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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을 통해서는 이룰 수 없는 의.이 말씀은 잘못 이해되어 오고 있습니다.
김주범  |  kjbjoh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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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3월 02일 (일) 17:28:13 [조회수 :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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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율법을 통해서는 이룰 수 없는 의.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개역한글, 갈 2:16)의 말씀에 보면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잘못 이해되어 오고 있습니다. 인간이 율법의 행위를 지켜 낼 수 없기 때문에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약에 인간이 율법의 행위를 지켜 낼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이 그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하고 오직 대리 의에 의존하여야만 의를 얻을 수 있도록 율법을 인간의 능력 밖의 수준으로 명령하셨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 앞에 자랑할 인간들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 뜻을 분명히 추출하여 봅십니다.

성경에서 ‘의’롭게 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신분적 의와 상태적 의 있닙니다. 신분적 ‘의’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이것은 도덕적 의미의 죄 없음의 ‘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신분 관계를 말합니다. 신분관계로서의 ‘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갈 3:26). 이것에 대해서는 갈라디아서에서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면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이 반드시 율법으로 가능하리라는 것입니다(갈3:21). 그러나 자녀가 되는 것은 율법의 문제가 아니라 출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율법은 자녀 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율법을 완벽하게 지켰어도, 반대로 아무리 율법을 범하였어도 자녀라는 신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하신 말씀을 사실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사실임을 믿습니다. 그분께서 오셔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우리는 그분의 포기할 수 없는 자녀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믿을 때 우리의 신분, 즉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확인되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이신득의 교리를 잡아내면 그것은 유치원 수준입니다. 바울이 의도한 바는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는 유대인들에게 법적 차원에서 그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율법 방식의 죄사함을 위한 대속제물로 설명하고(롬1-3장), 뒤이어 율법 방식 이면의 진정한 하나님의 의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속제물의 목적은 법적 죄사함이 제1의 목적이 아니라 간과(看過,pass over)가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4장에서, 참 은혜가 무엇이며, 그것은 공로가 아닌 출생 관계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녀인 것과 신분적 의를 획득하는 것은 출생의 문제이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슴과 없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녀는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출생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면, 창세 이후로 이 땅에 살아 온 모든 사람들이 신분적으로는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분명합니다. 비록 하는 짓이 마귀의 짓을 한다하여도 그는 여전히 변함없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마귀의 자식을 구원하여 놓고 그에게 공치사를 받으시려는 것이면, 그에게 하나님 역시 마귀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영원히 포기할 수 없는 자녀들이기 때문에, 자녀들이 마귀의 종으로 살고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 폭정에서 구원하려 내신 것입니다(행26:18). 하나님의 친자(親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자식들의 제물로 내 놓으시면서 까지 그 자녀들을 찾아 회복하려 하신 것입니다.

 

의의 두 번째 개념인 상태적 의에 대해서는 영혼의 성장에 대하여 숙고할 때 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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