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타임즈와 박영천국장, 그리고 나


기독교타임즈는 제게 고마운 존재입니다. 조그마한 농촌교회의 이름 없는 목사로 살아가던 저의 이름을 감리교회라는 세상에 널리 알려준 신문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김혜은기자가 우리교회를 취재한 것이 인연이 되어서 ‘목회단상’이라는 곳에 글을 몇 편 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돌베게’라는 칼럼도 몇 편 썼습니다.
그런데 저의 기독교타임즈에 글쓰기는 본의 아니게 몇 차례 중단되곤 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담당기자에게 물었습니다. “원고 보냈는데 왜 싣지 않았느냐?”고 말입니다. 대답은 대충 이런 것이었습니다. “우리 신문 편집방향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소위 아름다운 이야기들, 즉 누가 보아도 좋은 이야기는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글들은 싣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세습문제’라든지 감리교회의 개혁과 관련한 이야기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대형교회 목사님들 보기에 조금이라도 거시기 하겠다 싶으면 싣지 않는 것이지요. 그 때마다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내가 기독교타임즈에 글 싣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박영천국장님을 만나면 “왜 요새 우리신문에 글 안 싣느냐?”는 말을 들었고 저는 “실어주지 않으니까 못 싣지요.”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 박영천국장님은 담당기자를 불러서 저의 글을 신문에 다시 싣도록 주선하곤 하였습니다. 그러기를 두 세 번 한 것 같습니다.

기독교타임즈에 쓴 저의 마지막 글은 지난 해 제27차 입법의회기간에 배포된 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기독교타임즈의 안 기자가 전화를 하여서 몇 가지 얘기를 하면서 입법총회에 즈음하여 개혁적인 글을 하나 써달라는 요청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꼭 싣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입니다. 기꺼이 썼지요. 제목은 ‘흉흉한 소문’인가 뭔가 하는 것으로 붙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지금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습니다.
1.“내가 장정유권해석위원회 할 때, 이해당사자들이 로비를 하더라. 말이 되는가? 그런데 이번 입법회의를 앞두고 장정개정위원회에 로비를 한 사람들이 있다더라.”
2“며칠 전 어느 총대가 보낸 무언가를 받았다가 돌려보내었다.”
3.“오래 전에 감독선거 와중에 어느 후보가, 내가 해외여행 하는 중에 우리 집에 보낸 쇠갈비를 후배목사들과 함께 끓여먹었는데, 그것이 지금껏 후회된다. 돌려드리지 못한 것이.”
4.“내년에 감독회장으로 출마한다는 어느 목사님이 많은 수의 목사와 장로들에게 케냐여행을 시켜주고 있다는데, 잘못된 것이다.”
5.“입법을 하는데도 로비를 하고, 감독을 하기 위해서 금품을 사용하고.... 이런 것은 교회를 멍들게 하는 것이니 개선해야 한다” ...

그런데 당일 발간된 신문에는 4번에 해당하는 글이 송두리째 빠지고 없었습니다. KKD목사와 관련된 것만 뺀 것입니다. 항의했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들려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지면이 모자라서...” 그 때부터 기독교 타임즈는 이미 KKD목사에게 올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저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기독교타임즈 직원들이 바뀌지 않는 한 이 신문에 글을 싣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박영천목사님은 멀리할 수 없었던 분입니다. 제가 군목 입대하기 육칠개월 전인 1980년 어느 날, 제주공항에 도착한 박영천목사님의 말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야, 인환아, 나 죽으러 왔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지요. “죽긴 왜 죽어요?”
의사로부터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진단결과를 듣고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제주도에서 불살라보겠다고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그저 얼굴만 알고 지낼 정도였습니다만, 제주도에서 반 년 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정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전도사였지만 선배님을 정성껏 대하였습니다. 교인들이 표고버섯을 가져다 주기라도 하면 즉시 대포교회 박영천전도사님께 갖다 바쳤습니다. 그의 건강을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 중략... 주님의 은혜로 박영천목사님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셔서 지끔까지 열심히 사십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몇 년 전 저희 교회를 방문하였을 때, 제 딸이 S대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며 “내가 주는 장학금이다” 하면서 100달러짜리 미국돈을 주신 것을 지금도 기억하며 고맙게 생각합니다.

인간적인 정리로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박영천목사님께 다음과 같은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28년 전, 제주공항에서 만났던 때의 그 절박한 마음을 회복하십시오.”
“하루속히 기독교타임즈에서 물러나십시오. 그리고 150만 감리교인 앞에 정중히 사죄하십시오.”

무명의 나를 출세(?)시켜준 기독교타임즈입니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저는 후배들에게 “기독교타임즈를 비판만 하지 말고 우리가 밑바닥에서부터 열심히 구독하고 구독료 내 줘야 한다”고 몇 년 동안 열심히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독교타임즈 보지 보지 않기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독교타임즈 폐간운동도 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후배라고 나에게 항상 잘 대해 주셨던 박영천목사님이지만, 이제 그를 ‘감리교회의 공적’ 중의 한 명이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인 정리로 보면 그래서는 안될 것이지만, 우리의 어머니 감리교회가 이렇게 상처받고 신음하는 데 한 축을 차지하는 그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러나 언젠가 제 정신 차리고 돌아올 날이 오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가을이 깊어져 쌀쌀함이 느껴지는 밤에 착잡한 마음으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