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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앞에 문자 쓰고, 도사 앞에 요령 좀 흔들어 볼까요?자신은 되돌아보지 않고 일방적 협박공갈은 불공정 설교행위입니다.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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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2월 23일 (일) 20:59:25 [조회수 : 3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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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유행하는 금이빨 집회를 하는 목사가 장로들에게 당회장인 자신을 잘 섬기지 않으면  하늘이 노해 급살맞아 죽는다고 협박한다고 합니다. 정말로 목사가 할 말입니까? 목사의 권위는 노회로부터 부여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권위의 원천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습니다. 목사의 권위는 영적인 지도자로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영적 권위를 가지고 교회와 성도를 섬겨야 합니다. 이속에 인간의 어떤 권위도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설교시간을 이용해서 협박하거나 화를 내는 것은 원칙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리 하겠습니까마는 너무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목사도 인간인지라 목회를 하다보면 화가 날 때가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여름에 땀을 흘리지 않는 것처럼 화가 나지 않는 게 오히려 비정상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어떤 계기가 있거나 오해가 있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뚜껑이 열릴 정도로 화가 극도에 달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물론 기질에 따라서 좀 차이가 있겠지만 참을 만큼 참다가 어느 순간에 화를 폭발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우발적으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겠지만 목사나 성도이건 간에 이런 태도는 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아예 화를 만들 케이스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인간인 이상 화를 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타고난 성격과 기질은 평생 바뀌기 쉽지 않는 유전적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전적 특성은 후천적 노력에 의해 조금씩 프로그램될 수 있으므로 예수그리스도의 품성을 닮아가려는 성화의 노력은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성품은 조율되고 자제로 극기로 훈련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9가지 성령의 열매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 설교?를 좀 하겠습니다. 공자 앞에 문자 쓰고, 도사 앞에 요령 좀 흔들어 보겠습니다. 목사란 예수그리스도의 종이 되고자 택함 받았으므로 작은 예수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따라서 목사의 덕목은 사랑입니다. 성도들에게 최고의 것을 주는 아가페 사랑으로 사적감정과 느낌에 관계없는 품성을 가지고 사랑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둘째 희락입니다. 목회성공과 교인 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 기쁨입니다.

셋째 화평입니다. 목사간은 물론이거니와 성도들 사이에도 화평하여야 합니다. 목회하는데 방해를 하거나 비협조적인 성도에게도 성질내지 않고 화평하여야 합니다. 넷째 오래 참음입니다. 화가 낼 일이 있어도 금방 화를 내는 것은 목회에 치명적입니다. 사적으로도 그렇지만 예배시간에, 설교시간에 화를 내는 것은 은혜를 거꾸로 쏟아 붓는 결과를 낳게 하고 사탄이 기뻐 춤추게 만듭니다.

다섯째 자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그대로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목사가 계급장 띄고 성도와 한판 붙고 싶겠지만 그래도 너그러이 관용해야 합니다. 여섯째 양선입니다. 양선을 자비가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충성입니다.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테크닉과 세속적 관습으로 목회를 하지 않고 복음에 충실한 성품입니다. 여덟 번째 온유입니다. 어린양과 같은 순한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절제입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게 많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욕망을 조절하여 탐욕을 제어하는 삶을 살게 하는 품성을 가지면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품성을 구비하였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성도에게도 해당된다는 말을 부언합니다. 이렇게 성령의 열매를 간단하게 말씀드려도 설교전문가이신 목사님들은 잘 알아 새겨들었을 줄 압니다.

사실 예배 시간에 목사가 어떤 내용의 설교를 하느냐보다 어떤 목사가 설교를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설교는 강단에 서기 전에 이미 80%를 한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목사가 온전한 성품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신적권위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참으로중요합니다.

목사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권위는 강요된 권위가 아니라 복음의 권위가 삶속 가운데 부여되는 것인데 우리 한국교회는 실종위기에 있습니다. 목사의 삶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 위에 서 있을 때 진정한 권위가 생기게 됩니다. 설교의 강요로, 성깔로, 성질부린다고 권위가 부여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회정치, 노회정치 총회정치로 그렇게 된다면 권위주의에 빠지게 되지요. 세속적인 정치논리를 너무 좋아하면 국회의원과 다를 바 없습니다.

목사의 대선배이신 사도 바울이 늘 강조한 말씀처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는 이 말씀이 목회현장에 삶으로 적용되어질 때 진실로 목사로서 아름답고 권위 있는 목회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거시적으로 봐서는 우리 모두의 삶의 지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목사의 성품과 실천적인 삶이 예수님의 품성을 닮고 바울처럼 거리낌 없이 나를 본받으라고 할 수 있는 참된 복음적 영성을 소유한 목사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목사가 더 많이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비하되고 복음이 개그소재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구원의 은총이 온갖 추하고 거짓되고 부도덕한 삶과 성질부리는 목사의 성품을 정당화 해주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설교를 하나님의 메시지로 강요하고, 인간적으로 성질부리고, 교인 군기 잡는 세속적 목회는 군대조직이나 조폭의 조직에서나 볼 수 있는 리더십입니다.

인간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다양한 삶을 살고 천차만별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세계관과 가치관 이 천차만별이듯이 목회자들의 성품과 목회패러다임 역시 다양하고 천차만별인 것을 보게 됩니다. 목사들도 유유상종의 법칙에 따라 친한 사람끼리 밥 먹고, 친교하고 강단 교류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즈음 신학교를 나와도 전도사 자리하나 얻기도 어려운 현실입니다. 미국에서도 3천 명이 넘는 목사가 교회에서 일 자리를 얻지 못하고 식당에서 택시기사로 일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교회를 담임하지 못하는 목사가 가히 1만 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는 집사는 없고 모두 장로, 권사이듯이 한국교회도 모두가 목사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스개말이 들립니다.

수요와 공급의 시장경제원리에서 수요는 없는데 공급만 넘친다면 결국 공급 과잉으로 상품 가격의 대 폭락만 가져 올 것입니다. 따라서 목사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 복음의 질이 떨어질 것은 뻔합니다. 그에 비례해서 한국교회의 소문도 추락하겠지요. 한국교회 초창기의 고농도 순수복음의 질과 목사의 엘리트 사회적 신뢰도처럼 올라가기를 소원합니다.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은 서로가 섬김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교회입니다. 목사는 목사대로 성도를 섬기고 성도는 성도대로 성도간과 목사를 섬겨야 합니다. 서로가 존경을 하고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무시 받지 않는 목사와 천대 받지 않는 성도가 되는 일도 중요합니다. 설교를 통해 성경을 아전인수 해석하여 교인을 공갈하고 협박하는 일보다 성도들의 생각과 의견을 피드백으로 삼아 반면교사로, 거울로 삼아 무릎 꿇고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종의 위치로 낮아져야 합니다.

그럴 자신이 없고 언제나 존경과 명예와 칭찬을 듣고, 교회를 사유화하려 하고, 목회성공 야망을 실현할 궁리만 하는 목사는 사표를 써야 합니다. 왜 성도들이 그렇게 반응 하는지 되돌아 봐야 합니다. 자신은 되돌아보지 않고 일방적 협박공갈은 불공정 설교행위입니다. 공정거래위반으로 하나님께 제소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라면 설교자 자신도 포함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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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자 (68.238.228.195)
2007-12-25 06:18:37
스스로 높아진 교만
좋으신 말씀 입니다 그런대 문제는 이말씀 이 하나님 의 말씀이기때문에 전하는자나 듣는자나 다 적용이돼야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하는자 는적용이 안되고 듣는자만 실천하라고 순종하라고 가르치는데 문제가있다고 봅니다 어깨와 목에 딱딱하게 석고로 기브스하신 목사님 들 왜 그리도 스스로 높아져서 교만하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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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71.126.124.199)
2007-12-25 03:41:09
그냥 놔둬라!..
책임!....

목사 혼자지면 여러 사람이 편한데 당연히 목사 혼자 지는게 은혜 스럽지요.

장로들 대학 다 나온거 아닙니다. 그리고 대학과는 책임과는 관계도 없구요.

목사가 책임을 다 져야 하는것은 삯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장로도 삯을 받았거나 거기에 준하는 콩고물을 묻혀 갔다면 당근 이지만!......

책임을 지울수 있다고 하드라도 책임질 목사는 있을까요?

성경을 뒤져서 책임 지운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저주 받는다고 퍼부울텐데!..

그냥 놔둬라!...언제까지?.... 심판날 까지!......이것이 정답 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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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8
CDKMC (74.130.15.119)
2007-12-24 14:06:28
그게 목사만 책임질 일인가?
금이빨까는 목사 말이 먹히는 것이 더 한심하지 않습니까?
그런 목사가 그 따위로 목회하고 설교하면 교회 문닫는다는 것을 보여주면 될텐데...
적어도 장로 권사님들 대학은 나오셨을 것이고 세상에서 힘깨나 쓰실텐데
그런 목사들의 거짓 복음, 협박 등에 넘어가면 그게 꼭 그 먹사 책임만일지...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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