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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용서와 아버지의 용서십자가는 죄 용서의 담보가 아니다.
김주범  |  kjbjoh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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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1월 11일 (일) 15:41:48 [조회수 :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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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용서 방법.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용서하시는 방법을 보면 하나님의 용서 방법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하신대로, 명하신대로, 이르신대로 그의 말씀을 순종하셨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 분이 인간의 삶 가운데에서 어떻게 용서하시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기 어렵지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시면서 죄인들을 용서하신 삶의 구체적인 방법들이 있다. 그 예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방법이다. 용서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나 비유를 살펴보자. 그 모든 것들은 용서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기록된 말씀이다. 4복음서에 여러 경우의 사례들과 말씀을 살펴 보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정리해 보자.

가. 간음 중에 잡힌 여자.

(1) 성경본문
요8: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다
요8: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요8: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요8: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요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8: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8: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8: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8: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요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2) 용서란?
율법은 죄인을 기소하며, 정죄한다. 그리고 죄에 대한 댓가를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 예수님은 용서라는 생각조차 없으시다. 아예 정죄가 없으시다. 이것이 예수님의 용서이다. 삶을 바꾸는 것은 차후의 일이다. 예수님의 용서는 무정죄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죄값은 반드시 계산되어야” 한다 같은 생각 자체가 없으시다. 무조건적인 용서를 하시는 것이다.

이 사건은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용서하는 것 같은 내용이지만, 사실은 그 여인을 돌로 치려했던 자들까지 용서하시는 말씀이다. 돌을 들어 모세의 율법으로 정죄하는 그들 역시 율법의 정죄를 받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들도 양심의 정죄감을 가지고 율법의 처벌을 생각하며 두려워 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 여인을 반드시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들 역시 율법의 요구를 반드시 받아야 할 것을 너무 분명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구약에 모든 율법의 범법에는 그에 상응하는 보응이 있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 하셨을 때, 모두 돌을 놓고 몸을 돌렸다. 그때 그들을 보내지 않으시고, “너희들이 이 여인을 율법으로 돌로 치려 하였는데, 너희들은 무슨 죄로 돌을 놓았느냐? 너희들도 너희들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 한 사람도 그냥 가서는 안된다”고 하실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들은 분명히 자신들 스스로 정죄를 받았다. 순간 그들도 율법대로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고 돌아가도록 그냥 내버려 두셨다. 이것은 바로 그들 역시 정죄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며, 예수님께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후에 예수께서 자기들이 돌로 치려했던 그 여인도 아무 정죄도 아니하시고 그냥 보내셨다는 것을 들었다. 이제 여인도 그들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아무 조건없이 용서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반드시 회개하라는 조건도 붙이지 않으셨다. 회개해야만 용서해 주겠다고 조건부로 용서하신 것도 아니었다. 아무 조건이 없었다. 무조건적 용서였던 것이다. 다만 그 여인에게 다시 죄를 짓지 말라고 부탁 하신 것이었다.

이 본문에서 죄인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방법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죄 용서 방법과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대속을 믿어야지만 용서받는다고 알고 있는데 예수님은 그냥 용서하신다. 이것이 진정한 용서인 것이다. 예수님을 시험코자 했던 그들까지 무상으로 용서하셨다.

나. 누가복음 15장.

(1) 성경본문
눅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눅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눅15: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눅15: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눅15: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눅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눅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15:8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눅15:9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눅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눅15:11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눅15: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눅15: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눅15:14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눅15: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눅15: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을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눅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눅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눅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눅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15: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눅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눅15: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눅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눅15: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눅15: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눅15: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눅15: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눅15: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눅15: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눅15: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눅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2) 하나님의 용서방법.

역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죄인들을 정죄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을 무조건 영접하신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영접하여 음식 같이 먹는 것을 원망하였다. 그들은 죄인들을 정죄하여 그들을 책망하고 야단치며, 스스로 격리하며 거동하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여 함께 식사하며 친구가 되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위선과 형식과 교리에 매인 모습이 드러났다. 사람들에게 모종의 비난을 받았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죄인들을 영접하는 하나님에 대하여 3가지 이야기를 들려 주신다. 잃어 버린 양, 잃어 버린 드라크마, 집 나간 둘째 아들의 비유이다. 잃어 버린 양 이야기는 하나라도 잃어 버리지 않으시려는 아버지를 말씀 하시는 것이다. 양 일백 마리중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 아홉을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는 주인과 같이 잃어버린 자식들을 찾으시는 아버지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주시며,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나의 잃어 버린 양을 찾았노라 하며 즐거워 하는 주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며 사랑하시는 지를 보여 주신다.

드라크마 하나를 잃자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아 찾으면 이웃을 불러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며 기뻐하시는 한 여인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는 하찮은 영혼이 하나도 없이 모두 하나님의 최고의 기쁨이 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씀 하신다. 한 드라크마는 하루 품삯이다. 일반 노동자의 하루 일급으로 식사를 한다면 아무리 싼 것을 먹도 열명의 한끼 식사할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은 벗과 이웃을 불러 모아 잔치를 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세상의 화폐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아무 조건 없는 찾는 아버지만을 소개하고 계시다.

이제 용서에 대해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탕자의 이야기를 보자. 간단히 말하자. 둘째 아들이 돌아 왔을 때, 아버지가 아들의 회개를 요구하셨는가? 아들의 회개나 뉘우침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것 같은 절차는 아예 없다.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아들이 그의 잘못을 말하지만, 그 말은 듣지도 못하시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며 기뻐하시는 아버지만을 보여 주신다. 아버지의 용서에는 아무 조건이 없다. 맏아들은 동생에 대한 환영을 그의 행위 값으로 계산한다. 아버지에게는 계산이 없다. 무조건 아들이다. 아들을 전혀 정죄하지 아니하신다.

위의 세 이야기 모두에 회개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회개가 용서의 조건은 아니다. 아버지에게는 아예 용서라는 것 자체가 없다. 아들이 돌아 왔기 때문에 용서하셨는가? 아니다. 굳이 용서라는 말을 쓴다면 아버지에게는 영원한 용서만이 있을 뿐이다. 한번도 그 마음에서 버린 적이 없으시다. 회개는 조건이 아니라 무한 한 용서의 품으로 돌아오는 과정일 뿐이다. 아무리 탕자라 하더라도 그는 언제나 아들이며, 언제나 아버지의 기쁨이며, 언제나 무정죄의 영원한 용서안에 있는 것이다. 회개는 변함없는 아버지 품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회개가 용서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아버지와의 만남이며, 아버지의 모든 것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아들이 돌아왔기 때문에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간에는 용서라는 말 자체가 필요없다.

다. 무한한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는 이정표인 대속사건

율법적 사고로 찌들은 사람들에게만 용서라는 말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들은 아버지에게로 나갈 수 있다. 사실 율법적 사고에 종된 사람들에게는 용서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그의 죄에 대한 댓가를 계산한 대속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용서받음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대리 계산서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알아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용서한 그 증거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다. 율법적 사고방식에서는 대속에 대한 믿음이 용납의 조건이 된다. 그것을 믿어야만 용서를 받고 용납을 받는다는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율법적 방식으로는 영원히 아버지를 알 수 없다.

대속에 대한 믿음은 죄사함의 조건이 아니다. 그것을 믿을 때에야, 그리고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만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가르침에는 대속을 통한 대리 의에 대한 믿음을 통한 죄사함이 없다. 하나님은 무조건 용서하신다. 행위를 고치는 의미로서의 회개를 요구하시지도 않으신다. 우리 스스로 정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이지 하나님에게는 문제가 없다.

죄없이 거룩한 자격으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 오라는 조건이 없다. 죄 있는 그대로 아버지에게 돌아 오라 하신다. 때문에 대속을 믿어야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적 사고에 종된 사람들은 대속에 대한 믿음을 죄사함의 조건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속의 본 의도는 대속을 믿음으로 영원한 용서와 사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이정표이지 조건이 아니다. 집나간 아들이 아버지를 두려워 하였듯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아버지의 영원한 용서와 사랑을 증명해 주는 증거로서 우리에게 제시된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대속이 없으면 아버지의 사랑을 알 길이 없다. 우리에 대한 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증명하신 유일하신 사건이 십자가의 죽음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아버지의 무한한 용서와 사랑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대속에 대한 믿음은 무한한 용납의 품으로 들가는 문이지, 아버지가 용서의 조건으로 요구하시는 담보가 아니다. 그 십자가를 보고 모두 모두가 영생의 품으로 무조건 돌아 오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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