙을 주장하여 유명해 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비교를 할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효력이 있는 것이지 절대자에게는 가당치 않은 인간의 생각과 판단에서 나온 세상의 논리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 말도 한정된 세상속에 살고있는 인간들의 대화 속에서 나누는 말이니 이해를 해야 하지만 상대방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이 받아 들려지지 않는다고 하여 돌출된 자신만의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상대방과 상식화된 사회에 적응 못하는 미 성숙된 사람이 아니겠는가?

특히 개인 이라고 하는 개체가 있고, 공동체를 이루는 사회가 있고, 공동체가 모인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는 것이 현실이고, 나라와 나라간에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특히 한국은 엄청난 생명을 앗아간 전쟁을 치렀고 잠시 휴전 상태에 있는 상황을 전혀 고려치 못하고 국가의 존립을 무시하는 저자는 분명 정신 질환자요 그것을 정당화 시키는 글쓴자도 자기 당착에 빠진 안타까운 사람이라고 말할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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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 스님 (119.148.151.120)
2008-11-28 19:22:02
먹탐님 께
인천불교인권위원회 위원장 정암 스님입니다.
먹탐님의 댓글을 오늘에야 보았습니다.
먼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부처님은 먹탐님이 쓴것처럼 4000천년에 계셨던 분이 아니고
2550년전에 사셨던 분입니다. 무지에서 깨어나라 했고 자비를 실천 하신 분이지요.
그리고 나도 지면상 이런 부분은 이야기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먹탐님의 말중에 거슬리는 말이 하난 있습니다. 출가한 스님이 이야기 하면 모다 선문답으로 알아 듣는데 그건 무지의 소산입니다.
내가 나이가 50을 바라다 보니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게 시간이 많이 걸려 짧게 쓴 글일뿐 아전인수로 해석하려 들지 마십시요.
제 전화번호입니다. 010-7392-5690 사는곳은 인천이고요.
시간되면 연락주세요
참고로 저는 청년기까지 교회를 다녔습니다.
군대는 제9공수부대에서 7년을 근무 했고요. 이정도면 이글을 어찌 받아 들였는지 알겁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위에 있는 기사를 쓰신 류상태님의 뜻을 알것 같습니다.
물론 잘쓴 글이지요


2008-11-26 22:45:40

사랑하는 스님께
정암스님 2006년 전 예수님의 모습이나 4000 여년전 모습의 실탓타 의 모습이면 판단
할만..결론지을 만 하지 않을까요 스님 다윗이나 골리앗이 무엇이 다름니까
똑 같은 단순한 인간 일뿐 입니다 그이유를 이지면에서 말하기는 양이 많습니다
다만 석가모니 님과 예수님은 분명하게 다름니다 성서를 이해하는데 언어 자체에
함몰돼지 아니하고 그시대 배경과 그당사자의 삶을 통해서 결론 내야 할것 입니다
스님 잘 모르십니까 ... 대화를 원하시면 장소와 시간을 말씀 하십시요
어슬픈 선 문답 은 자신과 자신의 믿음을 부끄럽게 할뿐 입니다.,.스님에게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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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 탐 (121.129.18.147)
2008-11-27 18:30:53
덥든지 차든지 해야 할때 아닌가
다양성 님의 충고 감사합니다 저는 당당의 선생들을 통해 제 신앙을 키워 간다고
자신 있게 말씀 드립니다 선생이 되려한다니 민망 합니다 저는 체질상 밑바닥
사람이며 50중반이 되도록 그길을 벗어난적이 없습니다 다만 저는 느껴지는 가식과
위선을 하나님과 예수를 말하며 자신들의 욕심을 채워가는<영적이던 물질적이던>
그런 사람들을 도저히 못봐주겠다는 것이지요 예수님도 그누군가에게 무지막지
한 언어의 폭력을 쓰셨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착각에빠진
바리세.대제사장 등등 이였지요 저는 여러명의 나그네들과 치열하고 무식한
논쟁을 하며 만나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길 수없이 제의한바 있습니다 그러나
저 들의 모습은 마치땅속에 숨어서 고개만 내밀고 상대를 희롱하는 저급한
존제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있습니다 앞으로라도 그들이 시비를 건다면
몇명 합심하여 대들더라도 그들에게는 치열하게 붙어볼것입니다 당당에 글올릴
자격을 상실할때까지 ... 저는 단적으로 김 홍도 같은 사람에 편승하여 신앙
생활한다고 하는 사람은 불쌍하고 안타깝다 못해 내살과 영혼이 절규하지요
기독교 를 개독교로 만들어가는 자들을 어찌해야 합니까 진보라고 다 진실할수는
없지만 보수를 말하는자들은 자신을 위한 보수입니다.........98%가

저는 항상 원하시면 만날수있는 사람입니다 121.....176 님께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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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121.137.162.178)
2008-11-27 01:34:10
자유와 다양성의 이름으로
우리 모두 덜렁더렁 아래또리 흔들며 길거리로 나갑시다.
물론 여자는 윗또리를 흔들어야겠지.
각자의 꿈인데 뭐 거시기하면 어때.
이상하지!
진보측 기독교인은 타종교인에게는 관대한 표현을 쓰면서, 같은 기독교인에게는 뭔 억하심정이 그렇게 많은지.
보수측 기독교인은 지네끼리는 쿵짝쿵짝하면서 뭐 진보측과 타종교인에게는 억하심정이 많은지.
그리고 먹탐씨 가끔 느끼는 건데, 너무 선생되려하지 마시오. 당신을 보면 나그네와 비슷한 생각이 들거든. 나그네보다는 쬐끔 아주 코딱지 만큼 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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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68.238.229.135)
2008-11-26 23:00:30
자유의 고마음을 모르는 자들이여
크게는 지구를 환경에서 부터 지키려는 사람들도 있고 조금 줄려 본다면 각 나라는 그 나라를 지킬려고 하는 지도자들이 있고 그 외에도 회사나 교회나 가정이나 적게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삶을 지킬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미물들도 자신을 지킬려고 하는 본능이 있거늘 하물며 인간들이랴. 미물들이야 창조자의 섭리에 따라 오직 양육 강식에 의한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이지만 인간들은 다르다. 능력도 없는 자가 한번 튀어 볼려고 허무 맹랑란 소리로 지꺼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 말에 솔깃하여 대로변에서 빨개 벗고 짐승 노릇을 하고 있는 자가 있는 가면 그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포장해 대는 자도 있고 보면 이 모든것 역시 자유가 있으니 가능한 일 아닌가? 그런데 한가지 있어서는 안될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사회를 혼란케 하여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자들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교회를 훼방하는 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쓸데 없는 객기 부리며 동아리회나 만드는 사람이나. 교주가 되고 싶은 자의 말을 듣고 군대가기 싫다고 국가의 행사를 가로 막는 사람이나 그것이 옳다고 헛된 말로 포장하는 사람들이 사회와 국가에 무엇이 도움이 되겠는가? 그래도 그들을 사회의 일원이라고 끌어안고 어우러져 살아주고 있으니 이것이 진정 자유를 알고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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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 탐 (121.129.18.147)
2008-11-26 22:45:40
사랑하는 스님께
정암스님 2006년 전 예수님의 모습이나 4000 여년전 모습의 실탓타 의 모습이면 판단
할만..결론지을 만 하지 않을까요 스님 다윗이나 골리앗이 무엇이 다름니까
똑 같은 단순한 인간 일뿐 입니다 그이유를 이지면에서 말하기는 양이 많습니다
다만 석가모니 님과 예수님은 분명하게 다름니다 성서를 이해하는데 언어 자체에
함몰돼지 아니하고 그시대 배경과 그당사자의 삶을 통해서 결론 내야 할것 입니다
스님 잘 모르십니까 ... 대화를 원하시면 장소와 시간을 말씀 하십시요
어슬픈 선 문답 은 자신과 자신의 믿음을 부끄럽게 할뿐 입니다.,.스님에게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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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 탐 (121.129.18.147)
2008-11-26 22:32:23
엘리야 라 칭한 목사님께
엘리야 목사님 내가 두분을 비판 한것이 각자 나름대로 의견이 분분 할수있습니다
제가 목사님께 제 모습을 얼마던지 알려드리고 대화가 될수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두분이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했지만 예수님의 기준에서 결론져저야 할문제 입니다
목사님께서 어떤 모습의 예수를 논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의 삶의 과정에서
예수를논하고 신학적 관점 다양하게 공부하는 관점에서 여러기지 모습이 있겠으나
예수를 전하는것 만큼 예수가 원하는 삶을 사십시요 저도 언제까지 과정일수밖에는
없지만 제 삶을 걸고 노력합니다 목사님 예수를 목사님의 신도에게 기르키시렵니까
목사님의 삶으로 느끼게 하시렵니까 심하게 표현한다면 예수님을 입으로 장사
하시렵니까 삶으로 목사님의 교우에게 느끼시게 히시렵니까 저는 기도하며 행하며
오클로스와 포토코이<민중과 극빈자>와 함께하시는 예수만을 바라볼렵니다
제가 다할수있음도 아니요 이룰수있음도 아닙니다 제 한계를 아니까요 다만 최선
을 다할뿐입니다 제가 격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예수를 말하며 가식과 위선과
자신에게 도취한 신앙을 거부하는 것뿐입니다 목사님께서 원하시면
장소를 말씀하시면 오후4시이후에 뵙겠습니다..먹고마시길 탐하는 먹탐..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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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 스님 (119.148.151.11)
2008-11-25 23:41:14
언어도단
이 세상에 나와서 각자가 보고 각자가 꾸는 꿈이다.
강의석도 정답이고 그를 비판하는 너의 생각도 정답이다
그런데 어떻게 2008년 전의 예수를 통해서만 세상을 보고 판단하려 할까.
그게 틀린거다.
그렇다면 저 군인들은 다윗인가? 골리앗 인가?
강의석이 다윗인가? 골리앗 인가?
너는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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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 (61.79.92.200)
2008-11-25 22:36:52
엘리사의 후예 이름을 거론한 분에게
나는 엘리사의 후에님과 함게 컴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목사죠 25년을 목회를 했는데, 양과 염소를 구분도 못하고, 그 본문의 의미도 뜻도 깨닫지 못하는 형편없는 사람이 나와 같이 있다니 기가막히는군요. 다양성을 인정 하는것이 어렵고 또 남의 의견을 폄하하고 사이비 티를 내지 말라는 등의 상대방의 인격을 무례하게 대하는 '먹탐'이신분은 도대체 정체가 누구신지는 몰라도 자신의 언어사용이 적절한지 살펴보세요...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그렇게 함부로 모욕감을 느끼게 글을 쓴다면 어디 기분이 상해서 댓글을 달겠소? 이런 댓글을 다는 당신때문에 더더욱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고 거의 침묵으로 지냈지요 지금도 조용히 앞으로도 조용히 침묵이나 하는 수준의 목사는 물러갑니다. 당당뉴스를 늘 즐겁게 읽곤했는데 오늘은 기분이 더럽구료. 동료를 대신하여 글을 쓰지만 꼭 내가 모욕당한 기분이 들정도니 자신의 의사표시한번하기가 이렇게 더러워서야...너나 잘하시오 먹탐도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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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 (58.121.58.252)
2008-11-25 07:59:14
우리 모두는 아벨의 죽음을 자초할지도.....
가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가인은 적극적으로 하나님과 대화해서 자기 생명을 구했지만 의인이라는 아벨은 하나님과의 대화없이 혼자만 고고하게 살았나 봅니다. 그래서 아벨에 대해서는 아무 말없지요. 그는 결국 일찍 죽었습니다. 이 시대의 의인들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이들이여 우리는 아벨과 같은 의인들이지요. 강군에게 힘을 실어 주었으면 하는데 주저앉아만 있습니다. 그러다 아벨의 죽음을 맞이하겠지요. 강군이여. 안일한 아벨의 옷을 벗겨주고 힘을 모아 나아갈 수 있도록 부추겨 줬으면... 강군 자신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강군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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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 탐 (121.129.18.137)
2008-11-24 16:40:46
마태25장 염소는 누굴까...?
엘리사 후예 . 한 사랑님 그대생각이 정답 이면 예수는 미친 놈이요 예수님의12 제자는
또라이란 말인가 그대들은 눈에 보이는것에 충실한자요 예수님이 원하시는것을
못보는것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께서 시대의 아품 과 오클로스.
포토코이 와 함께 하셨고 모든 아품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대들은 더이상 신앙의
이름으로 예수님를 왜곡하지 마십시요 차라리 침묵하십시요..부탁 합니다


류 목사와 강군이 그길을 가는 것뿐이니라 제발 사이비 티좀 내지마시요 마태복음
25장 양과 염소의 비유만 제대로 깨닫았던들...십자가 예수를 생각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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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220.64.21.2)
2008-11-24 14:22:50
강의석군 못지않게 류상태 목사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이런 글을 읽고서도 목적도, 과정도,결과도 모두 미친 놈의 행동 운운하는 댓글이 답답해 로긴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벽을 보고 말을 해야하나 해서요...
강의석군도 대단하지만, 제자가 목에 들이대는 칼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독배를 마신 류상태 목사님이 더욱 존경스럽습니다.
강의석 같은 청년 열명만...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류 목사님 같은 선생님 10분만 계셨어도 우리 교육이 달라졌을 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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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랑 (218.209.85.48)
2008-11-24 12:23:03
이름내는 방법 여러가지죠
어떤 목사님은 남의 교회 약점 잡아서 인터넷에 올리는 걸로 유명해졌습니다. 이젠 무슨 대학교수님 명함 갖고 다니는 거 같더라구요. 수십년동안 피땀흘려 개척하고 일군 교회가 쑥대밭되기 쉽죠.
어떤 운동가는 00운동한다고 들로 산으로 들쑤시고 다니면서 십수년동안 흠집꺼리 찾아내다가 스스로의 흠집을 들켜서 혼줄나고 있습니다.
어떤 악당은 도끼로 대대장 일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하면서 역사에 길이남을 이름을 남겼습니다.

강의석... 그도 이름내고 있는 중이죠. 스스로를 찾아야 할텐데 큰일입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잘 이끌어줘야 하는데 교목이라는 분이 오도했으니... 이젠 자기말도 안듣는다고요?

류상태... 이젠 자칭 목사님인데 스스로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강의석도 제대로 이끌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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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야 (119.148.131.168)
2008-11-24 11:27:21
정의를 위한 사-생각,언-말,행-실천의 일치!!
저는 70년대에 직업군인으로 8년간의 군생활을 마친 택시기사이자 인천의 한 장로교회의 집사인 기독교인입니다. 돌출적으로 보이는 강군의 종교자유,군대해산의 주장은 자유와 평등과 평화라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믿음,사랑,소망을 기본 덕목으로 하는 기독교리의 핵심과 일치합니다.기성세대로서 생각은 있으나 말을 못하고 말은 하지만 실천까지는 가지 못하는 자신의 면면을 되돌아보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강군과 같은 정의를 실천하는 젊은이들에게 비난이 아닌 격려와 충고와 함께 하려는 노력이 우리의 사회를 정의롭게 발전시킬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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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의 후예 (122.47.122.74)
2008-11-24 09:46:24
국군의날 현장에서 강군의 시위를 본사람입니다.
건국60주년 국군의날 행사를 집앞에서 한다기에 시간을 내서 보았습니다. 늠름한 우리 병사들 앞에 먼저 기계화부대가 행진 하는데 20사단 탱크 두대가 선두에 서서 진행을 하려고 하던때 갑자기 한 미친놈?이 도로에 뛰어 들었습니다.나는 바로 10-15m 바로 앞에서 생생하게 그의 민망한 모습을 아내와 함께 보게 되었습니다.군대폐지를 주장하는 그의 모습이 순수함으로 그의 정체성을 찾는것으로 그어떤 이유로도 용납하기 힘든 적절치 못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이 휴전상태인 나라. 대한 민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당연하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한낱 부질없는 짓거리로 전락시키는 더럽고 추한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목적도 과정도 동기도 결과도 모두가 미친 녀석의 행동이라고 볼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정당한 사유라도 또한 개인의 고유한 의사표현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가족들 앞에서 친구들 앞에서도 부끄러운 행동임엔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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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운석 (125.249.10.2)
2008-11-24 09:00:37
꿈꿀 자유를 빼앗지 맙시다.
대중의 혐오라는 기준이 어디에 있을까요..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수용해 주고 이해해 주려할 때 우리 사회는 진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청소년(9세~24세)은 꿈꿀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이들의 꿈꿀 자유를 고도의 정책으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빼앗고 있습니다. 부모도 거기에 편승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들이 마음 껏 꿈꾸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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