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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드는 寒氣, 그리고 뜨개질...일단 체력이 딸리고, 눈이 어두워 힘들지만 그렇다고 후회할 수도 없는 일
박진서  |  hansol605@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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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0월 13일 (토) 21:11:58 [조회수 : 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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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그머니 다가서는 절기는 오묘하기도 하다.

寒露가 지나면서 귀뜨라미 우는 소리도 뜸해지고

아침 저녁에 살결에 닿는 공기도 차가워졌다.

 

하여

손녀들 쪼끼를 짷기 시작한 지 열흘이 넘었지만

그새 영월 시인대회에 다녀오고

시화전 참여하고

그리고 유성의 큰언니 병문안 다녀오느라 바빴다.

그러니 며칠 뜨개질을 못할 수밖에.

 

그래도 내 극성은 못말린다.

어느 날은 밤 세 시까지 털실과 씨름을 했으니.

다행이 두 개를 마무리했다.

 

 

린이는 보라색을 좋아해서 엷은 보라색으로 골랐지만

다섯 살짜리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걱정

 

 

일곱 살짜리 진이도 제가 선택한 연두가

쓸쓸해보일가봐 걱정이고.

어쨌든 귀여운 꿈나무는 무얼 입어도 예쁠 것이라 믿고

다음엔 큰아이 찬이 죠끼를 짷아야할 차례

 

그래서 털실가게에 가서 또 털실을 사왔다.

 

 

그런데, 어쩔까?

아침부터 열심히 짠 뜨게가 너무 커서 난감

그렇다고 곧바로 풀기엔 너무 아까워

그대로 한쪽에 밀어두고 새로이 분홍 털실을 꺼냈다.

찬이가 좋아하는 색은 하늘색이었는데....

 

 

젊은날의 생각만으로 시작한 오늘의 뜨게질은

일단 체력이 딸리고, 눈이 어두워 힘들지만 그렇다고 후회할 수도 없는 일.

 

죠끼를 입어 추위를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만으로 나는 기도하듯 한올 한올을 짷았다.

힘들면 누워 쉬기도 하면서. 

 

 

연보라와 진보라를 섞어 며느리 죠끼도 짜 볼까?

그러려면 통의동 편물명장인 김 여사에게 가서 배워야하는데

아직 자신이 서지 않는다.

 

내일 또 왕복 서너 시간을 지하철 전동차에 갇혀서 다녀와야 한다.

이번에는 아예 털실을 넉넉히 사와야겠다.

 

40여 년을 편물로 살아온 명장인 김 여사를 생각하면 대단하다.

하긴 누구나 다 제 몫을 하고 살고 있으니

사람마다 다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들.

 

아~ 피로하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무슨 기자라도 되는 양

가방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나는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오늘도 털실을 사러 가면서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털실을 사가지고 나오다

청계천을 지나치는데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있어

가까이 가니 흰 천에 그림을 그리고들 있다.

 

 

 

돌리고 있는 전단을 받아보니

책읽기를 내건 <시민지식네트워크>의 행사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붓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고 있다.

 

행사는 세 시부터이지만 나는 예정이 있어 그저 지나치는데

내용을 보니 무슨 낭독에 연주에 공연이 있다고 적혀 있다.

 

 

 

시민지식네트워크의 제안은

1. 책 읽기 운동

2. 책읽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3. 우리 삶의 불안에 대해 일고 토론하자는 것인데

인쇄물 끝에 은행구좌 번호가 적혀있다.

 

 

청계천은 수선스러웠다.

거리에 식탁이 준비되어 있는 걸 봐서 

무언가 한판 벌어질 것만 같은 잔치

그러나 이미, 노래와 춤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좋은 가을에 단풍놀이나

이렇게 거리의 공연을 보면서 식도락을 즐기는데

시민강좌에 늦을세라 부지런히 관광고사로 향하는 건

제113회 우리문화사랑방 얘기를 들으러....

 

강당에는 벌써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오늘의 테마는 <목릉성세의 중흥군주 宣祖>에 관한 강연인데

역사에 무식한 내게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강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인 정재훈씨

 

519년간의 조선조 27대중 14대 임금인 선조는

임진왜란을 겪기도 하고,선조때 발단된 당쟁으로

국민의 평가가 그다지 좋지 않지만

선조대의 문화가 가장 융성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조선왕조에서 서자로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오르고.

 

선조는 중종의 손자이자 14대 왕

의인왕후와 계비 인목왕후 외에 8명의 후궁을 두어

14남 11녀를 두었다고.

 

어렸을 때 13대 명종이 선조와 그의 두 형을 불러

자신이 쓰고 있던 관을 쓰게 하였더니

"군왕이 쓰던 관을 臣子가 쓸 수 없다"고 사양하며

임금과 아버지 중에 누가 더 중하냐고 물으니

"임금과 아버지는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충과 효는 본래 하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임진왜란은 기존의 이해와는 달리 일방적으로 패배한 전쟁은 아니고

난이 일어나면서 다음 해 2월, 우리 측이 평양을 탈환할 때까지

약 열 달 왜병의 공세를 받았을 뿐이라고.

우리 승병과 의병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혁혁한 전과를 빼놓을 수 없다.

 

다음엔 숙종에 관한 강좌를 예고하니

그때도 들어야겠다. 제 나라 역사로 모르면서

어찌 애족 애국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책읽기 좋은 계절이 왔으니 더러 책도 읽어야겠는데

어쩌나, 시작한 뜨게질을 먼저 끝내는 게 우선이다.

 

시간이 아깝다.

아니, 시간이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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