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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질로 목회하려 합니까?목사는 기본적으로 얼굴에 광채가 나야 정말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격이 있습니다.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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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2월 06일 (목) 19:23:55 [조회수 : 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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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을 처음 만나게 되면 대개는 얼굴부터 먼저 보게 됩니다. 초면에 얼굴을 보면 이른바 느낌,  첫인상, 선입감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공간이나 버스나 지하철에서 유심히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현재의 고민, 기쁨, 수심, 애환을 헤아려보기도 합니다. 관상학적으로 심상을 느끼기도 하고 병의 진단을 하기도 합니다. 컴퓨터의 모든 정보가 모니터에 디스플레이 되듯이 그 사람의 모든 정보가 얼굴에 디스플레이 되거든요. 대개는 얼굴 생긴대로 한 성질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지만 극히 드문 경우입니다만 얼굴은 무섭게 생겼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아주 온순한 사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안에서도 성도들의 얼굴을 영적인 상태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역시 목사의 얼굴에도 목회패러디임과 인격과 인간성을 두루 망라한 목회의 모든 정보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위장을 하고 있어서 잘 모르기도 하지만요. 그러나 중간에 혹은 끝에 가서는 본색이 들어나는 경우가 꼭 있습니다. 목회소명의 초발지심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중간에 가다가 어물쩡 교회를 사유화하고 , 평생직장으로, 노후보장지로 혹은 교회를 분열시키고, 퇴직금을 챙기고 다른 교회로 가는 목사들이 그러합니다. 대구 모교회모목사는 알게 모르게 일년에 2억을 챙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될까봐 서울로 갔다가 서울의 모교회에서는 목사의 그런 사적정보를 알고 물러나게 하여 다시 전에 있던 교회 근처로 와서 개척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전적 타락한 죄성으로 천사의 얼굴에서 사탄의 얼굴이 망가졌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데 성령의 도우심을 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큰바위 얼굴의 주인공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동물과 달리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자 감정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생리적인 감정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정신세계와 영적세계를 기초로 한 감정 말입니다. 이를 종합한 자신의 내면의 소프트웨어가 바로 표현되는 곳이 하드웨어인 얼굴로 디스플레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옛사람들은 얼굴은 그 사람의 얼이 들어 있는 굴(窟)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이마에 새겨진 주름살은 인생의 계급장이고 현재 그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간판이라는 말은 세월의 모진 풍화작용에 의해 얼굴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새겨진 값진 경험적 표현일 것입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곱고 깨끗한 얼굴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말을 걸어 보려고 합니다. 대개가 마음씨도 곱고 생각이 반듯함을 발견합니다. 허지만 좀 그런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 꼴값을 떠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인물 잘나면 잘 난데로 꼴값을 떨고 못나면 못 난데로 꼴값을 떠는 경우를 말입니다. 선한 것을 소망하면 그것이 얼굴에 나타나고 뜻이 위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면 그것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사나 예술의 경지를 표현하는 예술가나 학문에 매진하는 석학들의 얼굴을 보게 되면 광채가 나나나는 얼굴입니다. 이런 분들은 무형의 가치에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소중히 하고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지고의 가치를 현재화할 때 얼굴에 빛이 나며 환해진다고 여겨집니다. 이와 반대로 현재 사회의 가치관대로 사유하고 목회성공에 신경을 쓴다면 험한 세파의 파장이 얼굴로 나타나게 되어 시장상인의 얼굴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복음을 복음답게 만드는 신앙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의 얼굴은 믿음의 얼굴이 됩니다. 세상에서 돈에 욕심이 너무 많아 욕심에 찌들어 살면 탐욕의 얼굴이 됩니다. 사기를 치는 사람은 사기꾼 고유의 얼굴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얼굴이란 그 사람의 삶과 인격이 나타나는 얼굴입니다. 오늘 날 우리는 매일 거울을 통해서 자기의 얼굴을 수십 번 볼 수 있지만 자신의 내면의 얼굴은 잘 보지 않으려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얼굴을 만드셨을 때 타인이 볼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진짜 내 얼굴은 자신이 거울로 보는 얼굴이 아니라 남이 나를 보는 얼굴이 진짜 내 모습입니다. 화장한 얼굴, 성형 수술한 얼굴, 일부러 웃음 지으며 연기하는 얼굴, 미워하는 얼굴, 쓴웃음을 짓는 얼굴은 진짜 내 얼굴이 아니고 내 모습이 아닙니다.

진짜 얼굴은 하루하루 우리 자신의 삶과 신앙을 통해서 천천히 만들어져 가는 얼굴입니다. 그래서 링컨은 사람 나이 40이 넘어서면 자신의 얼굴에 대하여 책임을 지라고 했습니다. 우리 얼굴은 남이 나를 보라고 만든 대표적이고 중요한 기관입니다. 한국교회의 대표성은 목사들입니다. 신학교, 총회, 연합기관입니다. 요즘에는 각종 이슈로 데모하는게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한기총에서 사학법 개정 반대하는 삭발시위를 하는 모습은 바로 땡 중의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조계사의 중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서 시위하는 모습과 착각될 정도였습니다. 단지 다른 것은 십자가와 승복을 입지 않은 것과 목탁이 없었다는 거지요. 목사들의 검은색 양복과 깍두기 머리형상은 조폭과 같은 얼굴들이었습니다. 돈에 찌들은 장사치의 얼굴들이었습니다.

그런 목사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목사가 깨어있으면 한국교회가 행복해지고 교회가 깨어 있으면 우리나라는 행복한 나라가 됩니다. 목사 얼굴에 빛이 나면 성도들의 얼굴이 행복한 얼굴로 바꿔지게 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어느 여전도회 집회를 마치고 하는 대화중에 그 교회가기가 무섭다. 왜냐하면 목사가 화난얼굴로 성질내는 설교를 해서 무섭더라 하는 말입니다. 그런 소문이 들어갔는지 다음에는 부드럽게 설교연기를 하더랍니다.

저번에 다일 공동체 자원 봉사자들이 목사와 형사를 교차해서 신분을 말한 것은 사람을 보고 외관상 느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동양철학적인 관상운명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창조질서 영역에 속한 보편적인 본능의 직감입니다. 얼굴은 그 사람 내면에 쌓아놓은 정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초면에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평소에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다행이 필자는 서점이나 다른 교회에 볼일을 보러 갈 때 “혹시 목사님이 아니신가요?” “어느 교회 목사님이신가요?" 하는 말을 종종 듣게 됩니다. 그러면 "아닌데요" 하면 "그럼 장로님이세요” 아니면 “장립집사님에세요” 그것도 아닌데요” 이렇게 점점 내려가다 보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는 말로 종결되어 집니다. 그렇게 하다가 마지막에는 눈이 아래로 고정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지요. 그럴 때는 인간적으로 목사가 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하지요.

얼굴이 호상이든지 흉상이든지간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는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새롭게 포맷할 수 있다는 말로 풀이해 봅니다.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의 오류정보가 있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백신으로 치료하고 다시 포맷을 하는 것처럼 복음의 백신과, 개혁의 백신으로 얼마든지 호상의 얼굴과 따뜻한 마음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다.

목사는 기본적으로 얼굴에 광채가 나야 정말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격이 있습니다. 형사 같은 얼굴, 사기꾼 같은 얼굴, 제비족 같은 얼굴로는 교회에서 목회하고 복음을 설교할 자격이 결여되어 있다고 여겨집니다. 목회소명의 소멸시효로 용도변경을 해서 사기꾼 얼굴로 정치목사로, 얼굴이 변화되지 않고 세속적인 목회를 하는 모습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먹회로, 먹사로, 땡목으로 비하하게 되지요. 복음과 목회모습이 이렇게 비하되거나 개그소재로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겨집니다.

목사가 되기 이전에 신학교 면접시에 성격테스트와 얼굴을 어느 정도로 참조하여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른바 범죄형의 얼굴은 공적 인물로는 피차 덕스럽지 못한 얼굴이며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성격을 가진 사람은 목사가 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신앙생활 하는 게 낫지 하나님의 머슴으로 교회지도자로 일하게 될 때 성도들에게 상처를 입힐 확률이 많아지게 되며 은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질을 내는 것은 일단 자기마음에 들지 않아서이고 바라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서입니다. 더군다나 목사가 성질을 내는 것은 복음적 영성이 부족할 때 성질을 낸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영성과 복음의 생명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영성과 복음의 생명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부정적 영향을 끼친 목사들의 인격을 보면 대개가 신앙과 인격이 분리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목사들이 집회를 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어떤 목사는 이명박 안 찍으면 생명책에서 지운다 면서 협박성 발언을 하여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전에는 여집사 빤스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더니 이번에 또 정치성 발언과 하나님과 동일시 여기는 오만한 발언을 한 것은 목사의 인격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무슨 권리로 하나님의 고유주권인 구원의 생사여부를 좌우하고 생명책을 지워버린다느니 하는 오만방자한 말은 그의 목사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처럼 그런 발언을 한 목사는 보도는 되지 않았지만 이런 유사한 말을 많이 하였으리라 추측됩니다. 기저귀발언을 한 목사의 얼굴도 가관이었습니다.법원앞이나 법무사 사무실에서 보게 되는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이 교단을 대표하는 직책을 가졌으니 한국교회의 현실이 삭막하기만 합니다. 그런 목사가 교회를 대표하고,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이 안타깝고 한국교회의 목회실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스데반이 돌로 쳐 죽임을 당할 때 하늘나라를 본 얼굴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천사의 얼굴이 어떠한지 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전하다가 순교자가 된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더라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독기에 찬 공회원들이 스데반을 죽이려는 살벌한 상황과는 달리 는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여 위에 계신 예수님을 우러러 보므로 그 얼굴이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생각도 모습도 변하게 됩니다. 거짓과 불의한 세상에서 악을 좇는 자는 악마의 모습을 나타낼 것이고, 진리 안에서 용서와 화평의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그 얼굴에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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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68.238.233.21)
2007-12-12 11:32:02
너와 내가 다른것은
망치가 열심히 따라 다니는군!.
할일 없는 넘아!....
여기 있는 나그네 님이 네가 사랑하는 그분이시다.
야훼가 누구냐?.. 하나님이 누구냐? ..예수님이 누구냐?..
족쇄에 채어 있는넘 같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게 하나님을 믿는 것인데!
너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지 못하고 맨날 야훼만 찾고 있는데?
하나님도 못 부르는 넘이 네넘 이란다...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지 못하는 것은 단 한가지?
네 안에 예수님을 증거하시는 셩령님이 없기 때문인데.
그것은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것은 역시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이니까.
너의 정체는 마귀의 졸개라고 나 할까?.....이 것은 너의 정체이고!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 이니라...따라서 이것이 나의 젗에 이니라...이..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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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0
t서대치 (121.129.18.145)
2007-12-11 19:04:46
당당에 나그네는 분할 돼는 현상 누가 누군지
여기의 나그네 님은 내가 아는 그 나그네 님이 아닙니다...도대체 나그네의
본질과 모습이뭔지.................훳갈리네...여러분 그이상한 나그네 하곤
분명이 다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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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0
나그네 (71.162.131.4)
2007-12-11 11:37:27
변화의 바람을 기대 하며
네 그렇읍니다.
종운님야 글 쓰시는 분이니까 빨리 쓰시겠지만 저같은 경우야 글 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무슨 말을써야 내 의견을 바로 전하면서도 상대방이 기분을 덜 상하게 할까 궁리하고 오타도 많이 나오고 등 등 해서 적지않은 시간이 소요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읽은 분들께서도 혼동이 될때도 있을 겁니다. 말을 다듬지 않고 너무 극단적인 표현과, 읽기에 거북 스러운 언어를 사용해서 반감을 사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획일적이지 못한 인간의 다양성에서 그럴수도 있지라는 이해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종운님은 소수의 바르지 못한 목사들만 보이신다니 다행 이십니다. 그 소수들 마져도 바른 목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시라니 성도로써 고맙고 앞으로는 그러한 뜻으로 글을 읽겠읍니다.
제가 걱정 하는것은 안타까운 많은 목사들은 그렇다 치드라도, 적지만 열심히 수고하고 있는 목사들마저 종운님의 글을 일고 낙담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노파심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저와는 반대로 바르지 못한 적은 목사들까지도 바로 세워지기를 바라면서 쓰시는 글이라니 이 글이 그런 분들에게 보여져서 종운님의 바램대로 되기를 바라겠읍니다.
사회의 모든 것이 교과서 적으로 돌아가고, 교회가 성경의 말씀 대로만 돌아 간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읍니까? 같은 현실을 보면서도 옳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못 됐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 교과서의 기준은 무엇이고, 성경의 기준이 무엇인지 분별키 어려운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는것 같읍니다. 그래도 모든 것이 원만하게 잘 되기를 바라는 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잘 될것이라는 희망은 가져 봅니다.
채찍의 글이되어 교계에 변화의 바람을 기대해 보겠읍니다.
리플달기
3 10
최종운 (118.45.211.145)
2007-12-11 08:13:51
나그네 님 감사드립니다.
나그네님 감사합니다.
장문의 글 감사합니다.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게 쉽지는 않거든요. 나그네님의 관점을 잘 접수 하였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다 틀리듯이 생각 또한 제 각각 다르기 마련입니다. 제가 목사의 부정적인 면을 많이 다루는 것은 올바르고 반듯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좋은 목사가 더 많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소수의 올바르지 못한 목사들을 향해서 드리는 충언이고 고언의 말들임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그네님도 저의 사진을 보고 관상학적인 평을 해 주셨는데 일부는 맞고 일부는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고정적, 기계적으로 평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거든요. 관상의 결점이 바로 획일적, 고정적이라는 것이지요. 경험적 통계일 뿐 결코 진리도 아니고 잘못 하면 혹세무민 ,사기의 바이블이 될 수 있으니까 잡학으로 여겨야 하겠습니다.

교회와 목사의 잘한 점, 긍정적이 부분만 부각되다 보면 균형이 잡아지지 않으니까 그런 부분을 제가 터치해서 바로 잡으려 보는 의미에서 글을 씁니다. 집이 바로 세워지려면 기둥이 좌우로 기울여져는 안 되는 것 처럼요.

여름에 텐트를 칠 때 가운데 기둥의 양쪽 끈의 텐션이 동일해야 바로 세워집니다. 이는 우리 몸의 척추의 건강과도 같습니다. 척추관련 질병은 대개가 척추좌우 근육의 텐션이 무너져서 발생합니다. 특히나 디스크는 골반인 장골과 4, 5척추를 연결하여 지지하고 있는 장요근의 균형이 무너져서 한쪽으로만 당겨지니까 반대의 압력이 작용되어져 디스크가 한쪽으로 밀려 나오는 것이지요. 물론 다른 요인도 있지만 대개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사회나 정신적 건강이나 교회의 영적 건강환경도 이와 유사합니다. 성도와 목사간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서로가 섬김의 자세를 가지고 텐션이 균형이 바로 잡힌다면 하나님 나라 건설의 동역자가 되겠지요. 그러힞 않으면 하수인으로 똘마니로 노동자로, 관객으로 될 수 도 있으니까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균형을 잡고 생태적인 신앙의 터전을 회복하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로 글을 쓰게 하는 기본적인 저의 마인드입니다.

거듭 장문의 조언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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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9
나그네 (68.238.237.224)
2007-12-09 01:28:05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많은 시간들여서 생각하고 망서리다가 도움을 줄까 해서, 같이 잘 되어 보고자 하는 심정으로 글을 올리는 것인데 아무도 대꾸를 안해주면 글 올린 사람이 힘이 빠지지요. 좋은면 좋다, 싫으면 싫다, 그저 그러면 그져 그렇다. 답들을 해 줘야지 그냥 꽁짜로 읽고, 속으로만... 별놈 다 있네, 한다든가, 그럼 네가 목사를 해 봐라 한다든가, 좋은지적 해 줘서 고맙다 한다든가, 목사들 이 글좀 읽고 깨닳았으면 좋겠다,라는 등 으로 중얼 거리고 잊어 버린다면, 목사나, 성도나, 사회에 무슨 변화가 생기겠읍니까? 누군가, 뭔가, 어디선가,는 변해야 한다는 안목으로 글을 올리 셨는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올립니다.

최종운님은 글을 쓰시는 분임으로 보는 감각이 예리하시고 적절하게 지적도 잘 하십니다. 또한 관상학 적으로 보는 눈도 있으신것 같읍니다. 그러다 보니 보고 느낀대로 판단도 하시겠지요. 인간은 누구나가 다 그런 장점이라고 할까, 약점이라고 할까. 를 가지고 있읍니다. 개인적으로 보고 느끼는것을 좋은 것으로 바꾸면 장점이 될것이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하면서 악평을 하면 약점이 될것입니다. 요것을 알면서도 장점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을 인간의 죄의 속성이라고 성경을 들먹이며 얘기를 하지요. 목사들이 하도 성경을 들먹이며 엄포를 놓고, 공갈을 치고, 위협을 하고, 협박을 하면, 교인들은 거의 꾸뻑 죽읍니다. 고것을 본 일부의 사람들도 남을 꾸뻑 죽게 할려고 성경을 인용하는데 시도 때도 장소도 구분치 않고 성경을 끌어다 대지요.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해로 둔갑을 시켰는데 그 주동자가 누구냐? 첫째는 목사요, 둘째는 장로들이요, 셋째는 교인들요, 넷째는 글쓰는 자들이요, 다섯째는 말씀을 대적하는 모든 자들인데,물론 순서도 틀릴수 있고, 더 많은 자들이 그 못된 일에 참여 했을수도 있지만, 종운님은 잘 해보자고 하는 심정이라고 생각 하겠읍니다.

그렇읍니다. 사람들은 상대를 대면할때 인상을 보지요. 그리고 이사람은 어떻겠구나 하면서 이미 반 이상을 상대방에 대하여 자기의 느낌대로 판단을 해버립니다. 자기가 판단한 일종의 선입감을 가지고 대화를 합니다. 대화를 해도 이미 자신이 정한 선입감에 맞추어 상대방이 이 말을 하면 이래서 이말을 하고, 저 말을 하면 저래서 저말을 한다고 하며 자기의 합리와에 시키기 바쁘지 그 선입감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거의 없읍니다. 계속 함께 지내도 그 선입감을 벗어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이것 뿐만이 아니라 상대방을 보지도 않았는데 남의 말만 듣고도 같은 선입감을 같은데 본사람과 안본 사람의 차이는 별로 없으나, 조금 다른것이 있다면 듣기만 한사람은 그 선입감이 조금 빨리 바뀔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입감이라고 하는것은 고질병과 같은 것인데, 한국의 사회에 만연이 되어 있고 교회도 사회와 별반 다른것이 없읍니다. 그 시작은 거짓으로 부터 나오는 것인데 그 거짓말을 정치 인들이 제일 많이 하고, 목사들은 거짓이라기 보다 엄포, 혐박 등이라고 하겠지요. 그런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아니더라. 의 결론에서 불신이고, 그 불신을 믿지 못함으로 안 속을려고 마음에 한자리 깔아놓고 보고,듣고 판단 하는것을 선입감이 든다, 가졌다, 느낀다 라고 생각 하면서 여기에 올라오는 글이나, 댓글을 보면서도 그 선입감을 지울수가 없는것은 글 쓴이의 글을 보면서 내가 보았던(즉 알고 있던 것) 것과 같으냐 틀리냐에 따라서 선입감도 달라 지드라는 것이지요. 세상의 모든것은 양면성이 있는 것인데 종운님은 교회나 목사의 잘못된 것만 지적 하니까 종운님에 대한 나의 선입감은 무엇일까 짐작이 가실 겁니다. 나 역시 종운님 처럼 목사들을 보고 느끼는 것이 많기 때문에 선입감에 따른 말을 많이 하지만 칭찬을 해야하는 목사들도 얼마든지 있지 않읍니까? 목이 곧은 목사들은 아무리 말을 해고 듣지 않지만, 칭찬받는 목사들은 미소만 지어도 고마워 하잖아요. 어느것이 쉽고, 피차 신앙에 도움이 되느냐? 가 중요하기 때문에 좋은 목사를 보고 좋은 선입가을 가지고 좋은 말을 하는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경험을 해 보셨겠지만 나쁜 목사만 보고, 나쁜 얘기를 하면, 마음이 편치를 않고, 그런데도 계속하면 그것만 보이고, 그 생각만 나고,그 말만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좋은것은 안보이고 마음만 메말라가지 않읍니까? 그래서 자신에게 덕이 되는것은 없더라는 거지요. 글을 쓰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들에게 덕이 되는 글이 되어야 하겠지요, 찾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찾아 보면 더러 있으니까. 그런 목사님들의 찾아서 글을 쓰는자나 보는 자의 마음이 덕이 되는 쪽으로 가야하는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얼굴에 광채가 나는목사?..그런 목사가 있으면 소개좀 시켜 주세요? 보신적이 있으니까 그런 목사가 되라고 하시겠지요. 저는 아직까지 그런 목사를 보지를 못했읍니다. 말 안듣는 교인들 내쫓는 목사들은 부지기로 봤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광채는 그만두고 평법한 목사라도 봤으면 하는 맘입니다. 맏겨진 성도들 하나님의 자녀로 알고 최선을 다하며 섬기는 목사면 족하겠읍니다. 그런 목사를 보시면 알려 주세요

혹시 종운님의 얼굴이 광채 나시는 분? 어디를 가니까 목사냐? 장로냐? 집사냐? 교회다니냐?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다는데? 그래서 자신의 얼굴에 광채가 나는것 아닌가? 해서 하시는 말씀은 아니신가요? 사진을 보면 광채는 아니지만 잘 찍힌 사진은 올려 놨네요. 그래서 자세히 보며 나름대로 사진과 글을 보면서 느낀 선입감을 애기 한다면........
첫째는: 샌님 같은 외모가 느껴지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목 부분이 뻣뻣한 것을 보고 목사라고 보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둘째는: 아직까지 군기가 덜 빠진 공무원 타입 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까닥스러운 변선생으로도 보일수가 있읍니다. 그레서 까다로운 정로가 아니냐 라고 했나?
셋째는: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하는 사무적인 순종파 아저씨 타입 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맹종하는 집사로 보일수도 있겠죠?.
넷째: 하여간 사진상으로 볼때에는 외모는 깔끔하게 보이니까 실물이나 생활도 그럴 것이다 라는 선입감으로 버겠읍니다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주일날 교회에 나가는 성도로 볼수도 있겠지요.....
다섯: 그런데 불순한 생각을 가지고 자세히 보면 잘 훈련된 무장공비 같은 반짝 반짝하는 예리한 면도 보인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사견임을 말씀드리고 다른 오해로 인한 선입감을 사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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