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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 신앙의 중심개념이 될 수 있는가?인간을 굳이 이 땅에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이란 말인가?
김주범  |  kjbjoh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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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1월 07일 (수) 14:03:55 [조회수 :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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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 신앙의 중심개념이 될 수 있는가?

현재 기독교 신학의 중심개념은 ‘구원’이다. 예수님을 믿는 목적은 구원을 받고자 함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 지옥가지 않고 천국가는 자격을 이미 받아 놓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때 구원을 받은 것이 되는 것이다. 믿음의 결국적 목적은 지옥가지 않고 천국가는 것이다.
이같이 일반적인 구원을 신앙의 목표로 할때 발생하는 문제 몇가지가 있다. 죄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결국 하나님의 모든 일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 땅에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어차피 죄에 빠진 인간들의 죄의 값을 면하여 주고, 죄의 세력에서 구원하시며, 결국 지옥갈 인간들을 천국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인간을 굳이 이 땅에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아무 의미도 없이 겨우 죄에서, 지옥에서 구원하시는 것으로 인간의 역사를 끝내야 하는 것이라면, 왜 인간을 이 땅에 창조하신 것일까? 구원이 목적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인간을 천국에 창조하여 놓으셨으면 만사가 편하게 되는 것인데. 하나님도 속썪지 않고, 인간도 고생하지 않고 서로가 편하고 좋았을 것인데 말이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사실 하나님의 창조행위가 무의미하다. 어떤 면에서 인간을 어쩌다 창조하셨다가 아주 혼나는 하나님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인간 창조는 실패작이 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타락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세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인간의 책임이라고 한다. 인간의 역사를 인간의 구원으로 마치게 된 마당에서 자유의지를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자유의지를 주신 긍정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그 설명을 찾을 수 있는가? 결국 죄 지으라고 주신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기독교 조직 신학에서 인간창조 목적을 적극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나 이렇게 결론을 짓는 것은 아무래도 하나님께 명예롭지 못하다. 타락한 인간을 통해서 무엇인가 하셨다는 타당성을 성립시켜야만 한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것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납득할만하게 설명할 수 없다. 차라리 창조하지 않으니 못한 결과를 가져 온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간 타락과 구원을 어떤 의도와 목적을 위한 것으로 설명하여야만이 인간창조의 타당성이 이해될 수 있다. 구원론 중심 신학의 딜레마가 이것이다.
구원론 중심 신학이 나름대로 생존하기 위한 시도를 하였다. 인간창조 목적을 ‘영광받으시기 위해서’라고 설정하고, 그 방법은 그의 절대주권을 전시하여 인간들로부터 전능하심을 인정받는 것으로 였다. 그것의 실행방법은 ‘선택과 유기’를 통해서였다. 하나님만을 위한 이유를 성립시킨 것이다. 인간을 위한 창조 이유는 전혀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인간의 타라과 유기와 구원이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여 그것들이 필요하였다라고 설명하여야 한다.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두어 하나님을 변호해 드리려 하였으나 역시 무리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인간을 가지고 장난감 같이 장난치는 하나님,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수단으로 철저하게 이용하신다고 설명하고 있으니, 구원론 신학은 인간타락과 구원에 대한 설명을 결국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궁색한 구원론을 기독교 신학의 대표적인 진리로 표방하고 있으니 기독교가 잘 될리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치가 맞을 때 담대하고 용기있게 행동한다. 명확하게 행동한다. 이치가 맞지 않으니 무조건 믿으라고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 논리도 6하원칙으로 성립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진리가 6하원칙도 성립시키지 못한다면 누가 그것을 진리로 믿겠는가? 희망과 소망의 설득당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지옥의 두려움 때문에 겨우 겨우 마지 못해 믿는 격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지극히 이치적인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 이유가 하나님 자신을 통달케함이셨다. 지식과 체험과 실제에서 모두 인간들을 넉넉하게 설득할 수 있는 진리를 계시해 주셨다. 신학자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를 감추기 위해서, 하나님의 너무 깊은 것을 알려하지 말라고 궤변의 권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자들이여, 자신의 무지를 솔직히 인정하고, 구원론 신학을 포기할 수 없는가?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게 영광이 되는 설득체계의 신학에 왜 도전하지 않는가? 새로운 진리체계가 나오면, 이제까지의 자신들의 사기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날까 두려워함이 아닌가? 자신들의 밥 그릇이 박살날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언제까지 칼빈이나 웨슬레만을 울궈 먹겠는가? 과거 신학을 고수함으로 자신들의 정통성을 확보하여 밥그릇을 안전하게 지키려함이 아닌가? 밥그릇 진리만이 진리라 하고 하나님을 더 통달하려는 진리는 이단이라고 심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야만 지극히 순진한 성도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 그저 자신에게 영광만 돌리는 광대들을 좋아 하시는가? 하나님은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자들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이기는 자들을 기뻐하신다. 이 시대에 정말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는 진리와 사역이 있는가? 아마 있다해도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 이스라엘의 7,000의 남은 자 같을 것이다. 절망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이기는 자들의 승전가를 들어 볼 수 있는가? 이러한 진리가 드러나고 가르쳐지면 우선 관심을 기울여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목회자들이여,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5)는 말씀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인간 영혼의 완성을 위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완성하지 아니하는 가르침들이 간혹 성도들의 영혼을 미혹하기도 한다. 정확한 진리에 의한 분별로 가치없는 새로운 가르침들은 분명히 경계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새로이 밝혀지는 가르침들을 무조건 심판해서는 안된다. 새로운 진리는 구 진리를 이단이라고 공격한 예는 별로 없다. 종교개혁 진리가 그리하였으며, 웨슬레의 가르침이 그랬으며, 순복음의 진리가 그랬다. 그러나 구 진리는 언제나 그들을 이단으로 심판하였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이 다툼을 일으킨다고 하였다. 종교개혁시에 구교가 종교개혁 세력을 잡아 죽였다. 교권과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지금도 소위 정통이라고 하는 교단과 세력들이 새로이 밝혀 지는 진리들을 말살시키고 있다.
구원론 신학이 참으로 옹색한 신학체계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마땅한 대안이 없어 현재까지 어떻게 해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계속 고수하며, 그것에 안주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하나님을 통달케 하시려고 보내주신 성령 하나님과 성경을 의지하여,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게 영광스러운 복음을 제시 해주는 진리를 찾도록 몸부림 쳐보자. 기차가 아무리 힘이 좋아도 철로가 놓인 곳만을 달릴 수 이듯, 성령은 진리영이시므로 진리의 길이 놓인 곳만을 역사하실 수 있다. 진리에 따라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사하심이 달라질 수 있다. 하나님, 이 세대에 아버지를 더욱 통달케 하는 진리의 드러남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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