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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믿음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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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4월 26일 (토) 19:15:34
최종편집 : 2008년 04월 27일 (일) 00:16:16 [조회수 :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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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상은 모든 영역이 지식을 기초로 하여 생각하고, 연구하고,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두 가지 분야만 이야기 하여 보겠습니다. 우리의 육적인 영양과 건강을 위한 기초적인 학문이 식품영양학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측면에서  기독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신학이라고 합니다. 더 자세히 말한다면 식품영양학이란 인간의 건강과 영양 상태의 개선을 통해 삶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학문 연구와 그의 실천 및 응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신학은 신앙에 관한 모든 분야를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과 인간의 체험과 이성으로써 피조물인 자연의 상태를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식품 영양학이 인체에 영양분을 공급하여 건강을 유지시키기 위한 과학이라면 신학은 성경 속에 담겨진 기본원리를 분석하고 이성의 원리와 비교함으로써 학문적인 결론을 얻는 진정한 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하나님에 대한 학문적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활동하려면 기본적으로 영양소라는 특정한 물리화학적 성분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영양소는 체내에서 합성되지 못하고 음식을 통해 외부에서 섭취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 대부분 식물에서 얻어진 재료로음식을 만들어 섭취하게 됩니다. 식품영양학에서는 영양소의 성질, 작용, 필요량과 부족 되었을 때 발생하는 결핍 증세를 다루며 음식의 소화와 흡수에 의해 일어나는 에너지 대사를 다룹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생물학, 화학 등 기초과학과 인체를 이해하기 위한 생리학, 생화학, 식품위생학, 영양학, 식생활관리 및 실험, 식품미생물학, 식품위생학, 식이요법 등을 배우게 됩니다.

신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진 우리 인간들의  모습 즉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복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신학이란 카테고리 속에 수많은 주변학문을 배우게 됩니다. 크게는 구약 신학, 신약 신학을 다루는 성서 신학과 교회사, 역사적 신앙고백을 다루는 역사 신학, 교리를 다루는 조직신학이 있고 성경해석학 일반 윤리, 도덕, 윤리, 상황윤리, 사회 윤리등의 분야가 있습니다, 교리 문답, 목회 상담, 설교학을 다루는 실천신학과 선교를 다루는 선교 신학이 있습니다. 이밖에도 이름만 달면 00신학, 000 신학으로 명칭되는 신학들이 무수하게도 많습니다.

식품영양학을 알지 못했던 우리 부모들의 세대는 지금 세대보다 더 음식을 잘 만들고 가족들의 건강을 지켜 주었습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의 용어는 몰라도 땅위에서 생산되는 제철의 곡식과 야채 ,산나물, 들나물로 아들, 딸을 키워 지금의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게 하였습니다. 지금과 같은 비만과 성인병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의 똥배는 부위 상징이었고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사장의 지위로 둔갑하여 어떻게 하면 저렇게 똥배가 되는지 우러러 보았습니다.

일부 극빈층에서는 너무 못 먹어 영양실조에 걸린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건강하게 잔병치레 없이 잘 컸습니다. 그 당시의 아이들에게는 실개천이 수영장이었고 산기슭과 동네 앞 공터가 그들의 오락장이었습니다. 산골짜기와 논둑 옆 찔레순은 맛있는 간식이었고, 초여름 감자는 햄버그 보다 더 맛있는 간식이었고, 띠 풀은 빼빼로 과자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밀기울이나 보리등겨로 만든 개떡은 피자보다 더 맛있고 영양이 풍부했습니다. 덜 익은 밀과 보리이삭을 불에 태워먹은 재미와 껌으로 만들어 씹는 재미는 오락게임보다 더 재미있고 찬구간의 정이 저절로 들게 하였습니다. 어른들은 산과 들의 나물로 비타민제 하나 먹지 않고서도 모든 영양을 채워주었습니다.

이모든 것들이 지금은 농촌체험이라는 이벤트로 사라져 가는 것을 농촌의 추억을 도시어린이들에게는 일시적인 체험으로 인위적인 추억을 만들고 있습니다. 불과 한세대전의 자연스런 추억을 인위적으로 학습하고, 체험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기반이기보다는 인간의 질서의 기반위에 살다보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 자연에 대한 동경, 땅과 가까이 하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가 생기지요. 자연히 그러한 욕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즉 창조당시의 에덴동산을 그리워하는 유전자의 발현이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주말이면 교외로 나들이를 하는 것이지요.

지금의 식품들은 대개가 식품영양학적 지식위에 만들어진 음식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음식들은 대개 가공단계가 복잡하고 각종 첨가제가 들어갑니다. 그러는 과정에 우리 몸에 유익한 알맹이인 영양소들은 파괴되어지거나 버려지게 되고 껍데기만 조미료를 넣어 맛있게 ,착색제를 넣어 보기 좋게, 방부제를 넣어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게, 씹어 먹지 않아도 되도록 잘게 빻고, 유화제를 넣어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도록 하는 등의 복잡한 가공과정과 식품첨가제가 수백 종이나 들어갑니다.

그러한 식품영양학의 공헌으로 지금은 전 국민이 영양과잉으로 인해 전 국민이 성인병환자화가 되어 약국과 건강보조식품회사와 병원들만 돈벌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 하겠습니까? 식품영양학을 비롯한 인간의 모든 학문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죽음으로 몰아가는 학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일자무식이었던 무리 부모의 세대들은 이웃과 동네 모두 훈훈한 인심이 있었고 지금과 같은 각박한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시집온 며느리가 아무런 식품영학적인 지식이 없어도 조미료가 없어도 신선한 자연재료로 요리와 음식을 잘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며느리는 이런 생명의 음식을 만들기란 불가능합니다. 단지 모양만 예쁘게, 먹기 좋게, 만들뿐 생명의 음식은 만들지 못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자연적인 삶속에 우러나오고 전수되어 하나하나 모아져 생활의 지혜로 축적되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신학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역사신학, 주경신학, 민중신학, 보수신학, 개혁신학, 정통신학, 상담신학, 치유신학, 등등 이름만 갖다 붙이면 00 신학이 되는 수 십 가지의 신학이 신학대학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 모든 신학적 지식이 얼마나 하나님을 알게 하고 교회를 건강하게 하며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복음적인 삶을 살도록 하였을까요? 결론은 아니올시다입니다.

식품영양학 지식과 같은 부작용이 우리의 신앙환경에도 생긴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신학적 지식이 없어도 하나님의 잘 예배하고 복음의 정체성과 순수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기독교서점에 가보면 수천종의 기독교 서적들이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넘쳐나면서도 왜 교회가 욕을 얻어먹을까요? 그것은 가공된 복음, 오염된 복음, 인스턴트 복음이기 때문이지요.

대형교회는 신학적 지식비만에 걸려 있는 교회입니다. 인적, 물적 자원이 넘치고 잉여에너지가 쌓여 부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이어트를 해야 합니다. 남는 인적 물적 에너지를 작은교회와, 농어촌 교회로 나눠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형교회도 살고 작은 교회도 삽니다. 다 같은 하나님의 교회인데 한 쪽은 흥청망청이고 한쪽은 궁핍하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모든 한국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머리되시고 몸인 교회가 상처를 받고, 비만과 영양과잉으로 병들면 안 되지요.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향력은 지도자인 목사들에게 더 많이 요구됩니다. 목사들은 성도에게 늘 헌신하라, 사랑하라, 실천하라, 외치지만 정작 자신은 그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설교영양과다 현상이 일어나서 그런 것입니다. 스스로 설교비만에 빠지게 됩니다. 목사가 영적으로 건강하기를 원한다면 설교의 대상에 자신도 포함시켜야 하고 성도들로 부터 피드백을 수용하여야 합니다. 육적으로 건강해지기 원하면 음식물을 줄이고 운동을 해야 하듯이 영적으로 건강해지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종으로 성도를 섬기는데 전력을 다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저절로 영적 다이어트가 됩니다. 목사의 비만은 대접을 받고 섬김을 받는데서 비롯되어집니다.

한국교회안에 신학대학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식만 가득한 목사는 더 이상 요구되고 있지 않습니다. 신학박사학학위를 가진 목사들이 대형교회를 담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그대신에 작은 예수의 마음을 가진 목사들이 제대로 사역을 하여야 합니다. 사도바울의 영성을 가진 목사들이 목회를 하여야 합니다. 사랑을 도배한 요한의 마음으로 전도를 하고 교회를 대표하여야 합니다.

수많은  신학서적과 주석전집, 강해서와 기독교 서적이 넘쳐 나고 있지만 세상은 죄악의 바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마치 영양햑과 의학이 발달함과 동시에 비만등의 성인병이 증가하듯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넘쳐나고 있지만 교회의 부패는 점점 더 증가하여 사회로부터 복음을 업신여기게 되고 불신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즉 육적인 질병과 영적인 질병이 정비례하고 있는 현상이 오늘의 한국교회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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