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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스런 예배 환경이 몸과 영혼 망친다논어에서 배우는 교회개혁(5)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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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2월 12일 (수) 13:37:14 [조회수 : 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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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君子(자왈군자)는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居無求安(거무구안)하며 : 거처하는 데 편안한 것을 구하지 아니하며


지난번에 주거 공간에 살펴 본 거무구안의 뜻을 이번에는 교회 환경과 관련하여 살펴 보곘습니다. 사치스런 주거 공간은 우리의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은 제가 언급하였고 이미 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조차 사치스런 공간으로 변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대형 교회일수록 더 심합니다.

현대 사람들은 편안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문명의 도구들이 어느 것 하나 편리함을 바탕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자동차, 냉장고, 엘리베이트, 휴대폰, TV, 각종 전자제품 등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심지어 예배드리는 공간도 편리함은 물론이고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꾸미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마치 무당들의 굿집이 화려하게 장식한 형태를 좀 세련되게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고급음향, 영상 시스템으로 오페라 극장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 대형 교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고 있습니다. 편리한 신앙 생활의 욕구를 적절히 충족시켜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모방하려고 애를 씁니다.

편안함에 중독되는 예배

편리함에 중독된 예배를 드리다 보니까 몸과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기능이 퇴화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참여적이고 능동적인 예배가 아니라 수동적으로 드리는 관객의 존재로 전락한 느낌만 지배하고 있습니다. 영상 시스템은 예배의 시각 효과를 주고 자료화면을 통해 감성을 자극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하지만 찬송가를 부르기 위해 고를 수고와 성경을 찾을 수고도 할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예배를 드릴 수가 있게 되었으니까 얼마나 편리한 예배입니까?

다윗은 주거 공간이 넓고 편안한 왕궁에 살다가 범죄를 하였습니다. 다윗의 범죄는 목동 시절 풀밭과 텐트에서 지낼 때 지은 것이 아니고 왕의 신분으로 즉 군자로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음욕이 발동하여 우리아의 아내 밧새바를 간통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교회 목사님들도 개척 시절과 교회 성장기에는 주의 종으로서 변변한 방 한 칸 없이 살며 가족들 고생시키면서도 사명감 하나로 버티다가 제법 교회로서 모든 것을 갖추고 나면 다윗과 같이 편안한 데 살기를 구합니다. 그러다 이내 죄의 골짜기고 걸어가고 있는 현상이 교회 안팎에서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목사는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하고 교만하지 않도록, 죄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 스스로 채찍질을 하는 군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하루해가 져서 발길이 멈추는 그곳이 그날 처소였고 땅 위에 돌베개를 베고 자면 그게 침대이고 베개였습니다. 야곱은 생활 자제가 주거 공간이자 예배 공간인 셈입니다 세례 요한도 그랬을 겁니다. 예수님도 그랬을 겁니다. 바울도 그랬을 것이구요. 야곱이 베고 자던 돌베개는 비록 딱딱하였지만 목의 건강에서는 아주 좋은 베개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늘 목이 뻣뻣하고 경추염좌나 디스크가 많은 것은 너무 푹신푹신한 베게와 침대에서 자기 때문입니다. 허리디스크도 결코 침대와 무관하지 않은 생활 속에서 발생한 질병입니다. 푹신푹신한 침대는 허리의 건강을 위협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 때 침대에서 자도록 프로그램하여 놓지는 않았습니다. 낙엽 위나 널판지 위, 나무 위, 황토방이나 온돌방, 가마니 위에서 자는 것이 허리에 좋습니다. 디스크예방과 치료를 해주기도 합니다.

이렇듯 인간의 이성과 지혜로 발전한 인간의 모든 문명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파괴시키기 위한 것들에 불과한 문명의 진보라고 여겨집니다. 따라서 현재 풍요한 물질 문명과 의식주 뒤에 숨은 악의 정체를 직시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그 실체를 바로 알아 종말론적 삶으로 절제하며 건강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형 교회는 구조적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되기 어려운 상황이 바로 너무도 편안한 공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부적합한 공간입니다. 솔로몬 성전과 같이 훌륭하게 지어지고 인테리어도 호화스럽게 편의시설도 초현대식으로 지어졌지만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단지 그 속에는 세트장에서 연출하는 드라마와 목사들의 탈렌트적인 연기와 이를 즐기는 관객만 있을 뿐입니다. 대형 교회는 인간의 저 잘남을 연출, 경쟁하는 박람회장입니다. 귀족 계층의 친목 공간으로 전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고비용의 구조로 되어 갑니다. 하위 계층들은 입장료를 낼 수준도 되지 못하여 접근하기조차 어려워집니다. 이런 교회는 비록 교회 간판을 내걸고 신학박사, 목회학 박사학위를 가지 목사가 목회하더라도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유럽 교회와 같이 한세대가 지나면 사라질 교회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 속에 운행하시고 계십니다. 아골 골짜기나, 빈들이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어디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자연 공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위적인 공간인 건물에서 복음을 전하시기보다는 갈릴리바다가, 산기슭에서, 길가에서, 밀밭 등의 자연 속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건물보다는 사람들의 집합 그 자체를 귀중하게 여겼던 같습니다. 아무런 군더더기와 호화스럽게 연출되는 인간적인 프로그램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자본주의 사고로 보면 무미건조하고 무비용의 교회인 셈입니다. 이와 같이 예배는 아무런 건물유지비가 들지 않고 불필요한 조명과 선교단 밴드의 음향의 소음에 노출되지도 않고, 전자기파도 받지 않고 자연이 주는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받고 예배드리니 건강에도 좋습니다.

절제하고 분별하자

대형 교회는 건강상 문제도 그렇고 또 하나는 소음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청력이 문제되는 것 중에 하나가 교회 안의 음향 레벨이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각 교회마다 밴드가 있고 앰프 시설이 되어 있어서 불필요하게 볼륨을 높게 하여 귀가 찢어질 정도입니다. 교인들을 모조리 귀를 멀게 하고 이명증환자로 만들 작정인 모양입니다. 작은 교회로 갈수록 소음 피해가 심합니다. 어느 교회에 간적이 있었는데 스피커 바로 앞에 앉았는데 귀가 찌어질 정도로 아파 혼이 난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교회는 얼마든지 육성으로 설교할 수 있는데도 마이크를 사용합니다. 참으로 웃기는 광경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셨을 때 그 많은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사용하여 전하였겠습니까? 아니지요. 그냥 조용조용하게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였을 겁니다. 소리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귀만 기울이면 다 들을 수 있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 건물에서 편안하게 예배드리는 것을 지양하고 강가나, 바닷가나, 산기슭에서나 들판에서 드리는 예배를 시도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대형 교회서는 인구밀도가 너무 높습니다. 따라서 공기가 오염되어 폐암을 유발하는 원인을 교회가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어느 대형 교회 목사님이 폐암 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담배도 피우지 않았을 것인데 어찌 된 것입니까? 물론 개인적인 성격과 육체적인 발병 요인도 있겠지만 대도시의 공기오염과 오염된 교회 안의 공기도 일조를 하였을 겁니다. 교회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예배와 성경공부의 순서가 오죽이나 많습니까? 특히 목사들은 필히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폐암에 더 노출되기가 쉽습니다. 따라서 이왕 교회를 지을 바엔 냉온방 시설만 할 게 아니라 환기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게 창조한 것과 같이 인간도 동굴이나 비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나무와 흙으로 집을 짓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흙으로 소박하게 지은 집들이 대부분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도 없다 하셨습니다. 얼핏 들으면 이 세상을 살아가신 예수의 삶이 가난하고 구차했다는 것으로 들리지만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편리함과 풍족함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구원 사역에는 전부 하찮은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l2제자의 삶이 행적과 사도 바울의 일생도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광풍에 고생하며 제대로 먹지 못하며 매를 맞는 고난과 허름한 집에서 생활하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교회 주의 종들 중에 브랜드 목사들은 호의호식(好衣好食) 하다못해 호거(好居) 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태는 이방종교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환경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절제를 하고 분별을 하자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므로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삶, 12제자와 바울 사도의 삶을 기계적으로 그대로 행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 시대의 병든 교회 예배 공간 구조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창조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과 개혁적인 예배 공간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 공자의 거무구안(居無求安)의 뜻을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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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서대치 (121.129.18.145)
2007-12-13 22:44:53
자본주의를 따라가는 먹사들과 교회들
사치스런 예배환경은 권력 그자체입니다 고로 교회를 크게 못세워 안달하는 먹사 놈들은 사이비로 가는 지름길 입니다....제발 예수님을 느끼시길 바랄 뿐 입니다

최 종운 님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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