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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존심, 인간의 자존심(2)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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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6월 23일 (월) 06:38:14
최종편집 : 2008년 06월 23일 (월) 13:20:26 [조회수 : 3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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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의 손상은 이런 권력관계의 합리성이나 균형성이 무너질 때 발생되어집니다. 진정한 권력 즉 지휘명령계통을 가진 사람은 힘없는 약자 즉 부하직원에게 그 힘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고 행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일방적으로 남에게 무리하게 요구만 하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이 먼저 무너지고 남도 자존심을 상하게 합니다.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을 때 감정을 갖기보다는 전체의식으로 자신을 배려하려는 자존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필자도 그런 사람을 포용하고 자신을 북돋우어 배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존심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집니다. 이런 의미와는 다르게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불합리한 지시나 명령을 받거나, 사적으로 상처를 받을 때는 자존심이 상하게 됩니다. 싸우고 나서 화해 할 때 <자존심>을 들먹거리며 쉽사리 화해가 되지 않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런 불필요한 자존심손상을 해소 하기위해서는 조직과 집단에서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수준에 이른다면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되려면 일정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러는 과정에서는 서로가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조직내에서 여기저기 상처받아 무너졌던 자존심을 다시 일으키어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만남의 무대가 유지되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교회가 갈라짐도 일종의 자존심 때문에 교파가 갈라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서로가 신학적으로 보수정통을 외치고 성경적이다. 라는 자존심 때문에 분열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자존심과는 상관없는 인간들의 죄성이 범범된 자존심 대결로 하나님의 교회는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이지요. 허지만 천주교는 오로지 한 교회만을 유지되어 온 걸 보면 이 문제에 대해서만 다르게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존심을 존중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개신교회가 하나님의 자존심을 존중하였다면 개혁교회의 원형을 유지 했어야지 왜 이렇게 교파가 난립하였을까요? 그것은 인간들의 헛되고 죄성이 충만한 자존심 대결이었기에 그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명예, 감투의 자존심, 목회성공욕구의 자존심등 인간으로서는 내세울게 없는 헛된 자존심을 하나님이름으로 교회이름으로 내세우고자 하는 교회지도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허지만 천주교는 이런 교파 분열이 없음은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자존심을 존중해주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인간세상에서 벌어지는 자존심보다 먼저 하나님의 자존심과 예수그리스도의 자존심을 한번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에덴동산에서 평화롭게 살도록 지어졌던 인간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트려 버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였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상한 자존심에도 괘의치 않으시고 인간을 사랑하시는 모습을 구약의 역사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안 되니까 마지막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 역시 독생자로서의 신분을 팽개치고 이 땅에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지만 아무도 반기지 않고 오히려 핍박과 고통을 주었으며 종내에는 십자가에 못을 박기까지 했습니다. 이때 주님의 자존심은 얼마나 상하였을까요? 심지어 12제자들이 다 배반하고 도망하였을 때는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였을까요? 저들이 이토록 나의 마음을 몰라주다니 우리들 같으면 답답함으로 혀를 깨물어 꼬꾸라질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그 잘난 얄팍한 자존심에 조금만 상처를 입어도 안절부절, 얼굴이 푸르락 붉으락 하며 참지를 못합니다.

필자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서 문득 주님의 자존심을 생각하니 필자의 자존심은 내세울게 없더군요.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존심, 인간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데 따른 자존심이 얼마나 상하셨겠습니까? 사랑하는 제자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던 주님을 생각하면 저의 얄팍한 자존심은 저절로 부끄러워집니다. 그래서 헛된 자존심을 버리고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며 타인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배려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필자의 자존심도 상하게 하지 않을테니까요.

문제는 이런 배려와 노력이 상식적으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항상 마(魔)는 있기 마련입니다. 조직속에는 항상 그런 존재가 있기 마련입니다. 자신은 전혀 인식 못하면서 남에게는 자존심 상하게 하는데는 올림픽 금메달감 수준의 자존심 상하기 전문가는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사회속에서는 반드시 그런 존재가 있기 마련이지요. 아마도 음악적으로 말하면 비화성음의 꾸밈음이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그런 존재도 분명이 자신에게도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결국 화성음으로 유도하면 완전한 노래가 되는 것처럼 상한 자존심도 금방 회복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얄팍한 자존심 하나로 희로애락, 오욕칠정이 난무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어떤 사람은 자존심하나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요. 허지만 존재의 기초가 되는 것은 자존심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물론 겸양의 자존심이여야 하겠지요. 허영과 권력의 자존심, 직책의 자존심, 교만한 자존심은 폐기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겸양의 자존심은 우리가 몸으로 체득하여 할 자존심의 원형이 아닐까요?

인간의 자존심은 서로 상대적입니다. 누군가 한쪽이 어느 정도의 잘못이 있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자존심은 가변적일수도 있습니다. 자존심은 서로가 세워줄 때만이 존재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서로가 상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친구간의 관계도, 부부간의 관계도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결점을 건드리지 않고 사랑으로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브앤드 테이크는 인간세상의 상대적 법칙입니다. 내가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면 상대방도 언젠가는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것입니다. 자존심도 일종의 시장경제 원리와도 같이 조직문화에서 작동될 것입니다.

허지만 하나님의 자존심은 절대 불변적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자존심의 포기가 있었기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구세주로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상대적인 자존심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 자존심이신 사랑의 표현이십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절대적 자존심의 포기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자존심은 하나라도 내세울게 없는 죄성의 자존심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조직 속에서 화합하고 배려하는 공동체의 정신을 가지고 주님의 사랑이 늘 나와 함께 계신다는 자존감, 복음의 깨달음과 개혁의 자존심으로 살아가야 하리라고 다짐 해 봅니다. 생활현장에서 교회개혁을 구체화하는 것이 복음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하찮은 인간의 자존심을 내세워 인간의 죄성을 극대화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외국물 먹었는데 어찌 시골, 산간벽지에서 목회를 할 수 있겠느냐의 반응이 바로 그런 죄성이 염색된 자존심입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이런 저런 죄성의 자존심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존심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모두 십자가아래 내팽개쳐야 할 쓰레기들입니다. 이런 쓰레기 자존심이 자각되어지고 포기되질 때만이 교회일치가 가능하게 되어지리라 믿습니다. 교회가 먼저 실천되어질 때 현재 국민들의 자발적이고 축제인 촛불잔치에 맥을 못 추는 한국정치의 난맥상도 풀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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