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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데 절제가 없으면 인간이 아니지요<논어>에서 배우는 교회 개혁(3)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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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2월 06일 (목) 19:32:42 [조회수 : 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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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君子 食無求飽(자왈군자 식무구포 : 공자가 말하되 군자는 먹는데 배부르기를 구하지 아니하니라.)

이 구절을 읽으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먹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입니다. 먹을거리는 단순히 생명을 보존하는데 유익한 물질인데 이것이 탐욕의 대상으로, 사치로, 먹는 데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음식을 상품으로 하는 시장경제 구조에서는 먹으라고 자극하는 이벤트와 광고가 넘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배가 고프지 않는데도 시도 때도 없이 먹어대고 있습니다. 온통 먹는데 시각과 미각의 초점이 모아집니다. 너무 먹어 비만이 되면 이번에는 다이어트한다고 난리입니다. 차라리 절제를 하지. 인간의 죄가 먹는데서 왔으니까 원초적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 우리들 삶의 모습입니다.

먹는 데 절제가 없으면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동물도 먹는 데는 절제를 합니다. 사자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습니다. 옆에 있는 사슴도 사냥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람만은 배가 불러도 자꾸만 먹어 절제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이런 탐욕에서 비롯됨으로 온갖 불치병과 난치병들의 추잡한 죄악들이 연출되고 있기도 합니다. 한의학에 ‘위팔분이면 무질병’(胃八分 無疾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위장의 공간에 여유가 있게 먹는다면 아무런 질병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넘쳐나는 영성 훈련

우리는 지금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육체를 위해 먹는 것과 입는 것 등의 생필품이 넘쳐나고 영혼을 위해서는 성경 공부와 제자 훈련과 예배와 설교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사회혼란의 주범은 과거의 부족함에서 발생하는 문제보다 넘쳐남에서 발생하는 데서 비롯되며 넘쳐남의 탐욕의 구조화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중에 탐욕적 먹을거리에 대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방송은 방송대로, 신문은 신문대로, 잡지는 잡지대로, 온통 시각과 미각에 초점을 맞추어 프로그램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란 일단 배가 부르면 머리가 흐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하는데 방해를 주기 때문에 공자는 배부르게 먹지 말라고 한 것 같습니다. 배가 부르게 되면 몸 안에 있는 혈액이 모두 위장으로 모여들어 소화 작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두뇌에 혈액이 부족하게 되어 잠이 오게 되고 머리가 맑지 못하게 됩니다. 어디를 가도 넘쳐나는 식품을 보면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돈만 있으면 간편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뷔페식당은 식욕을 자극하여 음식을 먹게 합니다. 수많은 외식 식당과 대형 식당은 많은 사람들이 포식하도록 돕습니다. 결국 과식은 비만과 당뇨병, 심근경색 등의 성인병을 야기시킵니다.

로마 속담에 ‘미식(美食)은 칼보다도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라고 합니다. 고대 로마 귀족사회에서는 좋은 것들을 배불리 먹는 게 미덕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포식을 하고 배가 가득 차면 닭털로 목을 간질러 먹었던 음식물들을 토해내고 다시 먹어댔습니다. 로마는 이런 타락된 음식 문화로 인해 질병에 취약해졌고 사회적인 문제로 국력까지 쇠락해져 갔습니다. 전 세계를 정복해 나아가던 로마는 바로 미식과 포식으로 인해 멸망의 초석을 두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와 다를 바 없는 전철을 밟고 있다고 봅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잘 살았다고 이렇게 흥청망청 낭비하고 있습니까? 한해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만 해도 엄청납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우리 생활수준이 과거에 비해 훨씬 향상된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식생활에 있어서는 오히려 후퇴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건강한 자연식에서 공업적으로 가공된 즉석 식품들과 또 여러 가지 합성 조미료, 향신료와 보존제, 방부제, 첨가제 등이 우리 식탁을 지배하게 됨으로써 식생활이 사탄의 식생활로 병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우리의 몸이 망가지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곡식과 채식, 나물, 거친 음식 위주로 식생활을 해온 우리가 이제는 서구적 식생활 습관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미 일본이 서양식 습관을 따라감으로써 미국과 똑같은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과식이 무엇보다 나쁜 것은 노화를 촉진하기 때문입니다. 노화를 막는 최상의 방법은 낮은 영양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는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지요. 영양 과잉은 영양 부족보다 못하면 못하지 더 나을 것은 없습니다. 과식은 활성산소와 과산화지질을 형성하고 이것이 인체의 여러 기관이나 혈관, 피부 등을 노화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당연히 인체 내 세포들의 면역성과 저항력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먹는 것에 탐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과식 문화

오늘날 교회도 사회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먹는 데 민감한 것 같습니다. 특히 구역예배 시나 심방 시에 대접한다고 과도하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상다리가 부러지게 대접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분수에 넘치게 음식을 준비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를 축복하고 칭찬하기에 바쁩니다. 이런 목사님들일수록 성인병에 시달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인들을 성인병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주 하루만이라도 금식을 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주일 점심 한 끼만이라도 금식을 하고서 위장을 쉬게 해준다면 그만큼 몸은 편안하게 되어 건강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공자가 말한 ‘식무구포’ 즉, ‘먹는데 배부르기를 구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으면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먹는데 염려하지 말고 더 나아가서 목숨을 걸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더군다나 먹기는 먹되 배불리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명심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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