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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묵상종려주일: 공적인 대결
정연복  |  pkom54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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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3월 05일 (수) 15:42:27 [조회수 : 3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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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묵상
 - 종려주일: 공적인 대결 

                                                     빌 윌리 켈러만 지음
                                                    정연복 역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는 예언자들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 너희 성전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것이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하고 너희가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누가 13:34-35)

나귀를 끌고 와서 나귀에 자기들의 겉옷을 얹고 예수를 그 위에 모셨다. 예수께서 앞으로 나아가시자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놓았다. 예수께서 올리브산 내리막길에 이르렀을 때 수많은 제자들은 자기들이 봄 모든 기적에 대하여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이여, 찬미 받으소서. 하늘에는 평화, 하나님께 영광!" 그러자 군중 속에 끼어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선생님, 제자들이 저러는데 왜 꾸짖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잘 들어라. 그들이 입을 다물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러 그 도시를 내려다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한탄하셨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 이제 네 원수들이 돌아가며 진을 쳐서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쳐들어 와, 너를 쳐부수고 너의 성안에 사는 백성을 모조리 짓밟아 버릴 것이다. 그리고 네 성안에 있는 돌은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얹혀 있지 못할 것이다. 너는 하나님께서 구원하러 오신 때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가 상인들을 쫓아내시며 "성서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기록 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고 나무라셨다. (누가 19:35-46)


예수가 예루살렘 도시에 여러 차례 말을 건다는 것은 성서의 사건들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표현이며, 아마 누가의 이야기 중 가장 놀라운 사실일 것이다. 성전 경내에서 강력한 공개적인 행동을 취하기에 앞서 올리브산에서 내려와 (예루살렘) 마을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면서, 아마 예수는 성전 꼭대기에 우뚝 솟은 금빛 찬란한 탑과 맞닿은 예루살렘의 스카이라인의 광경 전체를 바라보기 위해 모퉁이를 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에서 그는 아픈 심정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거기에서 그는 그 도시에 말을 건다. 그는 도시의 참상을 마음 아파하며 도시 전체를 향해 말을 건다. 그는 마치 도시가 그 나름의 생명과 본래 모습을 갖고 있기라도 한 듯이 그 도시를 대한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모든 대명사는 2인칭 단수형인 너, 너, 너로 표현된다. 예수는 마치 한 도시가 보고, 알고,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에 있어 도시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고, 심지어 그 도시가 스스로를 죽일 수 있기라도 한 듯이 행동한다.

우리는 이 점을 어찌 생각해야 할까? 시적(詩的) 수사학의 갑작스런 분출? 예수나 복음서 저자가 겪었던 1세기의 천진난만한 의인(擬人)론적 오해?

사실 이것은 사물들에 대한 히브리적 개요에, 그리고 나중에는 신약성서의 우주론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개념이다. 우리는 이 개념이 예수가 사용한 바로 그 용어들 속에 어원론적으로 숨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히브리어로 도시는 'iyr 혹은 'iyr re'em이다. 오늘날 이 단어는 몇 가지 의미를 띤다. 그것 은 도시일 뿐만 아니라 수호천사, 복수, 그리고 공포를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는 그 도시가 성벽들로 둘러싸인 집들의 집합체일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의 영적 권능(power)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하나의 존재(being)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천사처럼 그것은 하나의 권능이며, 그리고 이상할 만큼 놀랍게 여겨지는 것은 그 권능이 영적 차원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공관복음서의 구조와 내용으로부터 뭔가 분명한 게 있다면, 그것은 예수가 성전 도시를 경제적이고 정치적이며 동시에 하나의 영적 "권능"(power)으로 경험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관복음서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이 권능의 영향은 멀리 갈릴리까지 미친다. 예수는 그것을 갈릴리에서 위협으로(누가 13장), 그리고 유혹으로(누가 4:9-12) 경험한다. 더욱이 갈릴리의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사역을 통해, 예수는 그것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음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다. 예수는 그 도시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갈릴리의 가난한 사람들을 대신하여,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중대한 여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예수는 제국에 점령당한 성전 도시인 예루살렘과 대결하기 위해 나아간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 도시의 권력의 각기 차원을 대표하고 있다고 학자들이 주장하는 몇 가지 사실을 상기하는 게 좋다:

점령당한 도시. 예수가 태어나기 바로 이전부터 (팔레스틴 남부의) 유대 땅은 로마의 직접 통치 아래 있는 식민지였다. 그곳에는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와 로마 군대와 관리들이 들끓고 있었다. 예루살렘에는 로마의 수비대, 즉 군단 사령관의 지휘 아래 있는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 군대를 주로 가이사랴 해안에 주둔하고 있는 보다 광범위한 점령군이 떠받치고 있었다.

지역의 예루살렘 권력자들. 그들에게는 약간의 자유 재량권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제국과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예수 시대에 이르러 성전의 대사제직은 점령 세력과 아주 긴밀히 얽혀들게 되었으므로, 대사제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점령 세력을 정치적으로 후원하는 역할과 거의 다름없었다. 대사제를 임명하는 것도 빌라도였으며, 이 임명을 둘러싸고 돈과 뇌물이 오가기도 했다. 한때는 고독하고 평생 지속되었던 대사제 직책이 이제 정권의 변덕과 변화들에 종속된 일시적인 게 되었다. 여러 복음서에서 안나스를 "그 해의 대사제"로 언급하거나 혹은 자리에서 내쫓긴 여러 대사제들을 포함한 대사제 가문의 이름들을 열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총독의 지배 방법은 대사제들의 옷을 자신의 자물쇠와 열쇠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었다. 대사제는 로마와의 관계에서 손과 장갑의 관계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기원후 66년 열심당원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이 군림하던 대사제를 죽이고 제비뽑기로 사독 계열의 계승권을 재확립하는 것이었음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산헤드린. 예수와 (결국 그의 제자들이) 그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될 지도적 협의체인 산헤드린은 실질적으로는 사두개파 사람들로 구성되었는데,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데서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챙길 수 있었던 대지주 귀족들인 그들은 군사적 지배인 "로마의 평화"(Pax Romana)의 협력적인 지지자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성전.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에 예속된 왕인 헤롯 대제가 시작한 여러 해에 걸친 계획에 따라 완전히 재건되고 있었다. 교활하고 과대 망상적이며 억압적인 헤롯은 변화 무쌍한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로마의 우파 실력자들을 후원하는 데 빼어난 솜씨를 발휘했기 때문에, 왕이라는 칭호에 대한 그의 주변부적이고(marginal) 의심쩍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왕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그는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들였기 때문에 평민들 사이에 친구를 거의 얻지 못했으며, 그래서 그의 성전 재건 계획은 유대인들의 여론을 강화하기 위한 약삭빠른 선전 활동 책략이었다.

헤롯은 성전을 예루살렘의 빼어난 하늘 선 위로 돋보이게 만들었다. 솔직히 말해, 성전이 아름답게 재건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성전과 순례자들로부터 얻는 수익에 크게 기대고 있는 도시인 예루살렘에 급속한 경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성전 확장 공사는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다. 열심당원들이 기원후 66년 성전에 침입했을 때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대규모 공사는 숙련된 장인들과 건설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축제 때 순례자들이 물밀듯이 몰려들면 그 도시는 평소 인구의 서너 배나 되는 사람들로 북적댔으며, 여기에 따른 판매와 서비스 또한 엄청났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유월절 때는 무려 18,000마리나 되는 어린양을 제물로 바쳤는데, 이것을 관장하는 것은 거대한 임시 가축 수용장과 도살장을 필요로 하는 거대 사업이었음을 기억하라.

성전은 그 자신의 세금인 성전세를 징수할 수 있는 특권을 로마로부터 부여받았다. 반 세겔의 세금을 과연 예수가 바쳐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벌어진 복음서의 저 유명한 질문과 논쟁(마가 12:13-17)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제기되었다. 빌라도 자신은 때에 따라 성전 당국의 아무런 반대도 없이 반 세겔의 성전세를 모아둔 금고에 손댈 수 있었다. 실로 그는 부분적으로는 그런 기금들을 갖고 자신에게 필요한 재정을 충당했다.

더욱이 성전은 하나의 은행 역할을 했다. 성전은 적절한 관계나 신용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대부금의 원천이었을 뿐만 아니라 채무 기록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토지가 별로 없는 농민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세금과 급등하는 이자율 사이에 끼여 꼼짝하지 못한 채 토지를 잃고 어쩔 수 없이 소작농이나 채무 노예로 전락했으며, 이런 의미에서 성전은 총체적인 체제와 압제의 고리의 한 도구였다. (기원후 66년의 대규모 유대전쟁 때 열심당원들이 취한 두 번째 조치는 채무 기록들이 보관되어 있는 성전 금고를 불태우는 일이었음은 전혀 놀랄 게 없다. 그것은 1세기 "민중의 고혈을 짜내는 착취의 본거지에 대한 급습"과도 같았다.)

누가복음 20:45-21:6은 가시 돋친 구절이다. 그런데 장을 "임의로" 구분함에 따라 그 본래의 의미가 부분적으로 모호하게 되었다. 예수는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다. 위험하게도 공공연히, 예수는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도 기도만은 남에게 보이려고 오래 하는"(누가 20:47) 율법학자들을 주의할 것을 제자들에게 경고한다. 그는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궤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 곁에서 "자신이 가진 생활비 모두인 작은 동전 두 닢을 넣는" 가난한 과부의 모습을 예수는 또한 주시한다. 제자들은 눈을 들어 "아름다운 돌과 예물로 화려하게 꾸며진 성전"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에 예수는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거라고 응수한다: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날이 올 것이다"(누가 21:6). 왜? 그 성전은 가난한 사람들의 피눈물나는 희생 위에 지어졌으며 기도하는 집이 강도의 소굴이 되었기 때문에, 결국 성전은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누가에서 보도하는 대로, 앞에서도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하던 날 그 도시를 향해 파멸의 환상을 제시했었다(누가 19:43-44). 21장에서처럼 그곳에서도 예루살렘의 파멸에 대한 예수의 묘사는 포위 공격에 대한 정확한 세부 묘사들로 꾸며진다. 예수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후미진 곳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며 그 도시의 파멸을 상세히 예견하고 있는 것으로 누가는 묘사한다. 그렇다면 예수는 이런 파멸의 전망을 상상하고 예견했던 걸까? 예수는 그것을 임박한 심판으로 경험했던 걸까?

예수는 한 실패한 봉기에 대한 증언인 한 멸망한 도시의 그림자 속에서 어린아이로 양육되었다. 헤롯 대제의 갈릴리 사령부는 세포리스에 위치한 나사렛에서 겨우 5마일밖에 안 떨어져 있었다. 헤롯이 마침내 죽었을 때, 오랜 세월 헤롯의 과중한 세금과 군사적 지배 아래 있었던 갈릴리의 농민들에게는 폭동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헤롯의 후계자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골의 모든 주요 지역들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왕궁과 세포리스에 주둔한 로마 수비대에 대한 공격을 이끈 인물은 갈릴리의 유다였다. 그는 근처의 촌락들로부터 자기 군대를 끌어 모았는데, 아마 나사렛도 그런 지역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들은 얼마 동안 사령부를 점령하고 메시아적 왕의 이름으로 갈릴리를 통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300-700명의 기병을 포함해 3,000-6,000명의 보병으로 구성된) 로마 군단들이 시리아로부터 도착했을 때 그들은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로마 군대는 제국의 매운 맛을 보여주기 위해 그 도시를 약탈하고 완전히 불태웠으며, 또 그곳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다. 기원후 66-70년 사이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내막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광경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으리라. 누가 자신도 사도행전 5장 37절에서 유다의 폭동을 상기하고 있다.

우리는 인접한 도시에서 일어난 이런 끔찍스런 사건들이 예수에게 어떻게 와 닿았는지, 예수의 기도와 묵상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떠올랐는지, 그의 영적 정치학(spiritual politics)에 그것이 어떤 유혹과 명료함을 가져다주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짐 더글러스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소박하게 표현한다:

혁명적인 폭력과 제국의 폭력에 의해 멸망한 (그리고 예수가 젊은이였을 때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 재건된) 도시인 세포리스의 폐허를 보면서, 예수는 예루살렘의 앞날을 내다보았을 것이다. 특정한 역사적 의미에서 자기 백성을 구하기 위해, 예수는 대안적이며 변혁적인 한 환상, 즉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일에 착수했다.

뭔가를 행하고 의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는 때의 징조들을 읽는다. 그는 고통과 긴장의 낌새를 볼 수 있다. (맹세코! 그의 사역은 이런 긴장의 한복판에서 펼쳐진다.) 그는 전체적인 밑그림, 다시 말해 제국, 제국에 대한 온갖 아부와 협력의 행위들, 지방민들의 내면에서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폭동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최종적인 파멸의 심판은 고정된 게 아니다. 성전 도시의 부패와 폭력적 봉기 사이에는 하나의 대안, 즉 이제 선택할 때가 무르익은 하나의 대안이 숨어 있다. 그 도시는 보고, 알고, 선택하고, 자기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때는 바야흐로 영적·역사적 기회의 카이로스(kairos)의 순간이다. 그는 그 순간을 명명하고, 선택의 내용을 규정하고, 아주 명료하게 그 선택을 부채질한다. 그는 그 선택의 화신(incarnation) 바로 그것이다.

예수는 성전 도시가 어찌 될 수 있는지, 그 도시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어떤 존재가 되도록 부름 받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흐느낀다. 이것은 실로 희생자들을 위한 눈물이요, 추악하고 썩은 체제 아래 지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위한 눈물이요, 힘없이 무너질 구조를 지금까지 떠받쳐온 이들을 위한 눈물이다. 하지만 이것은 예루살렘에 대한 사랑이 담긴 눈물이기도 하다. 그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인간 생활에 이바지하기를 갈망한다. 그는 강도의 소굴로 전락한 기도하는 집을 위해, 민족들에 대한 하나의 빛으로 불리지만 지금은 그 빛이 덮여 있는 도시를 위해, 그리고 평화를 만드는 일들을 모르는 평화의 도시를 위해 흐느낀다.

전승에 따르면, 예루살렘이라는 명칭은 "평화의 기초"(foundation of peace)라는 의미를 띤다. 예수는 하나님 앞에서의 그 도시의 진정한 소명을 내세우면서 그것의 몰락한 현실에 시비를 건다. 무엇이 평화를 만드는가? 정의를 행하고 하나님과 함께 겸손히 걸어가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평범한 지혜의 말로 되새기는 것은, 만일 당신이 평화를 원한다면 정의를 위해 일하라는 것이다.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우리는 점령당한 성전 도시와 대결하기 위해 두 발로 일어설 것인가? 예수는 해방의 축제 곧 유월절 직전에 그 도시로 걸어 들어간다. 깊은 갈망과 상징들(images)이 떠돌고 있다. 그 긴장감은 그의 제의적 무대다. 그리고 그는 전승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적들을 심판하는 장소인 올리브산에서 그 도시를 향해 말을 거는 것으로 그의 예루살렘 입성 행진을 시작한다! 그는 성전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의 탁자들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그 탁자들을 공공연히 뒤엎는다.

우리는 보다 최근의 비폭력 역사에서 그와 연관된 어떤 걸음들, 즉 소금 과세에 대한 저항의 때를 선언하면서 바다로 향한 간디의 행진, 샌프란시스코로부터 모스크바까지의 무장 해제 혹은 군비 축소의 걸음, 혹은 셀마에서 몽고메리에 이르기까지 숱한 남녀들이 걸었던 걸음 따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보아왔듯이, 예수가 성전에서 취한 행동은 폭등한 비둘기 가격에 대한 무의식적인 불쾌감 그 이상이다. 그것은 권력과 권력의 무상함에 대한 명명(命名)의 완성이다. 성전 정화 행동은 정녕 귀신축출(exorcism)이다. (요한복음을 포함한 "모든" 복음서에서 그러하듯이) 누가의 이야기에서도 귀신축출에 대해 신약성서의 공식 용어인 에크발로(ekballo)가 사용된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귀신축출 사역과 관련해서 복음서들에서는 "내쫓다"(cast out)라는 단어가 거의 40번이나 사용된다.

명명과 귀신축출의 행동 사이에는 나귀를 타는 게 나온다. 빌 스트링펠로우가 언젠가 주장했듯이, 이 날은 예수에게 유혹의 날일 수도 있다. 예루살렘이 눈에 띄게 부각되는 광야에서의 앞선 유혹들(누가 4:1-12)에 뒤이어, 유혹자(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누가 4:13) 곧 "보다 적당한 때를 기다리면서" 예수를 떠나간다는 것을 누가 자신은 분명히 한다. 이제 유혹자의 때가 무르익은 것 같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있듯이 이 일이 구름처럼 밀려들고 환호하는 군중들로 인해 시류를 타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더라면, 예수가 지금까지 애써 피해왔던 바로 그것, 즉 열심당원들 모양의 갑작스런 폭동을 선택하는 것은 그 나름의 유혹적인 힘을 지닐 수도 있다!

최근의 학문적 연구에서는 이 이야기에 대한 복음서의 보도가 그리스-로마의 군사적 입장 행렬 의식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마을 속으로의 행진과 통치자가 영토를 점유하는 의식, 이 둘로 이루어진 의식이었는데, 일반적으로 영토 점유 의식은 성전에서 희생제사를 드리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확실히 누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그리스-로마의 문화적 환경을 익히 알고 있다. 이것이 그의 장점이다.) 하나의 배경으로서의 그러한 군사 의식이 풍자, 그리고 예수 앞에 놓인 유혹을 넌지시 말해 주었으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그것은 교회가 자신의 종려주일 의식에서 굴복했던 유혹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예수의 예루살렘으로의 "승리적인 입성"(triumphal entry)으로 부르는 게 바로 그렇다.

내가 장담하건대, 예수는 자신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몹시 애쓴다. 그리고 나귀는 그런 노력을 돕는다. 나귀의 등에 타고 그 도시에 들어가는 것은 군중이나 권력자들을 위한 것 못지 않게 예수 자신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 그것은 그 나름의 상징적 의미를 띤다. 나귀는 구약 스가랴서에서 메시아적 의미를 갖는데, 예수는 이 의미를 의식적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그 자체로서, 그리고 자연히"(in and of itself) 탁월하게 비폭력적인 자세, 겸손한 행동이기도 하다. 예수의 정신과 의도를 밝히 드러내며 깊은 사색 가운데 상기시켜 주는 게 여기 있다. 서두르지 말고 이 점을 좀더 생각해 보자. 성전에서의 과격하고 대결적인 행동과 연관지어 생각할 때, 나귀의 등에 타고 입성하는 것은 완벽한 준비다. 그 두 행동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비춰 준다. 비폭력의 겸손과 용감하고 힘찬 행동.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공관복음서에서 예수의 체포를 재촉하는 것은 바로 성전에서의 귀신축출, 즉 성전 정화 행동이다. (예수가 성전에서 내뱉는 말들은 이사야의 강력한 설교에서 가져온 한 구절과 예레미야의 불꽃이 튀는 듯한 열띤 성전 설교의 한 구절을 주의 깊게 결합시킨 것이다. 예수의 두 눈은 자신의 발언의 결과들에 대해 활짝 열려 있다. 그는 예레미야가 재빨리 체포되어 옥에 갇혔음을 익히 알고 있다.) 재판을 받을 때 그에게 씌워진 죄목들, 즉 선동적인 폭동, 납세 거부 옹호, 대안적인 정부를 위한 권위 주장 따위에서는 성전에서의 행동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성전 파멸"에 대한 그의 발언들은 몇몇 이야기에서 그를 고발하는 증거로 주목받고 있다.

예수는 자신이 어디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지 안다. 그는 거기에 따르는 위험을 모르는 것도, 또 그 위험에 대해 순진해 빠진 태도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유롭게 그 위험을 선택한다. 어느 누구도 그의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던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베드로의 저 유명한 고백 이래로, 예수는 자신의 행동의 결과들에 대해 공공연히 말했다. 베드로와 그의 친구들이 예수에게 위험에서 빠져 나오라고 말하는 것은 놀랄 게 거의 없다. 그 위험은 예수의 행동에 우연히 뒤따르는 게 아니다. 실로 그것은 너무도 완전한 위험이었기 때문에, 초기 교회의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 위험이 그 자체로 어떤 것, 즉 순교를 적극적으로 추구함은 하나의 이단으로 선언될 필요가 있다는 정도까지 되었다! 물론 그러한 유혹들은 오늘날까지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은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그 위험은 예수의 행동만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의 모든 사건들 위로 고개를 쑥 내밀고 있다. 그 위험은 (부활절 前週의) 성(聖)주간에 우리에게 엄습한다. 카이사르의 동전에 관한 예수의 발언들(누가 20:20-26 참조), 성전에서의 모든 가르침, 그리고 심지어 다락방에서의 은밀한 사색의 행동들까지, 이 모든 것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의 배후에 맞서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발언들에는 총알이 장전되어 있다. 제자들은 이보다 더 무서운 말에 귀기울인다. 교회에 있어서 그 위험은 (우리는 그것을 십자가라고 부르도록 하자) 예수의 전체 생애와 가르침 속에 잠재되어 있다.

카이로스(kairos)를 선언하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과 그 결과들을 겪는 것은 하나다. 예수가 죽음에 복종하는 것은 성전에서 보인 행동과 하나, 즉 신앙심에서 우러나온 공공연한 행위다. 사실 모든 수준과 범위의 권력들과의 예수의 대결이 마침내 실현되고 드러나고 결말이 나는 것은 바로 십자가 안에서다. 예수는 그런 믿음으로 이 세상에 왔다. 오늘날 신자들이 언제 어디에서든 행동할 때, 그것은 그런 신앙의 자유 아래에서, 그리고 그 자유의 선언 안에서다.

+ 이 글은 Bill Wylie Kellermann의 저서 『신앙과 양심의 계절』(Seasons of Faith and Conscience, Orbis Books, 1991) 제10장의 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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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신 (124.199.51.174)
2008-03-13 23:29:52
감사합니다.
또다른 지평을 보여주시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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