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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패러다임의 핵심 : 인간창조 목적의 방향바꾸기인간이 하나님을 위한 수단이라는 창조목적은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이라는 창조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김주범  |  kjbjoh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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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1월 24일 (목) 00:03:21 [조회수 : 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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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새로운 인간 창조목적 

기업에 참여케 하시려고

우리는 앞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가 영광을 받으시려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함께 보았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무한한 영광에 참여하게 하려고 우리를 낳으셨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 영광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리가 얻을 기업이고 참여할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나라 역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므로 영광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은 기업의 영광입니다.

이 기업은 우리를 위하여 간직하신 것입니다(벧전1:4). 마귀의 미혹으로 사람이 마귀의 종이 되자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소원을 회복시키시려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사람이 첫 언약 때의 범죄로 기업을 상실할 처지에 놓이자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속하려고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기 위해서 말이지요(히9:15).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그리고 그의 모든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의 명령을 내리신 것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를 사함 받고 거룩한 백성이 되어 기업을 얻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행26:18). 이 기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것이며(엡1:18), 영광의 기업입니다(벧전5:1).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여 우리를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영광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시고 낳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때에 우리는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벧전4:12-13).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자들이며(벧전5:1), 영원한 기업을 얻을 자들입니다(행26:18, 히9:15).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조금 더 구체화시켜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로 하나님의 기업에 참여하게 하는 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기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행26:18). 예수님께서 우리로 죄를 이기며 살도록 하시는 이유도 역시 기업에 능히 참여하게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을 얻지 못합니다.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합니다(엡5:5). 그 기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① 기업은 하나님 자신

하나님 나라의 기업의 중심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레위기 10:9절에서 “ · ·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하셨고, 시73:26절에서 “ · · ·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본 기업이며 우리의 영원한 기업입니다. 때문에 기업에 참여하게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참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참여하는 것은 생명나무와 생명수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들은 곧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수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강을 이루어 흘러내립니다. 그 생명수가 흐르는 강가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실과를 맺으며 잎사귀를 맺습니다(계22:1-2). 때문에 생명수와 생명 나무는 다름 아닌 하나님 생명의 흘러 남이며 유출입니다. 하나님의 본 생명을 먹고사는 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한없이 우리에게 부어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계21:6).

이 생명은 거룩과 사랑의 생명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기본 속성입니다. 거룩은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피겠지만 도덕적인 관념으로서의 거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절대자유 자재의 능력입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생명수와 생명 나무의 본체를 먹고 마시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생명의 본체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며 거룩과 사랑의 본체를 부음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거룩과 사랑을 부음 받고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에, 하나님의 완전한 생명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영광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생명, 영광, 신성, 거룩, 능력, 자유에 참여하게 하실려고 우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② 기업은 하나님의 통치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 자신을 받고 하나님 자신을 누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 통치에 참여케 하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생명나무를 누릴 뿐 아니라 거룩한 성에 참여합니다(계22:19). 거룩한 성은 다스림과 통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왕이시며(계11:15), 만국의 왕이십니다(계15:3, 계17:14). 하나님이 우리의 왕되심같이 우리 역시 세세토록 왕의 통치에 참여합니다(계21:24, 계22:5).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 나라 기업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을 기업과 분깃으로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기업 - 천국의 성격

기업을 여러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하면 천국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천국의 성격에 대하여 보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① 영원영계(永遠靈界)

천국은 영의 영원한 세계이며 나라입니다. 천국은 물질로 된 나라가 아닙니다. 물질은 제약성이 있고, 한계성이 있고, 시간과 장소라는 한정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은 물질계의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없습니다. 썩는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물질이었던 처음 하늘과 처음땅이, 그리고 바다도 다시 있지아니합니다(계21:1). 사망도 없고 애통도 곡도 아픈 것도 있지 아니합니다(계21:4). 오직 하나님의 속성의 충만함만이 영원한 곳입니다.

어떤 사람들(여호와의 증인교도)은 천국이 현재 지금의 하늘과 땅을 완전히 새롭게 한 하늘과 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계시록에서 말하는 새하늘과 새땅은 요한이 환상가운데서 자신이 인식가능한 표현을 쓴 것일 뿐이지, 만약 그가 영의 세계를 영으로 표현하였다면 아무 표현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가 천국의 환상을 이 땅의 인식가능한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지 결코 물질세계로서의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을 완전히 새롭게 한 물질계라 할 때 엄청난 많은 모순을 가지게 됩니다. 천국은 영원영계입니다. 영은 썩지 않습니다. 영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② 하나님 나라

천국은 영원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천국을 친히 다스리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이 온전 완전하게 나타나 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어떠함이 충만하게 흐르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어떠함은 곧 신성(神性)입니다. 이 신성은 온전, 완전, 무흠, 충만, 영원합니다. 이런 의미의 내용을 말할 때 「절대」라는 말을 사용하겠습니다.

 

③ 천국의 특성

천국은 하나님의 어떠함이 넘쳐나는 나라입니다. 곧 하나님의 어떠함을 이해하면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습니다.

• 절대 자유(絶代自由)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즉 하나님은 절대자유자, 혹은 자율존재라는 말입니다. 절대 자유자의 나라 역시 절대 자유의 나라입니다.

 

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 절대 사랑(絶代 愛)

하나님의 내적 속성중 하나가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는 당연히 절대 사랑의 나라입니다. 이 절대 사랑은 다른 의미로 절대 선(善)입니다. 선이란 자타에게 유익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온전, 완전, 무흠, 충만, 영원한 선의 사랑의 나라입니다.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절대 평강(平康)

하나님은 평강의 주이시며 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또한 절대 평강의 나라입니다.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히7:2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 절대 생명(生命)

하나님은 생명의 주이십니다. 생명을 경험적으로 말하면 생기, 또는 활력, 활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절대 활력, 생기의 나라입니다.

 

요일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 14: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절대 만족(滿足)

만족이라는 말은 기쁨, 유쾌함, 충족함, 성공, 자격성, 적절성, 행복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오직 만족은 하나님께로서만 나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만족함으로 충만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고후3:5). 하나님 나라는 이같은 하나님의 속성이 충만한 나라입니다. 영어로는 다음의 단어들을 쓰고 있습니다. adequacy, competence, success, sufficiency.

 

참고한 성경말씀

고후3:5 Not that we are adequate in ourselves to consider anything as [coming] from ourselves, but our adequacy is from God, NAS

고후3:5 Not that we are competent of ourselves to claim anything as coming from us; our competence is from God, RSV

고후3:5 and not because we think we can do anything of lasting value by ourselves. Our only power and success comes from God. TEV

고후3:5 Not that we are sufficient of ourselves to think of anything as being from ourselves, but our sufficiency is from God, NKJ

 

④ 기업에 참여한다는 뜻

기업에 참여한다는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실제를 알 수 있다면 실로 엄청난 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선물을 받아도 참으로 기뻐하며 즐거워 하는 데 영원한 자유, 사랑, 평강, 생명, 만족을 누리며 하나님의 신성과 통치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이것을 주시고 누리게 하고 싶은 것이 원인이 되어 인간을 창조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 영원한 좋은 것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영원히 기쁨을 맛보게 할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⑤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나타날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게 위해서입니다(살전 2:12, 히2:10).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고 또한 참여하게 하심입니다(살전 2:12). 참여하되 더 영광스러운 영광에 참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영광에 참여할 때 우리가 참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하시는 것입니다(벧전 4: 13, 벧전5:1). 우리가 주님을 힘써 섬기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으려 함입니다(딤후2:10).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얻으시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오히려 하나님의 완전한 영광, 생명, 능력, 거룩, 신성, 자유에 참여하게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부분적으로 희미하게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을 아나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것을 보다 완전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보고 알게 될 것입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에 온전히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누림으로서의 기업

① 기업의 의미

기업이라는 말을 잘 이해한다면 우리 신앙에 좋은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기업이란 말의 기본적인 의미는 몫, 상속입니다. 더 쉽게 말한다면 “자기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삶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삶의 방향과 목표를 다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것이 있거나 약속되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위하여보다 확고한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그의 삶을 분명하게 운영할 수 없습니다.

 

구약에서의 기업은 대개 땅을 의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축복으로서의 땅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12:7,15:18-21,26:3,28:13,출6:8).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한 것은 비록 들어가기 위해서 어려운 싸움을 치러야 했지만 오직 여호와의 선물로 인함이고 그들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수:21:43-45, 시44:13). 더군다나 할당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취해져 각 지파의 수대로 분배하여 기업을 삼았습니다(민26:52-56, 33:54, 34:13, 수14:1-5,18:4-9). 그 땅은 영원히 소유되어질 것이었습니다(창13:15).

땅에서의 기업의 개념은 하나님의 영원 세계에서의 기업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상대적 개념이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성도의 기업이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 영광, 구속, 은혜, 축복, 영생 등은 상속의 내용입니다. 영원한 기업은 공간적인 시. 공간의 기업이 아닙니다.

계21:2이하에서는 상속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7절 참조). 하늘의 기업(벧전1:4)은 공간적인 하늘의 특정한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의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영광, 생명, 풍성, 권세, 능력, 및 그의 나라가 하나님의 것이며, 동시에 우리가 상속할 기업입니다. 한마디로 유업이란 모든 축복이 보장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② 영원한 기업, 현재의 기업

기업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나라에서 완전한 기업으로서의 영원한 기업이며, 하나는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누리는 현재의 기업입니다. 이 둘은 다른 것이 아니라 넓은 운동장과 바로 직전에 있는 경주로 같은 것입니다. 달리기 선수가 달리는 길은 운동장 그 자체는 아니지만 경기장 전체로서의 한 부분입니다. 경기의 한 부분인 것은 사실이나 운동장의 모든 것을 누리지는 못합니다. 관중의 박수와 고함치는 응원과 시상대에서의 상을 누리지는 못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업에도 영원한 기업이 있고 현재의 기업이 있습니다.

 

• 영원한 기업

 

벧전01:0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이 말씀은 영원한 것으로서의 기업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영원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을 완전하게 영원히 누릴 것입니다. 영원한 왕으로서 하나님과 생명나무와 생명수와 하나님 나라의 모든 풍성을 누릴 것입니다.

 

• 현재의 기업

성도는 이 땅에서 영생을 맛보며 삽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와 능력과 생명과 부요에 참여하면서 삽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유업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영원한 기업과 동일한 것입니다. 마치 발전소의 전기와 각 가정의 전기가 그 양(量)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한 전기이듯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현재의 기업을 누리게 하시는 목적은 영원한 기업에 더 많이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현재의 기업에 참여하는 만큼 우리는 영원한 기업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현재의 기업은 우리의 마음에 따라 더 참여할 수도 덜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기업에 대한 소망을 가진 자는 그 기업이 어떠함을 더욱 알려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 (엡01:18)인지를 알기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③ 「기업을 잇는다」의 의미

성경에서 우리를 상속자 또는 기업을 이을 자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상속이라 하면 부모가 죽고 난 후 그 재산을 물려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라면 이 세상의 관념으로는 하나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사시는 분입니다. 때문에 성경에서의 상속은 하나님이 죽으신 후 그것을 물려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상속이나 기업을 받는 다는 것은 현재 아버지의 기업, 또는 부에, 그리고 아버지의 권세에 참여한다는 의미입니다.

 

「잇는다」는 말을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상속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지극히 종교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교가 아니라 살아 계신 인격이시기 때문에 「잇는다」라는 말을 「상속」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시지 않고 「참여」로의 의미로 사용하십니다. 다음의 몇 말씀에서 기업은 곧 참여이며 누림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대상28:08 이제 너희는 온 이스라엘 곧 여호와의 회중의 보는 데와 우리 하나님의 들으시는데 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너희 후손에게 끼쳐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스09:12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저희 딸을 너희 아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강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유전하여 영원한 기업을 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렘02:07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기업을 종교적으로 보면 가나안 땅일 수 있으나 하나님의 중심 관심은 참여에 있습니다. 다른 말로 “누리고”, “먹고”라고 표현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그 후손에게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시는 것은 영원히 누리고 영원히 먹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④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기업

기업에 참여하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너희 후손에게 끼쳐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대상28:08)에서 보듯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밖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지만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성령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성령과 한 영이 될 때입니다. 하나님을 얻을 때 하나님 나라의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업을 누린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얻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얻을 때 가나안을 누릴 수 있었듯이.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얻을 수 있었고, 하나님을 얻은 결과로 가나안의 풍요를 누릴 수 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가나안 땅이 기업이라 하지 않고 그 자신을 기업이라 하십니다. “그들은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나는 그 산업이 됨이니라”(겔44:28)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얻을 때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기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수고의 열매를 먹어야 합니다. 자신의 수고로 안식을 얻어야 합니다. 이 열매와 안식은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함으로 얻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함 없이 적들을 이기고 그 땅의 산물을 먹고 평화의 안식을 누린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심으로 전리품을 거두게 하시고 평화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분배하여 주었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때 그들은 그 땅에 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성도의 기업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우리의 분깃은 “만물의 조성자요,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렘10:16). 

 

⑤ 기업은 주인을 위한 것

기업이나 산업은 주인을 위한 것입니다.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에게 회사의 경영은 주인이 더욱 이득을 많이 얻고자 하는 작업입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소유이며 우리의 이득을 위한 수단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우리의 상급을 더욱 많이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많이 누리도록 하여 영원 기업에 더 많이 참여하도록 자신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열매는 모두 하나님에게 참여함으로 얻어지는 것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성령에 참여함으로, 성령을 누리므로 얻는 하나님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더 많이 누리는 사람이 영원 기업을 더 많이 누리게 됩니다. 컴퓨터를 배우는 사람이 어떤 날 컴퓨터 전시관에 갔습니다. 그곳에 진열되어 있는 모든 제품을 작동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개인적으로 컴퓨터 운용 실력이 좋은 사람은 그곳의 제품을 더 많이 작동해 볼 수 있습니다. 컴퓨터를 다루는 실력이 초보인 사람은 그곳에 아무리 좋은 제품들이 있다 해도 거의 손도 대지 못합니다. 평소 컴퓨터에 더 많이 참여해 본 사람이 컴퓨터를 더 많이 다루게 되듯 하나님 안에 참여해 본 것이 깊으면 깊을수록 영원 기업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됩니다.

 

⑥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 분의 기업, 산업으로 삼으셨다는 말씀은 참으로 충격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국가에서 국비 유학생을 외국에 보내 놓고 “여러분들은 우리 나라의 기업입니다”하는 말과 같습니다. 나라는 인재의 어떠함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그 학생들은 굉장한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의 최선을 다하여 그들의 공부를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세워 지려면 관계 박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 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없이 기술 연구소가 세워져 운영될 수 없습니다.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의 재산이자 국가를 지탱하는 자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희는 “나의 산업입니다”(렘12:7)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물론 결정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에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기업 참여 정도에 따라 하나님 나라의 영원 기업의 영광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박사와 같은 전문 인력을 가진 나라가 있고 전문 인력이 없는 나라가 있듯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을 겨우 우거지 국으로 누리는 사람들로 구성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살코기로 누리는 사람들로 구성될 수도 있습니다.

삼성역 근처에 가면 무역 회관이 있습니다. 그 건물 스카이라운지에 바이킹이라는 뷔페 식당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갖가지의 음식이 있습니다. 갖은 채소, 해물류, 육류, 과일류 등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음식이 맛있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음식 가운데 유독 사람이 직접 나누어주는 것이 있는데 다름 아닌 등심 구이와 연어 훈제 구이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라다를 한 접시 가득 담아다 그것을 주로 먹습니다. 어느 사람은 김밥을 많이 가져다가 그것만을 주로 먹습니다. 이런 사람들만 그곳에 간다면 그곳은 사라다나 김밥만 먹는 사람들로 구성된 뷔페 집이 됩니다. 그 경우에는 뷔페 집의 가치가 없습니다. 폐장 시간이 되면 그 나머지 맛있는 음식이 다 쓰레기로 버려집니다.

지금은 뷔폐집에 가면 요령 있게 음식을 잘 가져다 먹습니다. 제가 뷔페 음식점에 처음 갔을 때 참으로 어떻게 할 줄을 몰랐습니다. 처음에 있는 음식부터 접시 가득 가져다가 먹기 시작했습니다. 옆의 사람들이 슬금슬금 웃었습니다. 왜 웃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식사 후 부장 집사님이 “전도사님 뷔페 먹는 법을 좀 배워야 하겠습니다”하고 슬쩍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으로부터 음식 먹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그때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 어느 목사님 기념 문집 발간 예배를 위한 뷔페 만찬에서 어느 분이 나에게 “음식 참 깨끗하게 담았네요”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충만한 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뷔폐집보다 더 풍성한 분이십니다. 내가 뷔페 집에서 창피를 당했듯 하나님을 미리 누려 보지 아니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역시 하나님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뷔페야 배워서 다시 먹으면 되지만 영원한 기업을 누리는 것에는 별도의 연습이 없습니다.

연습은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에게 참여하는 것을 통하여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육신에 거하는 것은 영원 기업에 참여하는 훈련의 유일한 기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풍성하게 누리는 사람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는 초라한 집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풍요를 누리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 나라는 풍요한 잔치가 있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기업 참여의 훈련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라 해서 하나님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수단으로 삼는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하게 하시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망과 성품이 우리 안에 나타나게 하는 훈련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면에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증가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 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엡05:05)에서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현재 기업을 의미합니다. 음행자, 더러운 자, 탐하는 자, 우상 숭배자는 그리스도에게 참여하여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합니다. 이런 자는 현재적으로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원 세계의 하나님 나라 역시 누리지 못합니다.

기업에의 참여는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자신의 선택과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와 하나님의 통치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강제로 우리를 기업에 참여시키지 아니하십니다. 마치 회사의 사장이 자기 아들에게 공장을 구경시키는 것과 유사합니다. 사장인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고 공장을 구경시켜 주시고자 하는 뜻을 받아들여야 하며 구경시켜 주시는 안내를 따라야 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안내를 받으면 받을 수록 공장의 더 많은 부분을 보게 됩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자 하십니다. 보여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 구체적인 작업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받으며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할 때에 우리는 그 기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게 되고, 우리를 부르신 소망이 무엇이며,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이지를 알게 됩니다(엡 1:16-19).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많이 누리는 사람이 될수록 우리의 영원 기업은 더 커집니다. 우리에게 자신의 선택에 따라 그것을 할 수 있는 자유 결정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누리든 않든 그것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안에 잘 경영하여 우리가 영원 기업을 더 많이 경영할 수 있는 경영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업이자 산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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