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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하나님의 양자삼아 진다는 의미.마귀의 자식을 구원하여 놓고 그에게 공치사를 받으시려는 것이면, 그에게 하나님 역시 마귀일 수밖에 없습니다.
김주범  |  kjbjoh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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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3월 02일 (일) 20:35:52 [조회수 : 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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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인간이 하나님의 양자삼아 진다는 의미.

성경에 양자라는 말이 몇 번 나오기는 하지만, 그 말은 본질적 의도는 아닙니다. 율법적 구조에서 인간을 보면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있는 탕자의 이야기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죄를 얻었습니다. 그때에 하는 말이 자신을 종의 하나로 받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아버지께 그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아버지가 그를 허물을 묻지 않고 받아 들였을 때, 그가 가지는 마음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마치 입양된 아들 같은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율법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의를 완전하게 이루어 자녀가 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 의를 통하여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무의식은 양자 의식일 것입니다. 성경에서 양자라는 말이 있는 곳은 로마서 8:15,23,9:4절입니다. 이 용어가 로마서에만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로마서는 특별히 율법과 은혜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양자가 되는 것과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에서 바울은 자녀는 출생의 문제임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때문에 용어는 양자이지만 그 본질적 의미는 친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배경에서는 양자로 말하지만 관계에서 말할 때는 친자의 회복을 말합니다. 우선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의 이야기에서 친자의 돌아옴을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상황에서는 모두 친자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토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에서도 그렇습니다. 법적으로 하나님과 아무 관계 없었던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 삼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잃어버린 자식을 찾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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